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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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소리
  • 관리자
  • 승인 2007.09.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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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현행자의 목소리

나는 종소리 듣기를 매우 좋아한다. 그윽한 범종소리나 숙연해지는 풍경소리는 더없이 듣기 좋다. 종소리를 듣고 있으면 가슴이 아리고 눈물이 고인다. 유별나게 종소리를 좋아하다 보니 집안 곳곳에 종을 매달아 놓았다. 아무 때고 어디서나 종소리를 듣기 위해서이다.
현관 앞, 주방, 창가, 또 아이방문과 베란다 빨래줄에까지 종은 달려 있다. 옷을 널고 걷을 때 바람결 따라 울리는 종소리는 나의 마음을 매혹시킨다. 그 소리에 잠겨 있는 동안 나는 세상의 번뇌에서 벗어날 수 있어 참 기쁘다.
종소리뿐만 아니라 꼭 종을 닮은 보라빛의 도라지꽃, 은방울꽃, 초롱꽃도 보기 좋다. 화려함보다는 겸손하고 맑은 꽃이다. 마치 별의 혼이 스며있는 듯한 꽃들이다. 우리 집 거실에는 그 꽃과 비슷한 귀여운 종도 있다. 엄숙하게 울리는 에밀레종 등 생김새도 제각각 다르다.
나는 돈을 아끼지 않고 사는 것 중 하나가 종을 사 모으는 일이다. 그러나 사치스러운 장식으로 남에게 보이기 위한 것은 아니다. 다만 내가 바라는 것은 가끔씩 탈속의 경지에 젖거나 범속한 일상에서 순수한 영혼을 꿈꿔보고자 하는 작은 소망일 뿐이다.
누구라도 종소리를 싫어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어쩌면 한편으로는 소음이 될 수도 있다. 더구나 자신의 종교와 다른 종소리에는 과민반응이 생길 수도 있다. 곁에 있는 절이나 교회에서 치는 종은 언쟁을 일으키기도 하지만 더욱 넓게 보면 그 또한 축복이 아닌가 싶다. 온 동네에 울려퍼지는 종소리를 사랑과 평화로운 소리로 듣는다면 큰 은총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우리 동네 산 뒷편에 작은 암자에서 울리는 종소리에 고마움을 느낀다. 해질 무렵이면 어김없이 울려 퍼지는 은은한 종소리에 항상 경건해진다. 뎅그렁거리며 깊은 우주 속에 스미는 듯한 그 종소리에서 나는 저절로 숙연해진다. 그리고 다시 나 자신을 반성하는 계기가 된다.
하여튼 종소리라면 다 좋아하니 아무래도 전생에 종과 인연이 깊은 것 같다. 먼 옛날 나는 쇠를 녹여 종을 만드는 장인이었던가, 아니면 종을 치는 종지기였을지도 모르리라. 우리의 육신이란 죽음과 함께 가는 낡은 빈 껍질이 아니던가. 그래서 하늘로 데려갈 수 없는 낡은 껍질이라고 어린왕자는 말했다.
어떻게 보면 누구라도 특별히 내세울 게 있으랴 싶다. 신비스러운 대자연의 장엄 앞에 서면 우리는 작은 먼지에 불과하다. 그런데 어쩌다 명성이라도 얻으면 그것을 자랑인 양 과시하며 군림하고자 한다. 무슨 일이건 선두에 나서야 직성이 풀린다. 또 정신없이 바쁘게 살아가야만 남에게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모두 부질없는 것이라 여겨진다.
아주 오래 전 옛날 그대와 나를 하나로 엮는 우리 주검 위에 종소리는 쏟아져 내렸어. 정말 전율할 만큼 아름다운 소리였어. 하늘에서 내리는 종소리에 우리의 슬픈 넋은 하늘 꼭대기까지 높이 높이 올랐지.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황홀했어. 종소리는 찬란한 희망의 빛이며 구원이었어. 그 순간의 열정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구나. 다시 한 번만 그 순간을 느껴봤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대 향한 불타는 애모의 념을 간직한 채 이 밤 잠들고 싶구나. 어느새 시간은 깊은 밤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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