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의 말
세계의 경제를 뒷받침한다는 미국의 산업은 앞으로도 인류의 수요를 메울 부양력을 계속 유지해 갈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이와같은 지속적 번영을 구가하게 된 뒤에는 한낱 과학. 기술. 인력이나 혹은 세계정세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다. 거기에는 시민으로 하여금 큰 희망을 가지고 무한에 도전하여 온갖 정열과 활기를 솟게하는 사상적 배경이 있기 때문이다. 오늘의 미국의 부강은 원인을 먼 곳에 구할 수도 있겠지만, 우선 가까이 Emerson을 중심한 일단의 사상가들을 들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은 「New thought 」의 이름으로 미국에 끊임없이 발랄한 활기를 불어넣었던 것이다. 이 사상은 확실히 대승불교의 생활에의 전개라고 보아 큰 잘못이 없다.
우리나라는 지금 여러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공업입국의 피치밑에 총 동원되어 있는 상태다. 우리나라의 번영도 한낱 산업화 구호나 계획이나 관리조직이나 행정정치만으로는 이룰 수 없다. 거기에는 팽팽한 정신적 활력이 앞서 있어야 하고 그러한 정신자원은 무엇보다 먼저 착실하게 개발되어야 한다고 생각된다. 그래서 본지는 Orison Swett Marden의 「The Progressive Business Man」을 초역하여 소개키로 한다. 이것은 불법의 산업에의 일면으로써 이해될 수 있으며 본지가 꾸준히 추구해 온 「바라밀의 포교이론」과 일맥상통한다. 독자의 기대를 바란다.
우리가 번영과 성공을 누리자면 무엇이 가장 중요한 조건일까? 그것은 당신이 그 번영과 성공을 기대하면서 그것을 마음에 그리는 것이라 하겠다.
이상을 현실화하는 길은 그 이상을 구체화한 상태를 마음에 그리고 그것을 끝까지 집요하게 마음에 그려 가는 것이다. 「풍요」를 현실화하는 방법은 「풍요」의 상념을 끊임없이 마음에 품고 놓지 않는 것이다. 미국사람들은 이미 이 대원리에 마음을 돌려 자기생활에서 가난을 물리친 사람들이 퍽 많다.
이 대원리라는 것은 우리들이 어떤 희망을 품고서 그것을 상념 속에 꿋꿋한 희망으로 붙들고 놓지 않는 것이며, 힘을 다하여 노력하면 그 희망은 반드시 실현된다는 것이다.
대개 자기가 하는 사업이 잘되지 않는다고 꾸물거리는 사람이 대개 성공한 사실을 들은 적이 없다. 당신은 마음을 일의 어두운 면에 붙여두고 꾸물꾸물 근심하는 짓을 결코 해서는 아니 된다. 시장의 불경기 이야기나 금융핍박 이야기를 결단코 입에 올리지 말라. 「말의 힘」을 구사해서 번영만을 말하도록 하고 쇠퇴에 관하여 결코 말하지 말라. 많은 산업인들 중에는 불만가가 되어 결함만 들추어 대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에게 운명은 항상 가혹하다. 저들은 상습적인 비관론자가 돼서 일의 밝은 면이나 성공을 못 본다. 이런 사람에게 번영은 찾아오지 않는 것이다.
우리들은 자기가 항상 마음에 그리고 끊임없이 생각으로 추구하고 있는 것을 점점 성취하고 더욱 증장시키는 경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들이 지금 당하고 있는 고난을 마음에서 부정하면 그것이 지금까지 우리를 잡아매고 있던 것이 서서히 풀리고 그것이 장차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
우리들은, 우리는 비천하고 자연환경 상황하에서 생긴 버러지의 한 종류며 또한 저들의 제약아래 있는 자며, 약하고 쓸모 없는 존재이며 조화를 이루지 못한 감옥에서 신음하는 죄수라고 하는 이런 유물론적 견해에 대하여 항상 끊임없이 부정해 버려야 한다. 그리고 완전하고 아름다운 실상만이 「참된 자기」이며 그것만이 참으로 있는 것이며 일체를 지배하는 원리라는 사실을 강렬한 생각으로 긍정해야 한다. 그와 같이하면 우리들의 성격은 도야되고 놀라운 아름다운 것을 각 방면에 나타내게 된다. 그와 같이 간단없이 영속적으로 집요하게 마음속에 반복하면 결함은 궁극적으로 추방된다.
사람은 대체로 첫 인상으로써 그 사람의 인생관을 느낄 수 있다. 그 사람이 염세적 인생관으로 성격을 더럽혀 있거나 과거의 불행한 생활체험으로 인하여 성격이 상처를 입었거나 정신이 박약한 것인가를 직감할 수도 있고, 또한 당당하게 사람과 접하여 모든 사람의 「착한 실상」을 보며 믿어주는 성격인가도 곧 알 수 있다.
만약 그 사람이 밝고 생기발랄하고 희망에 찬 성격을 가지고 또한 인류는 결국은 영원한 이상국을 향하여 진보하고 있는 것이라는 신념을 가져 결국에 그가 인류 동포의 힘을 믿는 사람이라면 그는 건전한 인생관의 소지자라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만약 그가 빛을 향하여 태양과 함께 걷는 사람이라면 그는 결코 암흑의 골짝에 빠지지 않으며 어두운 그림자는 그에게서 사라지는 것이다.
대개, 우리들은 이런 사람들을 믿는다-. 인간에게 깃들은 최고 지선의 실상을 믿는 사람 모든 악은 실상을 은폐하는 항의에서만 나오는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 부조화라는 것은 다만 거기에 조화가 결핍하여 있을 뿐이라는 소극상태에 불과한 것으로써 부조화는 실재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 또한 빛만이 존재하고 어둠은 빛이 아직 나타나지 않은 상태라고 아는 사람, 그리고 다시 건강만이 참된 실재이며 병은 비존재라고 보는 사람 등이다.
대개 암흑, 우울, 의기소침 등의 소극적인 정신상태보다도 사람의 심신의 창조력을 마비시키는 것은 따로 없다. 어떠한 위대한 창조적 대업도 근본적으로 낙천적인 밝은 성격인 사람이 아니면 성취할 수 없는 것이다.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공포나 우리가 필요 불가결한 것을 얻지 못하게 된다는 공포는 우리들에게 활력의 원천을 빼앗아 불안. 우려에 빠뜨리고 우리의 종횡자재 선처할 수 있는 능력을 고갈시키며 일의 성취에 필요한 창조능력을 쇠퇴시키게 된다.
자신도 확신도 없는 곳에 커다란 용기가 올 리가 없다.
의혹이나 공포나 불행의 예상으로 마음이 채워져 있는 사람은 효과적인 창조적 사업을 할 수 있는 조건이 없는 것이다. 사람은 그 마음이 선두에 서서 희망에 빛나는 깃발이 진군하여 주지 않는 한 큰 사업은 될 수 없다. 설사 자금도 친구도 명성도 그밖에 모두를 잃더라도 희망에 빛나는 깃발의 진군이 멈추니 않는다면 사람은 반드시 일을 성공한다. 어떤 사람들은 작은 문제에 마음을 끄달리고 있는 것을 본다. 본인은 그것을 모르고 있는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되면 저의 생각도 점점 소극적으로 되고 말하는 것이 점점 비관적인 방향으로 기울어간다. 마음이 그렇게 되면 모든 일이 서러지고 만다. 사업은 찌그러지고 전도는 캄캄하다. 그래서 이런 사람은 전도에 암초만을 보고 출항을 주저한다.
나는 이런 종류의 사람들을 몇 사람 알고 있다. 저들이 쓴 편지를 읽으면 항상 비관적이다. 저들은 자기들이 가는 세계 상공에는 언제나 검은 구름이 꽉 덮어있어 언제 호우가 쏟아질지 모른다는 긴박감을 안고 생활하고 있다. 이런 정신적 습관에 붙잡힌다는 것은 사람에게 가장 불행한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어떤 정황이 그 사람을 찾아드는가는 그 사람이 인생을 어떻게 보며 사물을 어떻게 당하는 가에 달려있다. 불행스런 재앙을 항상 마음에 품고 한탄하고 있는 사람들의 가까이 이와는 반대로 저들과 똑같은 정황아래 생활하면서 전혀 다른 생활을 즐기고 있는 사람을 실지로 발견한다. 저들은 일견 실패라고 보이는 곳에서 더욱더 번영하는 세계를 발견하고 항상 진보의 길을 잡는 것이다.
당신은 결코 「말의 힘」으로 사업을 침체시켜서는 아니 된다. 왜냐하면 지금 당신을 괴롭히고 있는 사물은 실은 당신에게 한층 더 훌륭한 운명을 가져다 줄 기회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안다. 이 일을 알기만 하면 당신은 지금의 핍박한 상태를 사람들에게 말하고 퍼뜨림으로써 다른 사람의 마음에 주는 불행한 암시적 영향을 그만큼 적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당신이 당하고 있는 불행이나 어려운 문제. 시련이나 실패를 당신이 반복 이야기한다면 당신은 그 암흑상태 그림을 당신 자신의 잠재의식에 더욱 깊이 아로새기고 있는 것이다. 즉 영구히 당신의 마음속에서 지워버려야 할 것을 도리어 한층 더 깊이 현실화를 도모하고 있는 것이 된다. 인생의 출발이라고도 할 젊은 시절에 인생을 보는 눈을 최악을 보는 습관을 만드는 대신 최선을 보는 습관을 쌓아두는 것은 그 사람에게 얼마나 훌륭한 축복일까!
사람이 만약 항상 용감하게 희망을 가지며 또한 그를 찾아 올 모든 좋은 은혜에 대하여 감사할 줄을 알고 사람에게 있는 성의에 깊은 신뢰를 가지며, 인간성의 근본은 선이라는 신앙을 갖는다면 그런 사람들은 어떻게든지 지금의 고난이나 분규에서 빠져 나와 더욱 넓고 시원스런 인생을 향락할 수 있으리라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