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줏돈 은혜는 법문과 성불로 갚게 한 일타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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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줏돈 은혜는 법문과 성불로 갚게 한 일타 스님
  • 효신 스님
  • 승인 2023.08.3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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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 스님들의 수행과 사상]

인과법과 인연법

세상살이는 서로에게 도움을 주고받는 관계다. 더불어 사는 삶이기에 나는 누군가의 의지처가 되고, 누군가는 나의 의지처가 되어 준다. 특히 경제생활과 거리가 먼 수행자는 신도들의 물질적 시은(施恩, 시주의 은혜)을 입으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시줏돈은 공동의 선을 위해 청정하게 사용하므로 정재(淨財, 깨끗한 재물)로 불러 사회의 그것과 다른 가치를 둔다. 그 대신에 스님들은 시주의 무게를 경계했다. 오죽했으면 쌀 한 톨의 무게가 7근이라고 했겠는가. 

하지만 자본이 일상의 근간을 담당하는 현대사회의 특성상 시주(돈)를 둘러싼 재가자와 스님들의 갈등은 깊어지고 사회적 문제로 대두된다. 요즘 돈 한 푼 버는 일은 개인의 피고름을 짜내는 일이라 남의 돈으로 생활하는 수행자들의 삶이 일반인들에게는 거슬릴 수밖에 없다. 이런 시선의 갈등과 오해를 적극적으로 푼 분이 바로 동곡 일타(東谷日陀, 1928~1999) 스님이다.

온 우주 법계가 연결돼 있듯이 중생을 떠난 부처가 있을 수 없고, 중생을 떠난 스님들은 존재할 수 없다. 이러한 상호의존적 관계의 순기능은 각자의 역할을 성실히 할 때 이루어진다. 그래서 일타 스님은 “중생은 돈을 벌고, 스님네는 도를 벌면 된다”고 했다.

스님네가 번 도(道)로 중생이 번 돈을 되갚으면 된다는 것이다. 바로 ‘아래로는 법문[下化衆生]’을 하고 ‘위로는 성불[上求菩提]’하려는 수행자의 기본 행이다. 일타 스님은 기본을 벗어나거나 기초를 다지지 못한 일은 허깨비로 보았기 때문에 법문에서도 일상의 기본이 되는 ‘인과법(因果法, 원인에 따른 결과의 법)’과 ‘인연법(因緣法, 직간접으로 조건 지어지는 법)’을 강조했다.

인과법문은 일반인들에게 도덕적 교훈으로 양심에 따라 행하도록 이끌었다. 인연법문은 더불어 살아가는 옆 사람의 소중함을 강조해 내 마음밭[心田]에 좋은 종자를 심도록 노력하게 만들었다. 

“우리는 업으로 이어진 중생이라, 업에 따라 좋은 인연도 만나게 되고 나쁜 인연도 만나게 된다. 그러나 수많은 인연 중에는 절대적인 행복도 절대적인 불행도 없다. 단지, 나 혼자만의 힘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다른 것과 서로 의지하여 일어나므로 난다. 인연따라 묵묵히 복업을 지어 보라. 그것은 마침내 깨친 마음의 복[悟心之福]으로 대해탈의 열매를 거두게 한다.”

스님의 이런 법문은 결국 재가자들에게 윤회의 자각과 일상의 기도로 이어지게 했다. 인과와 인연법을 잘 헤아려 나쁜 일을 행하지 말고 좋은 업을 많이 쌓는 게 스님 법문의 요체다.

1971년 7월 27일 수행결사체 ‘청맥회(靑脈會)’ 스님들이 진관사에서 찍은 사진. 앞줄 오른쪽부터 일타 스님, 광덕 스님, 지관 스님, 진관 스님. 

기도 성취와 삼매의 비결은 ‘간절 절(切)’ 

일타 스님이 불자들에게 생활 속의 기도를 전하게 된 건 스님의 개인적 경험을 통해서다. 한국전쟁이 발발한 당시, 진주 집현산의 응석사(凝石寺)에서 잠시 머물며 부전(불공 드리는 소임)을 살 때 ‘옴마니반메훔’ 염불기도를 잠을 자지 않고 7일간 한 후 가피를 입었다. 

“기도 결심을 하고 나서 나는 부지런히 기도를 했습니다. 처음에는 앉아서 하다가 졸음이 오기 시작하자 서서 ‘옴마니반메훔’을 했는데 깜빡 조는 사이에 목탁은 손에서 미끄러져 나가 발등을 찧기도 했습니다. 몇 번 발등을 찧고는 서서 하는 것도 안 되겠다 싶어 마당을 돌아다니며 염불을 했습니다. 끊임없이 옴마니반메훔을 찾고 비몽사몽간에도 옴마니반메훔을 하다가 6일째 되는 날, 은행나무 밑의 평상에 잠깐 앉은 그 즉시 은행나무에 머리를 기댄 채 잠들어 버렸습니다. 그때, 허공 전체가 나의 입안으로 들어오는 것이었습니다. 『서유기』에 등장하는 황금대왕이 자기가 들고 있는 병 속으로 무엇이든 ‘들어오너라’ 하면 확 빨려 들어가듯이, 허공이 입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이 꿈에서 깨어나자 그토록 기도를 방해하던 졸음도 저절로 사라져서 7일 기도를 잘 마칠 수 있었습니다.”

스님은 이 기도의 가피로 마을 이장이 찾아와 부탁도 하지 않았던 주민증을 만들어다 주었다고 했다. 이런 경험으로 더욱 도심(道心)을 발하여 정진하게 되고 그래서 기도의 기간은 7일 정도면 충분하다고 술회했다.

스님은 오대산 적멸보궁에서도 7일 동안 장좌불와와 매일 삼천배의 기도정진을 마친 후 오른손 네 손가락(12마디)을 연비(燃臂, 신체 일부를 불에 태우는 의식)하면서 3가지 서원을 세웠다(1954년). ‘번뇌를 벗어나 오직 오직 결정심만을 얻기를, 중생들의 죄업장 모두 소멸되기를, 세세생생 보살도를 닦게 되기를’ 발원했다.

스님은 연비를 통해 번뇌중생의 위치를 깨닫게 됐는데, “손에 붕대를 감고 기름을 먹여 태우는데 아주 잘 탑디다. 그 고통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지요. 그러나 그때 우리 몸도 한낱 기름 덩어리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았지요. 그것도 그냥 안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알았지요”라고 회상했다.

이후 스님은 그동안의 공부를 토대로 불자들에게 생활 속의 올바른 기도법을 대중화시켰다. 

“기도는 실천이지 이론이 아니다. 하지만 법에 맞지 않는 기도는 올바른 결실을 이루어낼 수가 없다. 따라서 기도 방법을 제대로 아는 것은 성취만큼이나 중요한 일인 것이다. 기도는 신심이 아닌 신앙이다. 기도를 할 때는 매달려야 한다. 내 마음대로 남의 도움으로 어찌할 수 없는 것을 불보살님의 불가사의한 힘에 의지해 이뤄질 수 있도록 해 달라고 매달리는 것이 기도다. 거듭 강조하건대 기도 성취의 비결은 ‘간절 절(切)’에 있고, ‘간절 절(切)’은 삼매로 통하게 되어 있다. 그리고 우리가 간절히 기도하여 잠깐이라도 삼매를 이루게 되면 불보살의 가피는 저절로 찾아 들게 되어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지금 ‘내’가 서 있는 곳이 사바세계가 아닌 불국토로 바뀌게 된다.”

- 『생활 속의 기도법』 중에서

기도란 개인의 능력으로 부족한 부분을 부처님의 힘을 빌리는 데 있다. 일타 스님은 이를 ‘매달리는 게 기도이고, 간절해야 하며, 간절함은 삼매로 이어져 부처님의 가피를 입게 된다’고 했다. 결국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기도란, 힘이 부족한 중생이 부처님의 등에 업혀 가는 것’이다. 

중국의 여산 혜원(廬山慧遠) 스님이 여러 삼매가 있지만 그 가운데 가장 공덕이 높으나 가장 쉬운 행이 염불이라고 했는데, 일타 스님도 이 맥락을 함께해 염불수행을 주로 권유했다. 사람에 따라서는 절을 권하기도 했는데 스님이 교화한 일명 ‘부장판사 부인’의 경우가 유명하다.

남편이 부장판사인 보살님은 친구를 따라 일타 스님의 절에 와서 “스님, 불교를 믿을까요? 다른 종교를 믿을까요?”라며 (스님의 표현으로는) 까불었다고 한다. 어느 날 황급히 스님을 찾아온 일이 있었다. 사업을 하겠다는 친정 남동생에게 남편 몰래 돈(500만 원)을 구해 줬는데 알고 보니 사기꾼에게 속아 그 돈을 몽땅 날려 버렸다고 했다. 문제는 남편이 알면 안 되기에 남편 모르게 그 돈을 해결할 방법을 구하러 성당에 가 고해성사를 드렸으나 ‘하나님의 뜻이니 어쩔 수 없다’는 신부님의 말씀에 답답해서 절에 왔다고 했다. 

그러자 스님은 “보살님이 사는 (대구) 삼덕동의 관음사라는 절로 가서 3일 동안 삼천배를 하세요. 삼천배는 과거, 현재, 미래의 3대겁(三大劫) 동안 이 세상에 출현하는 삼천 부처님께 한 번씩 절을 하는 것이니, 3일 동안만 그렇게 하면 부처님 중 적어도 한 분은 가피를 내려 반드시 지금의 문제가 해결될 겁니다”라 말했다.

부장판사 보살님은 태어나 처음으로 절 기도를 시작하니 다리는 후들거렸고 땀으로 온몸이 젖었다. 삼천배를 다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 쉬려고 하니, 남편이 쓰러져 병원으로 실려 갔다는 전화가 왔다. 기도를 했는데, 결과가 이러니 보살님의 억장은 무너졌다고 한다. 병원에 가 보니, 다행히 남편은 과로로 인한 것이라 큰 탈은 없었다. 그런데 남편이 입원한 며칠 동안 많은 사람이 끊임없이 병문안을 오면서 하나같이 ‘입원비에 보태어 쓰라’며 부조금을 주고 갔다. 퇴원 후 그 돈은 모아 세워보니 딱 500만 원이었다고 한다. 그날 이후로 이 보살님은 아침마다 108배 일과를 하는 신심 깊은 불자가 되어 일타 스님과 깊은 인연을 맺었다.

1979년 10월 18일 봉익동 대각사에서 ‘월간 「불광」 창간 5주년 기념’ 법회 중인 일타 스님

 

성불을 위한 수행력 

일타 스님은 한 번의 기도로 모든 것이 다 해결되지 않을 때도 있음을 주지시켰다. 이럴 땐 거듭거듭 기도해 도심(道心)이 걸림 없을 때까지 행해야 하는데, 그러면 삼종가피(三種加被)를 입게 될 것이라 했다. 삼종가피란, 현실에서 바로 소원이 성취되는 현증가피(顯證加被), 꿈에서 소원이 이루어질 것을 예시하는 몽중가피(夢中加被), 언제나 은근하게 보호를 받는 명훈가피(冥勳加被)를 말한다.

스님은 “수행하는 사람은 수행을 전부로 알고 수행을 생명처럼 아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는데, 수행력(공부의 힘)에서 중생을 지도할 수 할 수 있고, 포교(전법)가 가능해지기 때문이라 했다. 성불을 위한 수행에서 힘과 지혜가 나오고 불법을 제대로 전할 수 있다. 깨달음이 우선 되지 않는 한 본질에서 벗어나 결국 내용물이 없는 빈 깡통밖에 전하지 못한다. 깨달음을 미루고 포교하려는 것은 진열대 장식으로 놓아둔 빈 통에 불과하다. 성불이라는 궁극적 목표를 향해 걸어가는 도중에 부처님을 만나면서 불법은 저절로 세상에 전해지게 된다. 기초 공사를 하지 않고 어찌 건물을 높이 세울 수가 있겠는가? 

특히 스님은 “변소간 가다가 가방 주운 듯이 감투 쓰는 사람이 되어서야 되겠는가”라며 본인의 격에 맞지 않는 소임을 경계하도록 했다. 구산 스님이 송광사 방장으로 일타 스님을 추대하려 했을 때, “이미 연비할 때 모든 벼슬과 지위를 떠났는데, 방장 자리에 앉아 양심을 속이는 법문은 하고 싶지 않습니다. 조용히 살다 가겠습니다”며 끝내 거절한 일화와 연결된다.

요즘 성불보다는 화장실 가다 가방 줍듯 감투 쓰는 데 관심이 많은 우리 스님네들은 중노릇 밥값을 제대로 치르게 한 일타 스님의 행적을 이정표로 기억해야 할 것이다.   

 

효신 스님
철학과 국어학, 불교를 전공했으며 인문학을 통한 경전 풀어쓰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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