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처럼 암으로 투병 중인 힘든 순간에도 나는 가능하면 긍정적이고 밝은 마음을 지니려고 애쓰는 편이다. 내가 새롭고 밝아져야 다른 이에게도 새롭고 밝은 빛을 전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날이 그날 같은 일상의 삶도 늘 감사와 경탄의 감각으로 맞이해야 함을, 행복한 승리자가 되려면 아프고 힘든 시간을 끝까지 잘 견뎌내야 하는 것임을 시사해 주는 ‘새롭게 피어나라’는 말을 나는 오늘도 되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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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친지들과 같이 전남 보성군에 있는 대원사에 갔을 때 그곳의 현장 스님이 절 입구에 적어놓으신 여러 종류의 법구들을 읽다가 베껴온 글이 있다.
수행이란 안으로는 가난을 배우고/밖으로는 모든 사람을 공경하는 것이다
어려움 가운데 가장 어려운 것은/알고도 모른 척 하는 것이다
용맹 가운데 가장 큰 용맹은/옳고도 지는 것이다
공부 가운데 가장 큰 공부는/남의 허물을 뒤집어쓰는 것이다
-성철 스님의 ‘공부노트’에서
나는 이 글을 많은 사람들, 특히 수도자들에게 적어 주었는데 다들 기뻐하며 좋다고 하였다. 나의 글방과 침방에도 누가 붓글씨로 적어준 이 글을 걸어두고 오며 가며 기도처럼 읽어본다. ‘어떻게 이 말씀대로 살 수 있을까’ 막막해지다가도 자꾸만 되풀이해 묵상하다 보면 ‘나도 노력하면 이렇게 살 수 있을 거야’ 하는 생각으로 새 힘과 용기가 솟는다.
어쩌다 초심을 잃고 수도정신이 흐려지는 나 자신을 느낄 때, 편리주의에 길들여져 불편한 것을 참지 못하는 나를 볼 때, 인간관계에서 수도자다운 겸손과 인내가 부족한 나 자신을 발견할 때 성철 스님의 이 말씀은 나를 깨우치는 죽비가 되어 정신이 번쩍 들게 한다. 고(故) 김수환 추기경님이 생전에 강조하셨던 바보의 영성과도 상통하는 가르침이라 여겨진다.
늘 낮아지고 손해 볼 준비가 되어있는 어리석음의 용기와 결단 없이는 결코 수행자의 길을 걸을 수 없음을 일러주는 이 지혜의 말씀을 나는 더 깊이 새겨들으리라. 모든 사람을 차별 없이 공경하기, 다른 이의 실수를 알고도 모른 척 하기,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도 상대가 우기면 일단은 져 주고 보기, 그리고 마침내 남의 허물까지 뒤집어 쓸 수 있는 사랑의 용기를 지니고 사는 행복한 수행자가 되고 싶다.
이해인
부산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회 수녀로서 서강대학교 종교학과 대학원을 졸업했다. 저서로는 『민들레의 영토』, 『희망은 깨어있네』 외 10권의 시집과 산문집 『두레박』, 『꽃이 지고나면 잎이 보이듯이』 외 6권이 있다. 종파를 초월해 사랑받는 그의 시는 초·중·고 교과서에도 여러 편 수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