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 쓰이다.’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사용하는 표현입니다. 사전적 의미는 ‘어떤 일이나 대상에 마음과 관심이 기울여지다’인데요. 실생활에서는 ‘불편한 마음 상태’ 뜻하는 말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무언가가 자꾸 머릿속에 맴돌아서 현재 하는 일에 온전히 집중할 수 없다는 식으로 말이죠. 이 외에도 ‘신경질 부리다(내다)’, ‘신경이 날카로워지다’ 같은 표현들이 있는데요. 역시나 불편하고 예민한 마음 상태를 가리키는 말들입니다. 이렇게 보면 ‘신경’이라는 단어는 ‘마음’과 아주 긴밀한 관계가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일면 마음 상태에 따라 신경이 뾰족해졌다가 몽글몽글해졌다가 하는 듯도 한데요. 편집자도 그런 줄로 알았습니다. 하지만 신경은, 실은 마음보다 몸과 더 밀접한 관계에 있다는 걸 이번에 책을 만들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당연한 사실이지요. 신경은 우리 몸을 구성하고 있는 신체 조직이니까요.
인간의 몸에는 자율신경계라는 놀라운 생존 시스템이 있습니다. 말 그대로 자율적으로, 자동적으로 작동한다고 해서 ‘자율’신경계라고 불리는 이 시스템은 호흡, 심장박동, 소화작용 등 생존 필요한 기본적인 신체 활동을 조절하는 역할을 합니다. 뿐만 아니라 일상에서 벌어지는 일에 적절히 대처할 수 있도록 그때그때 필요한 만큼 몸의 에너지를 공급해 주기도 하죠. 평소 우리가 의식하든 그러지 못하든 상관없이 제 할 일을 하는 아주 고맙고 성실한 친구들입니다. 그런데 가끔 이 친구들이 오버할 때가 있습니다. 일종의 과잉반응이죠. 예를 들어, 일상의 사소한 스트레스 상황에서 마치 굶주린 맹수를 마주친 것처럼 반응할 때가 있습니다. 실수로 커피를 쏟았을 뿐인데, 길이 막혀 차가 조금 밀릴 뿐인데, 처리해야 할 일이 좀 쌓였을 뿐인데, 당장 그것을 해결하지 못하면 죽어버리기라도 할 듯이 과하게 반응하는 겁니다. 살다 보면 그럴 때가 있는데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자율신경계가 알아서 다시 정상 기능을 회복하니까요.
문제는 자율신경계가 스스로 제 기능을 회복하지 못할 때입니다. 스트레스 상황이 지속되거나 압도적인 사건이 발생할 때 그런 일이 생기죠. 그러면 사는 게 고통스러워집니다. 점점 더 우리 몸은 주변의 위험 신호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작은 일조차 큰 위협으로 받아들입니다. 반대로 안정감을 가져다주는 신호에는 무감각해져 버리죠. 헤어나올 수 없는 악순환의 굴레에 갇혀서 매 순간이 불안하고 우울하고, 심지어 트라우마에 빠져버릴 수도 있습니다. 만약 우리에게 적절한 해결책, 대응책이 없다면 말입니다. 다행히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있습니다. 1980년대에 정신의학자 스티븐 포지스 박사가 제창한 ‘다미주신경 이론’이 그것입니다. 다미주신경 이론은, 쉽게 말해 자율신경계의 구조와 작동원리를 설명하는 신경과학입니다. 신경계가 어떻게 움직이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지를 알려주는 이론이죠. 이 이론에 따르면, 우리는 신경계를 이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의도적으로 조율할 수 있습니다. “배부르니까 빨리 소화시켜!”라고 직접적으로 명령할 수는 없지만, 자율신경계가 잠시 오버하더라도 본래의 리듬을 되찾도록 해줄 수 있다는 겁니다.
《내 삶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법 다미주신경 이론》은 다미주신경 ‘이론’을 ‘실제’로 경험할 수 있게 해주는 책입니다. 스티븐 포지스 박사의 제자이자 다미주신경 이론을 정신건강 분야로 확장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저자가, 임상과 일상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계발한 여러 가지 신경 연습을 담고 있죠. 제목에 ‘이론’이 들어간다고 해서 겁먹을 필요 없습니다. ‘이론서’가 아니니까요.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 책은 이론을 실제로 경험하게 해주는 안내서이자 실용서입니다. 한마디로 잘 ‘신경’ 쓰며 사는 법에 관한 책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서두에 ‘신경’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몇 가지 표현을 살펴봤습니다. 흔하게, 일상적으로 쓰인다는 건 그것이 우리 삶에서 매우 중요한 무언가라는 뜻일 겁니다. 실제로 신경계가 없으면, 신체 활동을 관장하는 신경계가 알아서 자율적으로 작동하지 않으면, 우리는 한순간도 제대로 살아갈 수 없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신경 쓸 일 많은 현실에 조금은 너그러운 마음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요? 나아가 살면서 신경 쓸 일 없기를 바라기보다 어떻게 하면 신경을 잘 다루고 그것을 삶에 이로운 방향으로 사용할 수 있는지에 집중한다면, 크고 작은 풍파들로 가득한 하루를 더욱 풍요롭고 건강하게 가꾸어 나갈 힘이 생길 겁니다. 그러니 다들 잘 ‘신경’ 쓰며 삽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