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아(自我)의 덫과 마음의 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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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自我)의 덫과 마음의 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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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7.04.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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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설법 | 아짠 마하 부와의 수행법문-아홉 번째 법회(2)

이 글은 태국을 대표하는 위빠사나 대선사, 아짠 마하 부와가 영국을 초청방문하여(1974년 6월) 설한 법문과 질의 응답들을 수록한 수행법문집, 『The Dhamma Teaching of Acariya Maha Boowa in London』 중, 아홉 번째 법회의 질의 응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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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마음은 한편으로는 담마(Dhamma, 法)를 추구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세속의 길을 따르길 원한다고 하셨는데, 과연 어느 쪽 길을 가야 할지요?
답: 그 두 양상들이 상충할 때 마음이 세속의 길을 따르면 담마를 잃게 됩니다. 이 세상 어느 누군들 가족과 소유물들이 소중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붓다께서는 출가 비구가 되어 참자유를 성취하시기 위해 세속의 모든 부귀영화와 가족까지 뿌리치셨습니다. 담마의 길이 지고(至高)한 선택임을 확신하셨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속인(俗人)들은 생성(生成)의 전(全) 과정에 걸쳐 번뇌의 핍박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번뇌의 속성인 욕망과 집착과 성냄을 마음 가는 대로 취하는 것은 자유가 아니라 일종의 속박입니다. 탐(貪)·진(瞋)·치(癡)로 들끓는 마음은 고통을 동반하기 때문입니다. 만일 번뇌가 수승한 것이라면, 우리는 이미 오래 전에 수승한 단계에 도달했을 것입니다.
속인들은 일상사의 자극들에 자아(自我)에 의해 조건 지어진 방식으로 서슴없이 반응하므로 주변에 해를 끼치기도 합니다. 이렇게 길들여진 습(習)에 더 이상 먹이를 주지 않아 번뇌를 아사(餓死)시키려는 첫 시도가 바로 수행의 시작인 것입니다.
담마를 추구하면서 그 계율을 준수하면, 욕구와 조건 지어진 반응들에 대한 적절한 한계선을 설정할 수 있으며 그 과정의 본질을 면밀히 관찰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자신이 세상 모든 현상들의 주인이라는 착각에서 벗어나게 되면, 마음의 균형〔中道〕이 구축됨으로써 조건 지어진 반응의 덫에 더 이상 걸려들지 않는 ‘진정한 자유’를 획득할 수 있습니다.
세속의 현상들은 실체가 없기에 본질적 가치를 지니지 못함을 직시하게 되므로, 아집(我執)의 감옥에서 저절로 풀려나 모든 집착들이 떨어져나가면서 고(苦)와 그 원인과 소멸을 꿰뚫어볼 수 있게 되며, 자신의 존재가 단지 몸과 마음의 진행일 뿐임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담마의 길과 세속의 길 앞에서의 선택의 망설임은 어리석은 시간낭비에 불과할 따름입니다.

문: 좌선수행은 오래 앉아 있어야 성과를 얻을 수 있습니까?
답: 단지 오랜 시간 수련한다고 지혜가 발현되어 수행이 향상하는 것은 아닙니다. 지혜의 계발은 수련시간의 양(量)이 아닌, 마음챙김(sati)의 질(質)에 의해 좌우됩니다. 수행자의 성향은 저마다 다르므로 수행의 진전 속도도 차이가 나게 마련입니다. 따라서 수련시간이나 특출한 수행성과에 조바심 내며 시간낭비하지 말고, 그저 자연스럽게 마음챙김에만 집중하면서 수행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를 끊어짐 없이 면밀히 관찰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입니다.
마음을 집중시키는 방법을 완벽하게 터득할 수만 있다면, 수행의 진보에 더 이상 신경 쓸 필요조차 없어집니다. 깨달음을 측정할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어떤 바람을 품고 수행하려면 차라리 그만두는 게 낫습니다.
그저 마음이 평온한지, 그 고요의 심도(深度)는 어떠한지만 알아차리면서 그 정(定)의 상태를 몸과 마음의 본성을 관찰하는 데 활용하십시오. 그러다보면, 그런 마음의 평온조차도 무상(無常)함을 간파하게 되면서 몸과 마음의 무아성(無我性)이 드러나므로 수행은 저절로 깊어질 것입니다.

문: 좌선수행 시, 통증이 일어나면 주시의 대상을 통증으로 바꿔야 합니까?
답: 통증이 심해지면 그 고(苦)의 실체를 알아내기 위해 통증이 일어나는 당처로 주시를 옮겨 마음을 집중시켜 관찰하십시오.
통증을 포함한 모든 감각들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므로 두려워하거나 집착하지 말고, 감각이 소멸될 때까지 인내하면서 마음챙김을 이어가야 합니다. 고통의 두려움과 몸에 대한 집착이 지혜의 계발을 방해합니다. 통증은 고통이며 자신의 일부라는 착각에서 벗어나, 단지 몸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온갖 무상한 감각들 중의 하나에 불과함을 알아차릴 수 있어야 합니다.
강렬한 통증이 사라진 후에도 잔재하는 약한 통증들(저린 느낌 같은)마저 완전히 소멸될 때까지 마음을 집중하십시오. 강력하고 빈틈없는 마음챙김을 유지할 수 있다면 오래지 않아 말끔히 소멸될 것입니다.
이처럼 몸의 감각들에 대한 두려움이나 집착을 극복하여 장시간 순일하게 정(定)에 들 수 있다면, 마음이 지극히 청정하고 평온해지면서 몸과 마음에 생멸하는 현상들을 명료하게 볼 수 있게 됩니다. 모든 감각들이 정화되면서 깊은 선정이 계발되어 지혜가 발현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지혜로 꿰뚫은 통찰은 일찍이 결코 체험하지 못했던 법열(法悅)의 경이로운 환희를 안겨줄 것입니다.

문: 좌선수행을 오래 할 시간적 여유가 없을 때는 약한 통증까지 완전히 소멸되기 전에 수행을 마쳐도 되는지요? 발이나 몸을 약간 움직이면 통증이 가시기도 하는데 굳이 저절로 소멸될 때까지 오래 참아내야만 하는 건지요?
답: 통증이 완전히 소멸되기 전에 수행을 마치는 건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마음과 몸이 충분히 정화되지 못했으므로 불만스럽고 찌뿌드드해질 것입니다.
명상수행의 본질은 모든 감각들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기 위해 감각을 철저히 통찰하는 것입니다. 몸의 일부를 움직여 감각들을 빨리 소멸시킬 수도 있지만, 이런 방법은 감각의 통찰이 아니라 감각으로부터의 도피에 불과합니다. 감각들에서 벗어나고자 애쓰는 만큼, 집착은 더욱 견고해질 따름입니다. 감각은 우리 몸에 본래 존재하기에 결코 피할 수 없으므로 당당히 맞서 소멸시킴으로써 지혜를 일으켜 깨달음에 도달하는 것이 최상의 해결책입니다.
그러므로 통증을 비롯한 감각들이 일어나면 그저 담담하게 마음을 집중시켜 그 출처(出處)를 면밀히 관찰하십시오. 고통으로부터 벗어나려면 어떻게 고통이 생성되는지부터 알아내야 합니다. 고통을 우직하게 견뎌내면서 그 본성을 꿰뚫어, 고통이 자신의 일부가 아니라 단지 무상하고 불만족스럽고 실체가 없는 것일 뿐임을 통찰하십시오.
이처럼, 고통을 넘어서서 모든 현상들의 진정한 공성(空性)을 간파하려면 용맹정진이 필수적으로 요구됩니다. 그리하여 삼라만상의 공성을 직접 체험하게 되면 비로소 적멸(寂滅)의 지고지순한 행복이 도래하게 될 것입니다.
진리의 길은 실상과 허상을 가늠하는 올바른 알아차림을 연마하는 과정이며, 담마는 우리를 일상적 삶 속의 진리로 환원시켜주는 ‘마음의 균형(均衡)’임을 유념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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