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림 없는 수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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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림 없는 수행
  • 관리자
  • 승인 2007.10.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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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검다리

젊고 아리따운 여자에게 닥친 불행은 우리가 설혹 그 여자에 대하여 아는 바가 하나도 없다 하여도 우리 가슴을 아프게 한다. 그 예기치 못했던 불행이, 어느 날 갑자기 종적을 감춘 남편이 테러리스트들에 의해 납치당한 것으로 알려졌을 때, 우리는 그 여자가 겪을 비탄과 고통에 몸서리치며 우리의 힘 없음을 안타까워한다.
그리고 그 여자가 납치범들에 의해 남편이 처형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흐트러짐이 없는 모습으로 의연히 서서, 살아남으려는 의지를 지켜나가는 것이야말로 테러리스트들에 대한 승리임을 당부할 때 우리는, 인간 정신의 고귀함과 강한힘에 가슴 떨리게 된다.
마리안느 펄은 올해 34살의 아름답고 실력있는 직업여성이고 이제 얼마 있지 않으면 태어날 첫 아기를 가진 엄마이다. 그녀는 미국에서 발행되는 신문 월 스트리트 저널의 남(南)아세아 지사장인 남편 다니엘 펄을 따라 인도의 봄베이에 가서 살고 있었다. 곁에서 보기에도 그들은 걸맞는 짝이었으며 서로 지극히 사랑하는 부부였다.
아프카니스탄 전쟁이 일어났을 때, 가까운 봄베이에 있으면서도 다니엘 펄은 전쟁 취재를 꺼려하였다. 아내가 임신 중이므로 자중해야 했다. 명문 대학을 나온 미남 기자인 그의 글은 다른 많은 기자들의 기사를 제쳐놓고 세계에서 그 권위를 인정받는 신문의 첫째 면 중앙에 실리곤 했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자기 신변의 위험을 무릅쓰고 전쟁터나 범죄의 소굴에 들어가 수사를 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 어느 편이냐 하면 늘 느긋하게 삶을 즐기면서 사회의 어둡고 복잡한 뒷면에 숨어 있는 엉뚱하고도 재미있는 일들을 찾아내는 재주를 가진 사람이었다.
그는 또한 음악, 특히 미국 남부의 민요풍 음악인 블루그래스 음악을 좋아해서 어려서부터 배운 클래식 바이올린을 접어두고 전혀 연주방법이 틀린 블루그래스 음악 연주법을 배워서 다른 악사들과 같이 연주하기를 즐겨하였다. 그가 워싱톤 특파원으로 워싱톤에서 살았을 때는 한달에 두어 번 바마달즈 오간(Bar Madam’s Organ)이라고 하는 괴상한 이름을 가진 술집에 가서 좁은 무대에 끼어들어 다른 악사들과 같이 밤새도록 즉흥연주를 하곤 하였다.
다니엘 펄이 파키스탄의 도시 카라치에 간 것은 회교도 극렬분자들에 관한 자료를 수집하기 위해서였다. 정보를 제공하겠으니 나오라는 전화를 받고 그가 카라치의 한 음식점으로 간 것은 1월 23일이었고 그는 거기에서 종적을 감췄다. 며칠 후 바로 수척한 모습의 다니엘 펄이 텔레비전에 나왔고 그를 납치한 것은 바로 회교도 극렬분자임이 밝혀졌다. 세계의 정치와 언론이 그를 구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으나 그는 납치범들에 의해 끔찍하도록 잔인하게 처형당했다. 그 장면이 담긴 비디오가 2월 22일 파키스탄 정부에 전달되었을 뿐 그의 시체는 아직 찾지 못하고 있다.
남편의 처형 소식을 들은 날, 마리안느 펄은 CNN 텔레비전 인터뷰에서 이와 같이 말하였다.
“이 야만적인 행동을 함으로써 테러리스트들은 우리 모두를 피해자로 만들었으며 우리가 그들의 잔악함에 떨며 도망칠 것을 기대하고 있어요. 그러나 그들이 잊어버린 것이 있어요. 그들이 죄 없는 사람 하나를 죽이거나 9월 11일 사태처럼 수천 명을 죽일 수는 있지만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 속에 있는 믿음을 파괴할 수는 없다는 것을.”
마리안느 펄의 말과 태도는 전 세계 사람들을 감동시켰다. 더 이상 처참할 수 없는 개인의 비극 앞에서 끓어오르는 분노와 원망과 보복의 충동을 누르고 흔들리지 않는 인간 정신의 승리를 믿는 마리안느 펄의 가치관은 어디에서 온 것인가.
그것은 오랜 동안 불교를 수행한 데서 온 것이었다. 17년 전 그녀는 프랑스에서 큰오빠의 권유로, 순전히 호기심에 끌려 불교인들의 모임에 참석하였었다. 각양각색의 사람이 거기에 모인 것을 보고 크게 놀랐으며 어떻게 하나의 믿음을 위해 이렇게 서로 다른 사람들이 모였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더구나 그 사람들은 누구를 닮으려고 하지 않고 각자의 개성을 견지한 채 불교 수행을 하고 있는 것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지난 3월 9일 로스엔젤레스의 창가학회(創價學會) 강당에서 있었던 다니엘 펄의 장례식에는 500명 이상의 조객이 모였다. 미망인 마리안느 펄의 요청으로 언론과 보도진의 입장은 불허(不許)되었다고 한다(워싱턴 포스트 3월 23일자). 그녀가 특별히 뭔가를 숨기려는 것은 아니고, 다만 언론이나 사람들이 너무 무책임하게 그들이 얻은 자료를 함부로 쓰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녀가 창가학회의 회원임을 밝히지 않은 것은 지금까지 언론과의 대면이 남편을 위한 것이었고 남편은 불교도가 아니기 때문이기도 했다.
다니엘 펄은 유대인이었으며, 그가 필요할 때에는 언제나 유대교 속에서 가르침을 찾으려했다. 그러나 그는 아내가 불자인 것을 다행으로 여겼고, 아내가 특별히 어려움을 겪을 때는 아내와 같이 ‘남묘호랑개교’ 주문을 외웠다.
“어머니가 암으로 고통받으며 죽음에 처해 계실 때였어요. 그는 내 곁에 앉아 주문을 외우며 어머니가 마지막 숨을 거두는 것을 도와주었지요.”
그리고 봄베이에 처음 왔을 때 “그는 내가 몸시 외로워한다고 느꼈나봐요. 그는 나의 짝이 되어 내 곁에 앉아서 주문을 같이 외웠어요. 그것은 참으로 절실하게 내 가슴에 와 닿았어요.”
출산이 가까워서 몸이 무거운데도 불구하고 마리안느 펄은 품위 있는 태도로 조객들에게 감사를 표했을 뿐 아니라 그 곳에 모인 가족과 친지들을 위로하기까지 하였다.
“저는 남편이 두려움에 굴복하지 않았다고 믿어요. 그 가장 좋은 증거로 제가 이 자리에 서 있다는 것입니다. 그가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으므로 저도 포기할 수 없어요. (만약 포기한다면) 그것은 그의 용기를 배반하는 일이니까요.”
수행을 근본으로 삼는 부처님의 가르치심을 조용하게 흔들림이 없이, 실제로 살고 있는 한 불자의 모습을 마리안느 펄에게서 본다. 그것은 전 세계에 보내는 어떠한 평화의 메시지보다 더 강하게 우리 가슴에 울린, 행동하는 불자의 표본이 흔치 않은 이때 마리안느 펄의 언행은 우리에게 어떠한 보석보다도 더 귀중한 실례(實例)를 보여주었다. 독이 묻은 화살을 뽑아버리고 치유에 나서는 용기, 그것이야말로 평화스러운 공존으로 가는 지름길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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