텅빈 내 주머니를 누가 넘보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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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빈 내 주머니를 누가 넘보랴
  • 관리자
  • 승인 2007.10.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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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가볍게 사는 법

원동 태허 무흠무여(圓同太虛 無欠無餘)!
원만한 것이 허공 같아서 남을 것도 없고 모자랄 것도 없다. 사방 문을 다 열어둔다고 할지언정 누가 가져갈 것인가. 무겁기로 말하면 너무 무거워 들 수도 없고, 크기로 말하면 너무나 크고, 아무리 내어 써도 남을 것도 모자랄 것도 없지 아니한가.
15여 년 전 농사를 짓고 있는 나에게 간송미술관 최완수 관장이 키워보라며 백련 세 뿌리를 가져다 주었다. 비닐하우스에서 2년간 키워 3년이 되던 해 연못을 만들고 내다 심었더니 그것이 800평 연못을 가득 메우게 되었다. 그리고 혼자 보기 아까워 백련이 피는 7월 말, 혹은 8월 초쯤 연꽃축제를 열었더니 전국에서 시인 묵객들과 다인들, 그리고 국악인들이 모여 시를 지어 읊고, 노래를 하고, 차를 나누는 축제의 자리가 된 지 오래다. 해마다 연꽃 철이 되면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인취사 연지로 몰려온다. 빈 연못에 그 흔적만을 드리운 이 겨울에도 연을 보러 오는 사람이 있다.
인취사에는 백련뿐만 아니라 비닐 하우스며 연지에서 100여 종의 연꽃들이 봄을 기다리고, 그 중에는 우리 나라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희귀 연꽃들도 몇 종 된다. 미국 L.A나 버지니아, 혹은 중국 등지에서 물 건너 온 품종으로 나의 연꽃 사랑을 익히 아는 지인들이 구해다 준 것이다.
그런데 연을 기른다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다. 연꽃이 피려면 물 온도가 25~28℃ 정도는 되어야 한다. 연은 열대성 식물이기 때문에 물 온도가 높고 햇빛 조절을 잘 해야 죽지 않고 잘 자라기 때문에 햇빛의 양이며, 연못의 깊이(70센티미터에서 1미터 정도가 적당), 특히 물 온도는 차지 않게 늘 유지하고 한 평에 한 그루 정도를 가꾸어야 연이 잘 자란다. 잎이 너무 무성하면 그늘 때문에 물 온도가 떨어져 개화가 안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햇볕이 연못 밑바닥까지 투영되어야만 미생물들의 활동을 돕고 물벌레가 늘어나게 되며, 이를 먹고 사는 올챙이의 번식, 그리고 개구리의 수가 늘어남으로써 먹이사슬에 의해 맹금류와 설치류가 많아지고, 또 왜가리며 황새의 수도 늘어나 자연스럽게 생태계가 복원되는 것이다. 무엇보다 연은 물을 자정시키는 능력이 있어 오염된 수질을 정화하는 데에도 그 몫을 단단히 한다.
연꽃은 6월 말부터 9월 초까지 피는데, 이렇게 오랫동안 꽃을 보려면 매년 연근을 정리해서 나누어주고, 다시 드문드문 넓게 심어줘야 한다. 그냥 내버려두면 8월 초까지만 꽃이 피고, 몇 해 지나면 수천 평 연밭에 한두 송이 꽃이 피고 만다. 연근이 서로 뒤엉키게 되면 자기 생존 본능이 강해져서 꽃을 만들지 않기 때문이다.
연을 가꾸는 일도 그러하지만 가꾼 연을 나누어주는 일은 기쁨 중에 더 큰 기쁨이다. 연지를 새로 만든 제주도 법화사, 경기도 광릉 봉선사와 수목원, 식물원, 연꽃을 원하는 사찰과 개인 등 전국 3,000여 곳에 매년 4월 백련을 나누어주었다. 2000년 식목일에는 ‘맑고 향기롭게’와 함께 백련나누기 행사를 펼치기도 했다. 그리고 연을 나누는 그 일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이 세상에 나만큼 행복한 사람이 또 있던가. 일과 수행, 공부가 둘일 수가 없는 것이다. 연장을 들어 땀흘려 하는 일이나, 15년간 원을 세워 매일 매일 하는 화엄경 사경, 붓을 잡아 몇천 년을 오르내리며 옛 선인들과 주유하는 것 또한 나의 놀이터요, 내 공부가 아닐 수 없다.
일일부작(一日不作)이면 일일불식(一日不食)이라. 일은 삶의 근본이다. 머리로 사는 사람처럼 불행한 사람은 없다. 온 몸, 온 가슴으로 살면서 흘린 땀방울만큼이나 삶은 더 진해지고 값져지는 것이다. 일할 줄 모르면서 인생과 삶을 논할 수는 없는 일이며, 일할 줄 모르는 사람은 수처작주(隨處作主)가 될 수 없는 것이 아닌가.
필요한 책상을 짜는 일이나 비닐하우스를 만들어 연을 키우고 난을 가꾸는 일, 축대 쌓기, 연못 만들기, 문방사우 중의 하나인 벼루도 직접 손으로 만들어 쓰고 나누어 주다 보면 그 맛이 다르다. 필요한 것들은 다 만들어 쓰다 보니 농기구며, 돌이며, 쇠를 다루는 연장, 나무 다루는 연장 등등 인취사에는 웬만한 연장은 없는 것이 없다.
얼마 전부터 인취사 앞 들판이 농공단지로 개발되면서 시끄러운 기계소음이 들리기 시작하고 조립식 공장 지붕들이 하나둘씩 생겨나기 시작했다. 앞마당에 아름드리 호박돌을 적당한 높이로 석축을 쌓아서 소음과 공장 지붕들을 안 보이게 하고 원형 수반에 수련을 살게 했더니 찾는 이들의 눈을 한결 기쁘게 해주고 있다. 무엇보다 나누는 기쁨은 크나큰 즐거움이다. 벗들과 함께 백련차와 연잎차를 만들고, 연잎에 싼 선식(禪食)을 만들어 나누어 먹고, 매년 정초가 되면 인연된 이들을 생각하며 그 해의 휘호를 써두었다가 주는 것도 큰 즐거움이다. 올해의 휘호는 ‘길상여의(吉祥如意)’와 ‘심의(心醫)’ 두 가지를 써두었다. 만나는 모든 이들이 그렇게 살았으면 하는 바람에서이다.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
내가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온 물건이 아닌 바에야 내 것이란 없다. 어떤 인연으로 해서 내게 왔다가 그 인연이 다 하면 가 버리는 것이다. 아무 것도 갖지 않을 때 비로소 온 세상을 갖게 된다. 비웠을 때만이 가벼워지는 것이며, 또 채울 수 있는 것이 아닌가.
나의 처소에는 3세기 중반 인도에서 제작된 부처님이 한 분 계시다. 16세 소년 수행자의 모습을 한 당당한 체구에 앳된 모습이지만 그렇게 평온해 보일 수가 없다. 아마도 부처님의 모습이 그러하셨을 것이다. 해탈삼매경의 바로 그 모습, 완전히 비운 사람이 아니면 지을 수 없는 표정이다. 아! 텅 빈 그 기쁨, 텅 빈 내 주머니를 누가 넘보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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