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나」라고 생각하는 그 「나」는 참 「나」가 아니요 「거짓나」이다. 아주 고통스럽고 허망하고 미혹하고 깜깜한 「나」인 것이다. 그런데 그 「거짓나」의 근원에는 아무 걸림도 없고 죽음도 없고 고통도 없고 밝고 밝은, 자유자재한 「참나」가 있다. 우리는 잃어버린 「참나」를 되찾아서 자유스럽게, 자주적으로 살아야 한다.
우리가 일제의 압박을 받다가 해방이 된 뒤 외국의 문명을 너무 맹목적으로 수입하지 아니했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주체성을 가지고 외국 문명을 수입해 왔다면, 무조건 외국 것이 좋은 줄 만 알고 맹목적으로 받아들이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우리 조상 때부터 내려온 것도 좋은 것이 있으면 이것을 잘 살리고 외국에서 좋은 것이라도 그것을 비판해서 버릴 줄 알고 좋은 것이 있으면 잘 취해서 발전 시켜야 주체성이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맹목적으로 외국 문물을 들여온다고 하는 것은 주체성이 있다고 할 수 없다.
그러나 오늘날에 있어서는 우리가 많이 깨어서 지금은 외국 문물을 덮어놓고 좋다는 것도 아니고 좋은 것은 좋고 나쁜 것은 나쁜 것으로 가릴 줄 알며 우리의 전통도 좋은 점은 좋다고 깨달아서 이것을 더욱 발전시키지 않으면 안된다는 각성을 갖게 되었다고 본다. 우리 겨레도 이제 이러한 훌륭한 정신이 발전해 나가는 것이 보여 다행스럽게 생각된다.
우리 불교의 가르침은 아까 말한 바와 같이 「거짓나」를 버리고 「참나"」자기 본래 면목을 알아야 하는데에 있다. 이 「참나」-우리의 근본 마음, 이 자리는 허공과 같다고 옛 조사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허공이란 것은 끝이 없고 아무 걸림이 없이 텅 비어 있으면서 삼라만상이 그 가운데 갖춰져 있다.
우리는 이 「참나」-우리 근본 마음을 알고 「참나」답게, 「참사람」답게 살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 개인 욕심이나 삿된 마음을 가져서는 안된다. 남이야 죽든 말든 나만 잘 살면 된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불법을 믿는 사람은 자기란 것을 내던져 버리고 여러 사람을 위하야 살아야 한다. 자기란 것, 거짓 나란 것을 버리고 여러 사람을 위한 일이 성취되도록 힘써야 한다.
우리들은 바깥으로 오욕에 끄달려서 자기를 잃어버리고 일생을 산다. 이렇게 헛되이 인생을 산다면 이 세상에 태어난 보람이 없고 참다운 자기 정신을 가지고 산다고 할 수 없다. 우리들은 재물을 잃게 되거나, 명예가 조금이라도 손상되면, 어쩔줄을 모르고 괴로워 하면서도 「자기의 참 나」는 잃어버리고도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노닥거리며 산다. 우리 인간에게 재물도 귀중하고 명예도 귀중하지만 자기가 죽는다고 하면 그런 것들은 소용이 없는 것이다.
자기가 죽는다고 하면 재물도 소용이 없고, 명예도 소용 없고 자기 권속도 소용 없고 저 세상으로 혼자가고 마는 것이다. 이와 같이 참 나를 잃어 버리고 깜깜한 마음으로 거짓 나를 「참나」로 생각하고 여러가지 욕망에 끄달려 해메이는 사람은 자기 정신을 잃고 사는 미친 사람과 꼭 같은 것이다. 그러하니 우리는 제 정신을 차려서 「참 나」를 깨달아 참으로 밝고 맑은 그 자리에서, 허공에서 사지를 움직이듯 자유자재하게 자주적으로 살 수 있도록 힘써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