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은 우리의 마음을 한 곳에 고정할 수 있도록 훈련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그것이 무엇이든 상관없습니다. 그게 호흡일 수도 있고, 마음챙김이나 어려운 요가 자세가 될 수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달리기와 같은 운동을 사용해서 마음의 집중력을 키우는 훈련을 합니다. 그림이나 노래, 악기 연주를 집중의 대상으로 명상하기도 합니다. 이런 모든 활동은 집중력을 키우고, 잡념을 줄이는 데 매우 유용합니다. 이렇게 명상이란 매우 실용적이고 현실적인 일입니다. 우리가 ‘선(禪)’이라고 부르는 불교 명상법은 심지어 그런 것들도 훨씬 뛰어넘습니다. 우리의 마음은 무궁무진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마음은 끊임없이 발전하고 개발될 수 있습니다. 선이라 불리는 이 엄청난 테크놀로지에는 우리의 무궁무진한 마음을 개발시킬 수 있는 다양한 훈련법들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선은 더 깊은 집중력을 만들어 줄 것입니다. 그게 왜 중요할까요?
지혜를 개발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문제를 더 잘 풀 수 있도록 해줍니다. 명상에서 진전하면 우리는 점점 더 예리하고 길게 집중할 수 있게 됩니다. 우리가 어떤 문제에 부딪혔을 때 더 오랫동안 들여다봐서 더 자세히 알 수 있게 해줍니다. 문제에 더 깊게 침투할 수 있게 됩니다. 명상은 우리가 문제를 더욱 깊게 꿰뚫도록 해줍니다. 그렇게 침투하고 더 깊게 들여다봅니다. 그러므로 지혜가 커질수록 우리의 문제 해결법도 더 발전합니다. 문제의 표면만 보는 게 아니기 때문에 더 좋은 결정을 내릴 수 있게 해줍니다. 그런 까닭으로 마음도 운동과 같이 훈련이 필요한 것입니다. 반드시 필요할 때 생각을 멈추는 방법을 배워야만 엔진을 쓸데없이 계속 돌리지 않아도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문제를 풀어야 할 때만 생각합니다. 그런 필요가 없을 때라면 생각을 멈출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현실에서 우리는 생각을 멈출 수 없습니다. 명상반에 온 초심자들은 “명상할 때 생각을 안 하면 되는 건가요?”라고 묻지만, 사실 여러분은 그걸 하지 못합니다. 처음 명상을 시작하면 여러분은 부정적인 느낌과 감정을 인지하는 것부터 경험할 것입니다. 우리는 보통 어떤 생각이나 느낌이 바람직한지, 바람직하지 않은지 분간을 못 합니다. 그게 첫 번째입니다. 그걸 불교에서는 ‘미혹’이라고 부릅니다. 예를 들어 “저 사람이 날 모욕했어”라고 하면, 우리는 즉시 “맞아! 화를 내야 해!”라고 합니다. 그게 첫 반응입니다. 우리가 명상을 한다면, 그걸 먼저 인식해야 합니다. 그리고 “아! 이건 바람직한 방향이 아니구나!”라고 해야 합니다.
사실 우리는 감정적일 때 마음의 명료함을 잃습니다. 왜냐하면 그때 생각하는 마음이 우리를 통제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때 생각하는 마음, 즉 의식이 작동을 시작합니다. 그리고 쉬지 않고 계속 돌아갑니다. 우리의 의식이 계속 부정적인 감정에 대해서 생각합니다. 그러면 감정은 더 커지고, 생각할수록 번뇌도 커집니다. 그럴 때 ‘생각하는 마음아, 멈춰라. 더는 생각하지 마!’라고 하는 겁니다. 그러므로 ‘선’은 매우 실용적입니다. 우리가 명상 수행을 하면 이런 인지할 수 있는 능력을 개발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열심히 명상을 수행할수록 부정적인 감정을 더 빨리 인지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더 예리하고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게 됩니다. 여러분이 선 수행에서 진전할수록 선(禪)도 더 매력적으로 될 것입니다. 부정적인 감정을 더 빨리 인지할수록, 그걸 제압하고 쳐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더 긍정적인 사람이 됩니다. 여러분의 인생도 자동으로 더 긍정적으로 변해갑니다. 그래서 인생이 훨씬 더 매력적이고 훨씬 더 행복해집니다. 이 부정적이고 원치 않는 감정들과 불필요한 생각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생각을 멈출 수 있는 능력도 얻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현안(賢安, XianAn) 스님
2012년부터 영화 선사(永化 禪師)를 스승으로 선과 대승법을 수행했으며, 2015년부터 미국에서 명상을 지도했다. 미국 위산사에서 출가 후 스승의 지침에 따라 한국으로 돌아와 현재 분당 보라선원(寶螺禪院)에서 정진 중이다. 국내 저서로 『보물산에 갔다 빈손으로 오다』(어의운하, 2021)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