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인접국들 틈에 끼어 있고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맥에 둘러 쌓인 부탄이 여러 세기 동안 외부세계와 단절되었던 것은 당연지사일 것이다. ‘부탄’이란 이름의 기원은 정확하지는 않으나 ‘티벳의 끝’을 의미하는 산스크리트어, 혹은 ‘고지(高地)’를 의미하는 ‘부탄’이라 생각된다. 고대에 불교도들은 이 풍요로운 이웃나라를 ‘로몬’ 혹은 ‘몽유르’ 즉 ‘남쪽의 천국’이라 기술하고 있다. 또 이들 국민 자신들은 ‘부탄’이라 부르지 않고 ‘두르크’ 또는 ‘두르크·유루’ 즉 ‘뇌룡의 나라’라 부른다. 이것은 불교의 ‘두루크파‘ ’가규파‘가 1200년 이전에 이 땅에 개화되었기 때문이다.
파로는 부탄에서는 가장 넓은 평원의 계곡으로 비행기가 이착륙할 수 있는 유일한 공항이 이곳에 있다. 이 나라의 두르크 에어 항공사에는 단 두 대의 쌍발여객기가 있는데 이 비행기가 유일하게 네팔의 카트만두를 거쳐 인도의 델리까지 왕복한다. 때문에 격일로 이 나라에 입국하게 된다.
부탄의 여러 지역 중에서 가장 부농이 이 파로 계곡에 산재한다. 집들이 반듯하고 3층의 목조건물로 아래층은 토벽으로 온도를 유지하며 개인 주택들에도 벽화와 단청으로 아름답게 채색되어 있다. 건물의 구조는 아래층에 부엌, 이층은 주거실 및 침실, 삼층 혹은 다락방은 기도실로서 불상이 집집마다 모셔져 있다. 농촌의 경우는 4층으로 맨 지하층에 돼지, 소등의 가축이 동거한다.
이곳에 국제규모의 유일한 호텔이 있는데 바로 올라탕 호텔 (Olatang)이다. 공항에서 구비구비 돌아서 언덕을 오르는 동안 생소한 구조의 건축양식의 집들이 계곡과 언덕에 아름답게 흩어져 있다. 저 멀리에는 만년설이 덮인 히말라야의 산마루가 보인다. 이 호텔은 부탄의 전통적인 건축양식으로 건축된 아름다운 건물로 ‘ㅁ’자 형으로 되어있고 가운데는 정원으로 구조가 되어 있으며 본관 주변에는 소나무 숲과 방가로의 독채가 여기저기 있다.
여름 휴가철이면 이 넓은 호텔이 초만원을 이루는 피서지로 알려져 있는데, 내가 갔을 때에는 12월 초인 겨울이어서 손님이 거의 없었고 필자 자신과 미국인 부부 모두 세 사람뿐이었다. 저녁 식사는 운동장같이 넓은 식당에 손님은 모두 세명, 식사는 부탄식의 뷔페였다. 샐러드, 닭볶음, 시금치 잡채, 감자와 홍당무 익힌 것, 생선구이, 수프는 스튜의 일종이고 후식은 사과와 요구르트를 섞어서 약간 익힌 것이었다.
파로 계곡을 따라서 계속 올라가는 동안 밭갈이를 하는 노인과 며느리를 만났으며, 또 가옥을 신축하는 사람들도 만났다. 고유 가옥의 건축방법은 우리나라의 기와집 짓는 양식과 같이 목조로 골격을 세우고 토벽으로 공간을 메우는 방식이었다.
논과 밭들은 위로 올라갈수록 계단식의 좁은 면적으로 바뀌어 갔다. 간혹 장작을 등에 지고 시내로 들어가는 산간의 농민들이 눈에 띠었다. 차도가 끝나는 언덕 위에 높은 고성이 보였다.
여기서부터 티벳까지는 걷거나 당나귀를 타고 히말라야의 험준한 산을 넘어가는 방법 이외에는 없었다.
성곽과 건물의 벽만 앙상하게 남은 이 고성은 한때 티벳 군대가 히말라야를 넘어서 이 지역을 침공했을 때 파로 계곡을 지키는 마지막 관문이었다.
이제는 옛 유적지로서 폐허가 되어 역사의 한 시대를 엿볼 수 있을 뿐이다. 이 높은 성곽에서 내려가 보면 계곡 밑으로 풍요로운 농지와 가옥들이 잘 조화를 이루고 있다.
계곡의 초입 우측 위로는 파로죵과 국립박물관이 있다. 국립박물관은 원추형으로 건축양식이 되어 있으며 내부 공간이 온통 목조로 만들어졌고, 달팽이식으로 빙빙 돌아 올라가며 꼭지점까지 구경하게 되어 있었다. 역시 불교국이라 갖가지 불상이 많이 수집되어 있었고, 무기, 만다라(이곳의 만다라는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생활 민예품 등이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맨 윗층에 우표가 수집되어 있었는데 부탄의 우표는 세계적으로 유명해서 우표수집가들에게 인기가 많다고 한다. 파로죵은 정말로 거대하여 마치 티벳의 포탈라 궁을 축소한 느낌이었다.
죵은 원래 사원이지만, 하나의 요새로서 적의 침략이 있어도 거대한 문만 잠그면 난공불락의 요새가 된다. 회랑과 광장 등 모두 웅장하다.
실내에는 들어갈 수 없어서 매우 안타까웠다. 경찰이 상주하며 사원을 지켜 보안을 철저히 유지했다. 스님들의 의상은 모두 진자주색의 의상으로 한국에서 온 나에게 친절하게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려주며 환영했다. 한국의 방문객이 거의 없는 실정이기 때문이다.
돌아오는 길에 작은 사원 하나를 방문했는데 키츄 사원(Kichue Monastery)이었다. 그곳 승려의 특별한 배려로 건물 내부에 들어가 벽화와 불상들을 볼 수 있었는데 정말로 예술품 그 자체였다. 우리나라와 같이 단조롭지 않고 나상이었으며 불상의 팔이 많은 것이 특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