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3얼입니다. 지난 25일, 드디어 《아이가 눈을 뜨기 전에》가 출간되었습니다!
이 책은 대만 작가 리신룬의 에세이로, 아이를 몸에 품고, 낳아, 기르는 과정에서 자신이 느낀 감각과 감정을 솔직하게 써 내려간 작품입니다. 공식적인 자료에서는 쓰지 못했지만 늘 머릿속 한 구석에 담아둔 이 책의 정의는 "고품격 웰메이드 임신·출산·육아 에쎄이"였어요.(에세이 아니고 에쎄이!) '고품격', '웰메이드'라는 수사를 더할 정도로 읽는 맛이 살아 있는 글이었습니다. 번역은 《우리는 밤마다 수다를 떨었고, 나는 매일 일기를 썼다》로 원더박스와 함께해 주셨던 우디 번역가께서 해 주셨습니다. 우디 번역가님의 꼼꼼함에 대해서는 이전에 1얼이 이야기해 드린적이 있지요.([편집 후기] 조사까지 챙기는 번역가는 처음이야!)
이 책을 맡게 되었을 때 내심 기뻤습니다. 번역가께서 작성해 준 원고 검토서가 정말 흥미진진했거든요. 그리고 20대 남성인 제가 경험할 수 없는 임신과 출산, 육아를 다루고 있는 글이니 편집 과정에서 무언가 많이 배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었지요. 그래서 교정교열 작업에 앞서 공부도 열심히 했습니다. 《아기 말고 내 몸이 궁금해서》, 《페미니스트, 엄마가 되다》와 같은 임신을 주제로 한 책을 찾아 읽고, 마침 방영 중이던 드라마 <산후조리원>을 찾아 보았죠. 원고 검토를 위해 글 전체를 처음으로 다 읽은 날, 제 생각은 확신이 되었습니다. '이 책, 잘 만들고 싶다.' 욕심이 생겼죠.
편집 과정 내내 편집자인 내가 아닌, 작가와 같은 경험을 한, 이 책을 읽을 독자라면 어떻게 생각할지 많이 고민했습니다. 특히 제목을 두고 많이 고민했습니다. 회의를 통해 원제인 《나를 그릇으로 삼아》가 아이를 담는 엄마의 모습을 다소 수동적인 모습으로 그리는 것 같다는 의견을 들을 수 있었고, 깊은 고민 끝에 제목 변경을 결정했습니다. '삼아'는 그 뉘앙스로 인해 변경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얼른 들었지만, '그릇'까지 놓아야 하나 깊이 생각했던 날들이었죠.
넘치는 열정으로 번역가께 인사와 편집 방향에 대해 안내하는 첫 메일에도 질문을 잔뜩 달아 보냈습니다.(우디 번역가께선 너그러이 답변해 주셨죠.) 이후 교정교열 과정을 거칠 때마다 숱한 질문과 답변, 생각과 의견이 오갔습니다. 단어를 고를 때에도 주의를 기울였고, '엄마'라는 존재를 규정짓는 표현을 쓰지 않으려 노력했습니다. 번역가께선 초안에서부터 유모차를 유아차로 옮겨 주셨고, '자궁'과 '포궁'을 두고 함께 고민해 주셨습니다.(책에서는 '자궁'을 사용했습니다. 작가가 임신 과정을 묘사할 때, 아이를 담고 있다는 표현을 사용하는데 '세포 포' 자를 쓰는 건 알맞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까지 고민했던 단어 중에는 '친정'이 있습니다. 사전에선 다음과 같이 풀이하고 있지요. '친정親庭 1. 결혼한 여자의 부모 형제 등이 살고 있는 집.' 보통 결혼한 여성의 경우 자신의 어머니를 친정어머니, 부모님이 살고 계신 집을 친정집이라고 표현하곤 하지요. 교차교정을 본 부장님(1얼)께서 이를 '본가'로 바꾸는 게 어떨지 의견을 주었고, 사람들의 생각이 어떤지 찾아보기 시작했습니다. '내 엄마인데 결혼했다고 호칭이 왜 바뀌냐'는 의견을 본 순간, '친정엄마'라는 표현은 쓰지 말아야겠다 생각했어요. 그래서 '친정엄마/친정어머니'는 그냥 '엄마/어머니'로 수정했습니다. '친정집'이라는 표현도 마찬가지였어요. 따라서 중립적인 '본가'를 사용하면 되겠다 싶었지요. 그런데, 번역가께서 '친정'을 사용하지 않는 데에는 공감했지만, '본가'라는 표현은 쓰기 어렵다는 것이었어요. '본가'가 결혼한 여성들에게는 시가를 나타내는 말로도 쓰이기에 혼동을 줄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지요.
그래서 사전을 찾아봤습니다. '본가本家 1. 따로 세간을 나기 이전의 집. 2. 본래 살던 집. 잠시 따로 나와 사는 사람이, 가족들이 사는 중심이 되는 집을 가리키는 말. 3. 여자의 친정집.'으로 풀이되어 있어 사용해도 크게 문제는 없겠다는 생각에 다시 말씀드렸죠. 하지만 번역가로서는 오독의 여지가 있는 단어를 쓸 수는 없다며 '부모님댁'을 제안하셨어요. '본가'가 정말 그런가? 편집부 식구들의 의견을 물었고, 다들 '본가'와 '부모님댁' 다 사용할 수 있다는 답변을 주었습니다. 게다가 사전에 '3. 여자의 친정집'이라고 쓰여져 있지만, '결혼한 남자의 부모님이 사는 집'이라는 뜻은 없잖아요? 그래서 재차 '본가'를 제안했습니다. 하지만 돌아온 답변은 역시 안 된다는 것이었어요. 번역가께서 주변 지인들(여성 10명)께 확인해 보니 '시가'를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거예요. 동료 번역가 분들도 오역의 여지가 있다는 답변을 해 주셨다고 하더군요.
그 순간, 아차 싶었습니다. 원더박스 편집부 세 얼간이는 모두 남자니까요. 크게 배운 경험이었습니다. 현실은 사전에 있는 게 아니었어요. 그래서 그 부분들은 '부모님댁'으로 고쳤습니다. 하지만, '친정'이라는 단어를 모두 없앤 건 아니랍니다. 어원을 찾아 봤으나 찾을 수 없었고 단어를 구성하는 한자어에 비하나 모욕의 의미가 없기에 무조건 사용하지 않아야 할 단어는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또 이 단어를 친근해서 좋다는 사람들도 많았거든요. 그래서 '친정집/친정엄마' 등의 표현은 사용하지 않아야겠다고, '친정'을 사용할 땐 앞뒤 맥락을 잘 살펴야겠다고 개인적인 결론을 내렸습니다. '본가'라는 표현이 성별에 관계없이 두루 쓰일 수 있는 언어로 정착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는 생각도 함께요.
여러분의 생각은 어떤가요? '친정'과 '본가', '부모님댁'의 뉘앙스가 어떻게 느껴지시나요? 쌓여 있는 저 책들에 대한 이야기도 풀고 싶지만, 너무 긴 글이 될 것 같아 여기서 마무리하겠습니다. 3얼이 잘 만들고 싶어 아등바등 애쓴 책! '고품격 웰메이드 임출육 에쎄이!' 《아이가 눈을 뜨기 전에: 엄마의 기쁨과 슬픔》, 많이 사랑해 주세요!
*하지만 3얼은 TMT입니다: 사람들의 생각을 찾아 보던 중, 왜 결혼한 여자는 남자의 부모를 '시부모'라고 하는데, 남자는 여자의 부모를 '장인어른/장모님'이라고 표현하느냐 하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이전에는 여자가 남자의 집안으로 시집을 '가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 아닐까요? 그렇다면 그 글에 나와 있던 대로 성별 관계없이 상대방의 부모님을 '아버님/어머님'으로 호칭하는 게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진짜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