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가 교육 근본부터 다져야 한다
부처님께서는 잡아함경에서 “중생의 복전인 종교인은 오개(五蓋:탐욕과 성냄, 혼침과 들뜸, 그리고 의심의 뚜껑)를 걷어내고 오분법신(五分法身:계율, 선정, 지혜, 해탈, 해탈지견의 몸)을 성취한 덕성을 갖추어야 한다. 이런 사람은 중생의 복전으로 존경과 보시를 받을 자격이 있다. 이런 이에게 보시하면 큰 과보를 얻을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오늘날 우리 종단을 생각하니 짐짓 착잡하다. 불법(佛法)을 널리 전하여 세상을 평화롭게 하려면 출가자 교육에 더욱 힘써야 한다. 근본부터 다져야 한다는 말이다. 지난 세월 격동의 역사 속에서 종단 또한 흔들림이 많았고, 그 와중에서 승가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지금부터라도 교육을 착실하게 시키면서 교육과 수행의 양 수레바퀴를 여법하게 굴리는 출가자를 양성하면 불교발전은 저절로 이루어질 것이다. - 명성 스님 / 운문사 승가대학 학장
승과고시(僧科考試)를 시행해야 한다
불교라고 할 때 모든 사람들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은 부처님도 아니고 부처님의 가르침도 아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스님들을 먼저 생각한다. 그렇다. 스님들은 불교의 중심에 서 있다. 그러므로 불교를 발전시키려면 스님들의 실력과 자질을 향상시켜야 한다.
스님들의 실력과 자질을 끌어올리려면 교육이 우선되어야 하고, 억지 교육이라도 시키려면 승과고시를 부활해야 한다. 승과고시를 철저히 시행해서 사미계나 비구계를 받을 때처럼 스님들이 가장 좋아하는 중앙의 원장, 부장, 국장, 본말사 주지, 칠직 등등의 소임을 맡을 때는 언제나 그 지위에 해당하는 고시에 합격한 스님을 먼저 임명하도록 하는 법규를 철저히 지켜서 시행한다면 너도 나도 공부를 하게 되고 그런 과정에서 여타의 실력과 스님으로서의 품격도 향상되리라고 믿는다.
- 무비 스님 / 은해사 승가대학원장
자기정체성 확립과 더불어 세계화 속에 능동적인 대처가 필요하다
교통, 통신의 발달로 전 세계가 일일생활권으로 편재되면서 모든 민족·국가·종교가 하나의 열려진 공간 속으로 내던져지고 있다.
이런 시대에 한국불교는 자기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세계화 속에서 어떻게 능동적으로 대처해 갈 것인가가 큰 과제이다.
첫째 : 연기적 세계관의 확립이다. 서로 다른 것들이 모여 조화와 균형을 이루는 즉 서로 살리는 상생의 세계관을 새로운 문명의 비전으로 제시한다. 둘째 : 물질주의, 욕망, 소비주의 등이 빚어낸 환경파괴, 자원고갈, 빈부격차 등 지구적 위기를 명상, 무소유, 청빈생활을 통해서 극복해 가는 새로운 삶의 방식을 제시한다. 셋째 : 아직도 기아, 질병, 문맹의 고통 속에서 허덕이는 13억 이상의 인류에 대한 자비실천운동을 전개한다. 넷째 : 20C 내내 100년 동안 외세의 침략과 민족분단으로 고통받았던 민족의 수난을 완전히 극복하고 21C에는 민족의 화해와 통일을 이룩한다. 다섯째: 수행, 봉사, 보시의 실천행으로 스스로 행복하고 사회에 헌신하고 자연을 보호하는 보살의 길을 시민운동(NGO)의 새로운 모델로 제시한다.
- 법륜 스님/ 정토회 지도법사 겸 월간정토 발행인
‘개별 맞춤수행’ 프로그램 개발과 ‘공동선추구 네트워크’을 형성하자
새로운 세기에는 인식 전환이 된 영적 능력이 탁월한 사람들을 얼마만큼 배출하느냐 그리고 그 밝은 힘을 효율적으로 세상에 펼치느냐에 따라 인류문명의 번영과 쇠망의 향방이 걸려있는 까닭에 불교가 ‘개별맞춤수행’의 불성개발프로그램에 박차를 가해야 하는 소이가 바로 여기에 있으며 존재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영적 깨달음이 열린다는 것은 연기의 세계 속에 공동선(共同善)을 실천하는 자아로 일어나는 것과 동어의적인 측면을 갖고 있기 때문에 자성에 대한 깨달음과 더불어 자비행의 실천, 사랑의 실천이 일어날 때 이를 효과적으로 담아내기 위해서는 현재 불교의 각 종단조직과 사찰과 단체가 더욱 소속된 분야의 역할과 전문성을 연마하면서 한편으로는 열린 네트워크을 통하여 이 사회와 세계에 전 지구적인 차원의 생명 구제의 그물망을 펼쳐나가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개별맞춤수행’ 및 ‘공동선을 추구할 수 있는 네트워크’ 형성을 제언한다.
- 성덕 스님 / 불교자원봉사연합회 회장
각성과 일대 혁신으로 본래의 제자리를 찾자
한국불교는 지금 안팎의 여러 요인으로 인해 위기를 맞고 있다. 이 위기를 새로운 도약의 기회로 삼아 새로운 시대에 걸맞는 불교로 거듭 태어나기 위해서는 한국불교를 구성하고 있는 제 주체들의 제자리 찾기가 선행되어야 한다. 우선 스님들은 승가 본연의 원융화합에 기초하여 수행과 중생제도에 매진해야 할 것이며, 재가불자들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생활화하는 다양한 신행운동의 주체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이는 매우 원론적인 이야기가 되겠지만, 우리의 현실을 냉정히 살펴보면 사부대중 각자가 본래의 자리를 찾기 위해서는 각성과 일대 혁신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승단과 교단의 권위를 회복하고 사회 각 분야에서 열심히 생활하고 있는 재가불자들의 사회적 영향력이 점차 확대될 때 불교발전의 기반이 형성될 것이다.
- 청화 스님 / 실천불교 전국승가회 의장
자질있는 수행승과 교육받은 승려를 배출하자
첨단과학이 인간 운명을 크게 좌우하고 역사와 미래를 사회 각층의 정신지도자들이 책임져야 하는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다면, 한국불교 승려들도 그 책임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왜냐하면, 밀레니엄을 목전에 두고 현대문명이 안고 있는 정신적 공황에 명확히 대답해 줄 수 있는 불교의 생명성과 초월성이, 훈고적 교리해설이나 기복신앙의 결과가 아니라, 현대의 세계상과 역동적으로 상호 협조하는 실존화에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시대에 능동적으로 대처해나갈 수 있는 불교인재, 특히 승려양성은 높은 교육과 품위있는 수행의 기술적 조화에 있다. 1994년의 조계종 불교개혁 때 고등교육 이수의 승려가 태부족하여 개혁종단출범에 적지 않은 고초를 겪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엘리트 승려 배출이 없으면 한국불교는 산중관광사찰의 절지기 노릇으로 전락하고 불교포교는 폐기 처분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해외유학승과 엘리트 승려교육에 과감히 투자하여 세계화시대에 걸맞는 자질 높은 수행승들을 배출할 때 한국불교는 소생의 기미가 보일 것이다.
- 휘광 스님 / 뉴욕 불교사암연합회 회장
불교예불의식문의 한글화와 교단운영의 체제정비가 시급하다
내일을 향한 불교계의 시급한 과제가 어찌 한두 가지 뿐이랴만 두 가지만을 들어본다. 첫째, 모든 예불의식문과 용어를 쉽고 바르게 우리말로 통일해 써야 한다. 한글로만 쓴다고 해서 쉬운 말이 아니니, 부처님 가르침의 본디 뜻과 전통에 맞는 법답고도 쉬운 말로 바로잡아야 한다. 예를 든다면, “거룩한 스님들께 귀의합니다.”는 쉬운 말이기는 하나 삼보귀의의 본디 뜻과 부처님 가르치심의 진리[理法]와 승보[僧伽] 해석의 전통성에 맞지 않는다.
둘째는, 교단운영기구의 화합승가 이념에 맞는 새로운 체제정비이다. 사부대중[一切僧伽]과 승단[四方僧伽] 위에 군림하는 관료주의적 권력 기구가 아닌, 수행과 홍법을 위주로 하는 종단 및 각 사찰 본연의 과업을 계승 발전시키는 데에 도움되게 하는 운영업무만을 전담하는 사무기구가 되어야 한다. 종무 행정에 종사하는 장이나 대표스님의 위상을 지금까지의 세속적 권좌(權座)로부터 격하시켜서 사신공양(捨身供養)의 참된 귀명삼보(歸命三寶) 정신으로 봉사하는 심부름꾼의 자리가 되도록 제도화해야 한다.
- 김영태 / 동국대학교 명예교수, 원효학연구원장
불투명하고 비민주적인 종단운영에서 벗어나자
한 집단이 그 사회를 이끌어 가는 힘은 깊은 사상 못지 않게 그것을 펼쳐나갈 실질적인 힘이 있어야 한다. 불교계가 우리 사회를 리드하고 있다는 증거는 어느 면으로도 찾기 힘들다. 그것은 불교계가 지난 반세기 동안 내부적인 문제로 소모전만 반복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가장 먼저 변화시켜야 할 것은 불투명하고 비민주적인 종단운영이 아닐까 싶다. 재정이 공개적으로 운용되지 않고 종책이 대중공의를 수렴하지 않은 채 결정된다면 기본적인 신뢰구축은 불가능하고 따라서 공동체의식과 참여의식은 기대할 수 없다. 그것은 바로 지리멸렬을 의미한다. 이제라도 엄정한 기준에 의해 사람과 제도, 그리고 운영 전반에 대한 합리적인 평가를 통해 새로 태어나려는 치열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승려는 출가수행자답게 수행과 교화에 전력하고 있는지, 재가신도는 가르침에 따라 보시와 신행, 그리고 교단외호에 충실한지 등을 면밀히 따져봐야 할 것이다.
- 박광서 / 서강대 교수, 우리는 선우·불교바로세우기 재가연대 대표
우리의 아름다운 불교전통문화를 제대로 세우고 보존하자
천년의 풍상에도 의연한 자태를 잃지 않는 불탑들과 빼어난 건축미를 자랑하는 대웅전, 색이 바래 더욱 아름다운 불화, 어디 이뿐이겠는가. 유서 깊은 사찰마다 귀중한 보물들이 있기에 종교에 관계없이 많은 사람들이 즐겨 찾는 것이리라. 그러나 관리소홀과 무관심 속에 도난과 화재로 그 귀한 것들이 사라지는 것을 볼 때 안타까울 뿐이다. 또 주변 환경과 어울리지 않게 들어선 졸속 건축물과 조악한 불사들을 볼 때마다 마치 우리 불교의 미래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은 지나친 기우일까? 석등 하나라도 제대로 세우고 보존하는 것이 또 다른 포교활동이라 믿기 때문이다.
- 박상훈 / 사진작가
전법으로 새 천년을 열어가자
아무리 좋은 법이라 할지라도 전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새천년 불교 발전은 전법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우리 불자 한 사람 한 사람이 전법자로서의 사명을 다하며 전법을 최상의 공덕으로 삼아야겠지만 인터넷, 언론 방송, 문서 등 매체를 통한 전법활동도 더욱 활성화되어야 할 것이다. 특히 열려진 정보의 바다라 할 수 있는 인터넷 사이버 공간을 통한 전법활동은 시공간을 초월해 영원한 진리인 부처님 말씀을 세계화하는 데 최상의 열린 공간이다. 불교의 생활화·대중화·현대화·세계화를 위해서는 이들 매체를 통한 전법활동이 더욱 절실히 요구된다. 스물 다섯의 건장한 청년으로 성장한 월간 불광은 물론이려니와 교계신문과 잡지, 불교방송과 불교텔레비전이 건실하게 성장하고 그 역할과 사명을 다해갈 때 새 천년은 더욱 맑고 향기로운 빛을 드리우며 희망을 열어줄 것이라 믿는다.
- 박충일/대한인쇄협회 회장, 불광법회 회장
이제 그만 타력신앙에서 벗어나자
불교는 이 세상의 진리이지 종교가 아니다. 불자는 불교의 진리를 믿고, 깨달음을 향해 매일 수행 정진하는 삶을 사는 사람을 말한다. 그러나 우리 나라 불자들 중 이렇게 불교와 불자의 의미를 이해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기복과 타력신앙 행위, 이것은 부처님과 관세음보살을 밖에서 찾으며 자신의 복을 위해 열심히 비는 불자들을 양산시키고 있다. 그리고 불자라고 하면서 자신의 운명을 점쟁이나 철학관에 가서 물어보며 다니고, 지계, 보살행을 입으로만 외우면서 사회와 이웃의 고통을 외면하고 실천이 뒤따르지 못하는 이기적인 불자들을 만들어내는 원인이 된다. 21세기에는 우리 모두가 하나라는 토대 위에 사부대중이 함께 보살행을 실천하면서 깨달음을 향해 용맹 수행정진하는 물결이 일어나길 발원한다.
- 배금자 / 변호사
선수행의 가풍을 되살리자
불교는 평등사상을 바탕으로 모든 생명을 위한 자비의 삶을 추구하는 인간 중심의 종교이다. 또 스스로 도덕적 책임을 지고 착하게 살아가는 삶의 지혜를 가르치는 종교이다. 윤리 도덕적으로 타락한 현대 사회에서 불교의 가르침은 각종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데 크게 이바지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종권을 둘러싼 갈등과 세속권력에 약한 모습 등 불교 내부의 치부부터 해결해야 한다. 그래서 올바른 선 수행의 가풍이 불교 집안에 가득하고, 이를 바탕으로 원융회통의 정신과 방편의 묘를 살릴 때 우리 사회를 진정한 인간 공동체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 손혁재/참여연대 협동 사무처장
한국 불교를 세계화하자
한국불교는 동아시아 문화사에 있어서 독창적인 사유방식과 수행 전통을 이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양에는 중국이나 일본 불교의 아류 정도로 잘못 인식되고 있다. 이는 한국불교의 위대한 유산을 세계에 널리 알리는 데 적극적이지 못한 한국불교인의 책임이라 아니 할 수 없다. 한국불교는 원효로부터 이어 내려오고 있는 원융(圓融)과 화회(和會)의 대승 전통과 청정한 수행의 가풍이 있다. 이러한 한국불교 사상은 새로운 천년을 맞이하는 인류에게 갈등과 충돌의 마음에서 화합과 평화의 마음으로 안내해 줄 수 있는 빛이며 감로의 법문이 될 수 있다. 서로간의 울타리가 없는 지구촌 시대에 우리들은 한국불교의 세계화 노력을 통하여 마하반야바라밀 법문으로 가득 찬 세계가 되도록 정진해야 할 것이다.
- 송석구 / 동국대학교 총장
진정한 한국불교의 중흥은 역경(譯經)에 있다.
우리 나라는 예로부터 ‘문헌대국(文獻大國)’으로 널리 알려진 나라였다. 불교계는 특히 국민의 위기에서도 힘을 합쳐‘고려대장경(高麗大藏經)’이라는 출판문화를 창출하였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제 우리가 후세 불자를 위해서 할 일은 분명해졌다. 그것은 이와 같이 훌륭한 문헌을 어떻게 보전하고 활용할 것인가에 있다. 그런데 오늘날 이러한 사업은 구심점도 없고, 더욱이 일의 선후마저도 뒤바뀌어 진행되고 있는 현상을 볼 수 있다.
지금부터라도 불교계에서는 그 동안 우리 나라에서 간행되었던 불교전적을 수집하고 이를 종합적으로 정리해야 할 것이다. 이리하여 ‘한국불교전적종합목록(韓國佛敎典籍綜合目錄)(가칭)’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이후에 이를 바탕으로 역경(譯經) 및 색인작업(索引作業)을 진행해야 할 것이다. 또한 진정한 한국 불교의 중흥은 바로 역경에 있음은 너무나 자명한 사실이다. 이것은 포교(布敎)의 첫 걸음이자 마무리이다. 하루바삐 서둘러 대장경의 역경사업(讀經事業)을 완료하고, 이어서 사집(四集)·사교서(四敎書)를 비롯하여 중국의 역대 조사들의 중요한 속장(續藏 )문헌과 우리 스님들이 저술한 문헌들의 번역 작업도 서둘러 진행하여 새천년 미래 불자에게 넘겨 주어야 할 것이다.
- 송일기 / 전남대 교수, 조계종성보위원회·문화재위원회 전문위원
불교를 쉽게 접할 수 있도록 하자
불교계 현안 문제 중 가장 큰 문제는 불교신자 가운데 지식인의 비율이 적고, 특히 남자 신도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점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어떻게 불교 발전을 이룰 수 있겠는가? 불교는 어느 종교보다도 과학적인 종교인데 불교를 기복적인 구시대종교로 잘못 오해하고 있는 이들이 많다. 그러한 책임이 누구한테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보자.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데 불교계는 시대의 흐름을 남의 일처럼 보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를 금치 못하겠다. 아직까지도 대부분의 절은 산중에 있고 알아듣지도 못할 의식과 한문경전을 암송하고 있다. 의식을 한글화하여 현실에 맞게 하고, 불교교리를 오늘의 언어로 새롭게 해석해내고, 절마다 정기적인 법회를 개설하여 모든 사람들이 불교를 쉽게 접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었으면 한다.
- 신광식 / 불교언론인회 회장
사부대중의 철저한 고객지향정신이 필요하다
90년대에 들어서서 현대경영학의 가장 큰 화두는 고객만족이고 이는 기업경영의 본질 그 자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글쓴이는 오늘날 우리 불교계가 가장 절실히 필요로 하는 것이 바로 이 고객만족정신의 실천이라고 생각한다. 남에게 베푼 만큼 우리가 받게 되어 있듯이, 불교와 인연이 닿은 또는 닿을려고 하는 모든 사람들을 매우 귀한 고객으로 보고 지극한 정성으로 그들을 대하면 그 효과는 반드시 나타나게 되어 있다.
예를 들어, 매년 수많은 관광객이 사찰을 방문한다. 그들에게 가람의 배치나 각종 보물 그리고 재미있는 벽화의 내용 등에 대해서 정성을 다해 이야기해주는 절은 아주 드물다. 우리가 하기에 따라서는 절에 발을 들여놓는 사람들의 상당수를 부처님 법에 다가가게 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그렇게 하겠다는 의지와 그들을 고객으로 보는 고객지향정신이다. 스님이 신도들을 대할 때나, 호기심을 갖고 절이나 포교당에 들른 사람들을 모실 때도 그런 정신이 필요하다. 사대부중 한 사람 한 사람이 철저한 고객지향정신으로 무장하고 인연 닿는 모든 중생을 아주 귀한 사람을 모시듯이 대하자. 그렇게 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불교를 중흥시키는 가장 확실한 길이다.
- 유필화 / 성균관대학교 경영학부 교수
부처님의 법을 열심히 공부하고 전합시다
부처님께서 말없음으로 마음의 법을 전하신 말을 듣고 ‘입만 벙긋하면 틀린다 (開口則錯)’라 하여 남의 말을 귀담아 듣지도 않고, 경전이나 깨우치는 글을 잘 읽지 않으며 듣지 않는 분이 간혹 있습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그 말씀 그 심법 전하시기 위해 팔만사천 번이나 입을 여셨다고 믿습니다. 부처님의 법을 열심히 공부하고 전합시다. 불광이 달마다 사람을 깨우치기에 그 오랜 세월 애쓴 일을 두고 누가 놀라고 고마워하지 않을 분이 있겠습니까? 고마움으로 멀리서 마음의 합장을 올립니다.
- 윤구병/변산공동체학교 대표
선용기심(善用其心), 무진장의 보배를 서로 나누자
‘60억 명째 인류’를 맞으며 축복일까 재앙일까?를 가늠해 보는 사유 자체가 마치도 ‘독 묻은 화살’의 비유와 다름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지구 가족의 살림살이 사정이야 어찌 되었건 이미 인류는 계속 증가 기류를 탔고 우리는 공업중생의 업의 수레를 함께 굴려나가지 않을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새 즈믄해를 맞으며 가장 기대되는 ‘생명공학’의 발전이야말로 전쟁으로 얼룩졌던 20세기를 반성하고 평화와 공존, 환경의 소중함, 생명외경으로 인도되어질 것이 틀림없으며, 노인의 대명사처럼 여겨지던 ‘여생’이란 낱말은 21세기가 되면 사전 속의 골동으로 장식될 것입니다.
연기적 존재인 인류가 함께 행복을 공유하기 위해서 불자인 우리가 해야 할 가장 시급한 일이 자비정신을 바탕으로 한 보살행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선용기심’ 즉 누구나 가지고 있는 착한 불성인 무진장의 보배를 서로 나누어 갖는 마음을 잘 선용하는 길만이 장수를 누리게 될 21세기의 화두가 될 터입니다.
- 윤용숙 / 여성문제연구회 회장
사이버도량의 중요성을 인식하자
나는 새로운 한 세기의 시작은 비록 거창하게 종교적 성스러움을 빌지는 않더라도, 그게 개인이든 국가든 제대로의 출발을 의미해야 한다면 각각의 개체들은 자기의 지난 날을 돌이켜보는 겸허한 반성에서 출발하는 게 좋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천불동을 포함한 여타 불교통신동호회도 이제 ‘사이버 도량’으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1,600년 긴 역사 덕분에 불교는 드러나든 감추이든 우리 한국의 정신사를 떠나 있을 수 없고, 오늘에 와서는 통신공간을 통한 초발심 불자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추세임도 부정할 수 없다. 이렇게 소중한 불교통신공간이 몇몇 선배불자들을 제한적으로 혹사시키는 공간이 되거나, 신심과 지나친 자기 안목으로 오히려 초발심 불자들을 전도된 방향으로 이끄는 무책임성이 노정되어서는 안 되겠다 싶다. 그래서 타 통신의 불교동호회도 그렇겠지만 보다 안목있고 신심깊은 선배불자들이 정보화사회에서의 사이버도량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많이 동참했으면 한다. 그래야 혹사당하는 선배도, 잘못된 길로 이끄는 선배도 없는 정법과 도반으로서의 우정이 깊어지는 통신공간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바람이 있다면, 작금의 조계종단 사태를 계기로 한국불교의 장자인 조계종단이 내적 각성과 철저한 역사의식을 바탕으로 더 이상 한국불교의 자주권을 손상시키는 데 앞장서지 않아야 할 것이며, 나아가 2천만 불자의 존엄성이 다시는 훼손되지 않았으면 한다.
- 이경재 / 천리안 불교동호회 시삽
부처님의 가르침을 제대로 지키며 살자
해마다 섣달 그믐이면 새해에 대한 기대로 부풀 대로 부푼다. 마치 새해가 되면 모든 것이 ‘펑’ 소리와 함께 일신될 것으로 기대한다. 그렇게 5∼60십번쯤 속다 보면 인생이 저물게 돼 있다. 요즘 마치 ‘새천년’이 되면 지금의 모든 어려움이 깨끗이 해결되는 ‘매직쇼’라도 벌어질 것처럼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두고 보라, ‘새 천년’이 시작돼도 해는 동쪽에서 뜨고 썩은 하천은 그대로 있고 빛은 그대로 남아 있어 ‘헌 천년’의 모습 그대로일 것이다. 분단도 그대로요, 개금불사 경쟁도 그대로요, 부처님전에 쌓이는 복전을 노리는 사람들도 그대로일 것이다.
원치 않아도 오는 새 천년에는, 차라리 부처님 가르치심의 ‘2000분지 1’쯤이나 지키고 살겠다는 다짐이나 하는 편이 ….
- 이계진 / 프리랜스 아나운서
조계종 총무원의 획기적인 제도개혁이 필요하다
나는 지난 94년 3월 종교담당 기자를 맡은 이래 세 차례 조계종 분규를 겪었다. 이 과정에서 내가 한 가지 확실히 깨달은 것이 있다. 그것은 총무원 체제가 있는 한 어떤 방식이든 분규는 계속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총무원장 선거가 다가오면 조계사 동향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스님들이 상당수에 이르는 현실에서 말썽이 생기지 않기를 바라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와 같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스님들은 조계종과 불교계의 현안들을 지적하며 강력한 지도력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그러나 지난 5년간을 돌아보면 그 같은 현안들이 지도력이 부족해서 해결되지 않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괜찮던 스님들도 조계사 부근에서 몇 년 생활하면 이상한(?) 모습으로 변해 가는 것이 더 문제가 아닐까. 불교계의 동량들이 서로 싸우면서 함께 멍들어 가는 현실을 고치기 위해서는 종권(宗權)이라는 말이 사라지게 되는 획기적인 제도개혁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 이선민 / 조선일보 기자
불교, 좀더 쉽고 가깝게 느껴지도록 했으면 좋겠다
나의 집, 처가집 모두 불자 집안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외우며 돈독한 불자가 되려고 노력하고 있다. 우주의 법칙이 다 그 안에 있고 삼라만상 모든 일들이 그 안에서 이뤄지고 있다는 말로써 표현할 수 없는 세계에 언제부턴가 발을 들여놓고, 부처님의 세계로 보일 듯 말 듯 조금씩 조금씩 다가가는 기쁨에 가슴 뿌듯함을 느끼곤 한다.
그런 불교와 접하기가 처음엔 무척 힘들었다. 나뿐만이 아니라 아직도 불교 하면 할머니나 부인들이 믿는 종교처럼 여기는 내일의 불자(?)들이 있는 것이 안타깝다. 물론 훌륭한 스님들이 여러 곳에서 가깝게 느껴지도록 활동하고 계시지만 좀더 적극적인 종단 전체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종단의 권력(?) 다툼은 이제 제발 없어졌으면 한다. TV 뉴스를 통해 보여지는 스님들의 난투장면은 참으로 민망스럽고 부끄럽기 짝이 없다. 무상무념, 마음을 비우라 가르치는 분들이 딴짓하고 있는 것을 보면 용서할 수 없다는 생각이 자꾸 일어나는데 애써 떨쳐버리고 누가 뭐라든 무슨 짓을 하든 나는 부처님을 믿자고 스스로 다짐해 가지만 많은 실망하는 이들을 어떻게 놔둘 것인가 깊이 생각했으면 한다.
- 전무송/연극배우
장엄한 불교의식의 부활은 불교예술 진흥의 지름길이다
종교의식은 일반신도와 성직자를 연결하는 중요한 매체이다. 조선 오백년 동안 불교를 약화시키기 위해 의식을 억제시켰고, 의식을 집전하는 스님들을 재받이승이라고 하대했다. 한편 왕실 중심의 불교의식은 여전히 거행되었고, 그로써 불교의 명맥이 이어져 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60년대 불교 정화 이후 의식을 스스로 파괴했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아름다운 불상과 불화, 거대한 괘불 등 시청각적으로 장엄한 의식 자체에 압도되어 신성한 종교적 체험을 하기 마련이고, 종교에 귀의하고픈 마음이 드는 것인데…. 종단 차원에서 앞장서서 의식을 집전할 수 있는 승려를 양성해야한다. 한편 장엄한 의식의 부활은 자연스럽게 불교미술, 불교음악의 부활로 이어진다. 학자의 고증을 받아 하나하나 의식을 되살려 여법하게 봉행하는 것이야말로 불교예술을 근원적으로 진흥하는 길이요, 전반적으로 우리 전통문화가 소멸되어가는 상황에서 유일하게 전통문화를 계승하고 있는 불교가 이 나라 문화 발전에 기여하는 길이기도 하다.
- 최완수 / 간송미술관 학예연구실장
정기법회를 의무화하자
부처님이 마가다에 계실 때의 일이다. 어느 날 부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대들은 매달 5일, 15일, 25일마다 집회를 열어 인민을 위해 설법하라. 설법을 할 때는 삼보의 공덕을 찬탄하고, 믿음의 공덕을 찬탄하라.”
『불본행집경』 49권 설법의식품에 따르면 부처님의 이러한 명령은 빈비사라 왕의 제의를 받아들여 이루어졌다고 한다. 이 경에서 부처님이 하신 말씀을 요즘 말로 바꾸면 반드시 정기법회를 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야 교법이 쇠잔해지지 않고 스님들은 존경과 공양을 받을 자격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대부분 우리 나라 사찰은 이 가르침을 실천하지 않고 있다. 불교가 포교 부진을 면치 못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새해부터는 사찰이 다른 일은 하지 않더라도 부처님이 『불본행집경』에서 명한 ‘정기법회를 하라’는 가르침만은 꼭 실천했으면 한다.
- 홍사성/ 불교평론 편집인, 불교신문 주필
첨단의 미디어를 자기 방편으로 구사할 능력을 갖추라
새 천년에는 그 무엇보다 대승적인 신앙태도가 요청된다. 이타적인 수희(隨喜)의 바탕에서 무차별 원융의 세계를 추구해야 할 것이다. 일체 중생은 ‘나’ 아님이 없고, 그 공덕은 내 기쁨 아님이 없다. 나의 공덕 또한 미혹한 중생에게 돌아가는 것이 되어야 한다. 세계 포교를 위한 고원한 이상을 가지라. 종단 내 대립과 아집 등이 행여 새 세기로 넘어가는 유산이 되게는 말라. 균여 대사는 “세속의 도리에 따르지 않고서는 둔한 바탕을 인도할 길이 없다고 했다”. 21세기의 세계 중생을 상대로 포교할 승속들은 첨단의 미디어를 자기 방편으로 구사할 능력을 갖추라. 불자는 무한 중생과 무한 세월을 상대할 불퇴전의 수행자로서 서두르거나 싫증냄을 금기하라.
- 황패강 / 단국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