템플스테이의 고수
며칠 전이었다. 파주에서 출판사 대표를 하는 한 지인이 카톡으로 링크를 보내왔다. 가톨릭 신자가 2박 3일간 실상사 템플스테이에 참가한 후기였다. 참가자는 4월 한 달, 숨이 턱 밑까지 차오를 만큼 바쁘게 보낸 자신에게 실상사 템플스테이를 선물로 주었다. 남원으로 운전하고 가는 길에도 졸음을 이기기 어려울 만큼 피곤한 몸으로 실상사에 갔다가 ‘세상에 그보다 더 좋을 수 없는 힐링을 했다’는 소감을 남겼다. 진솔한 후기를 보내준 지인도 3년 전 나와 함께한 실상사 2박 3일 템플스테이의 감동을 다시 느끼는 듯했다.
필자의 제안으로, 당시 그 출판사 소속 2명과 한 재단 임직원 등 6명과 함께 서울에서 출발해 실상사 템플스테이에 참여한 적이 있다. 그 가운데는 개신교 신자도 있었다. 두 명을 제외하고는 사찰에서 자는 것이 처음인 이들이었다. 개신교 신자와 함께 사찰에 가면 조심스러운 게 한둘이 아니다. 신앙심이 두텁다고 하는 이들일수록 불교와 사찰에 대해 부정적인 선입견이 큰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우상 숭배에 대해 경기를 일으키는 이들을 불당에 데려가지 않는 것이 상식이다. 입구부터 무서운 형상의 일주문 사천왕상을 통과하면서부터 마음이 불편하기에 십상인 그들이다. 그런데 우리 일행을 맞아준 실상사 한주 법인 스님은 사찰 초행자라도 오래된 벗처럼 격의 없이 맞아준다. 하수는 자기 것을 억지로 밀어 넣으려 하지만, 고수는 상대를 품어주게 마련이다. 크리스천들의 거부감과 배타심마저 종교적 차이에서 비롯됐다는 것을 이해해주는 게 고수다.
법인 스님과 실상사 마당 한쪽 대숲의 시원한 그늘에 앉았다. 불교의 ‘불’자도 부처님의 ‘부’자도 들어가지 않은 한담이었다. 덩치는 크지만 한없이 착한 눈을 가진 평화의 반려견 ‘다동이’가 무장을 해제시키는 감초 노릇을 했다.
한담 뒤 한가하게 마당을 거닐다가 목탁이 울리자 공양간으로 갔다. 서울에선 맛보기 어려운 산나물 반찬과 산채 튀김이 어우러진 맛있는 공양도 감동이지만, 공양게송을 볼 때 이들의 눈빛이 가장 반짝였다. ‘이 음식이 어디서 왔는가/ 내 덕행으로 받기가 부끄럽네/ 마음의 온갖 욕심 버리고/ 육신을 지탱하는 약으로 알아/ 깨달음을 이루고자 공양을 받습니다’란 글에서 숙연하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을까. 그 뿐만이 아니다.
스님과 불자의 경계마저 없이 함께 어울려 공양하는 모습에서 더욱 편안함을 느낀다. 이들을 인솔해온 곳이 실상사여서 더욱 안도가 되는 순간이다. 권위는 스스로 대우받으려는 자세를 벗고 겸손하게 낮아지고 봉사할 때 지켜보는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자연스럽게 우러나온다.
템플스테이의 암초
예전부터 불자가 아닌 지인들을 사찰에 데려갈 때마다 그들이 어떤 지점에서 거부감을 느끼는지 체감하곤 했다. 첫 번째 암초는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듯이 절에 가면 절 예법에 따라야 한다’며 스님에게 큰절하라고 권유할 때다. 상대가 사회적 지위를 가지고, 나이도 지긋한 연배일 경우 ‘스님께 큰절을 올리자’는 말이 입에서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옛 봉건주의 시대가 아니어서, 왕이나 대통령에게도 큰절하지 않는 민주화된 평등 시대에 큰절해야 한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는 비불자들이 많다.
또 다른 장애물은 공양간이다. 대부분의 사찰에서 스님 좌석과 일반인 좌석을 구분해놓고 있다. 구분만 해놓은 데서 나아가 일반인들은 식판에 음식을 직접 담지만 스님들은 미리 차려놓기도 하고, 일반인들은 식후 설거지도 직접 하지만, 스님들은 공양간 보살들에게 치우도록 그대로 두고 나가는 경우도 있다. 교회나 성당에서의 평등한 서구문화에 익숙한 크리스천들이나 비불자들이 이런 모습을 보고 불교는 아직도 봉건시대나 인도의 카스트 시대에 머물고 있는 종교라는 편견을 심화시키곤 한다.
그런데 실상사에서는 스님과 일반인의 좌석도 구분해놓지 않았고, 함께 어울려 둘러앉을 수 있는 큰 원탁을 두고 있다. 스님과 함께할 만큼 어색함을 덜지 못한 지인들은 식판을 들고 공양간 구석에 가서 식사하긴 했지만 원탁에서 일반인들과 둘러앉아 공양하는 스님들을 보며 불교에 대한 편견을 덜어내는 눈치였다. 또 소탈한 모습으로 차를 따라주며 인드라망 세계를 설명해준 도법 스님과의 차담이 끝난 뒤엔 스님들에 대한 경계심과 두려움까지 많이 벗어버린 눈빛이 역력했다. 그렇게 3일을 보내고, 지인인 출판사 대표는 그 뒤로 실상사의 펜이 되어 틈만 나면 방문하고, 다른 참가자들도 만날 때마다 그 아름다운 2박 3일을 회상하곤 한다.
개인적으로는 크리스천들을 비롯한 비불자들이 템플스테이에 참여해 함께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 불교 일각에서는 템플스테이를 포교적 관점으로 생각하기도 하지만, 비불자들의 참가는 포교 차원을 넘어선 기쁨을 준다. 좁은 나라에서 남북으로 나뉘고, 보수와 진보로 나뉘고, 지역으로 나뉘고, 종교까지 배타와 대립을 보이는 답답증과 절망감이 씻기는 것 같은 청량함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설사 이념이 다르고, 종교가 다르다고 할지라도 하나가 되어 어울릴 수 있는 희망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것이야말로 분별의 비늘을 벗게 해서, 생각이 다르고, 종교가 다르다고 할지라도 우린 나뉠 수 없다는 동체대비의 깨달음을 실증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 회통을 실현하기에 산사의 스님들이 이끄는 템플스테이만큼 좋은 곳이 또 있을까.
문턱을 낮춰야
20년 전 템플스테이가 생기기 전만 해도, 아무나 절에 묵을 수 없었다. 그 절 신도이거나 시주자가 아니면 절에 묵어가기 어려웠고, 스님과 마주 앉아 차담을 나누는 것도 특권층의 호사로만 보이곤 했다. 그러나 템플스테이 이후 산사의 문턱이 낮아지고, 스님과의 차담도 좀 더 쉬워졌다. 스님들로서는 절 문밖을 나가지 않고 중생들과 어울려 보살행을 할 수 있는 화광동진(和光同塵)의 기회가 됐다. 일반인들로서는 어느 펜션도 따를 수 없는 경관에 둘러싸인 궁궐 같은 기와집에 머물며, 스님들과 차를 나눌 수 있게 됐다. 큰 시주자가 아니어도 말이다. 1,600년 한국불교의 혜택을 드디어 어느 중생이건 평등하게 누릴 수 있는 전환점이 된 게 템플스테이인 셈이다.
템플스테이 덕분에 외국인을 비롯한 많은 이들이 사찰을 찾게 되면서 템플스테이 사찰들도 더욱더 세상 속으로 나왔다. 그 전엔 불교가 스님들만의 종교라는 인상이 짙었다면, 템플스테이로 인해 한국불교가 사부대중의 불교가 되고, 나아가 만중생의 불교로 거듭난 셈이다. 아니 상호의존의 연기와 동체대비라는 깨달음의 종교로 드디어 회귀한 것이다.
템플스테이의 연륜이 쌓여가면서 프로그램도 다양해지고 있다. 대중들의 욕구가 다양한 만큼 각기 다른 욕구에 맞는 다양한 템플스테이가 나오는 것은 좋다. 그러나 프로그램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찰다움이다.
불교만이 아니라 개신교 교회와 가톨릭 성당 등 다양한 종교를 모두 취재하고 들여다보는 종교전문기자의 눈으로 보면, 교회와 성당들의 다양한 프로그램의 모습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마치 유명한 백화점에 가면 다양한 것을 배울 수 있는 문화센터와 전시 공연장, 카페, 식당 등이 다 있듯이 대형교회와 성당에 가면 카페와 전시관은 기본이고 다양한 것을 배우는 온갖 동아리들이 있고, 인문학 강연까지 풍부하게 들을 수 있다. 특히 대형건물과 경제력을 갖춘 대형교회들은 미국과 유럽에서 인기 있는 커리큘럼을 실시간으로 도입할 정도로 발 빠르다. 한국 대형교회들의 선교 열정을 어느 종교가 따를 수 있겠는가.
하지만 요즘은 대형교회들만이 경쟁자가 아니다. 천문학적인 예산 규모를 자랑하는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들은 온갖 프로그램과 강좌를 마련해놓고 서비스하고 있다. 따라서 그런 프로그램들로는 사찰이 대형교회나 지방자치단체를 넘보기가 쉽지 않다.
사찰도 많이 달라졌다. 도심 포교사찰들도 카페와 인문학 강좌는 기본으로 갖추고, 산사도 박물관과 산사음악회 같은 다양한 볼거리까지 마련한다. 그러나 산사의 장점은 그런 프로그램에 있지 않다. 프로그램으로 뭔가를 하는 것보다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즉 무위야말로 산사의 압도적 강점이다. 예를 들면 숙식만 제공하고 일체 간섭하지 않는 ‘내비도’ 같은 휴식형 템플스테이다.
상처와 고통을 보듬어야
현대 한국인들의 몸과 마음 상태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너무도 열심히 살아온 나머지 몸과 마음에 쌓인 ‘피로증후군’이다. 따라서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쉬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나는 자연인이다〉를 목을 빼고 보는 이유도 정말 아무도 간섭하지 않는 곳에서 쉬고 싶은 피로감 때문일 것이다.
비우지 않으면 새로운 것을 채울 수 없다. 비우지도 않는 이들에게 뭔가 새로운 것을 넣어주려고 하는 것은 억지다. 오히려 채움보다 비움이 필요한 이유다. 참가자들은 오히려 무위의 산사에서 솔바람, 대바람을 맞으며 산책로를 걸으며 무료한 듯 머리를 비웠다가, 공양간에 갔을 때 공양게송을 보고 불현듯 깨달음을 얻게 된다.
또는 해우소에 갔을 때 ‘버리고 또 버리니 큰 기쁨 있어라. 탐진치의 삼독도 이와 같이 버려 한순간의 죄업도 없게 하리라’는 게송을 보고 배 속만이 아니라 머리까지 비워지는 해탈 향을 경험할 수도 있다. 그러면 크리스천들도 비로소 스님과의 차담에 한번 가볼까 하는 용기를 낼 수 있고, 허심탄회하게 경청해주며 맑은 차를 건네주는 스님의 미소에서 종교 간의 벽이 원래 없었다는 것을 체득할 수도 있다.
산사는 배타심이나 적개심을 갖고 바가지를 거꾸로 들고 있지만 않는다면 비할 때 없는 법비와 꽃비가 쏟아져 내리는 무궁무진한 보배처다. 따라서 방문자에게 뭔가를 주입하려고 애쓰기보다는, 마치 자기 집처럼 머물고 쉬게 하는 게 최고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것도 따르지 않을 자유를 줘 내 집처럼 편히 쉬게 하는 것만한 포교도 없다. 배타심과 증오심을 비우지 않았다면, 자기 집처럼 편히 쉴 리가 만무하기 때문이다.
현대 한국인들은 세계에서 유례없이 성장 발전을 하기 위해 참 애쓰며 살았다. 국가적으로 민족적으로는 장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그 경쟁에서 성패를 겪으며 상처와 고통과 피로가 적지 않다. 그들을 더 달리도록 채찍질하기보다는 그들에게 ‘참 애썼다’고 ‘그만하면 됐다’고 ‘장하다’고 안아줄 할머니와 어머니의 품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 나라 장자 종교이자 가장 포용적인 불교의 산사만큼 그런 역할을 해줄 만한 곳이 어디 있을까. 이를 위해서는 뭔가를 굳이 하려고 하지 않아도 위의와 눈빛과 말 한마디만으로도 불교의 아름다움과 깊이를 직감케 하는 스님들의 평상심이 뒷받침돼야 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템플스테이가 한국불교를 대중화하고, 현대화하는 데 큰 역할을 했지만, 필자가 기대하는 것은 템플스테이가 고해바다의 중생들을 껴안는 대승의 안심입명처(安心立命處)가 되는 것이다. 그것이 템플스테이가 다음 20년간 성취해야 할 대승보살도다.
조 현
「한겨레」 종교전문기자 겸 유튜브 채널 ‘조현TV 휴심정’을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