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에는 계절마다 여러 꽃이 핀다. 부처님 전에 꽃 공양 올리듯 앞다퉈 도량을 장엄한다. 여러 꽃 중에 공교롭게도 “나도 부처”라는 듯 부처님 도량에 피는 부처꽃(?)이 있다. 부처꽃과에 속하는 백일홍이다. 백일홍은 배롱나무에서 피는 꽃으로, 한해살이풀 백일홍과 다르다. 해서 목백일홍(木百日紅)으로 구분해서 쓰는데, 백일홍이 더 익숙하다. 100일간 붉게 피어서 백일홍이라는 이름이 붙었고 자미화(紫微花)로도 부른다.
백일홍을 피우는 배롱나무는 무궁화, 자귀나무와 함께 우리나라의 여름을 대표하는 3대 꽃나무 중 하나다. 온통 초록 이파리 넘실대는 뜨거운 여름 동안 붉은 꽃 피워서 사랑받는 나무다. 표면이 떨어져 반질반질해 보이는 줄기도 특징이다. 간지럼 태우면 잎이 흔들려 ‘간지럼나무’라는 별명이 붙었다. 사대부들에게 두루 사랑받았고 소쇄원, 식영정 등 조선의 문인들 정자나 집에 주로 심어졌고, 담양 후산리 명옥헌에 우거진 배롱나무 숲이 유명하다. 부처꽃과에 속해서일까? 배롱나무와 백일홍으로 이름난 명찰이 있다.
천불천탑 운주사만큼 핫한 만연사 배롱나무
화순 하면 천불천탑과 와불로 유명한 운주사부터 떠올린다. 적어도 여름엔 다르다. 화순 만연사 때문이다. 만연사 일주문에는 ‘나한산만연사(羅漢山萬淵寺)’ 현판이 내걸렸는데, 만연산의 옛 이름이 나한산이다. 1208년(고려 희종 4) 만연사를 창건했다는 만연 스님이 광주 무등산에서 송광사로 돌아가는 길에 이 산에서 나한이 부처님을 모시는 꿈을 꿨단다. 그 자리에 만든 토굴을 짓고 세운 절이 만연사라는 창건설이다.
만연사가 운주사처럼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고 눈길을 끈 이유는 배롱나무가 있어서다. 대웅전 바로 옆에 가지를 늘어뜨린 배롱나무의 백일홍은 유난히 붉다. 빨간 연등이 백일홍과 함께 주렁주렁 매달려서다. 만연사는 겨울에도 뜨겁고 붉다. 배롱나무에 걸린 연등에 소복하게 쌓인 하얀 눈과 대비되는 빨간 연등 사진은 온라인에서 큰 인기를 끌 정도다.
만연 스님이 돌아가려던 송광사에도 배롱나무가 있다. 일주문, 지장전, 우화루, 대웅보전 앞마당 등 경내 곳곳에 배롱나무가 백일홍을 피운다. 배롱나무 아래로 떨어진 백일홍 꽃잎을 가지런히 빗질한 모습까지 본다면 금상첨화다. 8월이 절정이다. 송광사 말사인 수선사의 배롱나무는 사보인 월간 『송광사』 표지에 실릴 만큼 색감이 붉다.
배롱나무 백일홍을 찍는 사진가들의 출사 장소로도 유명한 고창 선운사도 잊지 말자. 7월 말부터 100일간 경내를 장엄한다. 선운사까지 가서 마당과 대웅보전 양옆에 나란히 선 배롱나무에서 피워 올린 백일홍을 지나친다면 붉게 분노할지도 모른다.
뷰 맛집 절경과 함께 피는 백일홍
뷰 맛집인 도량에도 배롱나무 백일홍이 핀다. 서산에 있는 ‘마음 씻는 골짜기’ 세심동(洗心洞)을 따라 걷다 보면 만나는 ‘마음 여는 절’ 개심사(開心寺)에도 배롱나무가 참배객의 시선을 한참 붙든다. 상왕산(象王山) 코끼리가 목을 축인다는 못에 가지를 드리우고 꽃을 피운다. 못에 떨어진 꽃잎도 장관이다.
뷰맛집인 만큼 개심사는 배롱나무 있는 못 외에도 범종루와 심검당 나무 기둥이 백미다. 휘고 굽은 생김새 그대로 지붕을 떠받치고 있다. 시간의 흐름에 맡긴 듯 몸도 휘고 굽었다. 쫓기는 일상에 쉼표 하나를 찍으려면 개심사에서 백일홍과 이 나무 기둥 보며 뜨거운 여름 한때를 흘려보는 것도 방법이다.
충청도에 갔으면 영동 반야사를 들러볼 일이다. 백두대간의 줄기 백화산은 굽이굽이 물줄기를 만들며 반야사로 흘러 바다에 이른다. 피부병을 앓은 세조의 목욕과 문수동자의 설화가 문수전에 깃들었고, 반야사 대웅전 뒤로 가면 깎아지른 절벽 망경대에 문수전이 장관이다. 뿐만 아니다. 대웅전 마당에서 고개를 살짝 돌리면 수천년 흘러내린 돌무더기가 나무와 만들어낸 화폭이 일품이다. 어떤 이는 문수보살이 타는 사자라고 하고, 어떤 이는 호랑이라고도 한다. 반야사에서 문수전과 호랑이 무늬만 보고 간다면 섭섭하다. 3층 석탑(보물) 곁에서 수령 500년 넘는 배롱나무 두 그루가 꽃을 피우면 화룡정점을 찍기 때문이다.
초당에 머물던 다산 정약용(茶山 丁若鏞, 1762~1836)과 아암혜장(兒巖惠藏, 1772~1811) 스님, 해남 대흥사 일지암의 초의 스님이 차와 우정을 나눴던 강진 백련사에는 동백만 있는 게 아니다. 밀양 표충사에도 임진왜란 때 공을 세운 사명대사의 혼만 있는 게 아니다. 백일홍 붉게 매달린 배롱나무가 있다.
묵객들이 사랑한 그 나무 그 꽃
왜 그럴까. 매화 못지않게 묵객들의 사랑을 받은 꽃이 배롱나무 백일홍이다. 조선시대 사육신 성삼문은 ‘백일홍(百日紅)’이라는 시처럼 배롱나무를 무척 좋아했단다.
“지난 저녁 꽃 한 송이 떨어지고(昨夕一花衰)
오늘 아침에 한 송이 피어서(今朝一花開)
서로 일백일을 바라보니(相看一百日)
너를 대하여 좋게 한잔하리라(對爾好衡盃).”
성삼문이 자신의 인생철학과 닮아 백일홍을 좋아했다고 어떤 묵객은 평한다. 한 송이가 피고 지고를 반복하면서 어떤 마음을 지키고 있어서란다. 붉은 꽃은 바로 성삼문의 단종을 향한 마음, 일편단심(一片丹心)이라는 얘기다. 틀린 말은 아니다. 백일홍은 핀 꽃이 100일간 있지 않다. 한 송이 떨어지면 다시 한 송이 핀다. 그렇게 하루하루 100일 기도하듯 핀다. 그래서 도종환의 시 ‘목백일홍’처럼 환하고 아름답다.
“한 꽃이 백 일을 아름답게 피어있는 게 아니다.
수없이 꽃이 지면서 다시 피고
떨어지면 또 새 꽃봉우릴 피워 올려
목백일홍 나무는 환한 것이다.
꽃은 져도 나무는 여전히 꽃으로 아름다운 것이다.
제 안에 소리 없이 꽃잎 시들어가는 걸 알면서
온몸 다해 다시 꽃을 피워내며
아무도 모르게 거듭나고 거듭나는 것이다.”
‘붉은 꽃은 열흘을 가지 않는다’라며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고 한다. 삶은 다르다. 죽음이 끝이 아니다. 배롱나무의 백일홍은 100일간 피고 지면서 탄생과 소멸의 윤회 법문을 설한다. 순간이 쌓여 날마다 좋은 날을 만든다. 점이 모여 선을 이루고 선이 모여 면을 만든다. 열흘만 반짝 붉게 빛나고 말 것인가. 배롱나무 백일홍은 피고 질 때마다 붉게 빛나는 삶을 100일간 살아낸다. 여름마다 그 뜨거운 배롱나무 백일홍의 철학을 부처님 도량에서 만날 수 있다. 좋지 아니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