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사가 있는 팔공산은 신라 시대부터 불교문화권의 거점지역 중 하나이다. 해발 1,192m의 최고봉인 비로봉을 중심으로 양쪽에 동봉과 서봉이 동서로 길게 뻗어 굽이굽이 능선과 골짜기가 형성된 이곳에는 오늘날에도 많은 수행처와 불교문화가 전승되고 있다. 여기에는 미륵신앙, 약사신앙 그리고 선수행의 중심도량으로 왕성한 2개의 조계종 교구 본사와 50여 개의 암자가 있다.
| 동화사 입구에서 상서로운 구름을 타고 현현하신 아름다운 마애불좌상을 만나다
동화사 일주문 앞 오른쪽 암벽에는 특별한 마애불이 있다. 동화사입구마애불좌상은 마애불이 조성되고 천 년의 시간이 더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보존 상태가 아주 양호하다. 불상의 머리와 상체는 중부조로 양감 있게 조각하였으나 대좌와 광배는 저부조(얕은 돋을새김)로 새겨져 있다. 불상의 둥글고 원만한 덕상의 큰 얼굴, 넓고 당당한 어깨, 균형 잡힌 불신, 자연스럽고 유연한 법의 표현, 광배 및 대좌의 화려하고 섬세한 세부 표현 등에서 통일신라 하대의 뛰어난 조형역량을 엿볼 수 있다. 전체적으로 저부조이면서도 풍부한 양감을 가진 불상을 보면 그만큼 조각가의 조형역량이 뛰어났음을 알 수 있다.
지면에서 높이 위치한 이 불상은 구름 위에 떠 있는 특별한 모습이다. 얼마 전에는 오후 내내 불상을 지켜보다가 일몰이 가까운 오후 늦은 시간 무렵 부드러운 저녁 햇살이 쏟아지니, 불신에서부터 광배 그리고 연화좌가 그 아래 흐르는 구름과 함께 하나하나 생생하게 드러났다. 마치 저 멀리 하늘에서 구름을 타고 하강하는 부처님을 뵈는 듯한 특별한 모습이었다. 큰 바위에 새긴 선과 쪼은 형태들은 변화하는 빛에 따라 깨어나는데 볼륨이 강한 부분이 먼저 뚜렷이 드러나고 얕게 쪼은 부분과 새긴 선은 더 늦게 깨어났다가 점점 어두워지는 빛에 따라 또다시 바위에 잠드는 듯했다. 마치 짧은 순간 피어났다가 오므리는 꽃의 하루처럼 보였다. 일몰을 지나 점점 사위가 어둠 속에 빠져들 때 불상 아래 작은 불단에 촛불을 밝혀 기도하는 신행공간으로 바뀌리라 상상하면서 다시 이 불상을 바라보았다.
머리에는 짧은 앞머리와 머리 정상 위에 펑퍼짐한 반원의 육계肉髻가 있으며 또한 작은 나발螺髮이 있다. 원형에 가까운 둥근 얼굴에 턱과 뺨을 살찌게 표현하였고, 얼굴은 볼륨 있으면서도 눈·코·입이 얼굴 가운데로 모이면서 단정하다. 미간 위 이마 중앙에는 백호공白毫孔이 있다. 짧은 목에는 3개의 주름인 삼도三道가 있다. 균형 잡힌 어깨는 당당하면서 원만하고, 가부좌한 안정적인 자세로 오른쪽 발을 살짝 풀어 앞으로 내밀고 있다. 그 다리와 발은 볼륨은 없고 선線적이다. 상상하건대 연화좌에 내민 볼륨 있는 통통한 발에 눌려진 생기 있는 연꽃잎을 볼 수 있었을 터인데, 바위 면이 갖는 한계인지 아니면 조각가의 조형 역량인지 아쉬움이 남는다.
얼굴과 상반신은 중부조인 데 비해 점점 아래로 갈수록 저부조로 표현하고 있다. 손모양(手印)은 오른손을 무릎에 올린 채 손가락은 아래를 가리키고, 왼손은 손바닥을 위로 향하게 하여 단전에 놓은 항마촉지인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통견 방식의 법의는 얇아 가볍고 유연하게 느껴진다. 자연스럽고 얇게 빚은 평행의 옷 주름선이 나타나 있고, U자형으로 넓고 깊게 트인 가슴에는 승각기(內衣)의 띠 매듭이 표현되어 있다.
몸에서 나오는 빛을 형상화한 배 모양(舟形) 광배는 두광, 신광으로 각각 구분하여 두 겹의 양각 선을 조각하여 원형으로 처리하였고, 그 가장자리는 타오르는 불꽃무늬(火焰紋)를 생동감 있게 새겼다. 대좌는 연화좌이며, 8각의 중대석에는 각 면에 기둥 장식이 있다. 연화좌 아래 구름무늬가 옆으로 길게 펼쳐져 있는데 매우 섬세하고 사실적이어서 생동감이 있다. 대좌 아래로 파도처럼 출렁이는 구름은 하늘세계를 암시하면서 자유롭고 환상적인 분위기를 만든다. 이때 구름 위의 여래는 도솔천에 계시는 미륵불일 가능성이 많다. 더욱이 이 절이 심지心地 스님이 중창한 법상종 사찰이기 때문에 그러할 개연성이 높다.
한편, 이 마애불은 부드럽고 섬세하게 표현되어 있지만, 양감 있는 얼굴과는 대조적으로 체구는 위축되어 보인다. 그리고 연화좌의 연판 위에 섬세하게 새긴 연잎 장식이나 중대석에 안상眼象이 새겨진 연화좌, 화려한 선각의 화염문, 세밀한 옷 주름, 구름 문양 등의 표현은 생동감보다는 장식적이다. 이것은 9세기에 볼 수 있는 표현적 특징들이다. 전반적으로 경주남산신선암마애보살반가상과 여러 부분에서 유사성이 있다.
| 염불암에서 특별한 아미타불과 관음보살상을 만나다
염불암은 동화사 큰절에서 서북쪽으로 약 2.8km 떨어진 곳에 위치하는데, 팔공산 남쪽 기슭 중 가장 높은 암자이다. 동화사염불암마애불좌상과 보살좌상은 염불암의 극락전 뒤편 동쪽에 있는 거대한 화강암 바위에 조각되어 있다. 마애불은 밑면이 넓고 위로 좁아진 마름모꼴 큰 바위 경사진 양면에 서향의 여래상과 남향의 보살상을 나란히 선각線刻과 저부조로 표현하고 있다.
큰 바위의 서면 쪽에 위치한 여래상은 높이 4m의 선각으로 되어 있다. 하늘세계를 의미하는 구름무늬 위에 앙련仰蓮이 넓고 큰 연화좌에 건장한 모습으로 결가부좌하고 있다. 머리는 민머리(素髮)이며 육계는 낮은 편이고, 각지면서도 둥근 비만한 얼굴에 넓고 둥근 눈썹 아래 두 눈은 가늘고 길게 반개하고 있다. 코는 두툼하지만 입술은 다문 상태로 단정하다. 귀는 넓고 크게 표현하여 어깨에 맞닿아 있다. 큰 얼굴에 목은 표현되지 않았지만, 턱 아래 두 줄이 가는 선각으로 표현되어 있다. 하악골과 귀 끝 부분에서 시작되는 왼쪽 어깨선은 약간의 굴곡을 보이고, 오른쪽 어깨선은 변화 없이 둥글게 이어지고 두 팔로 만나는 손은 단전에 모은 아미타구품인 중 엄지와 중지가 맞닿은 중품상생인中品上生印을 취하고 있다.
우견편단右肩偏袒의 법의는 몸에 밀착되어 있고, 양쪽 가슴 아래 음각의 선이 집중되나 왼쪽 가슴에서 어깨로 이어지는 선이 없다. 전체적으로 대칭인 듯 미묘한 비대칭으로 위팔의 가슴에서 배로 이어지는 오른쪽 늑골 부근 옆구리에 옷 주름이 돌출해 있다. 또한 좌우 무릎 또한 비대칭이다. 팔과 다리는 몇 가닥의 선으로 표현하여 인체의 굴곡이 드러나 있다. 결가부좌한 양다리 아래에는 일정한 간격으로 중첩된 선과 면이 있다. 전체적으로 건장한 몸과 밀착된 옷 주름은 균일한 굵기로 음각으로 새기고 있으나 인체는 경직되고 형식화된 모습이다. 그러나 연화좌에 표현된 앙련의 연잎은 생동감이 있다. 마애불의 전면은 매끈하게 다듬어서 단단한 피부 질감을 낸 반면, 법의는 가는 선각으로 표현되어 있다. 겹으로 넓게 구성된 연화좌의 중앙 아래에는 파도문이 있다.
큰 바위 남면의 보살좌상은 높이가 4.5m이다. 전반적으로 상반신을 길게 표현하였고 이에 따라 위팔은 길고 오른쪽 아래팔은 매우 짧아지면서 손마저 작게 표현하고 있다. 오른손은 엄지와 약지로 보상화를 잡았는데 꽃잎은 얼굴 옆 공간에 단순화된 문양으로 조각되어 있다. 왼손을 단전 가까이 내려 꽃줄기를 잡고 있으며, 드러난 양팔에는 팔찌를 끼고 있다. 우견편단의 법의는 아래로 흘러내려 양 무릎을 덮고 있고 자유로운 옷 주름은 구름무늬가 연상되지만, 몸의 볼륨은 느낄 수가 없다.
남면의 보살상은 서면의 아미타불의 대칭적 비대칭의 미묘한 자세와 근엄함에 비해 어딘지 모르게 해학적인 모습을 보인다. 이는 눈·코·입이 코를 중심으로 모아진 사각형의 각진 얼굴에서 비롯된다. 부채꼴의 보관을 쓰고 있고, 하악골은 각이 넓으며 이마 쪽이 오히려 약간 좁은 듯한 각진 얼굴에 두 볼과 턱은 통통하면서 비만함이 코믹한 인상을 만든다. 목 없이 삼도가 가는 세 줄로 새겨져 있고, 귀는 좁고 길게 표현되면서 어깨에 닿아 있다. 부채꼴 모양의 관모 형태의 보관을 쓰고, 꽃가지를 든 관세음보살상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보살상이면서 천의가 아닌 여래의 법의를 착의하고 있으며, 수인도 꽃을 들긴 하였으나 일반적인 관음의 도상과 달라 이 상의 존명을 밝히는 데는 고려해야 한다. 이 마애보살상은 선각 중심의 저부조 표현 속에 비례가 왜곡되고 상호 또한 익살맞고 과장된 캐릭터의 모습이다. 이 상은 익살맞은 표정과 손에 든 보상화 그리고 관모의 모습이 935년에 제작된 고령개포동마애보살좌상과 유사하다. 광배를 생략한 점과 함께 도상 또한 색다른 형식미를 보여준다.
이곳 염불암마애불・보살상은 불교 전래 이래로 가장 인기 있는 불보살상인 서방정토의 주존인 아미타불과 그 협시인 관음보살을 형상화하고 있다. 이곳 암자의 이름이 염불암인 것처럼, 이 마애불은 조성·발원자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두 불보살의 명호를 쉼 없이 부르면서 서방극락정토 왕생을 발원하는 이들의 원불願佛이었을 것이다.
이성도
서울대 미술대학 조소과를 졸업하고 4회 개인전과 270여 회의 초대, 기획, 단체전에 출품하는 등의 작품 활동을 해왔다. 『한국 마애불의 조형성』 등 다수의 책을 썼고, 현재는 한국교원대학교 미술교육과에서 후학 양성과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