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를 코앞에 둔 지금도 한국 사람치고 '양반'아닌 사람, '양반'아닌 집안은 없다. 혼담이 오갈 때는 모두가 양반이요, 모두가 '뼈대 있는 집안'이 된다.
만백성이 모두 벼슬을 했을 리는 없으니까, 결국 뼈대있는 양반집안이라면 배움이 있고 교양이 있는 집안을 뜻할 것이라고 좋게 해석할 수도 있다. 그 '배움'이란 무엇인가?
『격몽요결』은 율곡이 청소년을 위해 지금으로부터 4백14년 전 펴낸 책이다. "처음 배움에는 먼저 반드시 듯을 세워야 한다."는 말로 시작되는 '입지'로부터 공부하고 처세하는 데 이르기까지 모두 10개 항목에 걸쳐 청소년을 일깨우고 있다.
율곡은 그 서문에서 이렇게 입을 연다.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 학문이 아니면 올바른 사람이 될 수가 없다." 그러니까 사람이 되려면 배우고 깨우쳐야 된다는 것이다.
율곡이 학문에 앞서 '듯을 세우라'는 것은 '나도 성인이 되리라고 마음 먹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의 전통이었다.
그래서 가장 큰 욕은 "무식한 놈"이 아니면 "배우지 못한 놈"이었다. 다시 말해서 사람으로 대접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란 뜻이다. 예를들면-.
1894년 동학군을 이끌고 전주를 점령한 전봉준은 부패한 척족 세도 정치를 규탄하는 방문을 남문에 서붙이고, 초토사 홍계훈의 의 실책과 무능을 폭로했다. " ·······집권 대신들은 모두가 외척인데 주야로 하는 일이란 오로지 자기의 배만 부르게 하는 일이고······ 초토사 홍계훈은 본래가 무식한 사람이라, 동학의 위세를 두려워하면서도 부득이 출병했다···." 그는 민비의 심복으로 전라병사였다. 신식 소총과 야포 그리고 기관포로 무장한 정예부대를 거느리고도 그는 동학군과 맞서 싸우기를 피해 다녔었다. 그를 전봉준은 '불학무식한 놈'이라고 한마디로 비웄었다.
'무식한 놈'이 치욕적인 욕이라면, 또한 스스로를 낮출 때 쓰는 최고의 겸손의 말이 될 수도 있다. '제가 원래 배움이 없습니다.'는 말보다 더한 겸손으 없을 것이다.
그만큼 우리의 전통은 배움을 인간의 가장 중요한 요건으로 쳐왔다. 소위 '뼈대있는 사람'이나 '뼈대있는 집안'이란 그러한 배움, 또 그러한 배움이 가져오는 '교양'이 있는 사람과 집안을 말하는 것이다.
그처럼 뼈대있는 집안의 교양있는 사람이란 어떤 사람인가?
'뼈대있는 집안'이란
인조임금 때 정승을 지낸 남이웅은 새로 맞은 손자며느리가 절을 올리는 데 옷이 너무 화려하다고 해서 갈아입게 하고서야 절은 받았다. 남이웅의 집안은 대대로 검소하고 사치하지 않은 것을 가풍으로 삼아 엄하게 재켰다. 그래서 손자며느리도 처움부터 이렇게 닥달햇다.
이나라의 교양있는 사람들은 근검·절약하고, 청빈을 당연한 미덕으로 생각햇다. 그래서 청빈을 자랑하지 않앗다.
선조임금 대 이안눌은 청백리로 뽑혔다. 그는 말햇다. "내가 고을의 수령으로 어찌 허물됨이 없었겟는가. 다만 부인이 집안을 다스릴 줄 몰라 옷이나 음식·거처 등이 남들처럼 좋지 못했을 뿐인데, 사람들이 나를 잘못보고 청백리라 하니 부끄럽기 짝이 없는 일이다."
'황금 보기를 돌멩이 보듯 하라'고 해서, 돈을 천하게 보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선조임금의 따님 정휘 옹주의 남편이었던 유정량은 도량이 있고, 재주도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이재에 밝아 물건 값이 오르고 내리는 것을 미리 알아, 하인들을 시켜 비쌀 대 팔고 살 대 사들여 이익을 보게 했다. 이렇게 해서 모은 쌀이나 베는 자기가 호강하는 데 스지 않고, 친척 중에 가난한 자가 잇으면 나누어 주었다. 또 나라에서 받는 녹봉, 그러니까 월급으로 관혼상제 때 도와 주는 일이 많았다. 그가 보내주는 곡식으로 먹고 사는 사람이 70여 집이나 됏다 한다. 그는 남을 돕기 위해 돈을 모으는 그런 사람이었다.
근검 절약하고 돈 앞에 탐욕하지 않았을 분 아니라, 또한 '힘'앞에서 떳덧한 것이 아 나라의 교양인이었다.
효종임금 4년에 훈련대장이 됏던 이완의 집은 낙산 밑에 있었다. 같은 동네에 효종임금의 동생인 인평대군의 집이 이썽ㅆ다. 이완은 훈련대장으로 임명되자마자 황급하게 안국동으로 이사갓다. "장신이 어찌 하루인들 왕자와 같이 우웃에 살까보냐."고 말했다한다.
'높은 사람'의 사돈의 팔촌까지도 줄을 대어 이권놀음을 하는 요즈음 사람들과는 딴 판이었다.
교양없는 졸부 대량생산
'양반' 좋아하는 한국사람들. 그래서 낯선 사람 보면 '이 양반'이요, '저 양반'이라 부른다. 넥타이깨나 매면 모두 양반이요, '개처럼'벌었는지 '정승처럼'벌었는지 몰라도 돈푼이나 있으면 목에 힘주고 뼈대있는 집안의 뼈대있는 사람 행세를 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우리의 진짜 뼈대잇는 집안의 뼈대잇는 사람이란 절제와 떳떳함을 존중하는 교양인을 가리킨 말이었다.
그린벨트 안에 감쪽같이 아방궁같은 별장을 짓고, 몇천만원 아니면 억대의 외제 승용차를 굴리고, 철따라 골프채 들고 해외 나들이를 즐기고, 외제 세간살이에 외제 옷에 외제 음식을 즐기는 그런 사람을 '양반'이요 뼈대있는 집안의 뼈대 있는 사람이라고는 하지 않았다.
거꾸로 '불학 무식한'사람이요, 양반이 아닌 '상사람'이라 했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 세상 좁은 줄 모르고 활개치고 다니는 것은 '고도성장'이네 '중진국'이네 '선진조국'이네 하는 사이에 생긴 일이다.
해방에서 6·25전후까지만 해도 이 나라의 지도층은 전통적인 교양을 존중하는 그런 사람들이었다. 30년 가가운 군사통치는 그런 전통을 뿌리째 흔들어 놓고 말았다. 군사통치가 가져온 가장 큰 비극은 전통을 깡그리 무너뜨리고, 권세와 황금의 노예가 돼버린 새로운 '졸부'들을 대량생산해 낸 것이다.
70년대에 일기 시작한 '땅투기'바람을 보고 사람들은 걱정했었다. 투기로 돈벼락을 맞는 사람들이 있다면 누가 땀흘려 일하겟느냐고. 그 대 그 걱정이 바로 지금 우리 눈앞의 현실이 됐다.
요즈음 젊은이들이 힘든 일을 싫어한다고 해서 큰 문제가 되고 있다. 공장마다 일손이 모자라 기계가 서있다 한다. 이대로 간다면 이 나라의 경제가 어떻게 되겠느냐하는 위기를 걱정하는 소리가 크다.
이제 와서 어떻게 할 것인가? 대답은 간단하다. 먼저 '가진 사람들'이 정신을 차려야 한다. 기득권을 안내놓겠다고 악을 쓰면서 기득권의 돈방석을 유지할 수는 없다. 가진 사람들이 먼저 졸부놀음이 창파한 줄 개달아야 한다.
세계의 어느 나라 어느 민족이나 근검·절약하지 않고 발전한 나라는 없다. 그것은 만고의 진리다. 부처님은 보살마하살의 계율을 설하면서 이렇게 가르친다. "···불을 켜 놓고 눕거나, 집과 농장을 마련하거나··· 금은 보석을 마련하지 말라."는 계율이다(『열반경』권 11「聖行品」제7의 1).
양반이나 벼대 좋아하기 전에 그에 어울리는 절제의 교양을 배울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