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 날에]서산 대사의 제문(祭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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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버이 날에]서산 대사의 제문(祭文)
  • 관리자
  • 승인 2002.05.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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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 대사의 제문(祭文)]

다음은 서산 대사께서 쓰신 제문입니다. 이 글을 쓴 때는 아마 임란 중으로 생각됩니다. 서산 대사는 잘 아시다시피 조선 선조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키신 유명한 큰스님입니다. 또한 조선 시대에 거의 끊어지다시피한 불교의 명맥을 다시 잇고 일으키신 분이시지요. 오늘 날 한국 불교는 사실 '서산 불교' 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끊어져 가던 선교(禪敎) 양종의 가르침이 대사에 의해 다시 크게 일어나게 됩니다.

이런 큰스님께서 어릴 적 돌아 가신 부모님이 못내 그리워 이런 제문을 지었다는 사실은 한편으로는 놀랍고 한 편으로는 숙연함을 느끼게 합니다. 흔히 불교는 생사를 초월하고 윤회를 끊는 가르침으로 알려져 있는데, 또 그런 이유로 죽음에 초연한 것으로 알기 쉬운데, 서산 대사 정도의 도력과 법력으로도 돌아 가신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과 안타까움은 어쩔 수 없었다는 사실이 저희같은 범인들은 한 편으로는 머리를 갸웃거리게도 하지만, 그만큼 효(孝)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느끼게 합니다.

서산 대사께서는 일찍이 어린 나이에 어머님을 먼저 잃고 곧 아버님을 또 잃었나 봅니다. 제문 끝 부분에, 돌아가시던 어머님이 서산 대사를 크게 세 번 부르시고, 또 돌아 가시던 아버님이 아직은 어린 아이인 서산 대사를 꼭 껴안고 주무시듯 가셨다는 대목은, 어린 자식을 험한 세상에 남겨 두고 혼자 저승 길을 갈 수 밖에 없는 부모님의 애절한 아픈 마음을 절절히 느끼게 합니다.

오늘은 어버이 날. 4 년 전 이른 봄에 아버님을 불효로 보내 드리고, 이제 병고로 힘겹게 하루 하루를 보내고 계시는 어머님 마저 제대로 모시지 못하는 저의 불효를 참회하며, 서산 대사의 제문을 읽어 봅니다...

나무 아미타불
나무 아미타불
나무 시아본사 아미타불


이 종린 合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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丙子 정월 초삭을 넘은 열사흘. 출가 소자 판선교사사자도(判禪敎事賜紫都) 대선사(大禪師) 모(某,서산대사 자신을 가리킴)는 병으로 묘향산 초암에 누워 향폐를 갖추어, 사람을 보내어 부모님 무덤 앞에 삼가 아룁니다...

엎드려 생각하옵건대 구천(九天)은 창창하고 구원(九原)은 망망한데, 아버님은 어디 계시며 어머님은 어디 계시옵니까. 사람이 누군들 부모 없겠습니까만, 나의 부모님 은혜는 다른 사람들과는 동 떨어지게 다르옵니다. 사람이 누군들 사생(死生)이 없겠습니까만, 나의 부모님 죽음은 실로 마음 아픈 것이옵니다.

지난 날을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남들은 그 인자함을 말하나 그 그윽한 인자로움을 모르며, 남들은 그 엄함을 알지만 그 도덕의 엄함을 모르옵니다.
인자로움은 족히 뒷 자손을 어루만질만 하고 엄하심은 족히 선열들을 이어 받을만 하지만, 어찌다 세 자식 철들어 머리 올리는 날과 소자 겨우 말더듬는 해에 어머님 돌아 가시고, 이어 아버님께서도 저승으로 가셨는지요. 바람은 옛 나무에 슬피 울어에고 달빛은 빈 문간에서 조상할 때, 소자 나아가 아버님 뵈온들 누가 (공자님 경우처럼) 시를 가르치며, 문지방 찾아 어머님 뵈온들, (맹자님 어머님 경우처럼) 누가 짜던 베틀을 끊겠습니까...

아버님 생각하오니 창자가 찢기며, 어머님께 울부짖는 눈물은 피를 이루옵니다. 온 천하의 슬픔과 온 세상의 비참함이 이에서 더할 것이 있겠습니까.

아아, 슬프옵니다.
소자는 이리하여 외로운 그림자를 떠돌면서 산림에서 머리를 깎아 선교사(禪敎事)의 자리에서 거듭 임금님 뵈옵는 동안 세월은 물흐르듯 하여 백발이 성성하게 되었사오며, 그동안 두 형님 돌아 가시고 하나뿐인 누이마저 가 버리니 하늘에 부르짖어 보나 하늘은 높아 대답이 없고, 땅을 두드리나 땅은 두터워 호소할 길이 없사옵니다.

오늘에 이르러 은혜를 끊음이 비록 부처님 제도라 하나, 조상 섬김은 또한 유교의 근본이오니, 나라 일의 어지러움을 생각하면 구름도 슬프고, 고향의 선비 집안 생각하면 바람 소리도 구슬픕니다.

아아, 슬프고 또 슬프옵니다.
소자 처음 태어 났을 때를 생각해 봅니다.
무릎 아래의 손바닥 위에서 아버님 은혜 하늘과 같으시고, 쓴 것 배앝고 단 것 삼켜, 어머님의 덕이 땅과 같사오며, 또 생각하옵건대 어머님 돌아 가시던 아침 어머님께서 저를 위해 세 번이나 "얘야" 부르시며 통곡하시었습니다.
또 아버님께서 돌아 가시던 밤을 생각해 보옵니다. 아버님께선 이불 속 소자를 안으시고 잠 드시듯 돌아 가셨습니다.

아아, 슬프옵니다.
푸른 등잔 벽에 걸으나 다시는 어머님 반지 그릇 뵈올 길 없고, 고향 옛 터전에 다시는 아버님의 시주(詩酒) 뵈올 길 없이, 모습들도 아득해 천추에 영영 이별이옵니다.

그러나 유명(幽明)은 한가지 리(理)요, 부자(父子)는 한 가지 기(氣)이오니, 천리에 한 번 슬퍼함과 만 번 절하여 한 잔 올리옴이 백발의 한 兄님께서 저를 위하여 한 번 제사 드리오니, 혼령께서 헤아리시오면 슬피 굽어 살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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