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 에서 가장 좋았던 것은 텅 빈 충만감이었다. 광활한 대자연의 걸림 없음, 그 통쾌함을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있으랴. 건축물이든 성보(聖寶)든 극히 일부분만이 남아 있기에 도량에서 뒹구는 돌 조각 하나도 반갑고, 바람에 씌어진 역사의 편린조차 꿰맞추려 했는지도 모른다. 상상의 날개를 달고, 그러면서 더욱 깊은 관심을 갖게 되고 사랑하게 되었다.
아름다운 풍광 때문에 더욱 애잔한 만츠쉬르 사원
울란바타르에서 대략 46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자리한 복드 산 만츠쉬르 사원을 향해 달리는 차안에서도 생각은 꼬리를 물었다. ‘복드’라는 말은 ‘슬기로움’을 뜻하고, ‘만츠쉬르’는 지혜의 ‘문수보살’을 일컬으니, 우리 식으로 말하면 문수산 문수사로구나. 만츠쉬르 사원은 1733년에 세워졌다는데, 에르덴조 사원을 건립한 만츠쉬르와 인연 있는 곳일까, 아니면 몽골이 낳은 위대한 성인 자나바자르와의 인연일까. 자나바자르가 1723년에 열반하신 점도 그렇고, 무엇보다 자나바자르가 스스로 문수보살의 화신이라 칭하였으니, 우리나라의 숱한 원효사처럼 자나바자르를 기리기 위해 세워진 절일지도 모르겠다고 망상을 피우다보니 만츠쉬르 사원 초입이란다.
아! 아름다운 것에 대한 만국공통어는 감탄사일 것이다. 사실 몽골에서 처음 보는 승경(勝景)이었다. 빽빽한 침엽수림, 계곡, 비탈진 초원에 만발한 야생화, 병풍처럼 둘러쳐진 바위산, 어디선가 금방이라도 사슴이 뛰어나와 반길 것 같은 자연풍광…(자연동물보호지역으로 지정되어 있다고 한다.)
만츠쉬르 사원은 전형적인 산지가람의 형태를 띠고 있었다. 초입에 마치 제주도 하루방 같은 석불(?)이 합장하고 있는데, 나는 미륵불이라 하고, 돌고르 잡은 자꾸 석인이라 고쳐주었다. 만츠쉬르 사원에는 20개의 작은 사원과 350여 명의 스님들이 살았는데, 1937년 스탈린주의자들이 파괴했다. 사원 초입 박물관(자연사 박물관) 앞 2톤 가량의 커다란 청동 솥과 폐사지에 남아 있는 잔해만으로도 영화로웠던 옛 사격(寺格)을 짐작할 수 있었다. 무너져 내린 흙벽돌 사이로 잡풀이 무성하여 더욱 애잔했다.
스탈린주의자들이 세계사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철저하게 불교를 탄압한 것은 그만큼 몽골이 대단한 불국토였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13세기 아시아와 유럽을 하나로 묶었던 몽골제국의 영광은 14세기 중엽부터 서서히 기울었으나 몽골인들의 정신은 한없이 진화하였다. 오늘날의 티벳 사람들처럼 거의 전 국민이 부처님의 길을 걸으면서 그대로 평화로운 불국토를 일구었던 것이다.(1691년 러시아 대신 청나라의 지배를 받게 된 것은 자나바자르의 혜안에 의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그 후 1921년 소련의 원조 아래 독립한 몽골은 불교적인 국민의 사상을 개조하지 못하자 1930년대 중반부터 대대적인 숙청을 하였던 것이다. 하지만 60여 년간의 종교탄압과 갖은 악선전에도 불구하고 1990년 민주화되면서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자 눈에 띄게 불교가 부흥하고 있다.)
유형의 건축물은 불태울 수 있을지라도…
새롭게 복원된 건물이 있어 반가운 마음에 들어갔는데, 박물관 겸 관광용품 판매점으로만 이용되고 있어 안타까웠다.[1년에 한 차례 불교전통무용인 참 공연을 한다. 박물관에는 몇몇 불교유물, 참에 쓰는 가면, 여자의 정강이뼈로 만든 악기(인생무상, 지극한 신심, 몸에 대한 집착을 놓을 수 있다)를 비롯해서 약간의 유물이 있다.]
“여기로 올라오세요.”라고 손짓하는 돌고르 잡을 따라 뒷산을 오르니 약사여래불이 약함을 들고 앉아 계시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 친근하다. 색상이며, 기법이 우리와 참 비슷하다. 그보다도 바람에 휘날리는 몽골 돈을 조심스레 돌로 눌러 놓고 합장하는 예혜 아저씨가 마음을 흔들었다. 마애불마다 돈과 몽골에서는 귀한 성냥이 붙어 있는 모습에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고 보니 불교 교리도 잘 모르고 예법도 잘 모른다지만 몽골 사람들이 불전(佛錢)을 놓는 모습만큼은 지극했다. 그야말로 깊은 신심의 발로가 아닌가. 비록 유형의 사원 건축물과 갖가지 성보(聖寶)를 불태울 수는 있었으나 신심을 파괴시킬 수는 없다는 진실에 숨이 막힐 정도로 숙연해졌다.
부처님, 쫑카파, 흰 노인의 축복 영원한 도량
만츠쉬르 사원은 폐사지가 아니다. 사원을 감싸 안은 복드 산의 넓적한 바위마다 사원이 숨어 있었다. 몽골에서는 보기 드문 마애불을 보호하기 위해 지붕을 씌운 그 곳은 그대로 부처님 도량이다. 부처님, 쫑카파와 제자들, 흰 노인, 하얀 여신 어취르바, 녹관음(綠觀音) 노곤다리 에흐 등이 봉안돼 있다. 우리나라로 치면 산신각, 가장 높은 곳에 계신 흰 노인에게 마음이 끌린다.
불교는 각 나라에 전해질 때마다 민간 신앙을 품었다. 법집(法執)마저도 비워야 한다는 부처님의 가르침, 단 한번도 불교라는 이름으로 전쟁을 일으키지 않았고, 그 나라의 민간신앙과 융화하여 찬란한 불교문화의 꽃을 피웠던 것이다. 몽골 사람들이 차강 에부겐이라고 부르는 흰 노인 역시 가축과 풍요를 관장하는 몽골의 토속신이었는데, 불교의 신이 되었다. 티베트대장경이나 한역대장경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대지와 물을 안정시키고 진정시킬 수 있는 경전』이라고 하는 몽골어 제목이 붙은 불교식 기도문의 내용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어느 날 완전한 깨달음을 얻은 부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화과산에 이르렀다. 그 때 흰 노인을 만났는데, 그의 수염과 머리는 하얗고, 그는 흰옷을 걸치고 있었으며, 끝머리에 용이 달린 지팡이를 손에 들고 있었다… 흰 노인이 대지와 물을 지배하고 선한 사람들을 보호하는 한편 악한 사람들을 징벌하는 일을 한다고 부처님께 설명하자, 완전히 깨달은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착하다, 착하다, 고귀한 출생의 아들이여! 내 앞에서 중생을 보호하겠다고 약속하라.’… 는 내용을 보면, 흰 노인이 부처님께 귀의하여 불법을 보호하고, 중생을 구제하는 역할을 부촉 받았음을 알 수 있다.
어디 흰 노인뿐이랴. 부처님께서는 우리 내면에 자리한 부처될 씨앗을 일깨워주시면서 모두가 부처되어 사는, 평화롭고 행복한 세상을 일구라고 우리 모두에게 부촉하시지 않았던가. 요사이 신인류의 대안을 호모 노마드(유목하는, 길 떠나는 인간)에서 찾아야 한다던데, 진리의 길을 걸어간 노마드, 부처님을 따르는 데서 미래사회의 희망을 찾을 수 있음을 대표적인 호모 노마드의 나라 몽골에서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