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의 花 함께] 목적 없이 쉬어가는 도심 포교당-구리 신행선원장 혜원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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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의 花 함께] 목적 없이 쉬어가는 도심 포교당-구리 신행선원장 혜원 스님
  • 송희원
  • 승인 2025.01.02 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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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행선원장 혜원 스님이 진행하는 ‘와선과 함께하는 싱잉볼’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신도들.

재개발 공사가 진행 중인 경기도 구리 수택동의 한 상가 건물 3층. 주택들이 철거되고 땅고르기가 한창인 이곳에 2024년 4월 13일 선원 하나가 문을 열었다. 송광사 도심 포교당 ‘신행선원’이다. 위층은 운동선수들의 물리치료와 재활을 돕는 트레이닝센터, 아래층은 개척교회, 3층은 선원이 들어오기 전에는 다단계 회사가 있었다가 한동안 빈 채로 남아 있던 공간이다. 2024년 2월, 구리 신행선원장 혜원 스님은 마지막까지 있었던 절 소임을 정리하고 이곳에 걸망을 내려놓았다. 건물들이 허물어지고 오가는 사람 보기 힘든 이런 삭막한 풍경에 ‘선 명상’, ‘힐링’이란 간판을 내걸고 시작한 포교당. ‘포교당은 망한다’, ‘선센터는 더 힘들다’라는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스님은 어쩌자고 선 명상 포교당을 열었을까?

구리 신행선원장 혜원 스님

 

현대적인 감각의 법당

“조계사 소임을 그만둔 뒤, 짐 풀어놓을 곳을 찾다가 인연 있던 불자가 마침 자기 건물에 비어 있던 공간을 선뜻 내줬어요. 여기에 짐을 탁 놓는데 마음이 편안하더라고요. ‘이런저런 복잡한 것 내려놓고 여기서 포교하며 조용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싶어서 그날 저녁에 포교당 좀 합시다 했어요. 건물주인 보살님이 재개발 때문에 아래층의 교회도 일요일에 5명도 안 나올 때도 많아요 힘들 텐데요, 하더라고. 나 혼자 산다고 생각하면 그것도 괜찮으니까 뭐 그럽시다 했어요. 그게 다 인연이겠죠.” 

2개월 동안 직접 바닥에 난방필름을 깔고, 법당을 구획할 중문을 세우고, 스님·대중·공양방 공간을 만들었다. 법당의 부처님은 금속공예가 이경자 명장의 입사(入絲) 기법을 활용한 작품 ‘니르바나’를 모셨다. 쇠로 부처님 형상을 주조하고 끌로 표면에 홈을 파 금 문양을 섬세하게 새긴 불상이다. 특이하게 불상 가운데가 텅 하니 뚫려 있다. 

“공(空), 텅 빈 마음이죠. 욕심을 비우고 마음을 비워라 이런 의미죠.”

좀 더 둘러보니 혜원 스님만의 독특한 미적 감각이 법당 구석구석 녹아 있다. 부처님오신날 맞이 연등은 플라스틱 케이크 상자를 활용해서 한지를 붙이고, 신도들이 그림명상 때 틈틈이 색칠한 연꽃 그림을 하나하나 모아뒀다가 붙였다. 레이저 각인기로 나무 타일에 새긴 104위 신중단 점안식도 11월 20일에 봉행했다. 점·선·면으로 사유를 녹여낸 혜원 스님의 작품도 몇 보인다. 

60평(198m2) 규모의 법당을 현대적이고 독창적인 감각으로 장엄하고, 그때그때 필요한 재료와 기술을 십분 활용하는 스님의 이러한 재능은 다년간 절에서 소임을 맡으며 쌓은 감각 덕분이다. 혜원 스님은 송광사에서 대중 식생활을 책임지고 살림을 관장하는 원주(院主) 소임을 한동안 맡아서 했다.  

“송광사에서 원주 소임을 볼 때 많이 힘들었어요. 챙길 것도 신경 쓸 것도 많았죠. 강원, 중앙승가대학, 선방까지 십몇 년을 보냈는데, 왜 같은 절인데 이렇게 힘들지 고민하다가 알게 됐죠. 똑같은데 완전 다르구나. 전에는 뭐든지 안 하는 거를 주로 했는데 원주 하니까 뭘 자꾸 해야 해요. 쓰이는 에너지가 전혀 달라서 힘들었던 거죠. 그래서 저녁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어요. 하다 보면 마음이 편안해지더라고요. 결과물의 완성도보다 과정 자체가 좋아서 그린 것들이라 버리거나 선물로 준 것도 많을 거예요.”

혜원 스님의 실행력과 뚝심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일화가 하나 있다. 송광사 승가복지회 3,700명 후원회원을 몇 개월 만에 모집한 일이다. 중앙승가대학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하면서 출가자들이 노후 걱정 없이 포교에 전념할 수 있도록 수행자 복지를 위한 불사에 원력을 세웠다. CMS 후원을 받기 위해 원주실에 오는 모든 신도에게 후원 용지를 내밀었다. 강원의 학인 스님들, 선방의 스님들, 성지순례 오는 단체 방문객들 가릴 것 없이 후원 신청을 받았다. 

“송광사에 단체로 성지순례 오는 분들이 열흘에 몇만 명 돼요. 그분들이 공양하면 5,000원씩 받거든요. 여행사 대표와 인수자한테 밥값 안 받을 테니 버스 안에서 CMS 홍보를 좀 해달라, 부탁했죠. 예불드릴 때도 마이크 들고 나서서 홍보했어요. 한 자리에서 100명 넘게 받은 적도 있어요. 
사실 저는 3,700명의 후원자가 모이는 게 처음부터 가능하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구산 스님부터 법정 스님까지, 송광사의 역사가 그 일을 해낼 수 있을 거라고 믿었어요. 송광사는 스님들이 살아온 모습이 자산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렇게 시작된 송광사 승가복지기금은 현재 후원회원 3,392명, 16억 5,000여만 원(2024년 11월 20일 기준)이 적립돼 스님들의 건강검진과 의료비 및 수술비로 지원되고 있다. 

스님의 원력은 신행선원이 있는 구리 지역으로도 이어졌다. 채 1년도 안 된 선원이지만 주기적으로 구리시에 기부한다. 지난 5월에는 어버이날을 맞아 홍삼 1,800세트를, 연말을 맞이해서는 관내 아동·청소년들을 위해 영양제 5,050개를 기부했다.

 

신도들과 함께 동지 팥죽에 들어갈 새알을 빚고 있는 혜원 스님
‘족욕과 함께하는 그림명상’ 중인 신도들. 색칠한 그림들은 모아뒀다가 연등에 붙인다. 

“바쁜 것도 관성이다”

신행선원 프로그램은 수요일, 토요일 정기법회 후 『금강경오가해』로 경전 읽기 강의를 하고, 평일에는 ‘족욕과 함께하는 그림명상’, ‘와선과 함께하는 싱잉볼’을 진행한다. 스님이 “족욕과 함께 그림 그리며 수다 명상을 하신 분들이 수다원과(?)를 얻으면 법당에 누워서 릴랙스 취하는데, 그럼 제가 가서 싱잉볼로 명상을 도와드린다” 말하며 웃는다. 

신도들과 코스모스가 한창 피었을 때는 인근 한강 변을 걸었고, 인제 자작나무 숲을 가려다 애꿎은 날씨 때문에 급선회해서 춘천박물관 관람을 하기도 했다. 소수의 인원이기에 뭐든 자유롭게 함께 만들어 나간다. 

신행선원 신도들은 인근 주민보다는 강남이나 성북, 파주, 일산 등 멀리서 오는 분들이 대부분이다. 모두 은사 영명 스님이 계시는 본원 순천 신행선원의 오랜 신도들, 이전 절에서 소임을 맡으며 알게 된 신도들이다. 법회 때는 10명 내외로 오고, 특별한 행사 때는 30명 정도 온다. 오시는 분들의 연령대를 묻는 말에 “대부분 20, 30대”라고 보살님들 듣기 좋으라고 넉살 좋게 대답하는 스님. 

혜원 스님은 신행선원에서 구태여 많은 프로그램을 하려고 하지 않는다. 

“조계사에 있을 때 염불 소리가 마이크로 크게 울리고 징 치고 북치고 너무 시끄러운 거예요. 복잡하고 바쁜 도심에서 절마저 시끄러운 게 안타까웠어요. 기존에 사람들이 생각하던 불교하고 너무 동떨어진 이미지로 한국불교가 비치는 것도 같았고요. 마당에서 사람들이 고요하게 참선하고 명상하고 있는 광경이 펼쳐진다면 그것 또한 감동일 수 있는데. 무엇을 위해서 이렇게 뭘 자꾸 하고 바쁘게 살까 생각해 보면 관성인 것 같아요. 신행선원에 오시는 분들은 관성에서 벗어나 편안히 쉬어갔으면 해요.”

신도들에게 신행선원은 어떤 곳일까. 성북구에서 온다는 진승현 보살은 “큰 절에서는 스님과 차담이나 면담할 기회가 많이 없는데, 이곳에서는 법문 시간 외에 따로 스님께 개별적인 상담을 받을 수 있어서 좋다”라고 말한다. 또 “마음공부, 명상 수행을 더 체계적으로 할 수 있다”고도 덧붙인다. 

스님과 6년째 인연을 이어오고 공간을 선뜻 내어준 길상정 보살은 “구리는 종교를 찾기보다는 먹고살기에 바쁜 사람들이 치열하게 살아가는 지역”이라며 스님께서 이런 곳에서 포교한다는 게 쉽지 않을 것 같아 처음엔 말렸단다. 하지만 “스님과 함께하면 항상 웃음꽃이 핀다”라며 “편안하게 가르침을 전해 주시는 스님께 큰 위안을 받는다” 한다.

지난 8개월 동안의 소회를 묻자 스님은 “힘든 것은 아직 없다” 말한다. 하지만 스님이 아예 고민이 없는 것은 아니다. 재개발로 아파트가 들어서기까지는 최소 3~4년이 더 걸린다. 1년 동안은 100만 원 남짓한 월세를 내지 않기로 했는데, 이제 그 유예기간도 몇 개월 남지 않았다.

“사실 도심 포교당은 환경적으로 열악하죠. 제가 나서서 홍보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오지도 않을 거고요. 불교 기본 교육 같은 걸 해야 할지 아니면 경전 강의하는 걸 홍보해야 할지 명상을 홍보해야 할지 고민 중인데, 급하게 할 생각은 없어요. 물론 사찰을 운영하려면 신도들도 모으고 재정적으로 뒷받침이 돼야겠지만, 부처님은 뭐 돈이 있어서 수행처를 만들었나요.”

신행선원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보이는 나무판에 프린트한 반가사유상. 신도들이 직접 채색한 작품들도 옆에 함께 전시했다. 

도심의 수행처 

혜원 스님은 신행선원이 ‘목적 없이 편안히 쉬는 공간’이 되길 바란다. 그림명상을 할 때도, 싱잉볼 와선을 할 때도 애쓰지 말고 그냥 편안하게 누워 있으라 한다. 어떤 프로그램이든 거창한 목적을 안 둔다. 목적이 하나 있다면 ‘무엇을 하든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이 목적이다.

“철야 3천 배를 하더라도 처음엔 뭘 어떻게 해야지, 무슨 발원을 해야지 하다가도 하다 보면 아무 생각이 없어지거든요. 열정적으로 뭘 하는 건 대한민국 사람들이라면 모두 너무 잘하잖아요. 우리는 항상 뭔가 의미를 부여해야 하고 목적을 가져야 하고 이렇게 살아왔잖아요. 그런데 이제 좀 편히 내려놓고 쉬는 것, 이런 것들을 배울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현대인들한테 가장 필요한 것 중 불교에서 해줄 수 있는 게 있다면, 수행을 통해서 비워내고 마음 편히 쉬는 것이 아닐까요.”

앞으로도 스님은 신행선원에서 도심에 사는 학생이든, 직장인이든, 주부든 모든 이들이 마음 편히 살아갈 방법들을 전하고 싶다. 그저 한 명의 인연 있는 사람이 이곳에 닿을 수 있도록 신행선원이 늘 그 자리에서 열려 있는 곳이 됐으면 한다. 

“인연이라는 것도 가까이 있어야 인연이 될 거 아니에요. 요즘 지방 도시에 사람이 너무 없어요. 도심의 조그마한 포교당들이 활성화돼서 산사의 큰절과 유기적으로 연결돼 서로 도움이 되는 포교 방식이 이제는 정말 필요해요. 심심하면 놀러 오세요. 따뜻한 차 한잔하고 가요.”  

혜원 스님은 신행선원이 도심 속에서 마음 편히 쉬어가는 수행처가 되길 바란다. 

 

구리 신행선원

●  주소 경기 구리시 검배로59번길 10-20 3층

●  후원계좌 농협 355-0089-9787-03(대한불교조계종 신행선원)

●  문의 031-558-5048

●  신행선원 블로그 바로가기 https://blog.naver.com/whowxyz

사진. 유동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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