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원고를 만나 편집을 시작하기 전에 항상 하는 일이 있습니다. 바로 비슷한 주제와 소재를 가진 책은 무엇이 있는지, 저자의 다른 책으로는 무엇이 있는지 찾아서 읽어보는 것이죠. 그러면서 그 책을 쓴 저자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도 알아보고 미처 몰랐던 부분은 알아가기도 하면서 우리 책은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곤 합니다. 그래서 관련된 도서가 거의 없거나 처음 소개되는 소재의 원고를 만나면 살짝 당황스럽습니다. 참고할 것이 거의 없어서 인접 분야의 책까지 모두 뒤져보거나 정확한지 확실하지 않은 인터넷을 참고하는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출간된 《티베트어 원전 완역 보리도등론 역해》도 처음 원고를 읽을 때 그랬습니다.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번역되어 소개되는 책이다 보니, 애꿎은 티베트불교 책을 뒤젹일 수밖에 없었지요. '《보리도등론》에 대한 책을 편집하고 있다'고 말하면, '《보리도차제론》이 맞는 거 아닌가요?'라고 말하는 분들도 여러 분 보았을 정도이니, 어느 정도 공부한 분이 아니고서는 낯설 수밖에 없는 문헌일 겁니다.
하지만 《보리도등론》이라는 논서는 티베트불교에 아주 큰 영향을 미친 문헌입니다. 티베트 랑다르마 왕의 파불 사태 이후 쇠퇴해 가는 티베트불교를 다시 세우기 위해 초청된 인도 승려 아띠쌰가 티베트의 법왕 장춥외의 간절한 요청에 따라 1042년에 저술한 논서인데요. 모두 68구의 게송으로 구성된 이 짧은 논서에서는 수행자의 근기를 작은 사람(下士), 중간 사람(中士), 큰 사람(上士)으로 나눠 궁극에는 모두가 보살에 이르는 수행법을 담고 있습니다. 이 책은 훗날 티베트불교의 수행체계인 도차제(道次第)의 토대가 되었으며, 종파를 막론하여 반드시 읽어야 하는 대표 수행서로 자리매김했습니다. 그래서 많은 분들이 알고 있는(그리고 헷갈려 하셨던) 도차제 철학을 체계화한 쫑카파 대사의 책 《보리도차제론》의 서두에서는 이렇게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 교계(敎系)의 규범이 된 책은 《보리도등론》이다. 그러므로 그 논서의 저자 아띠쌰가 이 책의 저자인 셈이기도 하다."
《티베트어 원전 완역 보리도등론 역해》는 《보리도등론》의 티베트어 원전을 소개하는 최초의 책이자 유일한 책입니다. 30여 년간 인도와 네팔에 머물면서 수행과 경론 번역에 매진하고 있는 중암 스님이 티베트어로 된 여러 판본을 비교·대조하여 오류를 바로잡고, 각각의 게송에 숨어 있는 의미를 명확히 파악할 수 있도록 여러 주석서를 참고하여 해설과 주석을 달았습니다. 중암 스님의 공부와 수행을 오롯이 느낄 수 있는 이 책을 통해 티베트불교 수행법을 이해하고 자신의 근기에 맞는 수행을 찾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