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반야심경을 이어서 강의하도록 할 텐데요.
저번에 그 강의했던 것들을 대충 다시 한번 상기하고 그다음에 것을 연결해야 좀 더 이해가 쉬울 것 같아서 앞에 것을 간단하게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처음에 관세보살님 즉 관자재보살이라고 할 때 그 자재라고 하는게 자유자재 라는 말이죠.
자유자제라는 말 스스로 이유가 되고 스스로 존재한다. 즉 브라만이 세상을 만들고 스스로 존재한다고 하는 보살이란 뜻이에요.
그러니까 만약에 그렇게 바라보고 있다면 깨달음을 얻은 부처님이 아니겠죠 .그러니까 부처님 되기 전의 상태인 보살이라고 하는 이름을 붙여서 드러나고 있는 거죠.
이렇게 자유자제 생각하는 그런 보살보살이 깊은 곳에서 실행되고 있는 것이 반야 바람이라고 하는것을 지혜를 완성했다고 했을때에 그때 비로서 이제 오온이라고하는 것을 대조에서 비추어 보았던거죠.
근데 그렇게 비추어 보니까 모두다 공이라고 하는 것을 향해가고 가르치고 있다고 하는 사실을 대조하게 되었던 거죠.
그래서 반야바라밀이란 하는 것이 모두 존재한다고하는 개념인 거죠. 일체라고 말할 때는모두 다 존재한다는 개념으로 쓰이는말이에요. 그러니까 일체가 괴로움이라고 여겼기 때문에 그것을 막아야 했던 사리자는 그렇다면 색이라고 하는게 눈에 보이는 이런 것들이 다 색이죠.
그런 색이라고 하는 것이 지금 비어 있어야 할 것이고, 비어 있는 것이 다 색으로 있어야 되지않겠어요.
그래서 공이 색과 다르지 않아야 되고 그렇다면 색이라고 하는게 곧 비어 있어야 될 것이고 비어 있는거 자체가 곧 새겨야 될 것이라는거예요.
그러니까 이렇게 색이 그렇다면 수상행식이라고 하는 그 미세 개념으로 드러나고 있는 수상행식도 그런 무더기들이 역시 그래야 될 거라는거죠.
그렇게 말하니까 일단은 지금이 상태에서는 그 사리불이 이해하지 못한 상태로 얘기했다고 볼수밖에 없죠. 근데 사실은 사리불이 이랬을 가능성은 거의 없고요.
그렇다기보다도 이게 대승 경전이다 보니까그 당시에 아비달마 불교를 지향했던 사람들이 모든 것을 존재한다고 여겼고 그런 식으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잘못 이해하게 된 것에 대한 비판적인 여론에서 대승 경전이 찬술있다고 보여져요.
그러니까 아비달마 불교의 장로들이 주장했었다. 그런 생각들을 비판하기 위해 에서 등장한 것이기 때문에 대표주자로 사리불이 등장했을 뿐이지, 실제로 사리불이 그랬을리는 만무하죠.
그래서 이렇게 이제 사리불이 그런 얘기를 하니까 다시 이제 그 다음의 이야기들이 진행되겠죠.
그래서 기존의 해석은 어떻게 다르고 그 다음에 지금 제가 다시 그 반야 신경을 해석할 때 어떻게 달라지는가 관한 얘기들을 이어서 해 볼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