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발의 긴 머리를 야무지게 묶은 김태준(55) 씨는 산내마을 ‘인싸(insider)’로 손꼽힌다. 워낙 사람을 좋아하는 성격에, 도움이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든 나타나 소탈한 웃음으로 사람들의 경계를 무장해제 시켜버리는 덕이다. 보다 생생한 귀농귀촌 이야기를 듣기 위한 인터뷰 요청에 1순위로 추천된 ‘모범사례(?)’이기도 하다. 워낙 사람을 좋아하는 성향 덕에 주민과 주민을 이어주는 매개 역할도 하고, 새로운 주민을 산내마을로 영입하는 데도 열정적이다.
“산내마을에 정착한 지 올해로 꼭 17년 정도 됐습니다. 실상사 귀농학교에서 평생도반을 만나, 가정을 꾸리고 지금은 사랑하는 두 자녀를 키우고 있어요. 시골은 정말 자식 키우기에 천혜의 환경이에요. 교육이다 뭐다 걱정하는 분들도 있던데 ‘봄엔 꽃놀이, 여름엔 물놀이, 가을엔 열매 따기, 겨울엔 눈놀이’하며 자연 속에서 배우는 게 진짜 교육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보고 있으면 이렇게 행복한 아이들이 있을까 싶어요.”
김씨는 운봉읍에 있는 영농조합 펜션에서 사무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시골에 살고 있지만 농사일은 하지 않으니, 정확히 표현하면 귀농인이라기보다 귀촌자다. 그렇다고 귀농인이 아니라고 보기도 애매하다. 한때 산내마을 실상사 농장의 1년 농사를 진두지휘하는 농부, 즉 농장지기로도 꽤 오래 일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는 실상사 귀농학교 14기 출신이지만, 딱히 농사에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귀농학교 9주 프로그램을 수강할 당시엔 오히려 ‘항아리’에 푹 빠져 있었다. 당시 전통 항아리를 만드는 무형문화재 전수자의 가마에서 5년간 일을 배웠다.
“젊은 시절 음악을 했다가 좌절도 맛봤고, 불교도 잘 모르면서 단순히 세속을 떠나고 싶은 마음에 출가하려고 사찰 문턱까지 간 적도 있어요. 그러던 중 도예 하는 친구 일을 도우면서 만난 것이 항아리입니다. 전통 항아리에 올곧이 담긴 서민들의 정서가 참 아름답고 애틋하더라고요. 그런데 가마터를 찾는 와중에 우연히 접한 실상사 귀농학교가 제 삶의 방향을 이렇게까지 바꿔놓을 줄은 미처 예상치 못했지요(웃음).”
1년에 2번 수료생을 배출하는 귀농학교 특성상, 짝수는 봄기수, 홀수는 가을기수로 구분된다. 9주간 귀농 강좌를 들을 때, 지금 아내를 만났다. 아내는 귀농학교 12기 선배로, ‘여성농업인센터’ 체계를 배우기 위해 방과후학교와 한생명 부설 어린이집 선생님 일을 하고 있었다. 본격적으로 연애가 시작된 것은 2005년 무렵, 인드라망 지리산교육원에 한옥 만드는 목공프로그램이 생기면서다. 귀농학교 수료 후에도 딱히 어딘가에 연고를 두지 않고 가마터를 찾아다니던 그에게, 한옥 프로그램 강사로서의 활동가 제의가 들어온 것.
인드라망 활동가로서의 삶은 변화의 시작이자 평생도반을 만나게 해준 고마운 계기다. 결혼 후 자연스레 산내마을에 정착했다.
“2008년 인드라망 지리산교육원이 문을 닫으면서 개인적으로 마음이 상당히 힘들었는데, 그해 공동체의 동안거 주제가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이었어요. 어디에 있더라도 내가 주인이 돼야 한다는 가르침이죠. 도법 스님도 항상 말씀하시거든요. 살다 보면 하기 싫은 일을 만나게 되는데, 막상 하게 되면 마치 간절하게 원했던 일처럼 해야 한다고요.”
인드라망 지리산교육원으로 시작해 작은학교 시설관리 소임도 맡았다. 학생들에게 농사수업을 하다 보니 2015년부터는 논밭 1만평을 책임지는 농장지기로 활동했다. 농장지기가 없어 농장 운영에 다소 어려움이 있던 상황이었다. “실상사 농장은 큰형님과 같다”는 도법 스님의 말이 깊이 와닿았다. 농사는 자연의 이치를 가장 직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고귀한 노동이며, 인간이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토대임을 확신했다. 실상사 농장이 바로 서야 공동체가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적지 않았다.
“농장지기는 좀 외로운 일이었어요. 함께 일하는 분들이 없기도 했고, 공동체 활동가들과 주민들이 울력을 위해 논밭을 가득 채웠다가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나면 좀 공허한 마음이 들기도 했고요. 그래도 제 인생에 정말 의미 있는 경험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농사를 지으면서 어느새 제 자신이 많이 변해 있더라고요.”
이제 그는 “내 삶의 근간은 인드라망 철학에 있다”고 단언한다. 모든 만물은 그물코의 씨줄과 날줄처럼 얽힌 하나의 커다란 인드라망과 같다는 가르침은, 그가 이타적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는 이유가 됐기 때문이다.
“중기마을(산내면)에 거주하는 60여 세대 가운데 귀농가구가 반 이상입니다. 저녁이 되면 집집에서 아기 울음소리와 아이들 소리가 들리고요. 요즘 세상에 이 정도로 새롭게 인구가 유입되는 농촌마을이 있을까요? 인드라망, 특히 한생명이 지난 10여 년간 해온 일들이 결국 마을에 생명력을 불어넣은 겁니다. 제 인생 가장 활기차고 열정적이었던 산내마을에서의 시간은, 결국 인드라망의 철학과 가치관이 제 안에 깊이 뿌리내리는 계기가 됐다고 봅니다. 그래서 참 감사하고 행복합니다.”
사진. 송지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