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달(2015년 10월) 특집 주제는 ‘행복하게 늙는 법’이다. 늙음을 피할 수 없다면, 이왕이면 행복하게 늙어가는 것이 모든 사람들의 바람이다. 불자라면 불교의 가르침에 맞는 ‘나이 듦’이 필요하다. 불교적 나이 듦이란 무엇일까. 어떻게 이를 알 수 있을까. 결국 사람이다. 불교로 볼 때 불교적인 늙음을 맞이한 분을 만나서 이 분의 현재의 삶과 늙는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들어보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 축서사 회주 무여 스님을 만나려고 봉화로 가는 이유다.
스님은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고 공직에 머물다가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길인가?’란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 해인사, 송광사를 거쳐 1966년 오대산 상원사에서 희섭 스님을 은사로 머리를 깎았다. 축서사는 스님이 1987년에 왔다. 해발 700m에 자리한 도량은 좁지만, 양명하고 정진하기 좋았다. 좋은 터를 활용하기 위해 불사를 시작했고, 가파른 터를 닦았다.
문수산 중턱에 자리한 축서사에 오르는 길은 고찰처럼 주변 나무가 울창했다. 대웅전 앞마당에서 바라보면 저 멀리 소백산맥까지 탁 트였다. 대웅전 좌측 뒤편에 스님의 처소가 있다. 3평 정도의 공간에서 스님을 기다린다. 손님을 맞이하는 방이다. “어서 오십시오.” 하고 무여 스님이 장삼을 매만지며 미소 지었다. 건강을 여쭈니 “건강합니다.”라고 옅게 웃었다.
여여하고, 맑고, 가볍고, 기분 좋게 늙어가기
스님, 요즘 하루 일과는 어떠신가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납니다. 새벽에는 집필하고, 순수한 내 시간을 많이 갖고 있습니다. 낮에는 사중 일도 보고, 손님 오시면 만나고 합니다. 가급적이면 부지런하게 살아야 안 되겠나, 그런 생각을 합니다. 나이가 많아질수록 열심히 살아야 하고, 뭔가 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스님의 목소리는 낮고 조용하며, 차분했다. 몇 년 전까지는 오전 2시 30분에 일어나 새벽예불을 모시고 선방 스님들을 지도하고 신도를 만났다. 지금은 오후 8시에 잠을 자고 밤 12시에 일어난다. 오후 잠깐의 토막잠이 있지만, 하루 4시간 수면하는 셈이다. 밤 12시에 일어나 새벽예불까지 주로 글을 쓴다. ‘화두선’과 관련한 내용이다. 대중에게 보이기가 아직 미비하다고 하셨다. 고치고 또 고치고 있는 중이다. 스님은 한국불교에서 ‘화두선’의 어른으로 꼽힌다. 대한불교조계종 간화선 지침서인 『간화선』 집필에 참여하였으며, 『선원청규』 편찬위원으로 맨 앞에 법명을 올렸다. 고우 스님, 혜국 스님 등과 지속적인 교류와 만남을 이어오고 있다.
세상 사람들은 평범하게 살거나 출세하거나 각각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소소한 행복을 바라고 살면서, 늙어가고 죽습니다. 이런 인생도 의미는 있는 것인가요?
“물론 그런 보통의 삶도 의미가 있습니다. 만족하기는 어렵지만, 열심히 살고, 애쓰고 있습니다. 그만한 공덕은 쌓입니다. 그러나 나름대로 돈이나 명예나 권세를 갖추어도 그 뒤에는 허망감이 따릅니다. 괴로워요. 그래서 만족하기가 어려워요. 우리 불자들은 수행하고, 불자가 아니라도 자기 마음 닦는 공부는 꼭 할 필요가 있어요. 보통의 삶에도 진리가 믹스되면 완전히 다른, 날개를 단 듯한 삶이 될 수 있습니다. 보람도 느끼고 어디를 가도 당당하고 떳떳하게 살 수 있습니다. 가급적이면 꼭 수행을 하시고, 진리를 맛보고, 진리 속에서 살아갈 수 있는 삶이면 아주 바람직합니다.”
불자들에게 진리를 맛보라고 할 때는 어떤 방법이 있을까요?
“가장 손쉬운 것이 염불입니다. 근기가 있는 분은 화두참선을 하면 가장 좋습니다. 근기가 중간인 분은 주력이 좋습니다. 어떤 수행이든 한 가지는 꼭 하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화두참선은 보통사람들이 좀 어렵다고 하는 분이 계시지만, 참으로 발심하고 노력하면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인생의 가장 진솔한 기분을 느끼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세속의 일상은 아주 바쁘게 움직입니다. 매일 이런 생활 속에서 살아가는 불자들은 수행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화두선은 생활선이고 노동선이며, 일상선입니다. 언제 어디서든 할 수 있는 것이 화두선입니다. 주부, 학생, 직장인, 노동자 모두 일하면서 할 수 있습니다. 일상에서 마음 닦는 법이 화두선입니다. 화두가 잘 되고, 진정한 의정이 일어나서 순일하게 들리는 상태라면 가나, 오나, 앉으나, 서나 무슨 일을 하거나 늘 화두가 놓쳐지지 않은 상태에서 일할 수 있는 것이 화두선입니다. 화두가 순일하게 들리면 마음에 일체 잡스러운 상태가 다 끊깁니다. 기분도 좋은 상태가 되고, 그러면 집중력이 생깁니다. 이 집중력 속에 일하면 아주 능률이 오르게 됩니다. 만족한 생활이 되고, 몸도 아주 가볍고 맑아집니다. 장시간 일을 해도 시간을 느끼지 않고, 고된 일을 해도 몸이 고됨을 덜 느끼게 됩니다.”
늙음을 희롱하라
모든 사람들이 늙는 것은 어찌할 수 없는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늙음을 걱정 없이 받아들이지만, 대부분 늙음을 잘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불자들은 늙는다는 것을 어떻게 지혜롭게 받아들여야 하는가요?
“보통의 사람들은 늙고 병들고 죽는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이고, 그것을 실천하고 본인이 느낄 수 있는 것이 수행입니다. 수행만 순일하게 되면 마음이 고요하고, 편안하면서도, 걸림이 없는 상태가 됩니다. 늙음 그 자체가 별로 신경 쓸 일이 아닙니다. 계절이 변하듯이 변하는 것을 느낄 따름입니다. 계절이 변한다고 울고불고 괴로워할 일이 아니죠. 괴로움을 원천으로 해결할 수 있는 길은 수행뿐입니다. 외형적으로 자신만만하고 당당해보일지라도 내면으로 들어가면 괴롭지 않은 분 없습니다. 진리를 나름대로 체험하면 늙음도 희롱하면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 사회가 초고령화 사회로 진입하면서 나이든 분들이 주변에 많습니다. 퇴직 후 65세 정도면 특별한 일 없이 소일하거나 취미 등으로 시간을 보내는 분들이 많습니다. 이분들이 스님 앞에서 법문을 청하면 어떤 이야기를 해줄 수 있을까요.
“화두를 주고 싶습니다. 화두도 요즘 사람들에게 맞는 화두, 즉, ‘나는 누구인가?’란 화두를 주고 싶어요. 나란 도대체 누구인가, 수십, 수백, 수천, 수만 번 따지고 의심을 일으키면서 참으로 푹- 하고 빠져서, 눈물을 흘려도 실컷 흘리고, 괴로워해도 정말로 쩔쩔맬 정도로 자기의 인생을 반성하고, 참회해서, 자기에게 참으로 진지한 마음을 내서 자기를 찾으라는 말을 해주고 싶어요. 지혜 있는 사람은 이내 쉽게 빠집니다. 지금까지의 자기를 참으로 반성하고, 참회해서, 난도질하듯이 새로운 자신을 발견하고 새로운 인생을 펼칠 수 있는 것이 수행입니다.”
스님께서 주신 ‘나는 누구인가?’라는 화두는 꼭 불교인이 아니어도, 불교에 대한 이해가 없는 분이어도 가능한가요?
“불교라는 것으로 포장할 필요가 없어요. 당신 누구냐? 너 자신을 찾으라는 것인데요. 너 자신을 반성하고, 참회하고, 그간 60년, 70년을 살아온 인생을 따져보고, 난도질하듯이 너 자신을 찾아보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화두입니다. 곧바로 보는 것입니다.”
불자들이 나이가 들어가면(늙으면)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요?
“공짜가 없다. 무슨 일이라도 하라. 하다못해 마루라도 닦아라. 집 청소하라. 도와주지 않아도 된다고 해도 도우라. 이런 생각과 행동이 중요합니다. 작은 일이라도 해야 합니다. 작은 공덕이라도 쌓아야 합니다. 남을 위해주고, 도와주고, 말을 하더라도 따뜻하게 웃으면서 하고, 베풀고, 자비심을 내야 합니다. 남을 비방하고, 답답하고 안타까운 말은 절대 하지 말아야 합니다. 불교는 인과법입니다. 작은 일이라도 덕행을 해야 합니다. 늘 좋은 씨앗을 뿌리듯이 살아가야 합니다. 이런 행동이 몸에 푹, 배야 합니다. 그런 이가 불자입니다. 그래야 더 잘 살고, 더 좋은 생을 이어갑니다. 요새 연세 많은 분에게 가만히 계시라고 하고, 이것저것 해주는데, 국가나 사회적으로 참 좋은 일이지만, 그러나 한편으로 당사자의 입장에서 보면 오히려 공덕을 쌓는 길을 없애는 것이기도 합니다. 물론 몸이 불편하거나 어려운 분들은 어쩔 수 없지만, 아프지 않다면 가만있으면 안 됩니다. 스스로 몸에 배어서 작은 일이라도 할 수 있어야 해요.”
더 수행하기 좋은 시기일 수 있겠네요.
“그렇습니다. 아주 좋은 때죠.”
불자들이 행복하게 나이 드는 법이 있다면 어떻게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사람이 살다보면 이런저런 오만 생각을 합니다. 어렵다, 힘들다, 못살겠다, 누구를 미워하고, 화를 내고, 난동질도 하고, 윤리와 도덕도 모르고 살아갈 수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도 염불이나 화두를 잘 해서, 잡스러운 생각이 일체 나지 않고, 오직 화두만 성성한 상태가 되면, 마음이 고요합니다. OECD 국가에서 이혼율이 가장 높다고 합니다. 어제까지 이혼하자고 해도, 마음이 고요하고 평온해지면, 이혼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아내와 남편 얼굴이 관세음보살, 부처님 얼굴처럼 보입니다. 공부 안 하는 아이가 있으면 부모가 안절부절못하는데, 그런 생각들이 다 끊어지고, 공부를 하든 말든 느긋하고 편안하게 큰 틀에서 사람을 보게 됩니다. 이런 상태라면, 아침에 출근하면 정말 ‘굿모닝’합니다. 실제 기분이 그렇습니다. 이렇게 자기를 바꾸고, 내 인생을 바꾸며, 내 삶의 진솔한 것을 맛볼 수 있습니다. 이것을 맛보지 못하면 진정한 행복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불자는 이 정도는 느끼면서 살아야 합니다. 편집장님도 그렇게 살아가세요.”
예, 고맙습니다. 스님.
*2015년 10월호(통권 492호)에 실린 김성동 전 편집장의 무여 스님 인터뷰입니다.
사진. 최배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