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속의 한국 불교<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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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속의 한국 불교<中>
  • 관리자
  • 승인 2007.10.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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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불교

  ③ 미국사회의 특질
 내가 미국에 가서 처음 느낀 것은 미국 사람들은 무엇인가를 알려고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이 구하고 있는 「무엇」이 무엇인가 하면 그것은 바로 우리 한국의 선방 스님들이 구하고 있는 바로 그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옳게만 가르치면 미국인들을 얼마든지 교화할 수 있다고 보았다. 오늘날의 미국 젊은 사람들은 기성 세대에 대한 불신, 과학 문명에 대한 항거, 인간 회복에 대한 열망, 자연에 대한 동경 등등 그 내면의 갈등은 대단하다. 입으로는 세계평화를 부르짖으면서 원자 폭탄이나 자꾸 만드는 그런 기성 세대가 싫다는 거다. 또 높은 종교정신을 내세우며 평화를 외치면서도 자꾸 싸움이나 하며 돈벌이나 하려고 하는데 대해서 항거하는 것이다. 자연과 친숙해지고, 자연 속에 동화하려고 하는 젊은이들이 마침내 히피가 되고 약을 먹고 주사를 맞고서 중독에 빠지게 되고, 요가에도 뛰어 들고, 명상도 해본다. 그러나 그것 가지고 참된 안심입명(安心立命)이 얻어지지 않는 것이다. 더욱이 지혜가 열리지 않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이 한국 선에 접하게 되므로써 방황에서 정착하게 된다. 저들이 저렇게 헤매고 있을 때, 무엇인가 구하고 있을 때, 우리는 마땅히 여기 있다 하고 분명히 무엇인가를 내주면 되는 것이다.

 이미 다른 불교나 다른 선사들이 기반을 닦고 있는 미국 사회에 한국 불교가 늦게 참여해서 무엇을 주는 것이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인데 여기에는 우리의 분명한 것이 있다. 일본 불교들은 모두가 종파주의다. 제각기의 종파를 내세우고 선망 하더라도 자기가 신봉하는 종을 내세운다. 그래서 선이면 선, 염불이면 염불이지 그 외에는 가르쳐 주지도 않고 아예 무시해 버린다. 티벳트 불교만 좋다고 하고, 중국절에 가면 대승불교가 좋다 하고, 임제종에 가면 임제선만 제일 좋다고 하고, 남방불교에 가면 거기도 또 그렇다고 한다. 저들 미국의 젊은이들은 어느 것이 진짜냐 명백하게 가릴 눈이 없기 때문에 저들을 대하는 미국의 젊은이들은 당황하기만 한다. 그런데 한국 불교를 접하면서는 새로운 것을 얻는 것이다.

 대개 미국 사람들은 자기에게 이익이 없다고 보면 사정없이 못 본 척 한다. 찾아오는게 아무 것도 없다. 인정도, 정말 눈물도 피도 없다. 한국 사람은 『그래도 차마……』하는 것이 있어 의리상 그럴 수 없다 하며 봐주는 것이 있지만 그곳 사람에겐 그런 것이 없다. 찾아오는 미국 사람에게 불교의 모든 사상과 각 종파의 특성과 그 종취를 밝혀주며 마침내 사교입선(捨敎入禪)의 도리를 말해주고, 선 수행에 맛들이게 되면 저들은 기나긴 방황을 멈추는 것이다.

 미국 사회에서는 무엇보다 언행이 일치하여야 한다. 말과 행동에 조금이라도 차이가 있으면 조금도 받아주지 않는다. 저들은 그만큼 많이도 방황하고 많이도 대하여 왔으며 심각하게 고민을 해서 분간의 눈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나는 저들에게 불교를 정해주는 교과서로서 골격에 다시 골격만을 추린 간략한 책을 꾸몄다. 그것이 <선의 나침반>이라고 하는 것이다. 불교의 목적, 불교의 분류, 불교의 구성, 불교의 주요 교리, 대승 여러 경전의 골자, 선의 분류, 교의 발전, 공안(公案) 등을 일목요연하게 간추려서 저들에게 제시했던 것이다. 이것을 배워놓고 다른 데 가서 법문을 듣게 되면, 저절로 법문의 정도를 이해하게 된다. 소승 불교, 혹은 대승 불교, 나무아미타불, 또는 진언종, 법화종, 어떤 법문을 듣던지 그것이 어느 정도라고 하는 것을 다 알고 만다. 그러니까 한국 불교가 좋구나, 통불교(統佛敎)로서 일체 불법을 다 갖추고 있는 한국 불교가 제일이다 하게 된다. 말하자면 우리 한국의 통불교의 가지를 미국에 가서 조금 나타내 보인데 불과하다.

 이것으로 그치지는 않는다. 법계장이라고 해서 열가지 문제가 또 나온다. 어떤 스님이 조주에게 묻기를, 『개에도 불성이 있습니까?』대답이 『無』였는데, 어째서 조주가 무라고 하였는가? 누가 그대에게 개도 불성이 있느냐 없느냐 물으면 어떻게 대답하겠는가, 여기에 대해서 세 가지 문제를 낸다. 세 가지 문제가 다 대답이 다르다. 그러니까 이 놈을 분명히 뚫어내야 되게 되어 있다. 천 칠백 공안 중에서 제일 중요한 것만 단계적으로 열 개를 뽑아서 문제를 내는 것이다. 그리고 맨 마지막에 「주가 고양이 밥을 먹다가 고양이 밥그릇을 깨뜨렸다」―이것은 다들 아시는 고봉스님 공안인데 이것 참 쉬운 공안이 아니다. 이것이 마지막 코스다. 

  ④ 미국의 수도 생활

 내가 미국에서 포교하고 있는 것은 출가 위주의 불교가 아니라 재가불교, 말하자면 거사불교 포교라고 말할 수 있다. 절에 와서 생활하는 사람들과 그렇지 아니하고 정진 때만 와서 참여하는 사람들이 있다. 절에 와서 사는 사람들은 우리 스님들의 생활과 꼭 같다. 예불하고, 좌선하고, 바루 공양하고, 선방 그대로다. 그리고 이 사람들은 한달에 210불씩 밥값을 낸다. 석달 동안 상주(常住)하며 정진하는 것이다. 석달 동안 공부를 해서 공부가 자리 잡히고, 남을 지도할 줄 알고 인터뷰를 할 수 있고, 그리고 선에 대한 논문을 쓰게 한다. 교리가 전부 머리 속에 들어간 사람은 시험을 보게 해서 합격증을 주게한다. 말하자면 법사 자격증이다. 현재까지 이 코스를 거쳐 법사 자격증을 딴 사람은 70명 정도 된다. 그리고 공안을 뚫은 사람은 마음이 열린 사람이다. 이는 마스터 달마 티쳐(Master Dharma Teacher)라고 해서 대리법문을 시킨다. 현재까지 두 사람이 나와 있다.

 그리고 미국 사람들 수행에 꼭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청규 생활이다. 우리에게 선원청규가 있어서 통제가 되고 수행의 향상을 기약할 수 있듯이 나는 미국 사람에게 적합한 청규를 만들었다. 물론 내 것이 아니다. 한국의 선원청규를 갖다 쓴 것 뿐이다. 미국사람은 불가불 일정한 틀에 다 놓고 합리적으로 두들겨 내야 되지 제멋대로 부모 말도 안듣고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제대로 될 수 없는 곳이다. 청규가 없이 도저히 될 수 없다. 불조 경전을 여기저기서 뽑아 모아서 이 청규를 만들었는데 이것이 잘 되었다고들 한다.

  ⑤ 한국불교의 활동상황

 미국 홍법원의 본부는 「프로비던스」에 있다. 이곳은 영국 사람이 처음 멩플라우어호를 타고 미국에 도착한 바로 그 자리다. 거기서부터 미국 개척이 시작된 것이다. 나는 여기에 자리를 잡게 되어서 여기에 육만평의 땅을 샀다. 그리고 선방도 지었다. 개인이 수행할 수 있는 방도 서른 두 개가 있다. 대중 50명이 현재 거주하고 있는데 이 프로비던스가 본부이고 미국 각지에 퍼져나간 지부가 있다. 폴란드에도 한 본부가 있고 지부가 셋 있어서 도합 네 개가 있는 셈이다. 폴란드와 캐나다까지 합하면 열 두 개의 지부가 있다. 물론 미국 사람들만 가르친다. 한 선방에 대중이 적은 데는 6~7명이고, 좀 더 많은 데도 있다. 샌프란시스코 버클러 대학 곁에 있는 선원에는 22명이 있고, 지방 선원에서 열심히들 공부하고 있는데 저들의 수행 내용 생활 내용이 모두가 똑같다. 그 선원에는 법사가 반드시 한 두 사람은 꼭 있다. 그리고 원장과 총무, 교무, 재무 등 사직이 짜여 있다. 거기 머무는 사람들은 머리를 깎지 않고 생활하면서 낮에는 일을 하고 아침 저녁으로 꼭 전적으로 수행을 한다. 본부에서 명령을 내리면 전 지부가 일사천리로 움직인다. 군대가 유가 아니라고 장담하고 싶다. 어디를 가나 똑같이 염불하고 똑같이 수행한다. 독경을 하더라도 서로의 음곡이 틀리지 아니한다. 한국에서처럼 높은 음성, 낮은 음성, 제멋대로 하지 못하게 하고 일정하게 교육시켰기 때문이다. 미국 사람들은 어려서부터 제멋대로 큰 사람들이다. 혹 어머니가『왜 이거 안했어?』하고 꾸짖으면, 『나는 하기 싫단 말이야』하고 대들기 일쑤다. 그런 사람들에게 불교공부를 시킨다면서 한국에서처럼 풀어놔 줄 수는 없는 것이다. 음악처럼 똑같이 올라갈 때는 올라가고, 내려갈 때는 내려가게 하고 있다. 선방에서 죽비를 치는 것도 교육을 받아서 모두가 차례로 죽비를 친다 염불도 배운다. 법사가 되려면 목탁치는 법, 부존(扶尊)살이 하는 것을 꼭 배워야 한다. 그러니까 법사는 목탁도 잘 치고, 죽비도 잘 치고, 전체 살림살이도 다 잘 안다. 독경도 잘한다. 이 사람 밑에 수행한 사람들이 또한 그렇게 된다. 또 한달에 한 번씩은 꼭 용맹정진을 한다. 금요일, 토요일, 일요일 사흘간이다. 나는 이것을 Y ` M ` J ` J라고 하는데 이것은 한국말의 용맹정진을 머리음만 따서 표한 말이다. 이 기간에는 한국의 선방 스님과 조금도 다를 게 없다. 공양하고 예불하고 참선하고, 그 생활의 반복이다. (계속 文責記者)  (스님. 조계종 미국 홍법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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