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2얼(원더박스 기획팀장)입니다. 지난주에는 <아이가 눈을 뜨기 전에>를 읽었어요. 출간되고 나서 육아 경험 있는 이들의 리뷰가 유효하겠다고 생각해서 편집부 내에서부터 실천하자고 다짐했건만, 한참이 지나서야 읽게 되었네요.
집에 책을 가져다 놓으니 함께 사는 배우자께서도 이 책을 살펴보고, 번역이 참 좋다느니 잘 읽었다느니 반응을 보여서 ‘오호~’ 하고 있던 터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참 읽기가 힘들었습니다. 글이 어렵다거나 내용이 지루하다거나 하는 게 아니고요.(정말 좋은 글입니다. 잘 읽히고요. 재밌기도 하고요.) 저자가 겪는 힘듦이 고스란히 전해져서 답답한 심정을 가눌 수가 없었거든요. 출산 상황에 대한 묘사에서부터 살림과 육아로 일상이 엉망이 되는 이야기들은 저 스스로가 온전히 경험하지 못한 경험이기에, 그 답답한 상황에 대해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도 모르겠더라고요.
1얼(편집부장)이 재밌다며 제일 먼저 읽을 것으로 권한 2장의 첫 번째 글 ‘하루’ 역시 저는 매우 괴롭게 읽어나갔습니다. 호텔 조식을 먹는 레스토랑에서 아이가 온통 난리를 치는 이야기에서 시작하는 이 글을 읽으면서도, 아이의 장난과 그로 인한 민폐(?)와 그에 대한 수습(?)만 떠올랐고 그저 숨이 턱턱 막히기만 하더라고요. 물론 마지막은 감동적으로, 울컥하게 끝나긴 하지만...
개인적으로 이 책의 매력은 품격 있는 수필을 읽는 재미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책의 후반부로 갈수록 더 느꼈는데요, 학창 시절 교과서에서 만난 명작 수필 같은 느낌이랄까요.
저자는 이런 거대한 굴레 속에서 자신의 숨통을 틔워주고 다시 일상을 살아갈 수 있게 한 건 글쓰기였다고 고백합니다.
이런 글을 쓰면서 본인도 어떤 굴레에서 벗어나게 되고, 또한 그런 글들이 이렇게 다른 이의 마음에 잔잔한 그림을 그려낼 수 있다는 게 새삼 신비롭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이 책을 다 읽고 난 지금은 아래와 같은 부분을 나누고 싶었어요. (물론 “가장 좋은 때는 역시나 아이가 깊은 잠에 빠진 대낮이었다.”(164쪽)와 같은 공감백배 문장도 있었긴 하지만!)
이 책의 한국어판 제목이 <아이가 눈을 뜨기 전에>가 된 것도 이 대목 때문이겠죠?
오늘도 살림과 육아로 고된 시시포스의 노동을 이어가고 있는 분들께 책읽기와 글쓰기가 하나의 숨통이 되길 바라며...
"아이가 잠들면, 나는 얼마 되지도 않는 시간을 두 손으로 받쳐 들고 책상으로 돌아갔다. 이 고요한 혼자만의 시간은 번잡한 생각의 갈피를 정리하는 시간이었고, 내가 주체로 개선(凱旋)하는 시간이었으며, 나 자신에게 충실한, 거울을 손에 쥐고 나 자신을 응시하는 시간이었다. 나는 이 시간을 소중히 여겼다. 헤어나기 힘든 천사 같은 아이의 얼굴을 뒤로 하고, 달콤한 단잠을 단호하게 마다하고, 책상 앞으로 돌아와 숨을 깊이 들이마시며 자판을 두드렸다. 과한 흥분에 사로잡혀 손가락을 덜덜 떨었던 적도 몇 번인가 있었다.
엄마라는 직책을 수행하다 보면 무언가를 읽고 쓸 수 있는 시간을 귀히 여기는 훈련을 하게 된다. 다음에 또 언제 그 시간이 찾아올지 영원히 알 길이 없으니까. 죽음이 재촉하기라도 하듯, 나는 아이가 눈을 뜨기 전에—아이가 눈을 뜬다는 것은 젖 먹이기, 기저귀 갈아 주기, 씻기기 그리고 방대한 집안일의 윤회를 의미한다—책을 펼치고 글자를 써 내려갔다. 이 몇 글자는 거울처럼 나의 이목구비와 표정을, 피로와 낭패감을 되비쳐 주었다. 한 글자 한 글자가 충실하게, 비판하는 법 없이 나의 감정을, 나의 분열과 눈물을 충실히 떠안아 주었다."
_<아이가 눈을 뜨기 전에>(리신룬 지음/우디 옮김) 170~171쪽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