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치 설날, 우리 설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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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치 설날, 우리 설날
  • 관리자
  • 승인 2008.03.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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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어유희(禪語遊戱) 2

경청도부(864~937) 선사는 어떤 납자와 이런 선문답을 남겼다.

여하시신년두불법(如何是新年頭佛法)고 _ _ _ _ 어떤 것이 신년 벽두의 불법입니까?
원정계조(元正啓祚)하니 만물함신(萬物咸新)이로다 _ _ _ _ 새해 아침 복을 여니 만물 모두가 새롭다.

벽에 걸려 있는 새 달력을 다시 한 장 넘겼다. 물론 2월에 있는 구정연휴 날짜를 확인하기 위함이다. 세간 사람들은 그날 모두가 때때옷입고 세뱃돈 받고 차례 지내고 성묘 하면서 제대로 된 명절이라는 느낌을 가질 것이다. 사실 신정이라고 해봐야 동해바다나 명산에 올라 ‘해맞이’를 마치고 나면 끝이다. 그냥 뜨뜻미지근하게 하루가 흘러간다.
한때 이중과세라고 하면서 위정자들이 끊임없이 설날을 신정으로 통일하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썼던 기억이 새롭다. 일제시대에도 그랬던 모양이다. 하지만 그 때는 “까치까치 설날은 어저께구요, 우리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라고 하여 구정을 지키는 것이 민족적 정체성을 지키는 일로 여겼던 시절이었다. 그렇게 한동안 푸대접 받던 구정이 언제부턴가 3일 연휴로 격상되었다. 구박하는 것도 문제지만 그렇다고 해서 너무 융슝한 대접을 하는 것도 어째 좀 캥긴다. 둘 다 양변에 걸려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경청 선사의 법문 날짜 역시도 신정이 아니라 구정이었을 것이다. 어쨌거나 신정이건 구정이건 신년의 상징코드는 새로움이다. 사실 다를 것도 없는데 뭔가 좀 새롭고자 하는 몸부림이라는 표현이 더 맞을 것이다. 그걸 공자는 “일년의 계획은 정초에 있다.”고 했던 것이겠지.
우리는 새해를 맞기 위하여 서너 번 정도 통과의례를 치루어야 한다. 그 이유는 나이를 한 살 더 먹어야 하는 현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 미적거리면서 최대한 늦추어 맞이하려고 하기 때문이 아닐까? 먼저 ‘작은 설[亞歲]’인 동지가 있다. 새알을 나이만큼 먹어야 한 살 더 먹는다고 여겼다. 밤이 가장 긴 날이니 이튿날부터 낮이 길어진다. 긴 어둠을 끝내고 밝음이 새로 시작되니 ‘설’이라고 불러도 무방하다. 다음은 신정이다. ‘제야의 종’소리를 들으면서 신년을 열어간다.
8년 전에 ‘밀레니엄’ 어쩌구저쩌구 하면서 유난을 떨던 기억이 새롭다. 금방이라도 뭔가 신세계가 펼쳐질 줄 알았는데, 그 해도 그렇고 그런 한 해로 마감되었던 것이다. 아무 것도 아닌 ‘말장난’임을 깨치는 데 열두 달이 걸린 셈이다. 역시 하늘 아래 새 것이란 없었다. 단기(檀紀)도 불기(佛紀)도 아닌 오직 서기(西紀)적 시간관의 허상임을 덤으로 알게 되었다.
동지와 신정을 거치고 나면 구정이 온다. 섣달그믐과 정월초하루는 시계와 날짜는 명확히 바뀌지만, 마음은 시간의 돈변(頓變: 몰록 바뀜)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러다보니 3단계를 거치면서 서서히 현실을 인정하게 된다. 하지만 그것도 서운했던지 마지막은 중언부언 ‘입춘’으로 마감한다. 추위와 어둠이라는 대단원의 막을 내린 신춘은 비로소 진짜 새봄을 실감나게 해주기 때문이다. 오래된 나뭇가지에 새싹 돋는 것을 보고 묵은 내 몸뚱이도 저렇게 새 순을 피워낼 것이라고 믿고 또 위로한다.
예전에도 섣달그믐날 밤은 눈썹이 희어질까봐 잠을 자지 않았고 집안 곳곳에 밤새 불을 밝혔다. 결국 묵은 해와 새해는 단절이 아니라 계속 이어짐을 성성적적하게 살피면서 보내고 맞이했던 것이다. 붉은 팥죽, 통알 삼배, 정초 기도, 입춘 부적 등 이 모든 것들이 탐진치(貪嗔痴) 삼독의 타파를 통하여 ‘묵은 범부’에서 ‘새 부처’로 나아가고자 하는 중생들의 발원이 담긴 또다른 수행방편인 것이다.
조선시대 계종학명(啓宗鶴鳴, 1867~1929) 선사가 신년을 맞이하며 남긴 선시는 이 모든 자질구레한 주절거림에 찬물을 확 끼얹는다. 그리고 ‘제발 헛소리들 그만 하라’는 매몰찬 일갈을 했다.

망도시종분양두 (妄道始終分兩頭)_ _ _ _ _ _ _ _ 묵은 해니 새해니 분별하지 말게.
동경춘도사년류 (冬經春到似年流)_ _ _ _ _ _ _ _ 겨울 가고 봄이 오니 해 바뀐 듯 하지만
시간장천하이상 (試看長天何二相)_ _ _ _ _ _ _ _ 보게나, 저 하늘이 무엇이 달라졌는가.
부생자작몽중유 (浮生自作夢中有)_ _ _ _ _ _ _ _ 우리가 어리석어 꿈 속에 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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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철 스님 _ 해인사로 출가했다. 해인사승가대학, 실상사 화엄학림, 동국대(경주)에서 경전과 선어록을 강의했다. 월간 「해인」 편집장과 조계종총무원 신도국장·기획국장을 거쳐 현재 재정국장 소임을 맡고 있다. 번역서에는 『선림승보전』 상·하(장경각 간)가 있다. 불교계의 여러 매체와 일간지 등에 깊이와 대중성을 함께 갖춘 글을 연재함으로써, ‘내공이 만만찮은 필자’라는 평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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