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만탕(LO MANTHANG) 풍경
반복해서 걸어야 했던 고단한 발걸음이 멈춘 곳은 로만탕(LO MANTHANG), 무스탕(Mustang)의 수도. 로만탕이 내려다 보이는 로라(Lo La)에 선 심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언덕의 찬바람으로 세차게 ‘퍼덕!’거리는 룽다를 보고 있으니, 마치 수미산 언저리 어디쯤이라도 와 있는 것처럼 설레인다. 그 마음으로 로만탕을 향해 무릎을 꿇었다. 흙먼지가 이마와 뺨을 쓸고 간다. 아득한 언덕을 수없이 넘어 도착한 불국토 깊은 땅. 보이지 않는 곳을 향해 걷는다는 것은 힘이 드는 일이다. 한편으로 생각하면 그것은 허락이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그 이유는 이곳이 중생의 땅이 아니기 때문이다. 불법의 메아리가 시작되는 곳, 탄트리즘의 비밀스런 가르침이 있는 청정한 도량이 로만탕인 것이다. 찬바람에 몸이 시릴 때쯤 언덕을 내려서기 시작했다. 그리고 작은 개울을 건너 조심스러움과 기대감으로 가득한 발을 옮긴다. 시냇물이 흐르는 길을 따라 흙으로 만들어진 벽들이 좌우로 이어진다. 평소와는 다르게 피곤한 몸을 누일 생각은 일찌감치 접은 채 롯지에 짐을 풀고 나섰다.
약 7미터 높이의 벽으로 둘러싸인 성이 도시의 안쪽을 보호하고 있다. 그리고 성벽 모서리마다엔 감시용 포탑이 만들어져 있었다. 성 안쪽엔 흰색 왕궁과 붉은 색 벽의 ‘쵸디(Chyodi) 사원, 투그첸(Tugchen) 사원과 참파(Champa) 사원’이 있다. -로만탕엔 약 180여 가구가 살고 있으며, 천 명이 안 되는 사람들이 거주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95년 기준- 성곽은 천천히 걸어서 돌아도 3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이는 무스탕에서는 가장 큰 규모이며, 히말라야에서 불어오는 모래 폭풍을 막아내는 구실을 한다. 이곳의 풍광들은 이제까지의 여정에서는 볼 수 없었던 것들이다. 10미터는 족히 되어 보이는 두 개의 쵸르텐이 나란히 붙어 있는 장면이나 무리를 지어서 다니는 아이들의 모습 등….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곳이 지닌 성스러움이 바깥세상처럼 점점 서구화되어 가고 있는 모습들도 보게 되었다. 이따금씩 보이는 이방인들과 그들을 위해 공산품을 파는 가게, 기념품을 진열해 놓은 상점도 눈에 들어 왔다. 이 비밀스런 땅 또한 네팔 정부의 관광수입을 올리는 역할을 일정 부분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로만탕의 현실이 마음을 아프게 했다. 청정한 기운이 서서히 사그라드는 것처럼 느껴졌다.
남걀(Namgyal) 사원의 법당
로만탕에서 걸어서 약 두 시간 정도의 거리에 있는 남걀(Namgyal) 마을로 간다. 마을엔 남걀 사원이 있다. 이곳 또한 무스탕의 다른 사원들과 마찬가지로 ‘사캬파(Sakyapa)’의 사원에 속한다. 외부인의 출입이 엄격하게 통제된 사원에 어렵사리 들어가게 되었다. 문을 들어서자 마당이 나타났고 ‘ㅁ’자로 지어진 사원의 형태가 시야에 들어왔다. 마당 가운데에는 7~8미터 높이의 곧게 뻗어 올라간 룽다가 펄럭이고 있었다. 이윽고 법당 내부로 통하는 문이 열렸다. ‘삐이익~’ 나무로 된 오래된 문이 열렸지만, 잠시 동안은 아무 것도 볼 수 없었다. 눈이 밝아지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내부의 모습이 하나둘 들어오기 시작할 무렵, 뒤를 보았을 때 조금 전에 들어섰던 문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빛과 마주쳤다. 로만탕에서 느꼈던 아린 마음을 달래주기라도 하듯 햇살이 부서진다. 이 곳을 찾는 이들마다 품고 왔을 염원들이 법당의 바닥을 밝히고 있었다. 수없이 많은 중생들의 발걸음과 오체투지의 흔적이 만들어낸 결과이다. 그 어떤 장인이 이 같은 마음을 표현해 낼 수 있을까? 곤궁한 형편 속에서 마련한 야크 기름을 공양하며 머리를 조아렸을 수많은 이들. 그 정성스러움이 법당 바닥을 별처럼 빛나게 한 것이다.
독경소리를 들으며
대부분의 집들은 2층으로 지어진다. 그리고 로만탕의 어느 집이든 어김없이 법당도 함께 있기 마련이다. 1층은 말과 그 밖의 가축들 우리로 사용되고, 2층엔 거실을 겸한 침실, 법당, 그리고 지붕이 덮이지 않은 화장실이 있다. 이것이 거개의 구조다. 경전을 외는 나지막한 소리로 아침을 맞는다. 음성을 따라간 곳은 집안에 마련된 법당. 집안의 어른이기도 한 노스님이 아침 예불을 올리고 있었다. 창문을 등지고 앉은 채 이따금씩 띵샤(tingsha)를 부딪쳤다. 그 때마다 맑은 파장이 법당 내부에 시나브로 퍼졌다. 생활이 곧 수행이라는 티베트 불교를 실감케 하는 순간이다. 나지막한 목소리가 창을 넘어 집안 곳곳으로 흘러들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식구들이 모두 깨어나기 시작했다. 가족 모두가 독경 소리를 들으며 하루를 시작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