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불교대회, 달라이 라마 친견기
2003년도에 참여불교재가연대와 정토회가 공동 주관하여 한국에서 연 바 있는 ‘참여불교세계대회’는 2년마다 열리는 불교시민운동가들의 국제대회로서 올해는 인도 나그푸르(Nagpur)에서 10월 11일부터 16일까지 열렸다. 20여 국가에서 2백여 명이 참가한 이번 대회에 국제참여불교 활동가들의 연대가 중요하다는 인식 아래 재가연대 임원들 10여 명이 함께 참가하였다.
나그푸르는 인도의 정 중앙에 위치한 인구 230만의 소도시이며, 인도불교 부흥의 진원지이기도 하다. 인구 중 30% 정도가 불교신자라고 하니, 인도 전체로는 2% 정도밖에 안 되는 점을 생각하면 대단한 비율이 아닐 수 없다. 나그푸르 외곽 40km 떨어진 곳에는 Nagarjuna(용수보살; 불멸 후 6~7백년 경 대승불교를 크게 드날린 이)가 공부하던 곳이 있다. 도시 이름 Nagpur, 대회가 진행되는 곳 Nagaloka 등 Nag가 붙은 이름이 많은 것은 바로 용수보살을 기리는 뜻에서라고 한다. 특히 나그푸르는 인도 초대 법무부 장관이었던 암베드카르(Bhimrao Ramji Ambedkar)가 대중적인 개종의식을 치른 곳으로 유명하다. 공항 이름도 나그푸르 공항이 아니라 암베드카르 박사 국제공항(Dr. Ambedkar International Airport)이라고 쓰여 있는 것이 특이했다.
암베드카르는 영국에서 독립된 인도의 헌법을 만들었던 당시 최고의 엘리트였다. 개인적으로는 안정적이고 성공적인 삶이 보장되었지만, 인도사회에 뿌리 깊은 사성제도를 철폐하지 않고는 인도가 선진국가가 될 수 없음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특히 그 자신이 불가촉천민 출신으로서 가진 고뇌는 누구보다 컸을 것으로 짐작이 된다. 그는 미래사회에 알맞은 종교의 네 가지 기준 - 도덕성, 과학적 이성과의 조화, 자유·평등·우애의 제공, 빈곤을 정당화하지 않음 - 을 제안하고 이를 만족하는 유일한 종교는 불교라고 선언하였다. 그는 1956년 아쇼카 왕이 개종한 날짜와 관계있는 10월 14일을 택해 나그푸르에서 개종의식을 가졌는데, 그 몇 주 동안 수백만 명이 불교로 개종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는 개종의식 후 3주 만에 숨을 거두었는데, 그가 만일 더 오래 살았다면 인도불교 아니 세계불교의 지형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상상해 보면서 아쉬움을 가져 본다.
개종기념행사는 14일을 전후해 수일 동안 전국에서 150만 정도 모이고 14일 당일에만 백만 명 이상이 모여든다고 하니 그 열기를 짐작할 만하다. 참여불교세계대회 참가자들도 12일 저녁에 나그푸르 시내에 나가보았는데, 그야말로 인산인해였다. 만나는 사람마다 인사로 또는 군중 속에서 ‘Victory Bhimrao(암베드카르 이름)’라는 뜻인 “Jai Bhim!!”을 연호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암베드카르의 참여불교 정신을 잇기 위해 20여 년 전부터 노력해온 영국인 로까미트라(Lokamitra) 법사가 주관한 올해 세계대회는, “불교와 사회평등”이라는 주제부터 인도사회에 합당한 주제일 뿐만 아니라, 13회째의 대회를 처음으로 인도에서 여는 것도 어찌 보면 새롭게 일어서려는 인도불교계를 정신적으로 지원하려는 시의적절한 배려이기도 하였다.
4일간의 대회 기간 동안 다양한 주제를 통해 각국의 불교계 문제와 활동상황 등을 공유하고 이해하는 시간을 가진 것도 모두에게 소중한 경험이었지만, 대회 마지막 날 달라이 라마 성하를 친견할 수 있었던 것 또한 무엇보다 복된 일이 아니었나 싶다. 참여불교운동의 정신적 지주이기도 한 달라이 라마께서는 그동안 참여불교세계대회에 직접 참석하신 적은 없었는데, 이번 대회는 인도에서 열렸기 때문에 특별히 초대에 응해 주신 것 같다.
강연 내용 중 몇 가지 인상 깊게 기억나는 것이 있다.
“불교적 가르침은 사회를 변혁시키는 동시에 나 자신을 변화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불교를 만났고 이렇게 사회적 고통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우리는 대단히 영광스럽고 축복받은 운 좋은 사람들이다.”
한국 방문 가능성에 대해 “티베트 경전을 기증한 바 있어 특별한 인연은 있는 것 같다. 최근에는 한국 내 저명인사들이 서명한 초청장을 전달하러 기자단을 포함한 대표단이 다람살라까지 왔었지만 (그때 대표단 중 한 사람이 필자이다) 이루어지지 못했다. 남북 관계에서 남한 정부가 중국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는 점을 이해한다. (웃으면서) 초청하려거든 한국 정부를 괴롭게 하지 말고 직접 북경에 가서 허락을 받는 게 좋겠다.”고 말해 우리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그밖에 “불교는 물리적 세계의 설명에만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원자의 세계나 우주의 세계에 대한 인간의 이해를 넓히는 데 기여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며 과학 세계와의 조화와 협력이 다른 어떤 종교보다 수승함을 강조하기도 했다.
대중강연을 마치고 로까미트라 법사가 한국인들에게만 40분 동안 특별 친견을 주선해 주었다. “성하께서 안 계시면 누가 어떻게 티베트를 이끌어갈 것인지요?”라는 필자의 질문에 두 가지로 나누어 답을 하셨다.
“첫째, 정치는 이미 5년 전에 손을 뗐다. 지금은 망명정부를 대표하는 수상이 선출되어 있다. 둘째, 정신적인 리더십은 전적으로 국민들의 손에 달려 있다. 달라이 라마 제도를 원하면 유지할 것이고 원치 않으면 나로서 마지막이 될 것이다. 그리고 달라이 라마 제도도 전통적인 방식을 지속하기를 원하면 죽기 전에 다음 달라이 라마에 대해 유언을 하겠지만, 그렇지 않고 요즘 세대들이 하는 것처럼 투표로 결정해서 선출하기를 원한다면 유언 없이 그 방식에 따를 것이다.”
많은 사람들에게서 받은 질문인 듯 거침없이 분명하게 말씀하시는 성하의 모습에 여러 가지 감정이 교차하는 것은 단순히 필자만의 느낌일까. 건강하게 오래 사셔서 세계불교의 발전과 인류평화의 정착에 큰 횃불이 되어 주시길 간절히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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