템플스테이라는 짧은 여정에서 인생의 해답을 얻길 기대하는 것은 지나친 욕심일 테다. 하지만 진정한 대답은 언제나 질문하는 삶에서 나온다고 했던가. 조금의 기대와 설렘을 안고 나를 찾는 1박 2일의 짧은 여정에 몸을 실었다.
예매했던 서울역에서 출발하는 광주송정역행 KTX 좌석은 하필 역방향이었다. 뒤에서 나타나 앞으로 멀어지는 창밖 풍경을 바라보며, 템플스테이야말로 일상의 속도를 거스르는 이벤트가 아닐까 생각했다. 세상의 속도를 거스르는 것. 하지만 그 어떤 삶의 수단보다 나에게 향하는 빠르고 정직한 길. 이름하여 나를 찾는 힐링과 휴식의 KTX!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살아왔던 지난 삶을 차근차근 되살펴 가는 여정이 될 것 같은 예감과 이 여정에 동참하는 또래 참가자들과의 만남에 대한 기대감으로 한껏 들떴다.
최예원(23)
코로나가 초창기에 대학교 생활을 시작한 비운의 20학번이다. 붕 떠버린 시간 동안 ‘대학에 가서 뭘 배워야 할까’는 물음표를 던지고, 앞으로 어떠한 인생을 살아야겠다는 마침표까지 찍었다고. 그녀는 대웅전 처마의 용머리와 단청을 하나하나 유심히 들여다볼 만큼 자신의 삶과 예술작업에 불교적 영감을 불어넣고 싶어 한다.
박서현(36, 연지인)
여린 미소 속에 단단함이 묻어나오는, 10년 차 직장인. 퇴근 후에는 하루 동안 얽혔던 마음의 실타래를 108배로 풀어가는 외유내강의 불자. “절을 하는 순간에는 회사에서 있었던 불만족스러웠던 일이나 화가 났던 감정들을 내려놓게 되더라고요.” 이번 템플스테이에서는 참가자 중 유일하게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는 그 어렵다는 ‘소셜단식’을 실천했다.
심효빈(35, 정수안)
디자이너와 강사 생활을 이어나가다가 울산에서 디자인 스튜디오를 창업해 5년째 꾸려가고 있다. 절 일이라면 발 벗고 나서서 도울 정도로 자신의 재능을 생계뿐 아니라 불교 포교에까지 이어가는 열혈 불자다. 템플스테이 첫날에도 잠들기 전 사경을 했다며 ‘찐불자’를 인증했다.
증심(證心), 마음을 깨닫다 마음을 맑히다
머물게 될 사찰은 광주 무등산 증심사. 흐려지고 흔들릴 때마다 다시 마음을 가라앉히고 맑히며 살라는 뜻의 ‘증심(證心)’은 이번 템플스테이에 딱 들어맞는 사찰 이름이다. 무등산 서쪽 기슭에 자리 잡아 광주 도심에서 교통편으로 20~30분 거리에 있어 접근이 편한 증심사는 광주시 문화재로 지정된, 광주 지역에서 손꼽히는 전통사찰이다. 버스 종점에서 내려 오르막길을 따라 증심교를 건너고 일주문을 지나니 20여 분 만에 증심사에 도착했다.
이번 템플스테이 참가자는 필자를 포함해 월간 「불광」 SNS 공개 모집으로 선발된 20~30대 여성 불자 3명, 개인적으로 방문한 사람까지 총 5명이었다. 단지 쉬고 싶어서, 반 박자의 여유를 찾기 위해서, 작업에 영감을 얻기 위해 신청했다는 참가자들은 각각 서울, 대전, 울산에서 이곳으로 모였다.
“성지순례 같은 프로그램에 주로 참여하다 보니 오히려 템플스테이를 불자라서 덜 찾게 되는 것 같아요.”(심효빈 씨)
울산에서 그래픽디자인 스튜디오 추추비니를 운영하는 심효빈 씨는 오래전 용문사 템플스테이 참가 이후 처음이라 했다. 회사에 휴가까지 내고 서울에서 온 박서현 씨는 전국에 있는 절 여행은 많이 다니지만, 템플스테이 참여는 몇 번 안 된다고 했다. 서양화를 전공하고 잠시 휴학하며 창작에 열중하고 있는 최예원 씨는 어려서부터 할머니와 부모님을 따라 절에 다녔지만 템플스테이는 처음이다. 가고 싶다는 생각은 많았지만 항상 용기가 부족했는데, 마침 이번 기회로 세 명 모두 용기를 냈다.
방사(숙소)에서 환복을 하고, 어떤 이는 스마트폰을 어떤 이는 작업을 위해 바리바리 싸 왔던 짐을 내려놓으며 한결 가벼운 모습으로 방사 앞마당에 모였다. 템플스테이 지도법사 혜공 스님이 사찰투어를 시작하자, 빗방울이 불거졌다. 하지만 증심사의 보물들을 둘러보는 데 날씨는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았다. 오백나한 성중이 모셔진 영험한 오백전, 그 앞에 자리한 무등산에서 가장 오래된 3층석탑과 오백전 옆에 나란히 위치한 5층·7층석탑, 선대 조각 장인의 뛰어난 솜씨를 엿볼 수 있는 철조 비로자나불좌상까지. 혜공 스님은 유머감각 넘치는 설명과 함께 참가자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달콤한 초콜릿과 팔찌 선물을 준비했다. 하나라도 더 알아가라는 마음에서다. 내렸다 그치기를 반복하는 짓궂은 비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열정 넘치는 스님의 설명 덕분에 참가자들은 증심사 구석구석을 마음에 담았다.
스님과의 삼독심 디톡스
참가자들 모두 이번 템플스테이에서 가장 기대한 스님과의 차담 시간이 됐다. 주지스님이 직접 진행하는 차담 시간은 증심사 템플스테이에서도 특히 인기가 많은 프로그램이다. 약식 발우공양을 마치고 주지스님 앞에 나란히 앉은 참가자들에게 중현 스님은 뽕잎차를 따라줬다.
모두가 첫 질문을 주저하던 와중 한 참가자가 입을 뗐다.
“스님들은 마음관리의 대가들이시잖아요. 저희 같은 일반 사람들보다는요. 그래서 고민들을 꼭 여쭤보고 싶었어요.”
“그런 스님도 있고 그렇지 않은 스님도 있어요. 그건 모르는 거예요. 다만, 살다 보면 친한 사람과도 말하기 힘들 때, 모르는 사람한테 아무 생각 없이 편하게 털어놓는 게 도움이 돼요. 오늘은 머릿속에 있는 고민들 다 저한테 버리고 간다고 생각하시고 마음껏 물어보세요.”
스님, 저는 서양화를 전공하는 대학생인데요, 불교적 소재로 그린 그림으로 사람들에게 불교를 자연스럽게 알리고 관심을 갖게 만들고 싶어요. 작업의 영감을 어떻게 얻을 수 있을까요?
“제가 미술에는 문외한이어서.(웃음) 그렇지만 불교에는 흥미로운 소재들이 많아요. 지금 생각나는 건 사후세계에 대한 건데, 부처님 제자 중에 목련존자가 지옥에 간 어머니를 찾아가 부처님 법을 설해서, 어머니가 참회하고 극락왕생했다는 이야기가 있어요.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지옥들이 꽤 인상적이에요. 혀를 뽑아내 그 위에서 소가 쟁기를 가는 발설지옥, 뜨거운 쇳물이 끓는 무쇠솥에 죄수를 산 채로 집어넣는 확탕지옥 등이 그림으로 다루기에 좋겠네요.”
스님, 절에서 공동체 생활을 하다 보면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많아요.
“절에 다니는 사람은 불자가 아닌 사람들보다 수행, 기도에 조금 더 관심 있을 뿐이지 머리끝부터 발까지 수행하는 사람은 아니에요. 다만, 일반사람은 중생심이 120% 정도라면 절에 오는 사람들은 95%의 중생심을 가지고 5% 정도는 수행해서 바꾸려고 노력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는 겁니다.
화를 내는 자신의 마음도 조절 못하면서, 어떻게 거사님이든 보살님이든 다른 사람을 내 뜻대로 변하게 하겠어요. 세상일은 내 뜻대로만 되지 않아요. 이게 불교에서 말하는 연기설입니다. 연기사상에 입각해보면, 숱하게 많은 관계와 행위와 힘들이 얽히고설켜 있는데 그걸 어떻게 내 마음대로 해요. 하나의 세계를 100명이 공유하는 게 아니라, 100명에게 각각 100개의 세계가 존재합니다. 그걸 인정해야 하죠.”
스님, 저는 이전에는 결혼 생각이 없었는데 나이를 한 살 한 살 먹을수록 어떤 사람을 배우자로 맞아야 할지 고민이 돼요.
“100명의 사람이 있으면 100개의 세계가 있다, 이것이 불교의 일체유심조입니다. 인간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눈코입귀로 받아들인 것들을 다 종합하는 내 머리를 통하지 않고서는 절대 상대방을 인식할 수 없죠. 결국 내가 상대하는 그 사람은 내가 만든 그 사람의 아바타일 뿐 실제 그 사람이 아닙니다. 내가 만들어낸 아바타상이 원래 그 사람과 비슷하면 관계가 오래갈 거고, 그 사람과 너무 다르면 관계는 오래가지 못할 것입니다.
저는 결혼을 안 했지만, 제 생각은 결혼에 대해서는 크게 기대하지 않는 게 좋습니다. 그 사람과 같이 가족을 꾸리는 것이 현실적으로 나의 삶에 혹은 그 사람의 삶에도 도움이 되는 것 같다, 하면 하십시오. 물론 단정은 못 짓습니다. 미래의 일이니까요. 다만, ‘내가 만들어놓은 그 사람은 아바타다. 실제 그 사람은 아니다. 그러니 이것은 언제든 바뀔 수 있다.’ 그걸 인정하고 있는 그대로의 그 사람을 사랑해야 합니다. 물론 정말 힘든 일이겠죠.”
나를 찾는, 아니 알아가려는 질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핵심은 일상생활의 모든 번뇌와 고통의 시작은 탐진치에서 비롯된다는 것. 그중에서도 가장 근본은 자신의 어리석음이기에 하심하고, 참회하고, 자비롭게 살려고 노력하라는 것. 역시 삼독심(三毒心) 독소를 없애는 디톡스(detox)에는 스님과의 차담이 제격이다.
깊은 수심을 가지고 조용히 흐르는 강물처럼
휘의휘휘힉
삐이쀠쀠쀡삐삐이
째약째째째약째약
다음날 이른 새벽, 예불을 마치고 귀를 기울이니 자연이 만들어내는 작은 산사 음악회가 열렸다. 내린 비가 걷히자 천연기념물인 붉은배새매를 비롯해 꾀꼬리, 지빠귀, 휘파람새 등 무등산 국립공원에 둥지를 튼 새들이 시차를 두고 노래하는 소리가 선명했다.
“우리가 돌아간 뒤에도 스님들은 저 소리를 매일 듣겠죠. 여기는 계속 흘러갈 텐데 돌아가는 우리는 저 소리를 까먹게 될지도 모르겠어요.”
간밤에도 방사 문을 활짝 열어놓고 빗소리와 새소리를 듣고 잠이 들었다는 서현 씨는 짧았던 템플스테이가 못내 아쉬운 눈치였다. 예원 씨는 “웅장한 산세, 새가 지저귀는 소리, 바위 곳곳에 피어오른 이끼…. 어제부터 본 증심사와 자연경관들이 지금도 꿈 같이 느껴진다”며 당장이라도 붓을 들고 이 모든 걸 화폭에 담을 기세였다. 효빈 씨도 “마음에 흔들림이 없어진 것 같다”며 “쉬어가는 시간 덕분에 생긴 이 마음의 고요함을 잘 유지해나가면서 일상을 보내야겠다”고 재차 다짐했다.
환복을 한 뒤 방사를 정리하고 내려가는 길, 계곡물이 첫날 올라올 때 봤던 것보다 훨씬 더 불어나 있었다.
“얕은 개울물은 소리 내어 흐르고
깊은 강물은 소리 없이 흐른다.
모자라는 것은 소리를 내지만
가득 찬 것은 아주 조용하다.
어리석은 자는 물이 반쯤 찬 항아리 같고
지혜로운 자는 물이
가득 찬 연못과 같다.”
_ 『숫타니파타』
나를 찾아 떠나온 여정의 말미, 일주문을 나서는 참가자 셋의 모습이 깊은 수심을 가진 강물처럼 흔들림 없이 고요해 보였다.
무등산 힐링 쉼터
증심사 템플스테이
광주 무등산 산자락에 위치한 마음을 증득하다란 뜻의 증심사(證心寺). 통일신라 헌인왕 4년(860) 철감국사가 창건했다.
최초로 퇴근 후 절에 와서 수양하고 다음 날 절에서 출근하는 파격적인 출퇴근 템플스테이를 선보이고 이웃종교와 함께 종교간 화합을 노래하는 ‘무등산 풍경소리’라는 산사음악회를 여는 등 산사의 문턱을 낮추는 데 앞장서며 광주 지역 대표 전통사찰로 자리매김했다. 요가가 있는 템플스테이와 안료로 직접 장엄하는 단청키링 만들기 프로그램이 인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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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동구 증심사길 177
문의. 062)226-0107
사진. 유동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