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있는 순간
열리는 세상이 있다
신여성이란 조선 후기부터 일제 강점기까지 신식 교육을 받은 여성을 통칭한다. 의미를 부여하자면 역사의 흐름 속에서 당연하게 여기던 구시대적 관습과 편견들을 타파하고, 개인의 사상과 가치관을 다양한 움직임으로 펼쳐낸 ‘진보적인 여성’으로 볼 수 있다. 대체로 개항기 이후 서구식 교육을 받은 여성들이 신여성으로 인식됐다.
프레임을 거부하다
가부장적이고 보수적인 당시 사회 분위기 속에서 여성들은 단지 남성에게 종속된 개체로서의 여성 프레임에 갇혀 있었다. 교육이나 사회활동 분야에서 철저히 소외될 수밖에 없었다. 사회적으로도 여성을 하나의 주체적 인간으로 보지 않았다. 남성 중심적인 사회 구조에서 여성은 단순히 남성의 사회활동을 지원하거나 후손을 낳고 키우는 모성으로서의 역할만 주문받았다. 다시 말해 가정의 유지·운영을 담당하는 일종의 기능적 부속품으로 여겼던 시기였다.
“여자는 배울 필요가 없다”라는 인식이 당연시되던 때를 지나, 개항기를 거치면서 서구식 교육체제에 포함되는 여성들이 일부 생겨났고, 이는 여성 개개인의 인식 변화로 이어졌다. 그런데도 여성들은 그 결과물을 대사회 활동에 적용하기보다는 사회가 칭송하는 여성상의 덕목에 ‘집안을 잘 다스릴 수 있는 현명함’을 추가하는 데 그쳤다. 공고한 사회관습을 개인이 뛰어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교육으로 배출된 ‘똑똑하고 잘난 여성’이라 할지라도, 대다수 여성과 다를 바 없이 결혼적령기가 되면 아내 또는 어머니로서 지고지순한 삶을 강요당할 수밖에 없었다.
점차 교육을 통해 서구식 사고와 문물을 접한 여성들이 많아지면서 이들은 사회가 요구하는 여성상이 아닌, 여성이 한 사람의 주체적 인격으로 살아가는 또 다른 삶의 방식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지한다. 할머니와 어머니로부터 대물림되던 공고한 여성 프레임 너머의 삶을 알게 된 여성들은 자연히 기존 사회의 부조리에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각기 처한 상황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대다수 ‘깨인 사고’를 갖게 된 여성들에게 구시대적 사회관습은 넘지 못할 벽으로 작용한 셈이다.
관습의 벽에 균열을 내다
우리가 ‘신여성’의 존재에 주목하는 이유는 바로 이 지점이다. 공고한 관습의 벽에 직면한 많은 여성이 벽을 넘기보다 안전한 삶으로의 회귀를 선택했지만, 멈추지 않고 벽을 향해 한 발짝 더 내디딘 이들이 바로 신여성이기 때문이다.
당시 신여성은 양장과 짧은 치마, 하이힐, 단발로 상징됐다. 여성들의 외모적 변화는 사회에 작지 않은 파문을 던졌다. 이들은 신체 노출을 최소화하는 긴 치마 대신 짧은 치마를, 긴 생머리나 쪽 찐 머리 대신 단발을, 고무신과 굽 낮은 단화 대신 하이힐을 선택했다. 눈으로 확인되는 여성들의 변화는 하나의 유행으로 자리 잡았다.
외적 변화가 사회적 관점에서 ‘신여성’을 상징하는 시발점이었다면, 신여성의 특별함은 이런 변화를 일궈낸 사고방식에 있다. 외모적 변화 이면에는 기존 사회가 만든 프레임을 탈피하겠다는 의지와 결단이 있기 때문이다. 외모는 개개인의 사고방식과 의식의 변화를 표출시키는 하나의 수단일 뿐이었다.
신여성은 고정관념을 타파하고 변혁을 이끄는 한 축이었다. 이들이 온몸과 생을 던져 기존 관습과 편견에 맞섰기에 사회는 조금씩 변화하고 진전해 올 수 있었다. 그런데도 그들의 삶은 상당 부분 평탄하지 못했다. 신여성의 대표격으로 거론되는 나혜석, 우봉운 등의 삶이 대표적이다. 당대를 살아가는 일부 여성들의 공감을 받고 그 여성들을 일깨우는 데 일익을 담당했을지언정, 사회적으로는 환영받지도 보호받지도, 그리 영광스럽지도 못했다.
관습의 벽을 발견하고 그 벽에 온몸을 부딪쳐 군데군데 균열을 일으키는 과정은 개인적으로, 또 사회적으로 험난한 여정이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현재를 살아가는 여성들은 이전 시대를 살았던 신여성에 큰 신세를 지고 있다. 동시에 여전히 여성을 가로막는 지금 이 시대의 벽을 발견하고, 부딪혀 균열을 내야 하는 책무도 지닌다.
신여성은 언제, 어느 시대에나 존재해 왔다. 개항기 이후부터 일제 강점기 무렵 사회적으로 남달랐던 여성들을 통칭하는 단어가 ‘신여성’일 뿐, 어느 시대건 기존 관습을 철폐하고 변화를 이끈 여성들은 존재했다.
기원전 2세기 부처님 재세 시로 거슬러 올라가면 최초의 여성 출가자 마하파자파티 고타미(어머니인 마야 왕비 대신 싯타르타를 키운 이모)가 있다. 당시 인도는 여성을 동등한 인격체로 인정하지 않았다. 석가모니 부처님을 따르는 불교 교단은 카스트 제도를 부정하고 계급과 상관없이 동등하게 운영되는 파격적인 수행공동체였지만, 남성만을 수행자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마하파자파티는 500여 명의 여성을 이끌고 여성에게 굳게 닫혀 있는 문을 수없이 두드렸고, 결국 수행자의 지위를 쟁취했다. 기존 관습의 벽에 도전해 변화를 일궈냈다는 점에서, 그 시대를 대표하는 신여성인 셈이다.
신여성들의 의지처, 불교
과거 신여성들의 정신적 의지처가 불교였다고 밝힌 조승미 동국대 교수의 주장은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그의 박사학위 논문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본 불교수행론 연구-한국 여성불자의 경험을 중심으로」에 따르면 이렇다. 가부장적 관습에 도전하며 여성의 권리를 주장했던 신여성들은 그들의 강한 자아의식의 표현으로 인해 현실에서 마주하는 정신적 고통의 해결방안으로 불교수행을 택했다. 대표적으로 김일엽은 불교에 대해 “시대와 사회의 사고영역에 도전하면서 자신의 정체성과 자유를 향한 추구를 계속할 수 있는 길을 제공했다”라고 평가했다. 신여성의 활동이 두드러졌던 1930년대 무렵, 남성들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참선수행에 매진하는 여성 재가불자들의 기록, 여성 재가불자들의 모임이 당대 여성주의 운동을 주도했던 하나의 흐름이었던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불교가 추구하는 이상은 모든 중생이 평등하게 궁극적인 자유를 깨달아 얻는 것이다. 모든 생명이 동등하게 불성을 지니고 있으며, 불성에 남성과 여성의 차이는 존재하지 않는다. 차별은 시대적・사회적 산물일 뿐이다. 그 때문에 불교는 모든 인간과 생명에 평등한 종교이며 사회적 계급으로 인한 모든 차별을 부정한다. 기독교 신앙에 기반한 서구식 교육으로 관습의 벽을 인지했던 신여성들이, 종국에는 불교에 귀의하거나 개종하는 사례가 적지 않았던 이유는 이 같은 불교의 교리적 특성 때문으로 보인다.
이는 현대를 살아가는 여성 불자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우리가 사는 현대사회는 그 어떤 때보다 여성 인권이 높은 시기로 인식된다. 혹자들은 여성 인권이 높다 못해 여성 권익 보호를 위해 남성이 되레 피해받고 있다는 역차별 논란까지 제기한다.
과연 그렇게 볼 수 있을까. 과거 사회적으로 뿌리 깊은 가부장적 관습이 여성들을 가로막는 벽으로 상징됐다면, 그 벽은 완전히 무너졌을까. 어쩌면 ‘유리천장(여성의 고위직 진출을 가로막는 보이지 않는 장벽 비유)’, ‘여성혐오’라는 새로운 형태의 벽으로 탈바꿈한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요즘 시대의 ‘신여성’은 어떤 관습의 벽에 어떤 형태로 균열을 내고 있을까.
오늘날 ‘신여성’은 누구인가
과거의 신여성과 밀접한 연관성을 가지는 단어 중에 양성평등을 위한 여성주의 운동을 뜻하는 ‘페미니즘(feminism)’이 요즘 이슈다. 이미 정치권은 물론, 일상적으로 거론될 정도로 보편화한 단어인 동시에, 연관어로 여성혐오의 틀을 덧씌운 ‘꼴페미(극단적인 페미니즘의 비하 용어)’도 있다. 오랜 세월 우리 사회를 지배해 온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관습을 깨뜨리는 과정에서 드러난 부작용이 ‘여성혐오’이며, 이 같은 인식이 ‘페미니즘’에 대한 반발로 이어져 ‘꼴페미’가 탄생했다고 보는 시각이 적지 않다. 여성의 사회진출이 확대되면서 사회적 의미의 남성성과 여성성을 규정짓는 구분이 모호해지는 현상이 우리 사회 여러 갈등 양상과 맞물리면서, 변화의 주체인 여성을 향한 분노로 표출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분명한 사실은 사회적 관습이 송두리째 뒤바뀌는 격변의 시기를 지나, 우리 사회는 완전히 새로운 형태로 나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여성을 가부장적 관습에 가둬왔던 프레임은 사실상 이미 무너졌다. 이 변화가 현대사회를 여성의 새 시대로 열어가는 동력이 될지, 기존 관습이 무너진 자리에 새롭게 자라난 어떤 벽들이 여성을 옭아맬지는 미지수다. 요즘 여성들이 우스갯소리로 얘기하는 ‘유리천장’이 이 시대를 대변하는 관습의 벽일지도 모를 일이다. 또는 일과 가정에서 모든 임무를 완벽하게 처리하는 ‘슈퍼우먼’이 여성들에게 새롭게 주어진 프레임일 가능성도 있다.
현대의 여성들은 과거 구시대적 관습의 벽에 균열을 낸 신여성들의 희생 위에서 살고 있다. 그 원력을 이어 우리 사회에 존재할지도 모를 벽의 실체를 파악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진정한 의미에서의 양성평등 혹은 젠더 감수성의 제고를 위한 의견 개진과 실천도 대안이 될 수 있겠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익숙함과 현상에 매몰되지 않고 매 순간 깨어있는 의식일 것이다.
송지희
「현대불교신문」 편집국 취재차장. 2007년 불교주간지 「법보신문」에 입사, 역사 속 숨겨진 여성 불자들의 인생 이야기 ‘보살의 길’을 연재했다. 2020년부터 「현대불교신문」에서 기자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