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단경의 성격
불교는 석존의 자각내용을 우리의 사회와 상황에 처하여 개현한 것이다. 그러나 그 의 자각 자체에 대하여는 내어 보일 수도 형용할 수도 없는 것이니 더우기 남에게 가 르치거나 전해 줄 수는 없는 것이다. 절대적이며 주체적이며 또한 전성적(全性的)인 이 도리는 결코 대상화, 분단화를 불허하며 그에 대한 인식은 오로지 자각 자증에 호 소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말할 수 없고 전할 수 없는 자각이 근원이 되어 석존 의 49년 설법도 8만 4천 법문도 열려지고 궁겁(窮劫)을 통하여 중생세계를 밝힐 진리 의 광망(光芒)도 펼쳐진다.
그러므로 진리를 구하되 지엽에 걸리지 않고 근원에 이르고자 하는 자는 불가불 석 존의 자각 자체에 투입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니 여기에서 부득이 말할 수 없는 말을 하고 형용할 수 없는 것을 시늉한다. '불립문자(不立文字)'를 표방하는 선문에 수많은 말과 글이 있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그러므로 이 자각 자체, 불법 자체를 의논한 선 문은 언제나 문자와 생각을 떠난 직접적인 체험의 기술이므로 자증만이 선문의 해석 을 허락한다. 그렇지 않고는 논리와 문자로 이에 대할 때 언제나 핵심을 놓친 괴뢰 (傀儡)의 장난에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육조법보단경'은 중국 당대 초기에 살았던 중국 선종 제 6대 조사가 되는 혜능(63 8∼712)의 어록인데, 그의 고제(高第) 법해(法海)가 모아 기록한 것이다. 문자 학식이 없는 혜능이 오직 오조 홍인의 계발에 힘입어 도달한 자신의 자각 체증의 경계를 드 러낸 것이기 때문에 이의 참된 해석도 역시 문자 밖의 진리에 착안할 것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하다. 다만 그 설법이 전문가 아닌 일반 인사를 대중으로 한 경우가 많음으 로 선권방편(善權方便)이 곡진하고 또한 그 표현과 용어가 평이하여 우리에게 사뭇 친근감을 주는 것은 다행한 일이라 하겠다.
2. 선종사에 있어서의 위치
역사상 대각 석존을 산출한 선은 석존의 교화를 따라 많은 각자(覺者)를 배출하였다. 그러나 본격적인 선을 기치로 내건 것은 보리달마(?∼528)가 중국에 온 이후의 일이 다. 이 때부터 육조 헤능까지의 약 250 년이 중국 선종의 성립시기에 해당한다. 혜능 이후 남송 말까지의 약 600년은 발달 난숙기로 중국 문화뿐만이 아닌 전 동양문화를 특색 짓고 역사를 움직여 왔던 선사상의 역사적 전개는 바로 혜능을 기점으로 하는 그 문하 용중(龍衆)들의 종횡분신(縱橫奮迅)에 그 연원을 구하게 되는 것이다. 이어 서 우리는 혜능의 역사적 위치를 짐작하게 한다.
3. 혜능의 주창점
선의 중심 목적이 대개 진리현로(眞理顯露)에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런데 이 진성(眞性)은 누구나 다 가지고 있는 것이나 다만 망심망연에 가리운 바 되어 현전하 지 못하니 다만 망연만 여의면 곧 불(佛)이다. 그러므로 선은 정[三昧Sam dhi]을 필 수 요건으로 하고 이 선정력으로 인하여 망심이 다하면 진(眞)이 나타난다하여 정처 (靜處)에서 간심(看心) 관정(觀靜)하는 것을 선수행의 요체로 삼아 왔다. 이런 결과는 수행의 진취에따라 점차 진성(眞性)이 현전한다는 점오(漸悟)의 이론이 등장하고 동시 에 현상은 망심의 소이이므로 현상과 진성과는 별개라는 견해가 나오게 된다.
그러나 혜능은 이러한 습정(習定), 점수(漸修), 성상이원론(性相二元論)을 정면 반대 하는 입장에 선다. 혜능의 첫째 주창점은 견성이다. 선정해탈(禪定解脫)을 논하지 않고 오직 불성이라는 참 성품을 보는 것이다. 이 진성(진성)은 인간에게서 가능태 (可能態)로 보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이며 구체적인 현실태로 직접 파악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에서는 선정을 익혀서 망념의 소멸을 기다리거나 불성을 응시하고 정심 (淨心)을 관(觀)하는 수행이 아니다. 만약 본성을 관한다면 여기에는 불가불 보는 자 와 보여지는 자, 즉 능소(能所)가 있어진다. 능소가 있음은 불성은 아니며 진(眞)은 아니다. 절대적 주체성은 파기(破器)가 되기 때문이다. 설사 이와 같이 자성을 관하 고 지켜서 아는 바가 있다 하더라도 이 안다는 것은 자성의 작용이며 속성이니 아는 것이 성(性) 자체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이러한 입장에서 혜능은 선에 있어 간심(看心), 수정(守淨), 장좌불와(長坐不臥)의 좌 선법은 선병(禪病)이라 하여 이를 엄중히 배격하고 오직 견성을 종지의 안목으로 삼 아 중태선(重態禪) 생활선 창조선을 주창한다.
다음에 이러한 동적인 실성의 확인이 견성일진대 견성은 바로 본성이라는 절대적 무 한태(無限態)의 자성 분별이며 자기 파악이다. 그러므로 여기에는 소호(少毫)의 남음 도 모자람도 없는 것이요, 온전한 전성수용(全性受用)이니 여기에 다시 더 무슨 점차 (漸次)나 수증(修證)의 여지가 있겠는가? 혜능이 '내가 인화상(忍和尙) 회하(會下)에 서 한 번 듣고 언하(言下)에 깨닫고 진여본성을 돈견(頓見)하였다.' 하였으니 그의 종 지가 또한 철저한 돈교(頓敎)를 표방하는 소이가 있는 것이다.
또 하나 그가 고창(高唱)한 것이 있다. 일체를 자성으로 파악하는 대기대용적(大機大用的)인 입장에 서는 그는 종래의 망궁진로(妄窮眞露) 선정후혜(先定後慧)의 이론을 용납하지 않는다. 망(妄)과 진(眞)을 둘로 보고 정(定)과 혜(慧)를 둘로 보는 견해에서 는 먼저 정에 들어 일체 분별을 초절(超絶)한 후에 자성진여(自性眞如)가 발생한다고 하는 것이나 헤능에게는 혜(慧)를 떠난 정(定)이 없고 정(定)을 떠난 혜(慧)가 없다. 정(定)이 혜(慧)이며 혜(慧)가 바로 정(定)이며, 상(相)에서 성(性)을 보고 성(性)에서 상(相)을 보니, 성상일여(性相一如)이며 정혜(定慧)는 불이(不二)라고 가르친다.
이러한 점은 본성이라는 본연실상(本然實相)을 체득한 혜능에 있어 그의 소이에 청 정본연(淸淨本然)의 진성유출(眞性流出)밖에 다른 것이 있을 수 없는 것을 생각할 때 족히 수긍이 간다. 그러므로 이상의 견성(見性), 돈오(頓悟) 성상일여(性相一如)를 단 경(壇經)에서 혜능이 보인 주창점의 대요라고 적어두는 것이다.
4. 단경(壇經)의 성립
다음에는 단경의 성립에 대하여 언급하여야겠다. 단경은 지금까지 필자가 본 것만 으로도 돈황본(燉煌本), 혜흔본(惠昕本), 존중본(存中本), 덕이본(德異本) 그 밖에 여 러 종류의 유행본이 있다. 이들의 그 대요에는 대차가 없으면서도 내용에는 많은 괄 략이동(廣略異同)이 있음을 보는 것이니 이는 원일일까? 거기에는 두가지 이유가 있 다고 생각한다. 첫째는 단경이 간행본이 아니고 전수본이라는 사실이다. 돈황본 등 고본에는 단경은 혜능종(惠能宗)에서 법을 부촉할 때 반드시 전수케 하였는데 이것 없이는 남종제자(南宗第子)가 아니라 하였으며 실지 서로 전수한 이름이 나열되어 있 다. 이와 같은 비전(秘傳)의 서(書)는 전수자의 자의(恣意)에 따라 첨가 또는 개환(改換)이 용이한 것이니 이러한 사정하에서 단경이 한 때 위경혐의(僞經 嫌疑)를 받은 것 도 있음직한 일이다.
또 하나의 이유로는 북종(北宗) 신수파(神秀派)와 대립 하였을 때에 신수(神秀)를 격 하하기 위한 악의적인 변개다. 이 점은 지금의 유행본에서도 그 흔적을 볼 수 있다. 그 후 단경의 유포가 일반화하고 신수파와의 대결도 일단락되고 투쟁에 초연했던 남 옥(南嶽)ㆍ청원계(淸原系)가 크게 전면에 대두하면서 지금의 유행본의 형태로 정돈된 것으로 보아지는 것이다.
5. 단경(壇經)과 한국 불교
다음은 우리나라 불교와 단경과의 관계를 일별한다. 한국불교는 삼국시대를 거쳐 신라-고려로 내려 오면서 선과 교의 오교구산 또는 오교양종으로 종파형을 보이다가 이조 세종대에 와서 선교 양종으로 이분되었다. 그 후 선이 점차 교(敎)를 원섭(圓攝)하면서 양종이란 명목으로만 그치고 마침내 선종이 전 한국불교를 통일하고 오늘 에 이르고 있다. 그리고 한국 불교 법맥의 대부분이 혜능의 법손들이며, 그 종풍이 온건 착실해서 불법의 전제(全提)에 힘쓰고 종파 대립에 치우침이 없으며 방편에 있 어서도 경론을 많이 인용하여 이로정연(理路整然)하여 금일의 한국불교가 선을 핵심 으로 한 통(通)불교의 특성을 함양해 오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에 있어 단경을 대할 때 거기에는 혜능이 자기체험을 통하여 열반(涅槃), 유마(維摩), 법화(法華), 금강(金剛), 능가(楞伽), 범망(梵網), 관무량수(觀無量壽) 등 여러 경전을 자가약롱중(自家藥籠中)에 걷우고 있음을 보게 된다. 이점이 한국 불교가 선을 중심으로 한 통불교로서의 교의적인 가능성과 방법의 전거를 보여주는 것이다.
고려 불교의 중흥조로 일컫는 보조(1158∼1210)가 일찌기 단경을 스승삼고 수행하였 다고 자술하였고, 또한 자신이 발(跋)을 붙여 출판(1207)한 것도 발문 중에 보이거니 와 이로 미루어 한국 불교에 일찌기 이 경이 유포되어 수행자의 골격이 되었음은 상 상하고 남음이 있다. 사실 금일에 전해 오는 판본으로도 (필자가 아는 한) 보광사판 (1869), 해인사판(1883), 송천사판(1703), 병풍암판(1479), 그 밖에 봉은사판 등이 있으 나 이와 같이 조판(彫板)되고 수시 인행(印行) 되었을 것을 생각할 때 단경이 역사적 으로 한국 불교를 묶는 근본 성전의 구실을 하였으리라 짐작하는 것은 필자만의 속 단일까?
6. 혜능선의 의의
끝으로 혜능선의 의의에 대하여 일언한다. 대개 선은 좌선으로 자성을 철견(徹見)하 는 것이 기본 방식이다. 그런데 혜능에 있어서는 앞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좌선이 아닌 견성이며 철견(徹見)이 아닌 행상삼매(行相三昧)다. 여기에는 정관(靜觀)이나 수 증점차(修證漸次)가 없다. 견 즉시-돈료(見 卽是-頓了)며, 행 즉시-성(行 卽是-性)이 다. 이와 같은 혜능선의 특징은 금일과 같이 선문이 적요(寂寥)하고 사상이 혼미한 때에 친근의 경책이 되고 가위 만고광명(萬古光明)이 되고 남음이 있다 하겠다.
그는 '자성(자성)이 즉시 진불(眞佛)'임을 강조한다. 이는 바로 법불일여 생불일체, 도속불이(法佛一如 生佛一體, 道俗不二)의 선언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인간의 영원성 과 그의 절대적 권위, 그리고 만인의 일여평등과 가치와 존엄을 읽게한다. 동시에 본 성 무한자의 지혜와 자비가 온전히 우리의 체온으로 맥박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 다.
다음은 커다란 낙관과 커다란 긍정의 제시다. 견성(見性)은 즉시 번뇌업보신(煩惱業報身)을 진여 법신으로의 요달이며 광명지혜신(光明智慧身)으로의 전환이다. 여기에 구원이 있고 감사와 환희와 긍지의 무한실상행(無限實相行)의 전개가 있다.
다시 하나는 국토의 장엄과 생명의 실현이다. 불법은 세간에 있으니 일상 일체시를 진심으로 확충하고 일체 법에 집착 없는 실천을 강조한다. 진성의 무한 진실성을 행 동으로 전개하고 자성에 자존하는 무한창조의 법신공덕(法身功德)을 일체 시공에 구 현하여 장엄스런 국토 조화와 번영의 세계 건설을 촉구한다. 이는 바로 자성의 개현 (開顯)이며 본연(本然) 질서의 발현이며 실상생명(實相生命)의 실현(實現)일 뿐이다.
혜능이 보인 '긍정과 동(動)의 진리'에 대하여는 필자의 둔설(鈍舌)을 용납하지 않으 므로 대강 이만 두거니와 그가 보인 진리가 족히 현대의 인간상실(내지 그릇된 인간 긍정), 역사의 방향 부재 상황과 이성의 혼미 속을 허덕이는 현대를 광명과 생동의 평 원으로 이끌 힘이 되리라는 것을 다시 부언하여 두는 바이다.
행력(行歷)에 대하여는 육조단경 약서(六祖壇經 略序)에 상세함으로 이를 생략한다.
육조 헤능조사는 당 정관(貞觀) 20년(서기 638) 2월 8일 노씨(盧氏)의 아들로 태어났 다. 24세에 출가, 황매(黃梅)에 찾아가 오조 홍인조사의 법을 잇고 16년간을 남쪽에 숨어 지내다가 출세, 조계보림(曹溪寶林)도량에서 교화하였다. 개원(開元) 원년(712) 8월 3일 제자에게 법을 설하고 조용히 천화하였다. 그 동안 37년을 교화하였고 법을 이은 제자가 43인, 그의 큰 법은(法恩)을 입은 자는 수를 헤아릴 수 없다.
본 기사는 불광 사경불사에 동참해 주신 황순덕 불자님께서 입력해 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