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실록] 염불과 감사로 중풍을 완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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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실록] 염불과 감사로 중풍을 완치하다
  • 불광회 교학부
  • 승인 2009.06.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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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생명에는 부처님의 무량공덕이 넘치고 있다. 우리가 부처님의 무량공덕을 누릴 것을 방해하는 것은 불평불만과 부조화다. 일심 염불하여 불평이 감사로 바뀌고 부조화가 화합으로 바뀔 때 우리에게서 불행은 사라진다. 여기에 이 기적적 사실을 보자. 

 

 󰋪 불공덕을 가로 막는 것 

 전회에서는 부처님께 감사하고 부부 조화에서 집안에 밝은 빛이 찾아온 실례를 말씀드렸습니다. 이번에도 감사와 조화가 낳은 기적적인 실례를 계속하겠습니다. 대개 우리들은 따로따로 태어나서 제각기 운명을 걷고 있는 것 같이 보입니다. 사실 그렇기도 합니다. 제가 마음 쓰기에 따라, 제 행동에 따라 자기 환경과 운명이 좌우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이와 같이 우리의 마음먹기에 따라 환경 여건이 달라진다는 것은 한편 우리에게 큰 힘이 잠재한다는 사실을 짐작하게 하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에 의하면, 우리에게는 누구나 부처님의 지극한 자비와 충만한 은혜가 주어져 있는 것이며 이러한 부처님의 자비 공덕으로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마땅히 부처님께서 주신 바 끝없는 자비 공덕을 바로 받고 바로 써서 행복스럽게 살아야 하겠으며, 우리의 이웃과 사회와 국가에 평화와 번영을 더하는데 보탬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부처님이 주신 공덕은 우리의 생명 속에 넘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부처님 자비 공덕이 가르치시는 대로 밝게 화합하고 활발히 살아 갈 때 현실적으로 부처님의 공덕을 받아쓰게 됩니다. 우리가 부처님 공덕을 누리는데 있어 이를 가로막고 방해하고 있는 가장 큰 장애물은 불평불만과 부조화입니다. 그러므로 불평불만이 감사로 바뀌고 부조화가 화합으로 바뀔 때 우리는 부처님의 자비하신 공덕을 받아서 모든 불행을 없이하고 행복을 누리게 되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 중풍의 원인의 원인

 필자의 족형이 되는 분이 계십니다. 서울 이문동에 사셨고 1년 전에 77세로 작고 하셨습니다. 이름은 「김현정」씨. 지금도 그분의 부인과 아들 형제분이 이문동에서 살고 있습니다. 족형은 지금부터 6년 전 71세 때 고혈압으로 졸도, 그래서 중풍으로 서울대학병원에 입원했습니다. 3개월을 입원 가료했으나 결국 효과를 보지 못하고 퇴원했습니다. 발병 후 8개월 만에 필자를 만났습니다. 대개 이런 류의 병은 그 원인이 여러 가지 있다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부처님 법을 믿고 인간 정신의 위력을 아는 사람이면 이런 병은 대개가 불평불만 특히 부조화가 원인이 되는 것임을 아는 것입니다. 필자는 평소 족형되는 분인 김씨의 가정 사정을 몰랐기 때문에 처음 만났을 때 다만 부처님께 감사하고 가족에게 감사하고 조상님에게 감사하고 일심으로 염불한 것을 권했습니다. 그리고 거의 격일마다 방문하고 염불 독경과 함께 감사 화합을 역설하기를 한 달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어느 때와 같이 염불독경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려니까 한 번도 보이지 않던 부인이 차를 가지고 들어와 정성껏 인사를 했습니다. 부인은 60이 채 되지 않은 나이였습니다. 그때 김씨가 말했습니다.
『이제까지 선생에게 말하지는 않았으나 내가 병이 난 것은 그 원인은 내 허물에 있었던 것입니다.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재산을 방탕으로 탕진하고 그 위에다 집사람에게까지 잘못해서 오늘 이 신세가 된 것입니다. 나는 선생 얘기를 듣고 속으로 깊이 뉘우쳐왔습니다. 그러던 중 어제 이양반이 나를 찾아와 주더군요. 사실 이때까지 거의 20년 이상을 서로 말없이 반목하여 지내왔지요. 그런데 내가 근일 이와 같이 참회하고 집사람에게 잘못했다 하는 생각이 들면서 그래도 내 곁에 있어 주는 것이 말할 수 없이 고마운 일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제 나를 찾아왔기에 내가 참회했습니다. 이 꼴이 된 것이 내 잘못이고 당신에겐 아무런 잘못이 없다고 뉘우쳤습니다. 지금 선생이 있는 이 자리에서 다시 한 번 이제까지의 나의 잘못을 참회 하오….』
 부인 앞에서 진정으로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필자는 당초부터 「가정의 부조화에서 오는 것이라 했더니 과연 그랬던 것이로구나.」했습니다. 이제까지만 해도 부인도 위장병으로 백약이 무효이고 고통을 겪어 왔더니 이제 영감의 회개의 말을 듣고 난 뒤로 부터는 가슴속에 어떤 덩어리라도 있다가 삭아진 듯 음식을 먹게 됐다는 것입니다.
 이때부터 김씨의 염불공부는 대단했습니다. 앉으나 누우나 자나 깨나「관세음보살」이 입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필자는 김씨를 만날 때마다「관세음보살은 먼 곳에 있지 않고 당신 참 생명이 관세음보살이며 당신이 염불할 때 당신의 생명 속에는 관세음보살의 자비하시고 무애 자재하신 위신력이 넘치고 있다. 당신의 생명 속에 넘치고 있는 이 부처님의 위신력이 당신의 본마음이다. 염불 할수록 이 공덕은 더욱 당신에게 넘쳐온다. 이곳에는 병이란 아예 없다.」는 것을 거듭거듭 말하여 왔습니다. 본디 김씨는 부처님 신앙이 대단치 않은 편이었습니다. 웬일인지 기독교라면 이유 없이 기하였던 사람입니다. 이제 신앙이 굳어가면서 이제까지 침체되어 죽을 날만 바라보고 한숨만 쉬고 있던 그 분은 희망과 활기가 넘쳤습니다. 그리고 집안에도 이제까지의 적적하고 음산했던 기운은 사라지고 밝고 따뜻한 기운이 가득했습니다. 그러던 중 한 달이 못되어 김 씨의 병은 혼자서도 밖에 출입을 할 수 있게끔 되었고 부인의 위장병은 자취조차 없어졌던 것입니다. 필자가 하루는 김씨 댁을 찾아가니 관음보살존상 사진액자와 그 앞에 촛대와 향료를 갖추어 놓은 것이 눈에 띄었습니다. 김씨가 구해왔다는 것입니다. 필자도 「잘했다. 더욱 염불하라.」고 권했습니다. 부인의 말에 의하면 그 후 김씨는 자다 깨어 보아도 쉬지 않고 염불을 하더라는 것입니다.

 󰋪 조화 기적의 문은 열리다.

 이때부터 김씨 집안에는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혹 부인이 좀 아프다 해도 김 씨가 만지면서 「관세음보살인데 병 없다.」하고 염불을 하면 곧 나았고 손자가 병이 나도 안아서 만지면서 「우리 관세음보살이다.」하면서 염불하면 나앗으며 한번은 도적이 침입하여 김 씨가 조용히 일어나 염불을 하니 텔레비전을 마루에 내놓고 도적은 소리 없이 사라지는 등 의외의 일이 계속 되었던 것입니다.
 김씨의 건강은 더욱 좋아져서 염불한지 두 달 만에 중풍 증세는 완쾌했으며 그 후에 빠진 이가 다시 솟아났다는 것입니다.
 하루는 필자에게 조용히 하는 말이 「이러다가 창피 당하겠어요. 정력이 넘쳐 야단났어요.」하고 말했습니다.
 말년에 미국에 가 있는 둘째 아들 만나기를 소원했더니 하루는 미국에 가있는 아들이 소식 없이 훌쩍 돌아왔습니다. 별안간 부모님이 못 견디게 보고 싶어 돌아왔다는 것입니다. 김씨는 병이 완쾌된 후 건강하게 6년을 더 사시다 77세 되는 작년 10월에 작고 하였습니다. 아프지도 않고 평소대로 활발하게 지내시다가 돌아가셨습니다.
 말년에 특히 힘 쓴 것은 염불과 조상 공양이었습니다. 조상에서 물려받은 3천여석이나 되는 재산을 자기 대에 와서 탕진했고 훌륭한 사회적 업적도 남기지 못한 채 나이먹은 것을 뉘우쳤습니다. 그리고는 고향인 충북 괴산에 있는 선산에 참배하기도 하고 조석으로 조상을 위하여 염불 독경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감사하고 화합하고 염불하면 우리에게서 병고는 없어집니다. 비단 병고뿐만 아니라 일체 불행은 없어진다는 것을 필자는 확신합니다.
 부처님의 자비공덕이 넘쳐 나오는데 무슨 불행이 남아 견디겠습니까. 불을 밝히면 몇 천만년 묵은 동굴도 일시에 밝아진다는 것은 너무나 명확한 사실이 아닙니까? 염불합시다. 감사합시다. 감사합니다. 

<합 장>

 

진언 眞言

 진언은「다라니」또는 「주(呪)」라고도 하고 범어(梵語)의 mantra를 번역한 말이다. 주(呪), 신주(神呪), 밀주(密呪) 등으로도 번역된다. 그가 뜻하는 바는 「진실하여 거짓이 없는 말씀」이다.
 이 진언은 불보살 또는 제천(諸天)의 선서, 덕, 또는 그의 깊은 가르침의 의미가 담긴 비밀한 어구(語句)로써 대개 번역하지 않고 원음을 음사(音寫)하여 읽는다. 그래서 이 진언을 입으로 외우며 관(觀)을 행하면 진언에 상응한 공덕을 얻는다.
 과연, 그렇다. 입으로 진언을 외우고 관(觀)이나 상법(想法)을 엄밀히 행할 때 틀림없이 진언은 위력을 나툰다.
 그러나 우리는 진언이 갖는 원초적 의미를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진언은 참 말씀 진리의 말씀이다. 그것은 진리자체의 운동이며 현상계에 표현된 자성공덕의 진동이다. 다시 말해서 본성 자체의 파동형식인 것이다. 그래서 그는 즉시에 창조적 위력을 갖는다. 그러므로 진언은 생명의 진실한 말씀이기도 하다. 그래서 생명(自性)의 긍정적 말이 진언이다. 자성(自性)의 긍정적(肯定的) 말이 진언이며 이 말은 창조적 위력을 갖는다. 우리는 이를 등한하고 있지 않는가.
 긍정적 말만 하자. 자성공덕을 긍정적으로 표현하는 말만 하자. 광명(光明), 성취(成就), 원만(圓滿), 풍요(豊饒), 자재(自在), 조화(調和), 평화(平和)…. 이런 말이 진언(眞言)이다. 진언에 신념을 갖자. 그는 곧 성취력이다.

 <佛光會 敎學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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