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속 나, 진짜 나일까] 거울에 그려진 준제관음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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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속 나, 진짜 나일까] 거울에 그려진 준제관음보살
  • 박진경
  • 승인 2024.08.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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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의식구 거울

업경대(業鏡臺)

호암미술관에서 열린 특별전 《진흙에 물들지 않는 연꽃처럼》을 위해 독일에서부터 조선시대 불화 1점이 한국을 방문했다[도판 1]. 독일 쾰른 동아시아 박물관 소장품으로 그림 중앙에 옷을 벗은 남성이 큰 거울 앞에 서 있다. 자신이 저지른 범죄의 장면을 둥근 LED 화면처럼 표현된 거울로 확인하고 있다. 흑역사에 해당하는 자신의 과거와 마주하는 순간이다. 남성은 자기 잘못을 인정하는 듯 양손을 들고 거울을 향해 고개를 든 채로 후회하는 듯한 모습으로 그려졌다. 

[도판 1] <제8평등대왕도>, 조선 16~17세기, 독일 쾰른 동아시아 박물관 소장
‘도판 1’의 세부. 남자가 자신이 저지른 범죄의 장면을 업경대로 확인하고 있다. 

거울에는 도끼를 든 채 살아 있는 동물을 도살하려는 극적인 순간이 담겼다. 거울 옆에는 죄의 정도와 무게를 잴 수 있는 저울대(업칭業秤)가 있다. 남성의 최종 형량이 그 옆으로 적나라하게 그려졌는데, 거울 속 주인공과 똑같이 도끼로 죽임을 당하며 동물들에게 고통을 겪고 있는 끔찍한 장면을 우리는 생생하게 목격할 수 있다.  

그림 속 거울은 불교에서 ‘업경대(業鏡臺)’라 불리는 법구(法具)다. 죽은 사람의 죄를 확인하고 심판할 때 사용했던 도구로 잘 알려졌다. 경전에 따르면, 사람이 죽으면 저승에서 시왕(十王), 즉 열 명의 대왕에게 차례로 심판을 받게 된다. 살아 있을 때 지었던 죄들을 심판받는데, 죽은 날로부터 3년이 되는 해까지 총 10번의 심판을 받는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염라대왕 역시 죽은 지 5일째 되는 날 재판을 주관하는 대왕 중 하나다. 

쾰른 동아시아 박물관 소장품 역시 죽은 지 100일째 되는 날, 병풍 앞에 선 평등왕(平等王)이 재판을 주관하는 장면이 주를 이룬다. 살아생전에 착하게 살아야 한다는 권선징악의 교훈을 대중에게 보여주기 위해 업경대와 같은 거울 이미지를 넣었고, 사후세계에 대한 두려움과 살아 있을 때 쌓아야 하는 공덕의 소중함을 일깨워준다. 그림으로 볼 수 있는 업경대의 거울 도상은 회화 외에도 나무와 같은 목제 공예품으로 실제 제작됐는데, 주로 법당 안에 안치했을 것으로 추정된다[도판 2]. 

[도판 2] 불교 의식에 사용된 거울, 조선시대, 높이 106×너비 79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오늘날 CCTV처럼 고대부터 거울은 거짓에 가린 진실을 보여주는 도구이자 신성한 기물로 여겨져 왔다. 진나라 황제였던 진시황도 궁궐 내 반역을 꾀하는 신하들을 신비로운 거울, 즉 ‘진대경(秦臺鏡)’ 또는 ‘진경(秦鏡)’이라는 거울에 비춰 가려냈다는 옛이야기가 전해진다. 

중국 한(漢)나라 도성이었던 서경(西京)을 배경으로 한나라 유흠(劉歆)이 짓고 진나라 갈홍(葛洪)이 모은 『서경잡기(西京雜記)』에 ‘함양궁이물(咸陽宮異物)’로 진시황의 거울을 소개하고 있다. 사람의 오장육부까지 환하게 비춰볼 수 있는 전설 속의 거울로 크기가 너비 4척, 높이 5척 9촌으로 상당히 큰 편이다. 한나라 도량형을 기준으로 1척을 23cm로 계산해 봐도 대략 지름 100cm에 가까운 초대형 크기의 거울이다. 

‘사람의 속내까지 훤히 비춰볼 수 있다’는 거울의 주술적이고 신비로운 성격은 사람이 죽어서 간다는 저승, 즉 불교의 명부(冥府) 세계에서도 업경대 도상으로 불교 안에서 효과적으로 이용됐다. 

 

거울을 세우는 ‘경단(鏡壇)’

불교 의식과 의례를 치르기 위해서는 신성한 공간을 마련한다는 의미에서 크고 작은 형태의 단(壇)을 세워야만 했다. 불교 경전에는 거울을 이용해 세우는 단인 ‘경단(鏡壇)’에 관한 내용도 있다.

[도판 3] 장승온(張勝溫), <대리국묘공장승온화범상–사리보탑(大理國描工張勝溫畫梵像-舍利宝塔)>, 12세기, 대만 국립고궁박물원 소장

대만 국립고궁박물원에는 경단을 세밀하게 그린 그림이 소장돼 있다[도판 3]. 12세기 회화 작품으로 ‘사리보탑(舍利寶塔)’이라는 제목과 함께 금으로 표현된 불탑이 있고, 그 앞으로 팔각형의 나지막한 단이 놓여 있다. 그림 속 불탑은 탑 속에 봉안된 부처님의 사리와 장엄구로 인해 금빛으로 찬란하게 표현됐다. 사리탑 앞 팔각형의 단 위에는 여덟 개의 둥근 거울이 여덟 방향을 따라 설치됐다. 경단 위에는 거울과 함께 여러 점의 연꽃, 향로, 발우가 함께 배치돼 있다. 마치 『수능엄경(首楞嚴經)』 권 7에 기록된 경단의 설치법을 그림으로 풀어 놓은 듯 자세하다. 

“여기에 모나고 둥근 열여섯 자의 팔각단(八角壇)을 세워서, 단 복판에 금과 은과 동과 나무로 만든 한 연꽃을 두고, 그 연꽃 안에 발우를 놓고, 발우 속에 먼저 팔월의 이슬 물을 담아서, 이슬 물속에는 그 시절 따라 있는 꽃과 잎을 두고, 여덟 개의 둥근 거울을 취해서 각각 그 모서리에 두어 꽃과 발우를 에워쌀 것이며, 거울 밖에는 열여섯 연꽃을 세우고, 꽃 사이마다 열여섯 향로를 놓아 향로로 장엄하고, 순전히 침수 향만을 태우되 불이 보이지 않게 하라.”

- 『수능엄경』 7권 중에서(동국대 동국역경원 역)

이외에도 국립중앙박물관에는 ‘경단(鏡壇)’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어 실제 불교 의식을 위해 사용됐던 것임을 알 수 있는 거울도 있다. 두 명의 보살상인 준제관음과 백의관음을 앞, 뒷면에 음각으로 정교하게 새긴 거울이다. 금속 위에 이처럼 불보살의 모습을 새긴 거울을 주로 선각불상경(線刻佛像鏡) 또는 경상(鏡像)이라 하는데, 과거에는 이러한 거울을 이용해 단을 세우고 불교 의식을 진행했을 것이다[도판 4, 5].

[도판 4] 백의관음 준제관음 선각불상경, 6.7×9.7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도판 5] 수월관음보살 무늬 동제 거울, 고려시대,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준제찬(准提讚)

“준제주는     모든공덕     보고이어라
고요한       마음으로     항상외우면
이세상       온갖재난     침범못하리
하늘이나     사람이나     모든중생이
부처님과     다름없는     복을받으니
이와같은     여의주를     지니는이는
결정코       최상의법     이루오리라.”

- 대한불교조계종, 『우리말 천수경』 중에서

거울은 준제관음보살과의 관련성이 상당히 크다. 불자들이 법회 때마다 독송하는 『천수경』에서는 준제관음보살을 찬탄하고 진언을 염송한다. 밀교에서는 준제관음보살의 모공(毛孔)에서 모든 부처님이 생겨났다고 하여 준제관음보살을 ‘불모(佛母)’라 칭하기도 한다. 

1810년에 그린 통도사성보박물관 소장 〈화엄칠처구회도(華嚴七處九會圖)〉[도판 6]에도 준제관음이 하단 왼쪽에 자리했다. 준제관음 옆으로 높은 받침 위에 거울 한 점이 놓여 있고, 거울 앞에 거울을 향해 앉아 뒷모습으로 표현된 수행자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도판 6] <화엄칠처구회도>(보물), 조선 1810년, 통도사성보박물관 소장 및 제공
‘도판 6’의 세부, 준제관음과 경단(鏡壇)<br>
‘도판 6’의 세부, 준제관음과 경단(鏡壇)

준제관음 아래 거울이 있고 수도승이 함께 있는 모습은 준제관음의 가르침을 담은 경전 내용을 시각화한 것이다. 중국 명나라 말기부터 청나라 초에, 조선에서는 16세기 말~17세기 전반 이후에 출판된 판각본에서 주로 확인된다. 1724년 구례 화엄사에서 간행된 『준제정업(准提淨業)』을 비롯해 일본 에도시대 간행된 문헌에서도 똑같은 이미지들을 볼 수 있다[도판 7]. 

[도판 7] 화엄사 <준제정업의 불모준제상>(1724)

청대 말기에 제작한 영인본에서는 특히 거울의 세부도 볼 수 있다. 앞면에는 거울의 면과 함께 범자(梵字)로 구성된 띠가 외형을 따라 둘러 있고, 뒷면에는 준제관음상과 함께 한자가 빼곡히 새겨 있다[도판 8].

흥미로운 점은 이와 같은 거울이 오래전부터 준제관음 신앙을 위해 실제 제작해 사용했다는 점이다. 특히 중국 명나라 때 제작한 거울 중에는 이와 똑같은 방식으로 제작한 사례를 볼 수 있다[도판 9]. 

[도판 8] 『준제신주지관송법요』 영인본
[도판 9] 준제진언명경, 명대, 9.5cm, 중국 효헌재 소장

마치 그림으로 그린 것처럼 보관을 쓴 준제보살이 연꽃 위에 앉아 있고 삼각 무늬로 천의(天衣, 보살이 입고 있는 옷)를 장식했다. 그리고 허리끈과 영락을 화려하고 섬세하게 둘렀다.

준제관음보살을 둘러싼 글자들은 준제주(准提呪), 혹은 준제다라니라 불리는 준제진언(准提眞言)이다. 범자와 한자 두 가지 버전으로 거울의 앞뒷면을 채웠다. 지름이 7cm인 소형 거울도 남아 있는데, 거울 면적이 작아 준제관음과 함께 주요한 진언만 간략히 표현한 사례도 볼 수 있다[도판 10]. 

이처럼 여러 유형으로 제작될 만큼 거울이 신앙 도구로 활발히 생산됐다.

[도판 10] 준제진언명경, 명대, 9.7cm, 중국 고궁박물원 소장

 

준제신앙

준제신앙과 관련해 문헌이나 회화 속에 거울 이미지가 그려지고, 원나라 이전부터 금속제 거울이 다채로운 실물로 제작된 이유는 무엇일까? 

준제신앙은 거울에 글자로 새긴 준제진언을 입으로 독송할 뿐 아니라 마음으로도 떠올리는 신앙이다. 특히 준제관음을 관상(觀想)하는 수행법이 의례적으로 중시됐다. 경전에는 이와 같은 구체적인 수행법을 자세히 적어뒀다. 이전에 사용하지 않은 새 거울을 매달 15일 밤 불상 앞에 세우고, 공양을 갖춘 후 정수와 향을 올린다. 마음이 청정한 상태로 거울 앞에서 준제진언 108번을 외운 후 그 거울을 주머니에 담아 항상 몸에 지니라고 했다[도판 11]. 

[도판 11] 준제진언명경, 명대, 7.1cm, 중국 뤼순박물관 소장

어떤 일에 대해 좋고 나쁨을 알고 싶거나 불보살을 만나는 공덕을 원할 때는 거울 하나를 단 중앙에 놓고, 준제진언 108번을 염송하면 거울 위에 문자가 나타나 좋고 나쁜 일을 알려주며, 1,008번 독송하면 거울을 통해 불보살을 만날 수 있다고도 했다. 매일 경단 앞에서 독송하는 것이 어려우면 십재일(十齋日) 동안이라도 수행하고, 거울이 없을 때는 거울이 있다고 생각하며 수행하길 권하고 있다. 

준제진언을 독송하는 횟수만큼 얻을 수 있는 공덕이 달랐는데, 전생과 현생의 중죄인이라 할지라도 열심히만 하면 청정해지고 소원하는 바를 얻을 수 있었다. 앞서 본 거울 앞뒤로 글자들이 새겨진 이유는 거울을 이용해 수행하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언급했기 때문이다. 즉 글자들은 준제진언을 독송하는 수행법과 관련된다.

준제진언(准提眞言)

나무 사다남 삼먁삼못다 구치남 다냐타
옴 자례주례 준제 사바하 부림(3번)

 

준제발원(准提發源)

제가이제     준제주를     지송하오니
보리심을     발하오며     큰원세우고
선정지혜     어서속히     밝아지오며
모든공덕     남김없이     성취하옵고
수승한복     두루두루    장엄하오며
모든중생     깨달음을     이뤄지이다. 

- 대한불교조계종, 『우리말 천수경』 중에서

준제진언을 독송하기 위해서는 이에 앞서 세 개의 진언을 소리 내 읽어야만 했다. 정법계진언(正法界眞言) “옴람(唵嚂)”, 호신진언(護身眞言) “옴치림(唵齒臨)”, 육자대명진언(六字大明眞言) “옴마니받메훔(唵嘛呢叭咪吽)”이 그것이다. 

정법계진언 “옴람”은 모든 것을 청정하게 해주며, 호신진언 “옴치림”은 모든 죄악과 모든 불상사를 소멸시켜 수호해 준다는 의미다. 또한 육자진언 “옴마니받메훔”은 “아! 연꽃의 보주시여(또는 연화수보살의 보주여)! (생로병사 고통의) 원인이 되는 업을 멸해주소서”로 해석된다. 이 세 개의 진언을 범자로 나타내면 모두 10개의 문자로 구성된다. 

그다음 준제진언인 ‘나무 사다남 삼먁삼못다 구치남 다냐타 옴 자례주례 준제 사바하 부림(南無颯哆喃三藐三菩馱俱胝喃怛也他 唵折隸主隸准提娑婆訶部林)’을 독송하게 되는데 그 뜻은 “칠구지불께 귀의합니다. 아! (중생 구제를 위한) 끝없는 행을 드러내 보이시는 준제보살께 영광이 있기를!”이다. 마지막에 있는 부림은 “두려움을 없애주고 큰 기쁨을 베풀어준다”라는 뜻이다. 

즉 거울 앞, 뒷면에 새긴 41개의 한자와 37개의 범자는 경단을 세운 후 준제진언을 염송하기 위해 순서에 맞게 필요한 진언들을 차례대로 적어 제작한 것이다. 

한편 준제진언을 독송하는 ‘염송의궤(念誦儀軌)’ 외에도 진언의 각 글자를 마음속에 두고 수행하는 ‘관행의궤(觀行儀軌)’ 역시 준제신앙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다. 

먼저 마음과 몸 안에 보름달과 같이 둥근 광명의 달을 그리고, 준제진언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아홉 글자 ‘옴자례주례준제사바하’를 그 원 안에 각각 순서대로 배치한다. 즉 가운데에 ‘옴’ 자를 관하고, 나머지 여덟 글자를 오른쪽으로 돌려 배치한 후 준제진언을 외우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을 포자법(布字法)이라 하는데 『준제정업』에서는 <월륜범자도(月輪梵字圖)>라는 용어로 정리해 도식화했다[도판 12]. 

[도판 12] 『준제정업』 1권 <월륜범자도>

진언을 배치하는 순서를 숫자로 표기하고 해당 범자를 원 안에 그려 완성했다. 수행자가 경단을 세우고 금강좌로 앉아 결인(結印)한 후 준제보살을 예경한다. 이어서 보살상 또는 거울을 보며 눈과 팔들을 차례로 관(觀)한 다음, 월륜범자도를 마음에 그려 진언의 각 글자를 순서에 맞게 염송하는 관행법이 수행 의례에서 주요한 부분을 차지했다.

거울 뒷면에 표현된 세 개의 눈과 열여덟의 팔(3目18臂)을 지닌 준제관음보살상을 관하고, 염송의궤에 맞춰 거울에 있는 진언들을 독송해 삼매에 드는 수행법을 실천했던 것이다. 거울을 반대로 돌리면 거울 면에 있는 자신의 얼굴을 보게 되는데, 수행을 통해 거울에 보이는 자신의 얼굴이 준제보살이 되어 마주한다는 경전의 내용과 일치한다. 수행자가 보살상 앞에 경단을 세우고(보살상이 없을 경우 경단만 세우고) 입으로 준제진언을 부르면, 각 글자가 수행자의 입속으로 들어가 마음속 달 위에 준제진언을 새겨 결국 스스로가 준제보살과 같은 광명을 얻어 청명한 상태, 깨달음을 얻는 최상의 상태인 삼매에 이르게 된다.  

현존하는 거울들은 수행자가 염송 및 관행의궤의 준제법을 진행하기에 가장 적절한 수행 도구이자 의식구였다. 준제관음보살, 준제진언을 포함해 필수적으로 필요한 여러 진언들을 앞뒤에 넣어 제작한 것으로 준제 수행법을 완벽히 이해한 사람이 고안하고 설계한 거울이었다. 염송 및 관행의궤의 준제법을 수행하기에 가장 효과적인 방식으로 고안한 의식구였다. 

 

준제신앙과 거울

준제신앙은 운곡선사(雲谷禪師, 1500~1575), 운서주굉(雲棲株宏, 1535~1615), 감산덕청(憨山德淸, 1546~1623)과 같은 여러 종파의 명대 고승들이 준제법을 전수했던 명 말 이후부터 유행했다. 이로 인해 준제신앙과 관련한 서적들이 명말청초 이후 다수 출간됐다. 이전보다 준제 수행법이 체계적으로 정리됐을 뿐 아니라 특히 참회법, 삼매행법과 같은 관행의궤에 초점을 맞춘 문헌들이 주요한 부분을 차지했다. 

『준제정업』에 보면 신도들이 관상보다 진언 염송에만 치중하고 있다는 비판적 시각이 서문에 담기기도 했다. 준제신앙의 시대적 변화 양상은 거울의 제작에도 영향을 미쳐 거울 공간에 진언만 새겼던 초기 방식에서 벗어나 준제보살상까지 거울에 담아 관행의궤까지 걸맞은 형식으로 제작됐다.

준제진언과 준제보살을 새긴 거울들은 단을 세우기 위한 의식구로 출발해, 준제진언의 염송의궤와 관행의궤를 실천하고자 했던 실물 자료로서 가치가 크다. 수행 의례를 마친 후 “거울을 주머니에 넣어 소지하라”는 문헌의 내용처럼, 거울 대다수가 지름 10cm 이내로 작은 경우가 많다. 이동할 때도 몸에 지니기에 알맞은 크기로 제작한 것이다. 수시로 들고 다니며 경단을 세워 의례에 따라 준제진언을 염송하고 관상하기에 적당했을 것이다. 

수행 도구였던 거울은 주머니도 따로 제작해 귀하게 보관하고 사용했다[도판 13]. 중국 명나라 때 준제신앙을 크게 후원했던 항란재(項蘭齋)는 준제경(准提鏡) 108개를 주조해 신도들에게 나눠줬다는 기록도 볼 수 있다. 

[도판 13] 준제경, 지름 11cm, 중국 효헌재 소장

준제보살을 믿는 불교 신자가 자신의 공덕을 위해 주변인들에게 거울을 제작해 나눠줄 만큼 거울은 준제신앙에서 보편적인 의식구였다. 항란재가 준제경으로 어떠한 거울을 제작해 배포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지금까지 살펴본 거울과 유사했을 것이다. 

준제경은 거울을 의례 도구로 삼아 제작했던 불교의 실천적 수행을 보여주는 공예품이었다.  

 

박진경
홍익대 대학원 미술사학과에서 석·박사학위 취득. 현재 덕성여자대 인문과학연구소 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 금속공예를 중심으로 동아시아 공예품의 제작과 교류, 문화적 맥락을 이해하는 데 관심을 두고 연구를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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