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초 중국 간쑤성(甘肅省)의 작은 오아시스 도시 돈황(敦煌)에서 일어난 발견은 실크로드 문화사 연구에 일대 혁명을 일으켰다. 1900년, 도교 승려 왕원루(王圓籙)가 우연히 발견한 막고굴(莫高窟) 17번 동굴(藏經洞)에서 5만여 점에 달하는 고문서와 예술품이 출토됐다. 학계의 정설에 따르면, 이 동굴은 11세기 초 봉인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발견의 학술적 가치를 최초로 인식한 이는 영국의 고고학자 오렐 스타인(Aurel Stein)이었다. 1907년 그의 첫 방문으로 시작된 일련의 ‘탐험’은 사실상 문화재의 대량 유출로 이어졌다. 스타인에 이어 1908년 프랑스의 동양학자 폴 펠리오(Paul Pelliot)가 이 장소를 방문했다. 중국어와 고전 한문 및 중앙아시아 언어에 정통했던 펠리오는 3주에 걸쳐 문서들을 세밀히 검토하며 가치 있는 자료들을 선별했다.
이들이 수집한 자료는 현재 각각 ‘스타인 컬렉션’과 ‘펠리오 컬렉션’으로 불리며, 영국 국립 도서관(The British Library)과 프랑스 국립 도서관(Bibliothèque nationale de France)에 주로 소장돼 있다. 루이 드 라 발레 뿌셍(Louis de La Vallée Poussin)과 마르셀 랄루(Marcelle Lalou)의 목록 작업은 이 방대한 컬렉션의 내용을 개괄적으로 파악할 수 있게 해줬다.
돈황 문서 중 티베트어 필사본은 특히 주목할 만하다. 이 문서들은 7세기부터 11세기에 이르는 티베트의 역사, 문화, 종교의 발전 과정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일차 사료다. 특히 티베트 제국 시기(7~9세기)의 자료들은 당시 티베트의 정치, 사회, 문화적 상황을 이해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티베트어 문자 그리고 필사본
티베트 전승에 따르면, 쏭짼감뽀(Srong btsan sgam po, 617?~649) 왕 때 퇸미 쌈보타(Thon mi Sambhoṭa)가 인도의 굽타 문자를 토대로 30가지 자음과 4가지 모음으로 이루어진 티베트어 문자를 고안했다고 한다.
30가지 자음과 4가지 모음이 결합해서 하나의 음절을 만든다. 티베트어에서는 중심이 되는 글자 위 혹은 아래에, 또는-그리고- 앞 혹은 뒤에 다른 문자를 겹쳐서 음절을 제작한다. 예를 들면, ‘마음’이라는 의미의 티베트어 ‘쎔(སེམས་)’은 중심이 되는 글자 ‘싸(ས་)’에 모음 ‘에( ེ)’가 부가되고, ‘뒷글자(མ་)’와 ‘끝글자(ས་)’가 결합해서 만들어진다. ‘여래(如來)’도 이와 같이 티베트어 정자체로는 ‘དེ་བཞིན་གཤེགས་པ་’라는 4음절로 이뤄지고, ‘데신쎅빠’라고 읽는다. 이 말은 ‘그와 같이 오신 분’이라는 의미다.
이러한 티베트 문자를 조합해서 8세기 후반부터 산스크리트어 등으로 제작된 경전이나 논서를 티베트어로 번역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경전 번역의 초기 형태를 바로 돈황 출토 티베트어 필사본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티베트어 문자를 바탕으로 필사된 돈황 출토 티베트어 사본들은 그 양식의 다양성만으로도 문화 교류의 흥미로운 역사를 들려준다. 주로 세 가지 형식, 즉 뽀티(Pothi), 두루마리(Scroll), 콘서티나(Concertina)가 사용됐는데, 각각은 지식을 보존하고 전달하는 독특한 방식을 보여준다. 특히 종이의 재질과 제조 방법에 대한 연구는 실크로드를 통한 기술 교류의 역사를 밝히는 데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그리고 고문서학을 통해 각 필사본의 제작 연도를 추정할 수 있게 됐다.
뽀티(Pothi): 인도 문화의 영향
뽀티는 고대 인도의 야자나무 잎이나 자작나무 껍질로 제작된 필사본 전통에서 유래한 형식으로, 산스크리트어 ‘pustaka(책)’에서 그 이름이 유래했다.
뽀티 형식의 돈황 출토 티베트어 필사본은 주로 직사각형 모양의 두꺼운 종이를 사용하며, 주로 검은색 먹으로 경전이나 논서의 내용을 필사했다. 필사는 양면에 되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본의 중앙이나 양쪽에 구멍을 뚫어 이 구멍으로 끈이 지나면서 각 장을 묶는 것이 일반적 특징이다. 하지만 사본에 구멍이 없는 경우도 간혹 존재한다. 텍스트는 가로로 쓰여 있으며,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읽어 내려가면 된다. 일반적으로 한 면에 4~8줄의 내용이 담긴다. 물론 그 이상의 줄이 담긴 사본도 존재한다.
뽀티 형식의 사용은 티베트가 인도 전통을 충실히 따르면서도 자신들의 필요에 맞게 변용했음을 보여준다. 뽀티는 불교 경전, 논서, 의례 안내서 등을 기록하는 데 주로 사용됐으며, 승려들의 학습과 이동성을 고려한 실용적인 디자인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두루마리(Scroll): 중국 문화의 영향
두루마리는 긴 종이를 둥글게 말아 만든 형식으로, 티베트에 중국 문화의 영향을 보여주는 증거다. 돈황에서 발견된 티베트어 두루마리는 대부분 8~11세기 사이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필사본의 크기는 다양하지만, 일반적으로 너비 20~30cm, 길이는 수 m에 달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폴 펠리오가 수집한 티베트어 필사본 1287번은 긴 직사각형(26×6m 20cm) 두루마리 형식인데, 이 필사본 앞면에는 ‘고대 티베트 연대기’를 담고 있으며 티베트 초기 역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뒷면에는 한역 구마라지바의 『묘법연화경』 중 일부 품이 함께 수록돼 있다. 앞면에는 티베트 연대기가, 뒷면에는 대승 경전인 『법화경』이 한문으로 수록돼 있다는 점이 이 필사본의 특이한 측면이라 할 수 있다.
콘서티나(Concertina): 접이식 책, 휴대용 책
콘서티나는 종이를 지그재그 모양으로 접은 형태로, 아코디언과 비슷한 모양 때문에 ‘아코디언 책’이라고도 불린다. 이 형식은 9세기경 중국에서 처음 개발돼 티베트를 포함한 주변 지역으로 전파됐다. 콘서티나의 크기는 다양하지만, 일반적으로 접혔을 때 20~30cm 길이, 펼쳤을 때 몇 m에 이른다.
이 형식의 가장 큰 장점은 휴대성과 유연성이다. 접혀있을 때는 작고 가벼워 이동하기 편리하며, 필요한 부분만 펼쳐 볼 수 있어 사용이 편리하다. 이러한 콘서티나 형식은 오늘날의 스마트폰 같다. 필요할 때 꺼내 볼 수 있고, 다 보면 다시 걸망에 넣을 수 있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주로 불교 경전, 의례 텍스트 등에 사용됐다. 이는 두루마리와 책자 형태의 중간 단계로, 문서 형식의 진화를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이기도 하다.
돈황 지역에서는 크게 본다면 위에서 언급한 세 가지 양식에 맞춰서 경전이나 논서 등이 유통됐다.
돈황 출토 티베트 필사본: 과거의 지혜를 읽는 열쇠
돈황에서 발견된 티베트어 필사본들은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떠나는 열쇠 같다. 우리가 잘 아는 『금강경』이나 『법화경』, 『입보리(/보살)행론』 등의 옛날 버전을 볼 수 있다. 이 돈황 사본을 지금의 경전과 비교해보면, 붓다나 대승보살의 가르침이 어떻게 전승되고 확대됐는지를 알 수 있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 돈황 출토 티베트어 필사본 뭉치 중 『입보리(/보살)행론』을 언급하고자 한다. 드용(J.W. de Jong) 교수와 사이토 아키라(斎藤明) 교수가 지적한 것처럼, 현존하는 산스크리트어 사본이나 한문 번역본, 후대의 목판 인쇄물인 티베트대장경에 수록된 번역본, 그리고 티베트어 번역본에서 중역된 몽골어 번역본보다 더 오래된 내용을 보존하고 있다고 추정할 수 있는 텍스트가 바로 돈황 출토 『입보리(/보살)행론』이다.
결국 이 돈황 사본을 제외한 나머지 사본과 번역본들이 후대에 점점 더 부가된 내용들이 첨부됐다는 것인데, 내용적인 측면에서도 차이점들이 적지 않으며, 저자명까지도 다르다는 점에서 우리들의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이 논서의 저자 이름은 산스크리트어본에 따라 ‘샨티데바(Śāntideva, 대략 650~700년경)’로 흔히 알려졌다. 티베트대장경 번역본에서는 ‘시왈하(Zhi ba lha)’로 표기된다. 하지만 스타인과 펠리오가 돈황에서 발견한 사본에는 티베트어로 ‘롭뾘(slob dpon, ‘스승’을 의미) 로되미새빠(bLo gros myi zad pa)’로 기록돼 있다. 산스크리트어로는 ‘아짜리야(ācārya) 악샤야마띠(Akṣayamati)’로 표기된다.
또한 게송 및 장(chapter)의 수도 차이가 난다. 산스크리트어본과 티베트대장경 수록 『입보리(/보살)행론』에서는 전체 913개의 게송이 10장으로 구성돼 있지만, 돈황 필사본에서는 700개 남짓한 게송이 9장으로 이뤄져 있다.
특히 『입보리(/보살)행론』의 ‘자신과 타인을 평등하게 바라보기(parātmasamatā)’라는 명상 수행법이 돈황 필사본에서는 「정진품」에서, 후대의 현존하는 산스크리트어본과 티베트대장경 수록 번역본 등에서는 「선정품」에서 집중적으로 설명되고 있다.
일종의 대승 경전의 성격을 띠는 독창적인 논서인 이 문헌에서는 대승보살이 반드시 수행해야 할 중요한 실천덕목 중의 하나인 ‘자신과 타인을 차별 없이 평등하게 바라보기’라는 명상 수행법이 특별한 ‘선정’ 상태에서 수행해야 할 덕목이 아니라 부단한 ‘정진/노력’의 문제임을 초기 돈황 필사본에서는 명백히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후대에는 이 명상 수행법이 점진적으로 현재 유통되고 있는 버전처럼 ‘선정’의 문제로 귀결됐음을 이 돈황 필사본의 설명을 통해 알 수 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인도의 명상 수행법이 변하지 않고 고정적인 모습으로 티베트나 동아시아로 전파된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변화와 수용 및 재해석을 통해 새롭게 산출됐음을 이 필사본의 내용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돈황 출토 티베트어 필사본들은 단순한 ‘오래된 필사본 형식의 책’이라든가 ‘낡고 해진 구닥다리 유산’이 아니다. 이 사본들 뭉치는 우리의 과거와 현재를 잇는 소중한 다리이자, 끊임없이 변화하고 재창조되는 문화 교류의 생생한 현장을 내다볼 수 있는 창문이라는 점을 아주 짧은 글을 통해서나마 엿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차상엽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동서사상연구소 전임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며, 금강대학교 불교문화연구소 조교수를 역임했다. 유식 및 여래장사상을 중심으로 인도·티베트불교 문헌을 연구해왔으며, 현재 돈황 필사본들을 연구 중이다. 논문으로는 2013년 하버드대학교 동양학총서(Harvard Oriental Series) 75권인 ‘The Foundation for Yoga Practitioners’에 수록된 “The Yogācārabhūmi Meditation Doctrine of the ‘Nine Stages of Mental Abiding’ in East and Central Asian Buddhism” 등 다수가 있으며, 번역 및 역주서로는 『티벳문화입문』, 『티벳밀교』, 『옥 로댄쎄랍의 보성론요의 여래장품』, 『라싸 종교회의』(공역)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