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 불법(佛法)이 있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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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 불법(佛法)이 있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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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8.03.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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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와 과학 - 천문학
▲ 28,000광년 떨어진 구상성단. 나이는 약 130억 년이며 수백만개의 별이 모여 공 모양의 집단을 이루고 있다.

별은 거대한 성운에서 수십 개 내지 수백만 개씩 집단으로 탄생하며, 이를 성단(星團, 사진 참조)이라고 한다. 마치 인간이 집단을 이루며 사회생활을 하듯이 별들도 집단 내에서 서로 연기의 고리에 얽혀 역학적 에너지를 주고받으면서 살아간다. “사람은 태어날 때는 자유이다. 그러나 그 후 도처에서 쇠사슬로 묶여진다.”라는 루소의 말처럼, 이 세상 만물은 서로 간에 연기적 관계로 이어져 있기 때문에 절대 독립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불법의 근본 원리인 연기관계가 별들 사이에서 어떻게 작용하는가를 알아보자.
성단이 탄생될 때 별들은 다양한 크기의 질량을 가지며 이들은 성단 내에서 마구 섞여 돌아다닌다. 두 별이 가까이 지나게 되면 서로 끌어당기는 인력 때문에 운동 속도가 변한다. 이때 질량이 큰 별이 큰 인력을 미쳐 작은 별의 운동 속도를 높이고 자신의 운동 속도는 줄어든다. 이런 과정에서 별들은 외부에서 인력이 미치면 무위적(자연적)으로 반응하며 스스로 제어하고 통제하면서 반작용을 한다. 이와 같은 무위적 연기 작용의 결과로 질량이 큰 별은 성단의 중앙부로 모여 성단 전체를 구속시키는 역할을 하고, 작은 별은 큰 속도로 움직이며 주로 성단의 외곽에 많이 분포하면서 성단에 활성도를 높인다. 이러한 과정에서 질량이 다른 별들 사이에 에너지가 같아지는 에너지 등분배가 일어나면서 성단은 안정된 역학적 평형상태에 이른다.
인간사회에서도 주고받음의 연기 작용이 끊임없이 일어난다. 그런데 별과 달리 인간의 경우에는 아집(我執, 자신에 대한 집착)과 법집(法執, 외부 대상에 대한 집착) 때문에 외부 반응에 대해 무위적으로 반응하지 못하고 자아중심적인 면에서 유의적으로 반응한다. 그래서 항상 자기 쪽에 유리한 이기적 방향으로 연기관계를 이끌어 가려고 한다.

만물의 평등성을 이끄는 원리, 연기(緣起)
오늘날 우리 사회는 과연 이러한 평등사회를 이루고 있는가? 만약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불법을 어기고 있는 것이다. 불법의 근본인 연기관계는 만물의 평등성을 이끄는 원리이다. 만약 어떤 집단에서 불평등이 존재한다면, 이것은 상호 의존적 연기관계가 제대로 잘 이루어지고 있지 않은 것이다.
성단 주위에 큰 집단이 지나가면서 강한 인력을 미치면 성단 내 작은 별들이 밖으로 끌려 나가 성단을 이탈하게 된다. 그러면 성단의 총 에너지가 감소하므로, 에너지를 증가시키기 위해 성단은 수축한다. 결국 성단은 구성원이 바깥으로 이탈하면 더 이상의 이탈을 막기 위해 수축으로 구속력을 증가시키며 안정을 되찾는다. 인간 사회는 어떤가? 만약 어떤 집단에서 구성원이 집단을 이탈할 때, 더 이상의 이탈을 막기 위해 집안 단속을 하지 않는다면 그 집단은 불안정해지면서 파괴될 것이다. 이런 점에서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구조조정에 의한 강제 퇴출은 지극히 불안정한 사회를 만들어 가고 있는 셈이다.
한편 집단이 처음 탄생될 때는 구성원 각자가 고유한 특성을 가지게 됨으로써, 구성원 모두가 다양한 개성을 가지게 된다. 이러한 상태에서 구성원이 서로 가까이 만나면서 적극적인 연기 작용을 계속 이어가다보면, 에너지를 주고받는 과정에서 개체의 고유한 정체성(正體性)이 점차 사라지면서 이완되며 보편성을 띠게 된다. 이것은 모난 돌이 흐르는 강물 속에서 다른 돌과 충돌을 계속 하다보면, 점차 모가 깎여 돌이 둥글게 되면서 과거의 모습이 사라지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불법에서 말하는 만물의 무자성(無自性)이란 바로 적극적이고 연속적 연기 작용을 통해서 만물이 제법무아(諸法無我)로 정체성이 사라지는 보편적인 이완상태에 이름을 뜻한다. 깨달음의 경지에 이른 무심, 무념도 바로 이러한 연기적인 무위적 이완상태에 해당한다.

별의 진화와 깨달음의 세계
“자기가 곧 타자(他者)이고, 타자가 자기이다. 자기가 곧 타자이기에 자기가 정립되지 않고, 타자가 곧 자기이기에 타자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타자와 자기가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하는데 그것은 동시에 현현한다.”라고 현수 법장이 말했다. 이것은 연기관계가 올바르게 이루어지면 자타(自他)의 구별이 없음을 뜻한다. 예를 들어 한 가정이 이완되어 각자의 존재가치가 동등한 경우에는 부모를 보면 자식을 보는 것 같고, 자식을 보면 부모를 보는 것과 같게 된다. 이런 현상을 오늘날 우리의 모든 가정에서 볼 수 있는가? 집단의 평등성과 이완성이라는 불법이 별의 세계에서는 잘 이루어지는데, 인간 사회에서 잘 이루어지지 못함은 번뇌 망상을 일으키는 염오(染汚)의 생동심 때문이다.
무거운 돌은 가장 낮은 곳에 머무르고, 물은 가장 짧은 거리를 따라서 흐른다. 이것은 무위적 연기 작용의 결과이다. 즉 연기관계에서 만물은 외부 반응에 대해 최소 에너지로 반응하고 또 항상 가장 낮은 에너지 상태에 머물려고 한다. 이러한 특성을 최소작용의 원리라 하며, 이것은 별을 포함한 만물의 연기적 존재방식이다. 인간의 경우에 가장 낮은 에너지 상태는 고요한 적멸에 머무는 정(定)에 해당하고, 최소 에너지로 반응하려면 엄격한 계율[戒]과 자연의 연기적 이법을 바르게 이해하는 반야지혜에 따른 혜(慧)가 있어야 한다. 따라서 올바른 불법 수행은 계·정·혜를 만족하는 최소작용의 원리를 따라야 한다.
연기관계에 따른 만물의 변화는 고(苦)에 해당하며, 변화의 축적이 집(集)이고, 이것에 따른 기존 질서의 소멸이 멸(滅)이고, 멸에 따른 새로운 질서의 창출이 도(道)이다. 이것이 우주적 사성제이다. 이러한 사성제는 최소작용의 원리를 따르며 만물의 생주이멸(生住異滅)과 성주괴공(成住壞空)을 주재한다. 무위성, 평등성, 보편성 및 이완성을 이루며 진화해 가는 별의 세계는 집단 그 자체가 깨달음의 상태이다. 인간의 경우에는 고집멸도 사성제를 이루기 위해 팔정도를 닦으며 깨달음에 이르고자 한다.
여기서 만약 개인의 깨달음을 중시한다면 이는 연기법을 어기는 것으로 불법에 어긋난다. 『금강경』에서 세존과 함께 1,250인이 모두 깨달음에 이른 것을 경시해서는 안 된다. 불교는 타 종교와 달리 개인 위주가 아니라 연기적 공동체의 종교이다. 그래서 구성원 모두의 존재가치의 실현을 추구하는 것이 대승 불교의 근본 목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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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우 _ 우리나라 관측천문학의 개척자로 경북대와 서울대 천문학과 교수를 지냈으며, 한국과학기술원 한림원 정회원으로 우주관찰을 통해 실체적인 깨달음의 세계가 우주에 보편적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밝혀내는 데 평생을 보냈다. 저서에 『천문관측 및 분석』, 『은하계의 형성과 화학적 진화』, 『별과 인간의 일생』, 『별을 보면 법을 보고 법을 알면 별을 안다』, 『천문학자와 붓다의 대화』, 『천문학자가 풀어낸 금강경의 비밀』 등이 있으며 시집으로 『똥막대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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