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사건, 서로 다른 시선 - 에두아르 마네
상태바
하나의 사건, 서로 다른 시선 - 에두아르 마네
  • 보일 스님
  • 승인 2024.06.03 09: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그림 속에서 찾은 사성제 이야기
에두아르 마네(Edouard Manet, 1832~1883)

“모르겠어, 아무래도 모르겠어.” 전란이 끊이지 않던 헤이안 시대 교토, 한 승려가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한 ‘나생문(羅生門·라쇼몽)’ 처마 아래서 연신 중얼거리면서 골똘히 생각한다. 하늘이 뚫린 듯 폭우는 쏟아져 내리고, 이 승려의 혼잣말에 호기심을 가진 한 남자의 질문에 승려는 자신이 목격한 살인 사건에 대한 수수께끼 같은 이야기를 풀어낸다. 

어느 날 한 사무라이가 아내와 함께 숲속 길을 걷고 있었는데 산적이 사무라이를 제압하고 아내를 겁탈한다. 그 후 나무꾼이 우연히 사무라이의 시체를 발견하고 관아에 알린다. 산적은 체포됐고 사무라이의 아내도 관아로 잡혀 오면서, 이 사건에 대한 심문이 시작된다. 단순 살인 사건인 듯 보였는데 막상 당사자들의 증언은 각기 전혀 다른 이야기로 전개된다. 

산적은 사무라이의 아내가 자신의 유혹에 넘어간 것이고, 사무라이의 죽음은 자신과의 결투 때문이었다고 진술한다. 이와는 달리 아내는 산적이 자신을 겁탈한 것은 사실이지만, 남편인 사무라이가 자신을 경멸하는 눈빛에 분노가 치밀어서 남편을 죽이려 하다가 실신했다고 말한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무당을 통해 사무라이의 영혼을 불러들여 빙의하게 한 후, 사무라이의 진술을 듣는 대목이다. 죽은 사무라이의 진술에 따르면, 아내가 자신을 배신하고 도망쳤고 산적이 마음을 바꿔 자신을 풀어주었지만, 사무라이 스스로 자괴감에 빠져 결국 자결했다고 말한다. 

이 살인 사건에 연루된 당사자뿐만 아니라 이 사건을 목격한 나무꾼, 행인, 승려, 산적을 붙잡은 사람들까지 모두 각자의 시점에 따라 다른 진술을 하게 된다. 누군가는 거짓말을 하고 있거나 아니면 모두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나의 사건이었지만, 각자의 시선에 따라 진실은 왜곡되고 다른 서사로 기억된다. 결국 이 사건은 미궁 속으로 빠져들면서 실체적 진실은 끝내 밝혀지지 않는다. 

이 이야기는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영화 <라쇼몽>(1950)의 줄거리다. 하나의 현상이 왜곡되는 과정을 다양한 시점에서 서술하는 일명 ‘라쇼몽 기법(Rashomon effect)’이 이 영화를 관통한다. 일반적으로 영화는 하나의 시점으로 동일한 시간의 경과를 통해 서술되지만, 회화에서는 평면 안에 다양한 시점을 동시에 묘사하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회화는 영화와는 또 다른 고유성을 갖게 된다. 회화는 그 다양한 시점을 동시에 보여줌으로써 감상자에게 대상을 본다는 것 혹은 사실을 본다는 것이 무엇인지 역으로 질문하기도 한다. 바로 에두아르 마네처럼 말이다. 결국 문제는 시점이다.  

    

“같은 시대 사람들의 영혼을 표현하는 
것만이 나의 관심사다.” 

 

에두아르 마네(Édouard Manet, 1832~1883)는 흔히 인상주의 화가로도 알려졌지만 그렇게 정의하기에는 사실주의적 경향도 강하다. 마네 자신이 인상주의를 주창하지는 않았는데, 다만 훗날 인상파로 불리는 화가들에게 끼친 영향이 워낙 크다 보니 인상파의 실질적인 리더라는 세평도 생겨난다. 

마네는 프랑스 파리의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난다. 아버지가 법관이었고 어머니도 유서 깊은 가문 출신이었다. 집안 환경이 그러다 보니 어린 마네에게 법률가가 되라며 법대 진학을 권유하는 부모의 기대는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다. 하지만 마네는 그 기대를 무릅쓰고 미술로 진로를 결정하게 된다. 토마스 쿠튀르(Thomas Couture, 1815~1879)를 스승으로 삼아 본격적으로 미술 수업을 받게 된다. 그러나 스승의 경향과는 달리 사실주의에 주목해 일상 속의 소재들을 주제로 작품 활동을 한다. 신화를 소재로 하거나 종교화나 역사화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고 해도 좋을 정도다. 즉 마네는 교훈적이거나 계몽적인 메시지가 있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있는 모습 그대로의 사실적 묘사에 더 큰 관심을 가진다.

마네, <풀밭 위의 점심 식사>(1863), 프랑스 오르세미술관 소장 
마네, <올랭피아>(1865), 오르세미술관 소장 

1863년 파리 살롱전(Le Salon)에 출품했다가 낙선하면서, 낙선한 작품들만을 전시한 ‘낙선전’(Salon Des Refusés)’에 최대 논란 작인 <풀밭 위의 점심 식사>(1863)를 전시하면서 일약 파리의 유명 인사가 된다. 사실 이 작품은 마르카토니오 라이몬디의 <파리스의 심판> 패러디지만, 파리 부르주아들의 일상 민낯을 폭로하듯 노골적으로 드러냈다는 불쾌감과 반감이 동시에 작용하면서 비판을 받는다. 여기서 한술 더 떠 마네는 1865년 <올랭피아>를 내놓으면서 비판을 넘어 비난 일색의 평가를 받는다. 이 작품 역시 마네가 티치아노의 <우르비노의 비너스>, 조르조네의 <잠자는 비너스>에 강한 영감을 받은 일종의 패러디라고 할 수 있지만 혹독한 비난과 마주한다. 이로 인해 역설적으로 마네를 추종하는 일련의 인상주의 계열의 젊은 화가들로부터 선망과 관심의 대상이 되지만, 마네 스스로는 그들과 일정한 거리를 두면서 독자적인 길을 걷는다. 

마네는 유독 작품을 세상에 내놓을 때마다 수많은 사람의 주목과 찬사 혹은 비난과 질시를 한 몸에 받는다. 아마도 기존의 질서에 저항하는 그의 기질과 낯설고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성향이 어떤 방식으로든 작품에 드러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간에 항상 논란의 중심에 마네의 작품이 있었다. 세상과의 불화 속에서도 항상 주류 한복판에 자신을 자리매김하고자 했던 마네, 매독으로 평생을 병고에 시달리다 1883년 그의 나이 51세에 삶을 마감한다. 

 

“이렇게 간단명료하게 표현함으로써 강렬한 인상을 주는 표현 방식은 본 적이 없다.”
_에밀 졸라

 

마네의 작품 중에서 사실주의 하면 떠오르는 그림 중에서 <피리를 부는 소년>(1866)을 빼놓을 수 없다. 양쪽 뺨에 홍조를 띤 소년이 한껏 폼을 잡으면서 소리를 막 내기 위해 집중하는 순간이다. 언뜻 보면 배경도 밋밋하고 이목을 끄는 화려한 색채를 사용한 것도 아니며 소재는 더더욱 아니다. 그래서일까. 마네는 이 작품을 1866년 살롱전에 출품했다가 낙선하고 만다. 물론 그 이전인 1859년부터 줄줄이 낙선하고 있으니, 마네에게는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었을 것이다. 이 그림에서 특별한 배경도 없고 이해하기 힘든 공간 속에 서 있는 평범한 모델이 심사위원들에게는 그저 혼란스럽게 느껴졌을 뿐이다. 

마네, <피리를 부는 소년>(1866), 오르세미술관 소장

하지만 이 작품에서 마네는 놀랍게도 이전에 다른 회화 작품들에서 시도하지 않았던 묘사를 보여준다. 마네는 대상을 있는 그대로 재현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배경이나 원근감 혹은 명암에도 구애받지 않고 평면적으로 단순하게 묘사한다. 마네의 편지 기록에 따르면 이렇게 평면과 원색을 통해 대상을 돋보이게 하는 기법은 벨라스케스의 작품을 보고 모사하면서 습득한 것이라고 고백한다. 

당시 비평가들의 혹평 속에서도 작가 에밀 졸라(Émile Zola, 1840~1902)만은 그가 살롱전에 낙선하자 심사위원진에 대한 비난 기사를 신문에 기고하는가 하면 “내가 부자라면 마네의 그림을 전부 사겠다”고 호언을 하기도 한다. 마네는 이 작품을 통해 사실주의 속에서도 이전과는 차별화된 자신만의 고유한 기법으로 한 발짝 성큼 내딛는 모습을 보여준다.    

 

하나의 캔버스, 서로 다른 시선 

<폴리 베르제르(Foley Bergère)의 술집>(1882)은 마네가 세상을 떠나기 1년 전에 마무리한 그림이다. 그림 속 바텐더로 보이는 한 여인이 우울한 표정으로 서 있다. 추파를 보내고 있는 건지 아니면 취객들의 추근거림에 지친 것인지 알 수 없다. 피곤과 슬픔, 권태가 가득하다. 마치 툴루즈 로트렉의 <세탁부>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이 주인공도 일이 힘겨운 듯 두 손으로 차가운 대리석 테이블을 잡고 지친 몸을 의지하고 있다. 테이블 위에는 와인, 맥주, 오렌지가 들어 있는 크리스털 접시 등등 각양각색의 음료와 꽃들이 놓여 있어서 손님들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다. 거기에 더해 꽃과 팔찌, 커다란 목걸이 등으로 화려하게 장식한 바텐더마저도 하나의 상품처럼 다른 사물들과 나란히 있는 모습이 왠지 쓸쓸해 보인다. 의도적으로 꽃과 커다란 장신구를 착용한 모습으로 묘사함으로써 그녀마저도 소비의 대상으로 보이게 착시 현상을 일으킨다. 

마네, <폴리 베르제르의 술집>(1882), 영국 코톨드갤러리 소장

바텐더 뒤로 설치된 대형 거울을 통해 수많은 손님이 들어찼으며 둥그런 실내등이 겹겹이 반사되는 것으로 홀의 크기를 짐작할 수 있다. 이 배경 역할을 하는 거울의 오른쪽으로 한 남자가 바텐더와 마주하고 있는 모습이 반사된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바텐더 앞에 실제로 이 남자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다시 말해 감상자의 시선에서 보면 이 남자의 등이 보여야 하는데 거울은 실제의 모습을 반영하고 있지 않다. 이 남자는 어디로 사라졌을까. 

그러고 보면 이 그림에는 수수께끼 같은 장면이 한둘이 아니다. 거울에 비친 바텐더의 등과 실제 인물의 모습이 각도상 지나치게 중심에서 벗어나 있다. 즉 거울에 비친 바텐더의 모습은 바텐더 바로 등 뒤에 있어야 맞을 것이다. 그리고 거울에 비친 테이블도 실제 테이블보다 더 높은 각도에 모서리가 자리 잡고 있다. 다만 이렇게 할 경우 거울에 비친 테이블 사선이 여자의 머리 뒤로 올라가 소실점을 만들게 되고, 감상자로 하여금 바텐더의 표정에 시선을 끌 수 있다는 이점이 있을 것이다. 

이처럼 마네는 이 작품에서 거울을 이용해서 하나의 시점이 아닌 두 개의 시점을 만들어 낸다. 즉 정면 감상자의 시점과 거울을 통해 비친 배경 시점이 하나의 캔버스 위에 공존하는 셈이다. 마네의 이 과감한 시도는 인상파는 물론 세잔과 피카소의 작품에 영향을 미친다. 결국 한 캔버스에 두 개의 시점 정도가 아니라 수십 개가 넘는 다양한 시점을 공존시키는 방식으로 발전한다. 바로 입체파(cubism)의 등장도 그 연장선상에 있음은 물론이다.

 

당신은 어떻게 보고 있나요?

 

삶은 매 순간순간 변하지만 여전히 세상은 똑같이 느껴지고, 매일 여전히 똑같이 세상을 만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오히려 늘 같은 시점으로 세상 보기를 고집하기 때문에 변화를 기대하기보다는 익숙함을 선호하기도 한다. 어쩌면 우리는 ‘확증편향’의 시대를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자신만의 유튜브나 SNS 등을 이용하면서 보고 싶은 것만 보거나 듣고 싶은 것만 들으려는 심리가 강해지고 있다. 그 속에서 마네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무엇을 볼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볼 것인가’라고 묻고 있다.    

 

보일 스님
해인사로 출가해 해인사승가대학을 졸업, 서울대 대학원 철학과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박사를 수료했다. 현재 해인사승가대학에서 경전과 논서를 강의하며, 예술과 인공지능을 주제로 붓다의 지혜를 찾고 있다.


관련기사

인기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최신 불교 뉴스, 월간불광, 신간, 유튜브, 붓다빅퀘스천 강연 소식이 주 1회 메일카카오톡으로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많이 구독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