침묵하기에 좋은 절, 백담사를 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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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하기에 좋은 절, 백담사를 닮다
  • 최항영
  • 승인 2011.07.25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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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속에 비친 산사(山寺)/유안진의 시 ‘물고기가 웁니다’

물고기가 웁니다
-
유안진

새처럼 우는 물고기가 있습디다
물 없이도 살고 있는 물고기가 있습디다
귀양 사는 허공에서 헤엄도 칩디다
물고기도 허공에서 새가 되는지
허공도 그만 물바다가 되어주는지
절집 추녀 끄트머리 허허 공공에서
울음도 노래도 염불공양 같습디다
백담(百潭)의 못 속이다가, 만해(卍海)의 바닷 속이다가
,
백담사(百潭寺) 며칠 동안은 카-드도 지갑도 부럽지 않습디다
,
먹물 빛깔 단벌 옷의 물고기가 되는 듯이
,
등떼기에 옆구리에 지느러미까지 돋는 듯이
,
기어이 나도 가사장삼(袈裟長衫) 걸친 물고기만 같습디다
,
귀양살이 지망한 풍경(風磬)이 됩디다
.

 

낮에는 설악산을 찾는 등산객들로 붐비지만 밤에는 오직 달빛과 물소리만이 거처하는 곳. 오직 자연의 빛과 소리만 있는 강원의 깊은 곳. 내설악에 자리 잡은 것만으로도 그 불심의 깊이를 짐작할 수 있다. 만해 한용운 스님이 이곳에서 님의 침묵을 집필했다는 귀에 익은 대목에서는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말이 부질없는 곳이다.
백담사는 신라 진덕여왕 때 한계령의 한계사를 시작으로 운흥사, 심원사, 선구사, 영축사를 거쳐 지금에 이른다. 그때마다 절터를 옮겨짓고, 또 불에 소실되기를 여러 번. 그야말로 고행이란 고행은 다 거쳐 간 절이다. 마치 우리네 인생살이와 닮아있다
.
절은 색색의 단청을 자랑하기보다 절터를 감싸고 있는 설악의 산세와 그 앞을 흐르는 백담계곡을 먼저 내보인다. 그 풍광의 시간을 지나고, 다리를 건널 때까지도 여전히 자신을 내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사람들도 침묵을 유지할 수 있었고, 어느새 우리는 절을 닮아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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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항영 : 세상의 이면에 감춰진 드러나지 않는 진실을 전하는 다큐멘터리 사진가다. 로이터통신, AP, 뉴욕 타임즈 등 외국 통신사를 두루 거쳐 코소보내전으로 다큐멘터리 작업을 시작했다. 현재 H.U.Pictures 포토 에이전시와 스튜디오를 운영 중이며, 2000년부터 철의 실크로드와 동해안에 관한 작업을 정리 중이다. 최근에는 암묵적 동의라는 환경 프로젝트에 집중하고 있다. 10회의 전시회를 가졌으며 세계 기차 여행(공저), The Discovery of Seoul(사진) 외 여러 권의 단행본과 사진집을 출간했다. 여러 곳에서 사진관련 강의를 진행하였고, 세계테마기행과 영상앨범 에 출연하는 등 미디어와 친숙한 프리랜서 사진가이기도 하다
.
홈페이지
www.hupictur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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