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상 대사의 「법성게」는 화엄학의 장대한 세계를 아주 간명한 30행의 시구로 탁월하게 요약해준다.
특히 먼지 하나에서 시방삼세의 우주를 보는 다음의 두 구절은 연기(緣起)적인 사유에 의해 존재의 문제를 우주적인 스케일로 사유하게 해준다.
일미진중함시방(一微塵中含十方) 하나의 티끌 속에 온 우주가 들어있고
일체진중역여시(一切塵中亦如是) 일체의 티끌이 역시 그러하다
먼지 하나에 시방삼세의 우주가 들어있다고 하는 사유는 ‘포함’이란 말을 먼지 외부를 통해 사유한다. 그렇지 않고선 먼지 속에 우주가 들어있다는 말은 이해할 수 없는 말일 것이다.
먼지도, 내 손의 전화기도, 길가의 강아지도, 나의 이 몸도 그러하다. 저 강아지에는 그를 낳은 어미개가, 그 어미개가 먹은 밥과 생선이, 그 밥의 쌀을 키운 땅과 미생물, 그 속을 흐르는 물이, 그 땅에 내린 비가, 그 생선이 살던 바다가, 그 바다 속의 플랑크톤이 있었기에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어디 이것뿐이랴.
그 플랑크톤과 비 등등을 존재하게 한 조건을 다시 따라가면 필경 우주 속의 모든 것이 불려나오게 될 것이다. 이런 점에서 강아지 한 마리의 존재는 이렇게 이어지며 서로를 가능케 한 우주 전체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강아지 한 마리에 우주 전체가 들어있다는 것은 이런 의미에서다. 전화기도, 망가져 버려진 길가의 TV도, 거기 달라붙은 먼지 하나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런 점에서 먼지처럼 미소한 존재자 모두에는 우주가 하나씩 들어가 앉아있다. 물론 그 우주는 모두 다른 모습의 우주일 것이다. 강아지에 포함된 우주와 망가진 TV에 포함된 우주가 같을 리는 없을 것이기에. 그래서 의상 대사는 수많은 세계가 서로에게 깃들어 있지만 그 각각이 모두 다르다고 지적한다.
따라서 인간이나 강아지, 망가진 TV와 거기 붙은 먼지는 질적으로 모두 다르지만, 그 크기나 고상함의 차이 같은 것은 없다. 모두가 무한의 우주 전체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모든 존재자는 평등하다. 각각이 다른 모습이긴 하지만, 각각이 우주 전체로서 평등한 것이다. 따라서 인간이 다른 것에 비해 어떤 특별한 존엄성을 갖는다는 생각이나, 생명 있는 것이 없는 것에 비해 존엄하다고 하는 식의 발상은 존재자 속의 우주를 보지 못한 데서 나온 단견일 뿐이다.
이런 점에서 먼지 속에서 우주를 보는 사유는 모든 존재자가 갖는 평등성을 우주적 스케일에서 보게 해준다. 이런 평등성을 본다면, 인간을 위해 숱한 생명들을 죽이면서 바다를 막고 강을 메우는 짓은 결코 생각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사유가 단지 지금 존재하는 것에 안주할 것을 가르친다는 것 또한 오해라고 해야 한다. 가자 지구의 굶주린 여인의 마른 젖가슴 속에는 신의 이름을 빈 적대가, 땅을 빼앗기 위한 전쟁이, 경계선에 둘러친 철조망과 거기를 지키는 초병들이, 그곳으로 지원하러 가다 폭파된 평화구호단의 배가, 그 배에서 죽은 자원봉사자들의 시체가, 그리하여 젖을 찾다 죽어가는 갓난아기들이 들어앉아 있는 것이다.
이 끔찍한 전쟁 속의 우주를 ‘긍정’이란 이름으로 안주할 수 있을 것인가? 강 가에서 몸을 불살라 공양하신 선승의 마음 또한 이런 게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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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경
본명은 박태호.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연구자들의 코뮤넷 ‘연구공간 수유+너머’에서 ‘수유너머 N’을 새로 만들어 활동하고 있으며, 서울산업대 교양학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저서로 『외부, 사유의 정치학』, 『미-래의 맑스주의』, 『노마디즘』, 『철학과 굴뚝청소부』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