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0여 개의 사원이 있는 크메르 제국의 수도였던 시엠랩 지방은 대체로 힌두이즘이 중심을 이루고 있지만 오늘날의 불교도 매우 융성하여서 곳곳에서 스님들이 사찰을 운영하고 교육을 담당하거나 생활의식을 집전하고 있다.
15세기 중반에 크메르인들은 수도를 지금의 프놈펜이로 옮기게 되었고 이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유적들은 힌두교와 전쟁에 의해 파괴되고 정글에 덮혀 갔지만 불교의 스님들에 의해 대부분적으로나마 보호되고 성스런 사원으로 유지되어 왔다. 그중에서도 가장 크고 유명한 ‘앙코르왓트’는 프랑스․폴란드 인들에 의해 대부분 복구되었으며 ‘앙코르 톰’ 지역은 아직도 복구사업이 계속되고 있다. 수많은 사원 중에서 가장 불교적이고 장엄한 예술성을 보여주는 ‘앙코르 톰’은 관세음보살의 두상 조각이 성문 입구 곳곳에 세워져 사방 10㎞의 넓은 성 자체가 바로 관세음의 나라임을 보여준다.
지난 호에 소개한 바이욘 사원은 이 앙코르 톰의 중앙 숲 속에 45m의 높이, 사방 146~160m 넓이의 우뚝한 석조건축물로 12세기 말에 세워졌다. 8백년의 역사는 생각보다 비참하다. 쌓여진 탑은 허물어질 듯 틀어졌고 주위는 부숴진 돌조각과 떨어져나온 불상의 손목부분 등이 장작 쌓듯 수부하여 5백 년간 계속된 전쟁과 파괴의 역사를 이야기한다.
입구의 회랑을 지나 1층 2층까지는 힌두교적이 조각을 만난다. 그것은 이 사원이 초기에는 힌두사원으로 건축되다가 당시의 왕인 자야바르만 7세가 불교에 귀의하며 그 목적을 바꾸어 불교사원으로 건축함으로써 빚어진 결과이다. 좁은 복도로 이러지는 1,2층을 지나 3층으로 오르면 탁트이게 넓은 테라스 같은 회랑이 햇빛 아래 펼쳐진다. 무려 1백 72분의 관세음보살이 꽃처럼 펼쳐진다.
49개의 탑이 숲처럼 울창하고 이끼 낀 돌과 돌이 교묘히 쌓여져, 오르다가 보면 3~4m의 자비스런 관세음의 얼굴이 4면에 크로즈업 되고그리고 봉오리 오므린 연꽃으로 바뀌어 허공과 닿는다. 중아의 45개 높이의 탑, 수미산을 중심으로 펼쳐진 이 만다라는 실로 장관이다. 한꺼번에 12분 이상의 관세음을 볼 수 있으며, 한바퀴 테라스를 돌며 전후 좌우 위아래로 어느 곳에서도 보고 만지고 합장할 수 있다. 하루가 가고 이틀이 가도 이곳에서의 기록과 촬영은 통 지루하지 않다. 꼼같은 동네, 관세음의 나라에 있는 행복스런 감정이 온몸에 충만된다.
가까이 우거지 숲을 헤치고 태양이 솟아 오를라치면 밤새 검은 빛으로 잠자던 이 세계는 중앙탑 꼭대기부터 서서히 황금빛으로 물들고 그리고 아래로 퍼져 내려오다가 관세음의 얼굴을 활짝 펼치며 금빛 미소로 절정을 이룬다. 아, 그 행복함이라니. 불타의 제자가 된 기쁨이라니, 위대한 크메르의 영혼이여.
바이욘의 1층 회랑은 지붕이 없어진 기둥으로 둘러싸여 있다. 1.2㎞에 이르르는 이 벽에 11,000여의 조각이 새겨져 그 당시의 생활문화와 크메르의 역사를 설명하고 있다.
샴족과 싸우는 크메르군, 시장에서 샌선을 팔고 있는 여인들, 닭싸움 장면 등이 남쪽에 있고, 해상에서 전투하는 배와 병사들의 모습, 악어와 펠리칸이 생선을 먹는 과경 등이 남쪽으로 이어진다.
그외에도 코끼리와 소가 끄는 마차, 전쟁에서 돌아오는 시체를 담은 관, 그리고 일산(日傘)으로 위엄을 세운 왕이 후궁들을 거느리고 말을 탄 모습 등, 생생한 기록의 보고이기도 하다. 영광의 시대는 지났지만, 그 유적은 정글 속에서 파묻힌채 아직도 끝나지 않는 내전 속에서 병사들의 휴식처로도 쓰이고 있다.
하지만 크메르의 독톡한 예술과 신앙은 이제 다시금 꽃피워나고 있다. 관세음보살의 나라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