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유산 연등회] 마음과 세상을 밝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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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유산 연등회] 마음과 세상을 밝히다
  • 최호승
  • 승인 2021.05.27 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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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행복의 연결고리
연등(燃燈)은 ‘등에 불을 밝힌다’는 뜻이다. 빈자일등(貧者一燈)과 맥락이 같다. 가난한 여인의 등불 공양은 왜 거룩할까. 연등회의 정신이 여기 있다.

코로나19로 모두가 힘든 시기에 뜻깊은 소식이 들려왔다. 유네스코 무형유산보호 정부 간 위원회가 프랑스 파리 유네스코 본부에서 제15차 회의를 열고, 연등회를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했다. 2020년 12월이었다. 국가무형문화재 제122호로 지정된 지 8년 만의 일이었다. 부처님오신날의 상징이자 전 세계인의 문화이며 축제로 성장한 연등회가 세계적인 유산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은 것이다. 

1,200여 년 역사를 써 내려오고 있는 연등회의 가치는 어디에 있을까? 역사는 물론 연등회의 정신은 어떻게 구성되고 어떤 전통을 계승하며 발전해왔을까? 긴 세월 동안 연등회를 이끌어온 주인공은 누구이며 그 힘은 어디에서 나올까? 유네스코가 인류의 유산으로 주목한 연등회의 핵심만 간추려 정리해본다. 

 

가난한 여인의 등불 공양

“이 여인은 등불 공양의 공덕으로 성불할 것이다.”

빈자일등(貧者一燈)을 한 문장으로 축약한 이 말 한마디에 연등회의 정신이 다 담겼다. 여기엔 가난한 여인의 간절함이 깃들어 있다. 부처님에게 아무런 공양도 할 수 없었던 여인이 종일 구걸해서 산 기름으로 등의 불을 밝혔고, 수많은 등 중에 그 여인의 등불만 새벽까지 밝게 타고 있었다. 등에 담은 간절한 마음이 무엇보다 크다는 사실을 부처님은 알았다. 그래서다. 가난한 여인이 공양 올린 등에 서린 간절함의 공덕은 성불로 가는 지름길이라 일렀다. 

연등(燃燈)도 풀이하자면 “등에 불을 밝힌다”이다. 의미를 확장하면 새로운 가치가 보인다. 불이 내뿜는 빛은 어둠을 소멸한다. 빛을 지혜, 어둠을 무명(無明)에 빗대면 확장한 의미가 뚜렷해진다. 탐욕과 성냄 그리고 탐욕과 성냄을 반복하는 어리석음, 즉 탐진치 삼독심으로 어두워진 마음[無明]을 지혜의 등불로 밝히는 것이다. 여기서 세상으로 한 번 더 의미의 폭을 넓힌다. 지혜의 등불에 세상이 조금 더 밝고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을 담는다. 이 마음이 연등회(燃燈會)의 정신이다. 

가난한 여인의 마음은 연등회의 시작부터 지금까지 변치 않고 이어져 왔다. 현재 연등행렬만 봐도 알 수 있다. 수만 명이 ‘T자’ 형태의 등대에 행렬등 2개를 달고 연등행렬에 참여한다. 한 개는 자신과 가족, 다른 한 개는 이웃과 사회를 위한 발원으로 등을 밝힌다. 참가자는 직접 행렬등으로 가난한 여인의 마음을 세상과 나누는 셈이다. 

서울 인사동 거리를 지나는 장엄등 행렬에 큰 관심을 보이는 시민들. 연등회는 불교라는 종교에만 갇힌 축제가 아니다. 

신라의 달밤에도 등 밝히다

연등회는 지혜롭게 사는 길을 보여주고 직접 그 길을 걸어 보였던 부처님 탄생을 찬탄하고, 자신도 부처님이 되길 기원하며 등을 밝히는 전통문화다. 연등회라는 전통이자 문화는 어디서 기원했을까? 축약하면 신라와 고려, 조선의 달밤에도 등은 불을 밝혔다. 

연등회는 시대를 반영해 다양한 모습으로 변주되며 이어져 왔다. 『삼국사기』에는 신라 경문왕 6년(866)과 진성여왕 4년(890) 정월 보름에 왕이 황룡사에 행차해 연등을 보았다는[看燈] 기록이 남아있다. ‘등을 보았다’는 뜻의 ‘간등(看燈)’ 기록은 이미 천년 전 연등 문화가 존재했음을 증명한다. 신라가 ‘간등’이었다면 고려 때는 ‘연등회’였다. 고려는 불교가 나라의 근간이 됐던 종교였다. 『훈요십조』, 『고려사』에서 팔관회와 함께 연등회의 기록을 찾아볼 수 있다. 고려에서는 연등도감을 설치하고 연등위장을 제정할 정도로 국가적인 행사였다. 왕이 돌아오는 길 양옆에 이틀 밤에 걸쳐 3만 개의 등을 밝혀 낮과 같이 밝았다고 한다. 

조선은 건국 후 국가 주관 연등회를 중지했다. 하지만 연등회는 민간에서 세시풍속으로 전승됐다. 아이들이 종이를 잘라 등대에 매달아 들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쌀이나 돈을 구해 등 만드는 비용으로 쓰던 ‘호기(呼旗)놀이’가 성행했다. 밤에는 남녀노소 등을 들고나와 행렬하고 그 장관을 구경하는 ‘관등(觀燈)놀이’가 있었다. 

개항 이후 일제강점기를 거친 근대에도 강연회, 음악회 등 당시 문화행사 형식으로 부처님오신날 행사가 열렸다는 「매일신보」 기사가 존재한다. 부처님오신날이 다가오면 등을 만들어 종로 네거리에 등시(燈市)가 섰다고 한다. 한국전쟁 이후에도 연등회는 이어졌다. 1955년 서울 조계사 부근에서 만등행렬이 있었다는 「조선일보」 기사에서 현대적인 연등회의 시작을 알 수 있다. 

1996년부터 동대문 운동장에서 조계사에 이르는 지금의 연등행렬이 정착하기 시작했다. 불교문화마당, 어울림마당(연등법회), 회향한마당(대동한마당) 등 요소가 추가되면서 세계적인 축제로 성장해왔다. 

연등회 참가자들은 세상이 조금 더 밝고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을 등에 담고 긴 행렬을 함께 걷는다. 

신명과 연희, 어울림으로 장엄

그렇다면 현재 연등회 모습은 어떨까? 지금 우리가 부처님오신날 전에 볼 수 있는 연등회는 고려 시대 연행 일정 구분을 따랐다. 다시 말해 사전 준비와 행사 성격의 소회일(小會日), 2일간 열리는 본 행사를 대회일(大會日)로 구성했다. 

소회일에는 아기 부처님을 목욕시키는 물, 즉 관정수를 긷고 아기 부처님이 있는 관불단을 만들며 전통등을 마련한다. 행사 성격의 대형등과 시내를 장엄하는 점등, 등 재료를 모았던 어린이의 호기놀이, 전통등 전시회를 진행한다. 

대회일은 이틀 일정이다. 첫날은 축제 성격이 강하다. 신명나는 율동과 곡이 어우러지는 어울림마당, 각종 전통등과 창의적인 등들의 거리행진인 연등행렬, 연등회 참가자와 관람객 남녀노소 모두 어깨동무하고 노는 회향한마당이 펼쳐진다. 다음 날엔 100여 개의 한국 전통문화와 놀이를 직접 체험하는 전통문화마당과 연등행렬에서 못다 식힌 열기를 푸는 연등놀이로 연등회가 끝난다. 

연등회의 백미로는 대회일 첫날이 꼽힌다. 어울림마당에서 연등행렬 참가자 전원이 연등회 의미를 새기고, 1,000명에 육박하는 연희율동단과 흥겨운 춤사위로 연등행렬 전 분위기를 예열한다. 참가단체 연희단 중심으로 준비한 율동을 발표하고, 전체 대중은 간단한 율동을 익혀 함께한다. 

연등회의 꽃, 연등행렬에서는 매년 10만 개 연등이 서울 도심 한복판의 밤하늘을 밝게 수놓는다. 연등행렬은 고려 시대에 왕이 행차하던 연등회 행렬을 계승했다. 아기 부처님이 탄 가마, 연 손수레[輦]에 태운 장엄등이 선두로 나서고, 1등단부터 5등단 그리고 외국인 단체 등이 차례로 연등행렬에 등장한다. 이렇게 60여 개 단체 참가자들은 밝힌 등불로 마음과 세상이 밝고 행복해지길 기원하며 행렬한다. 행렬을 마치면 상서로움을 상징하는 꽃비 속에서 모두 어우러지는 회향한마당이 펼쳐진다. 

매년 참가자 수십만이 직접 만든 등을 들고 거리에서 그 빛을 나눈다. 보리수등과 운판등 행렬이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다. 

연등회의 힘

연등회는 박제된 과거 유산이 아니다. 시대의 모습을 담고 함께 호흡해 온 살아있는 문화다. 2012년 4월 국가무형문화재 제122호로 지정된 이유다. 중요한 사실은 연등회가 개인의 문화재가 아니라는 점이다. 참가하는 사람 모두 함께 전승하는 문화이기에 ‘종목 및 단체 지정 문화재’로 지정됐다. 

그래서 연등회의 주인공은 참가단체와 참가자다. 연등행렬에 나서는 60여 개 단체뿐 아니라 총 200여 개 단체가 연등회를 준비하고 참여한다. 단체 내 작은 공동체를 중심으로 각양각색의 행렬등을 선보이며, 단체 특성에 맞게 복장을 맞추고 율동을 짠다. 자발성이 핵심이다. 동원으로 끼워 맞추는 게 아니라 자발적으로 즐겁게 참여하는 축제, 때가 되면 참여하고 싶은 환희의 장이 연등회다. 

부처님오신날을 축하하는 불교 행사로 시작한 연등회. 지금은 다르다. 종교 경계를 넘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국민적, 세계적 축제로 발돋움했다. 연등회에 참여한 외국인들도 ‘한국의 문화 콘텐츠를 잘 살린 문화축제’로 평가하며 즐기고 있다. 

모두가 주인공이 되는 연등회, ‘마음과 세상을 밝히는’ 연등회의 가치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증명됐다.    

과거 4월 초파일은 명절과 같았다. 아이들은 ‘설빔’처럼 고운 ‘파일빔’을 입었다. ‘파일빔’처럼 고운 한복을 입은 참가자들의 등도 곱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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