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는 매일매일 사용하는 거예요. 불교는 숨 쉬고 먹고 자는, 인생을 그렇게 사는 겁니다.”
세 번째 방한한 영화 스님과의 한 달 전 인터뷰는 이 한 마디면 충분했다. 2시간 가까이 편안한 대화처럼 진행한 인터뷰의 모든 질문과 대답이 가리키는 불교의 방향이자 ‘불교를 하는 사람’의 자세였다. 이 한 마디에 무릎을 쳤다면, 이 인터뷰는 더 읽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불교는 숨 쉬고 먹고 자는 인생 그 자체”라는 한 마디가 나오는 여러 질문과 영화 스님의 대답이 궁금하다면 스크롤을 내리면 된다. 4월 12일 진행한 인터뷰는 한국인 제자 현안 스님이 동시통역했다.
글. 최호승
사진·영상촬영. 정승채
| 베트남계 미국인 스님이 배운 중국의 선
조금 복잡하다. 미국인이다. 더 자세히 말하자면 베트남 피를 가진 미국인이다. 거기에 스님이다. 베트남계 미국인 스님이다. 미국 위산사에서 중국의 선을 지도하는 베트남 출신의 영화 스님은 대학 진학을 위해 미국으로 건너가 이공계 학사와 MBA 경영학 석사 학위를 취득한 독특한 이력이 있다.
미국 내 기업에서 경영진으로 근무하는 등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직업을 갖고 인생을 살고 있었다. 그러던 중 중국 임제종, 조동종, 위앙종, 법안종, 운문종 등 선가오종(禪家五宗) 법맥을 이은 허운(1840~1959) 스님에게 1956년 법맥을 받은 선화 상인(上人, 중국에서 큰스님을 지칭하는 말)을 만났다. 1995년 출가한 영화 스님은 1999년 비구계를 받았다.
Q. 시간 내줘서 감사합니다. 한국에서 어떤 일정들을 소화하나요?
“한국에 와서 PCR 테스트를 여러 번 했어요. 우리 절(위산사)에서는 코로나 오미크론 걱정할 일이 없었는데, PCR 테스트가 걱정이었죠. 제자 중 의사가 있는데 통과하기가 어렵다고 했거든요. 잔여 물질로도 양성 반응이 나올 수 있다고 들었어요. 다행히 음성으로 나와 한국 제자들과 만나 이야기하고 수행을 지도할 수 있어서 즐거웠어요. 지난 2년 동안 한국에 절도 2개나 생겨서 이번 방한이 무척 기쁩니다.”
Q. 언제까지 한국에 머무실 계획인가요?
“체류 기간을 예정보다 일주일 더 늘렸어요. 부처님오신날엔 미국에서 선칠과 불칠 지도를 할 생각이었는데, 여기(한국) 제자들이 염불수행을 너무 하고 싶어 해서 일주일 더 있으면서 지도하려고 해요. 미국에서 불칠을 하려던 스님들 몇 분도 한국으로 왔어요. 이후엔 미국으로 가서 여름 정진 기간에 선칠과 불칠을 할 생각입니다. 샌프란시스코에 불사 중인 사찰도 가봐야 하고요.”
영화 스님은 4월 13일 서울 정릉 보덕선원에서 ‘명상과 선 수행’ 법문을 시작으로, 서울 봉은사 청년회, 서울 종로 법련사, 부산 관음사와 홍법사, 서울 도봉산 광륜사, 서울 남산 대원정사를 찾아 명상과 선 수행 혹은 정토법문을 이어갔다. 영화 스님의 국내 도량 청주 보산사와 분당 보라선원에서는 주말에 법회를 가졌다.
Q. 위앙종 법맥을 이은 스승에게 배운 가르침이 영화 스님을 통해 미국과 한국으로 확장하고 있습니다. 사회적으로도 성공하거나 아니면 한 아이의 아빠나 가장으로서 일상을 살아갈 수도 있었을 텐데, 출가를 택한 이유가 뭔가요?
“저 역시 성공에 뜻을 두고 있었어요. 베트남에서 엘리트 학생만 다니는 프랑스 학교에서 공부하며 심한 경쟁을 겪었습니다. 베트남 사람들은 이 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에게 큰 기대를 겁니다. 저도 유학 가서 배운 지식을 고국으로 돌아와 베풀어야겠다는 뜻이 있었죠. 경영 공부하러 미국으로 갔고, 최고는 아니어도 높은 위치에 올랐어요. 당시 보스(상사)들을 봤을 때 좋아 보이지 않았습니다. 나도 저런 사람이 되겠구나 싶었고, 행복해질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태어나서 처음으로 자선 사업을 시작했는데, 봉사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면서 행복함을 느꼈어요. 놀랍고 좋은 경험이었죠. 그러다 선화 스님의 법을 만났고, 덕분에 또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것을 그때 처음 경험했어요. 바로 안락이었죠. 사실 엄청나게 이상적이고 환상적인 목표가 있었던 게 아니라, 어떻게 보면 이기적인 동기로 출가한 셈이에요.”
Q. 더 큰, 더 많은 안락을 추구하기 위해서였나요?
“Yes!! 더 많은 안락을 얻고 싶었어요. 흥미로운 것을 배우고 다 배우면 그만둘 생각이었죠. 비구에 큰 뜻도 없었고요. 머리카락 깎고 10년 정진하며 배우다가 환속할 생각이었습니다(웃음). 감각적 쾌락도 즐겨보고, 평범한 사람들처럼 생활에서 얻는 안락도 경험해보고 싶었어요.”
Q. 스님이 부처님 가르침에서 찾고자 했던 것이나 얻고 싶었던 게 무엇인가요?
“선화 스님이 너무 일찍 입적하셨어요. 선을 매일 했지만 늘 문제가 생겼어요. 장애물이 드러나죠. 도움을 청했지만, 제자들에게 답을 구하진 못했습니다. 답을 못 구하니 더 열정과 관심이 생기더군요. 전 도전을 좋아하고 실패를 참을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때려치우고 싶었고, 실제 몇 번이나 그만두기 직전이었죠. 그러나 안락을 느끼면 깜빡 잊어버렸어요(웃음). ‘내일 죽을지도 모르지만 오늘 공부를 마치자’ 이렇게 늘 벼랑 끝에 서 있는 것처럼 하루하루 정진했어요.”
Q. (벼랑 끝에 서 있는 것처럼 공부했다) 그런 부분이 얻는 것보다 더 인상적이네요.
“미국인들은 이런 저를 보고 미쳤다고 했어요(웃음). 그게 선의 성품이에요. 포기하지 않고 계속 정진하면 어느 날 갑자기 (몰록) 찾아오는 게 있습니다.”
| 어느 날 갑자기 오는 것, 자비롭게 사는 것
영화 스님에게 행복은 처음엔 출가의 삶에서 느끼지 않았다. 스님 말마따나 자선 사업이 먼저였다. 그러다 선화 스님의 선을 만났고, 인생이 그쪽으로 빨려 들어갔다. 대체로 우리가 아는 명상이 주는 편안하고 평화로운 부분과 달랐다. 엄청나게 많은 도전과 어려움을 겪고 나서 보상처럼 주어지는 안락을 경험하자 생각이 바뀌었단다. 오로지 선만 해보겠다는 것. 마침(?) 이혼한 상태였고, 특별히 걸릴 것도 없었다. 모두 내려놓고 스승을 찾았다. 그리고 출가했다. 감각적인 쾌락보다 안락이라는 더 큰 즐거움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영화 스님은 고백했다.
이후 2005년 미국 캘리포니아에 비영리단체 보디라이트인터내셔널(Bodhi Light International)을 설립하며 다양한 국적의 제자들에게 선 수행을 지도해왔다. 2018년 처음 한국에 방문, 정통 불교 수행법인 ‘불칠’과 ‘선칠’을 소개했다. 2020년 청주 보산사, 2021년 분당 보라선원을 개원하고 한국 대중들에게 선 수행법과 대승불교를 지도하고 있다.
Q.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는 게 구체적으로 무엇인지요?
“전 그냥 운이 좋았다고 말하고 싶어요. 사실 많이 혼란스럽습니다. 선의 세계에서는 성취한 스승들 이야기를 합니다만, 전 제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죠. 결가부좌로 부단히 정진하다보니 등 전체가 빨갛게 변했는데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어요. 그래서 이것저것 다 해봤습니다. 이런 어려움을 돌파했고, 제게 배우려는 제자들도 포기만 하지 않는다면 성공할 수 있어요. 저 같은 실수를 안 해도 되거든요. 첫 3년이 정말 중요해요. 그 3년은 그만두고 싶은 유혹을 참는 시간입니다.”
Q. 베트남 하면 얼마 전 입적한 틱낫한 스님이 떠오릅니다. 중국의 선화 스님과 사제의 인연을 맺은 이유가 있나요?
“우연이죠(웃음). 사실 처음엔 베트남 명상가를 찾았고 틱낫한 스님을 찾아갔지만, 자리에 계시지 않았어요. 틱낫한 스님이 안 계셔서 운전 해주시던 분이 다른 곳으로 데려갔는데, 선화 스님이 계시더군요.”
Q. 불교는 자리이타입니다. 안락은 개인적인 체험인데, 나 이외 다른 생명이나 중생에게도 그것이 이익이 될 수 있는 건지요? 자기만족인 안락에 다음 단계가 있다면, 사회적 회향이 될 수 있는 건가요?
“안락은 개인적인 경험이 맞습니다. 선을 하면서 스스로 주는 보상 같은 거예요. 그와 동시에 일어나는 일이 있죠. 두뇌에 많은 연결이 생기고 더 빠른 회전이 일어납니다. 더 명료하게 상황을 보고 판단하고 모든 감각기관이 열리게 되죠. 신체적으로 어떤 현상이 분명히 일어나고, 여러 문제를 자연스럽게 풀어나갈 수 있게 되는데, 지혜라는 표현을 합니다. 지혜가 발현되면 삶에 영적인 측면이 더해지는 겁니다. 마음이 더 넓어지는 거죠.”
Q. 조금 더 구체적으로
“최근에 한 젊은 친구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털어놨어요. 이렇게 답했죠. ‘젊고 능력도 있고 똑똑해지는 것은 걱정할 게 없다. 그러나 인생은 또 다른 측면이 있다. 인생은 머리뿐 아니라 마음도 있어야 하고, 자비로워야 한다. 이 사실을 잊지 말라. 자비는 마음을 더 크게 열어주고 더 용서할 수 있게 하며, 자신을 슬프고 괴롭게 한 이들에게도 자비로워질 수 있게 한다.’ (선 수행은) 자비를 키우는 겁니다. 자신을 막대하는 사람도 괴롭습니다. 불교는 더 강한 자비로 그것까지 포용하는 거예요.”
Q. 자비심 키우는 사람이 하나 둘 많아진다고 하면, 다른 사람은 공부 안 해도 되나요(웃음)?
“당연하죠(웃음). 하지만 당신은 이런 이야기를 전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어요. 우리 세대의 부모, 학교 선생님, 교수님들은 이런 말을 안 해줬어요. 좋은 사람이 되는 법을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어요. 인생에서 행복은 좋은 사람이 되는 거예요.”
| 선 불교의 비밀, 결가부좌 그리고 불교란?
영화 스님이 지도하는 선 수행은 결가부좌를 강조한다. 불좌. 여래좌, 항마좌, 길상좌라고도 불린다. 먼저 왼발을 오른쪽 허벅지에 올리고 오른발을 그 위에 덮는 ‘길상좌(吉祥坐)’ 결가부좌를 적극적으로 권하는 게 특징이다. 반가부좌도 버거운 이들에겐 고통스러운 자세다. 또 한 가지. 보통 한국 사찰의 법회 법문 시간과 다른 풍경이 보인다. 법문한 뒤 적극적으로 묻고 답하는 즉문즉설 인터뷰를 진행한다. 사실 법문보다 즉문즉설이 더 길 때도 있다.
한국의 안거와 비슷한 집중수행 불칠(佛七, 염불)과 선칠(禪七, 좌선)도 있다. 불칠은 새벽부터 능엄주로 시작해 아미타경과 아미타불 염불을 7일간 이어가고, 선칠은 새벽 3시부터 자정까지 1시간 좌선과 20분 포행을 7일간 반복한다.
Q. 한국의 일요법회 법문 시간과 스님의 법문 풍경은 즉문즉설 인터뷰가 있어 다릅니다.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 여러 스님이 준비된 답을 하는 것을 선호하죠. 미디어 매체에 자주 등장하는 훌륭한 스님들일수록 영상에 영원히 남기 때문에 더 정제되고 쉬운 언어가 필요하니까요. 전 작은스님이고 사람들이 절 진지하게 받아들인 적이 없어 자유롭습니다. 하고 싶은 말은 하는 편이죠. 제게 오는 질문도 하나의 도전인데, 전 도전을 좋아해요(웃음). 법과 안락을 향한 목마름으로 공부하면서 문제가 생기면 질문하고 해결해가며 선을 했어요. 매일 답을 얻고자 했고요. 어떤 질문은 몇 년이 지나야 풀 수 있었죠. 너무 많은 질문이 오지만 뭐든 답하려고 합니다.”
Q. 결가부좌는 너무 고통스러워 화두보다 고통에 매달리게 됩니다. 천천히 단계를 올려도 되지 않을까요?
“당연합니다. 선은 결가부좌만 있는 게 아니에요. 천천히 해도 이로울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물론입니다. 선을 지도할 땐 각자 사람의 속도에 맞춰요. 편하게 앉다가 반가부좌 몇 달, 그리고 결가부좌가 된다면 꾸준히 유지하는 거죠.”
Q. 그런데도 굳이 결가부좌를 이야기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여러 이유가 있지만 몇 가지만 말씀드릴게요. 앞서 깨달은 성인들의 가르침을 따르는 겁니다. 귀한 시간을 낭비하면 안 되니 효과를 극대화하는 것이고요. 사실 결가부좌는 도전을 주는 어떤 핑계에요. 결과가 중요한 게 아니라, 수행하려는 이가 어려움에도 수행하려는 의지가 있는지 가늠하는 거예요. 지도하는 사람이나 수행하려는 이 서로가 그 의지를 보는 거죠. 인간은 어려움이나 도전을 받으면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끄집어내서 이겨내려고 합니다. 있었는지도 몰랐던 능력이 나와서 풀려고 하는 거죠. 우리가 원래 가진 것을 발견하는 계기가 된다는 이야기에요. 그게 불교의 비밀입니다.”
Q. 불교의 비밀요?
“우리는 스스로 할 수 있는 것 이상을 요구해요. 그런데 실패하겠죠? 실패해도 그만두지 마세요. 사실 말도 안 되는 어려운 공부를 하는 겁니다. 포기하지 않고 정진하면 돌파하는 행운이 오기도 합니다. 불교에서는 운이 아니라 복이라고 부릅니다. 돌파하지 못했더라도, 스스로 자신을 막고 있던 어떤 벽들이 드러나고, 그걸 뛰어넘으려는 능력도 발견할 수 있어요. 그게 선 수행의 비밀이에요. 선은 여러분을 그런 모드로 이끌고 가는 겁니다. 포기하지 마세요.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Q. 5월에는 부처님오신날이 있습니다. 한국 국민과 불자, 월간 「불광」과 불광미디어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부처님 가르침은 말로 되는 게 아니에요. 서양 사람은 불교를 철학이라고 보는데, 그게 아니에요. 불교는 매일매일 사용하는 겁니다. 인생을 그렇게 사는 겁니다. 불교는 숨 쉬고 먹고 자는 거예요. 저는 불교를 그렇게 바라봅니다. 그렇게 살 때 우리는 더 좋은 사람이 됩니다.”
영화 스님은 미국으로 돌아갔다. 이번 여름에도 선칠과 불칠로 여전히 선 수행하는 이들과 정진할 계획이다. 위앙종의 법맥을 따르는 위산사 영화 스님의 지도를 받는 한국인과 출가자가 늘고 있다. 제자 현안 스님은 만나는 인연마다, 장소를 따지지 않고 앉으면서 와서 직접 명상(선) 해보라고 늘 독려한다. 페이스북 등 SNS에는 선 수행으로 달라진 이들의 표정이 업데이트된다. 과연 선은 21세기에 일상으로 자리할 수 있을까? 5월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만난 영화 스님과 인터뷰 그리고 스님의 지도를 따르는 많은 제자의 일상에는 적어도 그래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