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륙재에 모시는 사자의 역할
“총명하고 정직하며 민첩하고 빠르게 문서를 지니고 오갈 분이시여! 천둥처럼 신속히 오셨다가 번개처럼 빠르게 가시며, 위풍당당한 모습과 거룩한 힘 헤아리기 어렵습니다. 명(命)을 받은 기약 어기지 않고 사사로움 없는 소원에 잘 부응해 주십니다.”
수륙재에서 사자를 청할 때 읊는 ‘사자소(使者疏)’의 일부다. 맡은 임무를 한 치도 어긋남 없이 신속하게 수행하는 사자를 칭송하는 내용으로 이뤄져 있다. 일반적으로 ‘저승사자’라고 하면, 사람이 죽었을 때 망혼(亡魂, 죽은 사람의 영혼)을 저승으로 데려가는 역할을 떠올리게 마련이다. 그런데 수륙재·예수재 등의 불교의례에 등장하는 사자의 경우, 지상과 시방세계(十方世界)를 오가며 명을 전하는 전령(傳令)의 역할을 맡는다.
따라서 이때의 사자들도 대개 명부(冥府, 죽음 이후의 세계)에서 파견된 존재로 설정돼 있지만 ‘저승사자’라 부르지 않는다. 재(齋)가 펼쳐지는 공간과 초월적 세계를 오가며 연락을 취하는 일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사자를 통해 명부 성중(聖衆) 등에게 알릴 문서에는 재를 여는 목적과 주최자, 청해 모실 분들과 청하는 이유, 날짜와 장소가 빠짐없이 적혀 있다. 모실 분들을 찬탄하는 내용까지 적혀 있어 더없이 정중한 초청장인 셈이다.
이처럼 초청장을 전하는 역할을 맡았으니, 수륙재·예수재에서 가장 먼저 청해 모시는 존재도 바로 ‘사자’다. 사자를 청해 공양을 올리고 초청장을 전한 뒤, 비로소 상위·중위·하위의 존재들을 차례로 모시고 의례를 이어가는 것이다.
사자를 모시는 사자단(使者壇)을 주로 천왕문 바깥의 서쪽에 모시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천왕문 바깥에 두는 것은 공양 후 급히 떠나야 하기 때문이고, 서쪽에 두는 것은 명부가 음(陰)이니 방위로 서방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민간에서는 저승사자를 세 명으로 보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사람이 죽으면 저승사자를 위해 사자상을 차릴 때 밥과 술, 짚신·동전 등을 3개씩 놓게 된다. 이에 비해 불교의례에서는 연월일시를 각각 관장하는 네 명의 사자가 짝을 이뤄 다닌다고 보아 ‘사직사자(四直使者)’라 부른다. 따라서 각각의 이름도 연직사자·월직사자·일직사자·시직자사다.
또한 수륙재·예수재 의식집에는 각 사자를 연직 사천사자, 월직 공행사자, 일직 지행사자, 시직 염마사자라 했다. 사천(四天)·공행(空行)·지행(地行)·염마(閻魔)는 각각 천계·허공계·지계·명계를 나타내는 공간 개념이고, 연직(年直)·월직(月直)·일직(日直)·시직(時直)은 연월일시를 나타내는 시간 개념이다. 이처럼 시공간을 넘나드는 존재로 설정된 것은 불교의 윤회 관념이 반영된 것이라 하겠다.
사자단에는 네 명의 사자를 그린 사자탱(使者幀)을 걸고, 떡·유과·과일 등 각종 공양물을 차리고 지화(종이꽃)로 장엄한다. 그림 속의 사자는 대개 관복을 갖춘 채 문서를 손에 쥐거나 허리에 찬 모습으로, 타고 갈 말과 함께 떠날 채비를 갖춰 빈틈없는 전령사의 역동성을 지니게 마련이다. 이들의 복식도 적색·녹색·황색 등 다양한 색깔에 정교한 표현으로 우아한 느낌을 주어, 검은색 도포와 갓을 쓴 모습으로 즐겨 표현되는 민간의 저승사자와는 거리가 멀다.
사자단을 모실 때 빠짐없이 짝을 이루는 단이 있다. 이는 사자들이 오갈 때 타고 다닐 말을 위한 마구단(馬廏壇)으로, 이곳에 7마리 또는 10마리의 말 그림과 함께 여물·콩·당근 등을 수대로 차린다. 먼 길을 힘들게 오가며 수고할 동물들까지 빠짐없이 청해 공양을 베푸는 것이다. 특히 예수재에서는 사자뿐만 아니라 명부에 바칠 금은전을 싣고 가는 역할도 겸하니, 더욱 중요한 존재들인 셈이다.
사자를 모시고 초청장 전하기
수륙재를 행할 때 사자단 의식은 ‘청하기, 공양 올리기, 전송하기’의 세 단계로 진행된다. 첫 번째 단계는 사자를 청해 모시는 ‘소청사자(召請使者)’다. 의식을 진행하는 어산(魚山) 스님들은 커다란 한지에 쓴 소문(疏文)을 펼쳐놓고, 수륙재를 열게 된 취지와 함께 사자들을 청하는 글귀를 읊는다. 그 내용을 보면, 먼저 “속세의 몸으로는 명부의 문을 들어가기 어려우니, 명부 성중을 재회에 초청하려면 반드시 사자의 힘을 빌어야 함”을 정중히 밝힌다. 수륙재에서 사자를 맨 먼저 모시는 이유다.
이어 어느 지역 어느 산 어느 사찰에서 수륙법회를 열게 됐음을 알린 다음, “며칠간 번과 기를 달아 휘날리고, 저승에 보내는 공첩(公牒)을 써서 발송하며, 단을 세우고 여러 공양물을 법식에 따라 빈틈없이 차려놓았음”을 아뢴다. 오랫동안 정성을 다해 수륙법회를 준비했음을 드러내는 대목이다. 아울러 각 사자의 명호를 차례로 부르며, 임무를 완벽하고 신속하게 처리하는 사자의 덕을 칭송하는 가운데 강림을 청한다.
이어 법주(法主) 스님이 요령을 흔들어 사자의 마음에 감응을 일으키면서, 삼보의 힘으로 이 자리에 내려오기를 청하는 ‘진령게’를 염송한 다음 ‘소청사자 진언’을 외운다. 다시 연유를 아뢰는 ‘유치(由致)’로 거듭 청하는데, 그 가운데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삼가 생각해 보건대 네 분 사자들은 신통한 공덕이 넓고 넓으며, 거룩한 덕이 높고 높아서 천상의 비밀스러운 문서를 지니고 인간 세상의 전령사가 되었습니다. 너무도 정직하여 속이기 어렵고, 위엄이 깃든 신령함은 두려워할 만합니다.”
사자에 대한 대우와 칭송이 참으로 지극하다. 이처럼 거듭된 찬사에 이르면, 감응한 사자들이 말에 올라 지상을 향할 수밖에 없을 터이다. 유치와 함께 동참자들은 사자단 앞에서 절을 올리고, ‘청사(請詞)’ 등으로 다시 강림을 청한다. 수륙재에 명부 성중을 모시기 위해, 이들에게 초청장을 전할 사자를 먼저 청하는 단계 또한 이처럼 정성스럽다.
두 번째 단계는 사자를 편히 좌정케 하고 공양을 올리는 ‘안위공양(安位供養)’이다. 먼저 지상에 내려온 사자에게 자리를 권한 다음, 네 그릇의 마지와 네 잔의 차를 차례로 올린다. 차를 올릴 때는 ‘다게 작법무’라 하여 찬탄의 뜻이 담긴 나비춤을 추고, 변식진언·감로수진언·수륜관진언·유해진언을 외우며 음식의 질과 양을 변화시킬 때는 ‘사다라니 바라무’를 추게 된다.
공양을 마치면 법주 스님이 ‘행첩소(行牒疏)’를 외운다. ‘행첩소’는 수륙재에 모실 모든 초월적 존재에게 보내는 초청장으로, 사자를 청한 목적이 담긴 문서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재를 열게 된 경위와 함께 사찰의 주소를 번지까지 상세히 밝히고, 모시고자 하는 이들을 일일이 거론하며 강림을 청하게 된다.
맨 뒤에는 날짜와 시간을 적는데, 옛 의식문을 보면 자시(子時, 밤 11시~1시)가 되기 전에 오시도록 했다. 1960~1970년대까지만 해도 수륙재를 비롯해 대부분의 재는 밤에 지냈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예로부터 “사성(四聖, 불·보살·성문·연각)은 오전에 모시고, 육범(六凡, 천상·인간·아수라·축생·아귀·지옥)은 해 질 녘에 부른다”고 했듯이, 수륙재의 명부 성중과 주인공인 영가·고혼 등은 육범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모든 존재를 연결하는 매개자
그렇다면 ‘행첩소’에서 하나하나 거론하며 모시고자 청하는 존재들은 누구인지 간추려 살펴보자.
● 삼세에 상주하는 삼보와 불보살, 깨달음을 얻거나 경지에 오른 분들, 승가 대중들
● 선신(善神), 불법을 수호하는 천룡(天龍), 삼계사부(三界四府)의 백억만 영령, 명부 시왕, 서낭신의 우두머리, 저승·이승의 신령 등
● 사생육도, 모든 지옥의 아귀, 중음계(中陰界)에 가득한 헤아릴 수 없는 유정(有情)
나열된 존재들을 보면 성인과 범부, 깨달은 이와 미혹한 이, 죽은 자와 산 자 등 시방 법계의 모든 대상이 해당한다. 이들을 차별 없이 한 자리에 모시고 무차평등(無遮平等)의 법석을 펼침으로써, ‘영가·고혼의 왕생’이라는 의례 목적을 달성하는 셈이다. 아울러 의식의 진행을 보면 구체적인 초청 대상은 사후세계를 다스리는 명부 성중에 초점이 맞춰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초청 공문인 ‘행첩소’를 읊고 나면, 다시 한번 사자에게 이를 신속히 전달해 주기를 부탁하는 말을 빠뜨리지 않는다.
마지막 단계는 사자를 떠나보내는 ‘봉송사자(奉送使者)’다. 시방세계에 법회를 두루 알려주길 다시 부탁하며, 얼른 길에 오르기를 바라는 내용이 이어진다. “지금 부탁드리는 것이 지극정성으로 이르게 하여, 막힘도 어긋남도 없이 반드시 때에 응하고 소원에 응하기를 바라옵니다. …얼른 단을 떠나서 빨리 하늘로 가는 길에 오르시길 바랍니다”라며 은근히 독촉하는 것이다.
아울러 마구단 앞에서도 사자단과 같은 절차가 간단히 이어진다. 사자가 타고 갈 말의 무리를 청한 다음, 공양을 올리고 『반야심경』을 염송한 뒤, 봉송하게 된다. 사찰에 따라서는 사자단의 봉송까지 마친 뒤 마구단 의식을 이어가기도 하고, 두 팀으로 나누어 사자단·마구단 의식을 동시에 진행하기도 한다. 후자의 경우는 ‘사자단 봉송을 마치면서 말을 타고 즉시 떠난다’는 의미에 충실하기 위함이다.
마지막으로 사자를 받들어 보내드리는 ‘봉송진언’·‘봉송게’ 등을 염송할 때면, 사직사자의 명호를 쓴 위목(位目)을 떼어 불사르게 된다. 모든 의례에서 종이 위패를 태우는 것은 초월적 세계로 돌려보내는 뜻을 담고 있다. 아울러 위목을 태움으로써 초청장도 명부에 전달되는 것이라 본다. 초월적 존재들은 빛처럼 한순간에 이동하니, 혹시 초청장이 늦어지지 않을까 염려할 필요는 없다.
사자단 의식을 마치면, 동서남북과 중앙의 다섯 방위를 관장하는 황제를 청해 모시고 공양을 올리는 ‘오로단(五路壇) 의식’이 이어진다. 사자를 청해 초청장을 보낸 뒤 오방의 다섯 갈래 길을 활짝 열었으니, 이제 어느 세계의 누구든 걸림 없이 수륙재에 동참할 수 있게 됐다.
이처럼 사직사자는 성인과 범부, 이승과 저승, 사바세계와 초월세계를 연결해 주는 매개자로서 소중한 상징성을 지녔다. 그들의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모든 존재가 한자리에 모일 수 있도록 연락해 주니, 그야말로 빛보다 빠른 ‘능력자 우체부’라고 할 만하다.
사진. 구미래
구미래
불교민속연구소 소장이자 문화재위원, 조계종 성보보존위원회 위원이다. 불교민속 전공으로 안동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저서로 『공양간의 수행자들』, 『한국불교의 일생의례』, 『한국인의 죽음과 사십구재』, 『존엄한 죽음의 문화사』, 『종교와 의례공간』(공저)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