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혜석은 한국 최초의 서양화가로 잘 알려졌다. 그런데 그의 삶에서 의외의 행적을 발견한다. 나혜석은 3·1 운동에 참가해 5개월의 투옥 생활을 했다. 외교관이던 남편을 따라 중국 안동현으로 옮겨서는 여자 야학을 설립해 조선 여성을 위한 계몽 운동을 전개하기도 했다. 또한 영화 <밀정>의 배경이 된 의열단의 ‘황옥 사건’에 깊숙이 관련돼 있다. 의열단원의 숙식과 국경 통과에 편의를 봐줬으며, 총탄을 은닉해 의열단원의 활동에 도움을 줬다.
나혜석 거리와 수원시립미술관
나혜석의 고향 수원에서 그녀를 만날 수 있다. 먼저 수원의 번화가인 팔달로에 가면 ‘나혜석 거리’가 조성돼 있다. 조금 늦은 2000년이 돼서야 조성됐는데, 나혜석의 조각상과 연보 및 몇몇 작품을 만날 수 있다.
보다 직접적으로 그의 작품을 만나고자 한다면 ‘수원시립미술관’을 방문하면 된다. 미술관에는 ‘나혜석 홀’이 있어 작품들을 상설 전시하며, 나혜석 유족이 기증한 사진첩을 소장하고 있다. 나혜석의 마음에 수원은 고향으로 남아있었을 터, 나혜석은 수원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 김동환에게 보낸 엽서에 “고향 수원은 가는 곳마다 그림을 그릴 만한 곳”이라 자랑했다고 한다. 세계 일주 후 귀국해 처음으로 작품을 전시한 곳이 ‘수원포교당(현재 수원사)’이다.
수원포교당
1912년 설립된 수원포교당은 불교 근대화의 물결이 일었던 곳이다. 나혜석 본인의 첫 전시회를 어릴 적 몸담았던 교회가 아닌 사찰에서 개최했다는 사실은 그의 심성이 이미 변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이다.
나혜석이 다시 수원을 찾을 때는 1930년 김우영과 이혼한 후였다. 머물렀던 곳은 못골시장이다. 수원에서 이혼과 이별의 아픈 마음을 달랬을 듯하다. 전국의 명승과 사찰을 유람하기도 하며 흘러가는 시간과 함께한 곳이 ‘나혜석의 수원’이다.
사진. 유동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