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꼭 30년 전 우리 조국이 다시 영광의 빛을 찾았을 때, 우리 해방동이들은 처음으로 이땅에 태어났다. 아슬아슬하게 움튼 해방동이의 싹들은 우리의 부모님들의 투쟁으로 이룩해 온 자유의 열매를 한아름 안아 받았다.
하지만 해방동이들의 30년이 그렇게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그동안 동족간의 처참한 싸움으로 엄마의 등에 업혀 피난길을 가야 헸었고 남북분단의 비극을 맛보아야 했으며, 많은 환난을 격어야 했다. 그러한 시달림 속에서 자라온 우리 해방동이 이기에, 우리의 조국과 부모님들은 힘찬 우리의 모습을 대견스러워 하고 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있다. 우리는 일제로부터 해방하던 날부터 참으로 해방된 줄 알았다. 혼란과 혼돈도 거의 끝난 줄로 알았다. 그런데 아직까지도 사라지지 않은 이 혼돈의 답답함은 어찌된 일인가? 우리 민족이 일제의 압박이라는 쇠사슬에서 벗어난지 30년이 지났는데도 또 다시 무엇이 있어서 우리를 이렇게 얽매이고 있는 것인가? 가난인가? 공산당인가? 외세인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그렇다. 가난과 공산당이 이렇게 얽어매는 것도 사실이다. 그밖의 환경이 우리를 가두어 놓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이 부분적으로 얽어매는 요인이 될 수 있을지언정 근본적인 이유는 될 수 없다. 그 근본적인 사슬은 우리 안에 있다. 안에 있으므로 볼 수가 없다. 그러면서도 보이는 쇠사슬보다 더 지독하게 우리를 혼돈의 구렁텅이로 몰아 넣는다. 우리를 썩게 만든다. 무력하게 만든다. 멍청하게 만들고 겉모양의 사람과 그 내용을 다르게 만든다. 역사라든가 동포의식도 없이 혼자만의 현시 현전(現時現前)의 안락만을 추구하게 된다. 여기서 아사(餓死)와 외화도피가 같은 지면에 공존할 수 있는 것이다. 그 근원은 바로 미혹무명이다. 이 미혹에서 조국과 동포를 염두에 두지 않는 소아의 집착이 나오고 간탐심, 번뇌, 혼돈으로 벌어진다. 이 무명으로부터 화합이 아닌 민족분열이 싹트는 것이다.
우리 해방동이 불자가 해야 할 일은 이 미혹으로부터 우리를 해방시키는 일이다. 미혹무명이 발붙일 곳이 없도록 우리의 마음 구석구석에 법륜을 굴리고 지혜의 빛을 비추는 일이다. 이 무명으로부터의 해방이야말로 참다운 해방이 될 것이며, 어느 누구도 다시 얽어맬 수 없을 것이고, 조국의 모든 동포가 다 해방동이가 될 것이다.
우리 해방동이는 모두 해방을 당한 것이다. 타력에 의해서 물리적인 해방을 얻은 피해방자라는 말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남을 해방시키는 능동의 해방자가 되어야 한다. 우리 동포를 미혹과 번뇌로부터 해방시키는 보살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의 모든 불자들은 다 같이 불광의 횃불을 든 해방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모든 불자가 먼저 깊고 확실한 신념을 가지고 정법으로 알차게 수행하며, 시처(時處)를 막론하고 보다 어려운 이들의 반려가 되고 도반이 되어 그들과 고락을 같이 나누면서 위로하고 용기를 북돋아서 필경에 대안적으로 이끌어 가겠다는 대원력을 세워야 할 것이다. 이처럼 미혹무명에 불광을 비추어 마음을 해방시키는 것이 참 해방이 될 것이다. 우리의 국토도 여기에서 영화로울 것이며 조국 광복의 영광을 참으로 누릴 수 있을 것이다.
해방동이 불자의 사명
- 신성도
- 승인 2008.02.05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특집/해방동이불자의 현주소
저작권자 © 불광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