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주년 기념 연속 대담 |
대담. 숭산행원 큰스님(화계사 조실・재미 홍법원 원장)・무심 스님(화계사 교무부장)
무심 스님
한국불교는 참선 중심의 불교 옛 모습을 거의 원형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저력과 전통의 종교라고 생각합니다. 이 한국불교가 요즈음 새롭게 태어나고 있는 가운데 그동안 해외포교에 전력해 오신 숭산 큰스님을 모시고 대담하게 돼 매우 뜻깊게 생각합니다.
숭산 스님
해외포교를 한 지 한 30년이 되는데 처음 8년은 일본에서 했고 그 뒤 22년은 미국에서 지냈지요. 그 밖에도 소련을 비롯해 아프리카, 호주까지 제가 포교한 나라가 전 세계 22개국이고 한국 절은 120여 개 됩니다.
한국불교가 해외 포교를 시작한 것은 일본불교나 다른 나라에 비해 볼 때 좀 늦게 시작한 편이었습니다. 제 앞에는 서경보 스님이 하시다 들어오셨는데, 이 스님께서 처음 일본에 들어간 것이 62년이었습니다. 그리고 미국에 처음 들어간 것은 72년도였습니다.
하지만 조계종 종헌에 따라 정식으로 홍법원을 세워 들어간 것은 저 때부터였습니다. 종헌에 보면 해외포교당을 세울 때는 그 나라 홍법원으로 지정한다는 규정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미국에 포교당을 세우면 재미 홍법원이 되는 거고, 일본에 세우게 되면 재일 홍법원이 되는 거죠. 홍콩의 초대 홍법원장이 박청하 스님이셨는데 그 경우에는 재향 홍법원이 되는 거죠. 재미 홍법원이 생긴 것이 72년이었는데 그 뒤 서구라파, 동구라파, 소련, 호주, 아프리카 쪽으로 쭉 뻗어나간 것입니다.
무심 스님
처음 해외포교에 첫발을 내디디신 것이 66년 일본 홍법원을 개설하시면서부터라고 알고 있습니다. 이후 홍콩, 미국, 캐나다, 폴란드 등으로 급격히 확산시키셨는데 처음 해외포교를 하시겠다고 발원하신 배경이나 계기가 있으실까요.
숭산 스님
불교란 실천을 통해 중생에게 도움을 주는 것인데, 우리가 서양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것은 불교밖에 없다는 생각이었습니다. 불교도 우리가 찾아가기 훨씬 전부터 그네들은 책을 보고 연구해서 이론이나 학술적으로 우리보다 훨씬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마음을 깨닫는 길, 이것은 하나도 몰랐습니다.
일본불교가 먼저 들어가 있었지만 선적인 흉내만 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한국불교가 들어가면서 먼저 선의 교과서를 하나 만들어 배포했습니다. 『선의 나침반』이란 책인데 선을 중심적인 요체로 삼아 불교의 전반을 설명하는 책이었습니다. 서양인들이 이 책 한 권만 보면 불교가 무엇이고 그중에 선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일목요연하게 알게 했습니다. 그랬더니 선이란 것이 최고의 가르침이요 깨달음의 길이란 것을 읽어 본 사람들은 다 알게 되었습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선에 있어서의 한국불교의 위치는 점점 인정을 받게 되었고 갑자기 유행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깨달음에 이르는 첩경이 선이요 한국불교라는 생각은 세계적으로 보편화되기 시작했습니다.
무심 스님
큰스님의 출가담이나 수행담을 들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숭산 스님
나는 왜정시대에 태어났기 때문에 ‘대동아(태평양) 전쟁’이다 뭐다 해서 국내외가 아주 소란스러웠어요. 그때는 일본 놈들이 어떻게 악독하게 구는지 몰랐어요. 당시 내가 공업학교를 다닐 때였는데, 한 반에 일본인과 조선 사람들이 반반씩 되었지요. 그런데 일본 학생 중에서만 반장을 시키고 차별이 심했어요. 그래 내가 일본 학생을 불러다가 두들겨 패기도 해서 선생한테 기합받기도 했지요. 그리고 한때는 독립투사에게 보국대며 학교 얘기며 정보를 주는 역할을 하다가 경찰에 붙들려 가기도 했어요.
그러고 나서 얼마 안 있다가 해방이 되었는데 공산주의하고 싸움하다가 이남으로 도망을 왔지요. 이남으로 와서 정치 쪽에도 좀 기웃거려 봤는데 바로 정치는 때려치우고 동국대학교 국문학과에 입학했다가 불교에 관심이 생겨 불교학과로 전과했지요. 하지만 그때까지도 불교에 심취한 것은 아니었어요.
그런데 좀 지나 보니까 학교에서도 학생들이 양쪽으로 갈라져서 매일 싸움만 하지 공부를 안 해요. 그때 서양사상에 심취해 있었을 때인데 혼자라도 공부를 하려고 처음엔 김구 선생이 피신해 있었다는 마곡사로 친구이자 스님이었던 분의 소개로 내려가서 지냈어요. 그때 무렵 신소천 스님의 『금강경』을 읽을 기회가 있었어요. “범소유상…”이라는 대목에서 눈이 맑아지면서 ‘아, 세상이 다 허망하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출가를 결심하고 수덕사에서 박고봉 스님을 은사로 머리를 깎았어요.
무심 스님
앞으로 2년 후면 큰스님께서 해외포교를 해오신 지 꼭 30년이 됩니다. 30년 전 처음 외국에 나가셨을 때와 지금 해외에 나가셨을 때, 저 같은 외국인들이 스님들이나 불교 자체에 대해 보는 눈이 많이 달라졌을 것 같은데, 느끼시는 바는 어떤지요.
숭산 스님
전에는 외국 사람들이 불교라고 하면, 지금 한국 사람들이 ‘요가’라고 하면 조금 이상하게 생각하듯이 그렇게 똑같이 생각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요즘 젊은 층과 지식인층에서 불교라는 것이 정말로 훌륭한 종교라는 것을 알고 퍼뜨리고 있습니다. 원래 그네들에게 있어서 종교는 어떤 절대적인 것에 기대 그것을 신앙하는 것에 불과했는데 불교를 앎으로써 각자 가지고 있는 자성(自性)을 계발해서 스스로를 변화시키는 것이 종교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옛날에는 군주가 나라를 다 다스렸지만 현대에는 전 세계 거의 모든 나라가 민주화되어서 누구나 대통령이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이 말은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는 말과 통합니다. 불교가 이러한 시대적인 배경을 타고 더 잘 퍼져나갑니다.
진리를 누구나 깨달을 수 있다는 것은 성경에서의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라는 말과 또 통합니다. 내가 나를 깨달았을 때 내가 바로 올바른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는 것입니다. 자기 능력을 믿는 많은 젊은이와 지식층이 불교에 모여듭니다. 그리고 자신을 닦아 나가는 선수행을 통해 점차 깨달음에 접근하고 있습니다.
무심 스님
외국 사람들과의 문화나 관습의 차이로 인한 에피소드도 많았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숭산 스님
처음에 외국에 나갔을 때 말을 못 하니까 고생이 심했어요. 한 번은 내가 “참선이라는 것은 자성을 깨달아서 자기를 완성해서 부처가 되는 길이오” 했더니 통역하는 교수가 내가 한 2분밖에 안 한 말을 20분 동안 번역하더라고. 그래 내가 그 교수한테 “그건 당신 얘기지 내 얘기가 아니오. 그걸 해석하면 어떻게 해요” 그랬더니 어쩔 수 없다는 겁니다. 이 사람들이 알아듣질 못한다고요. 그중에는 책도 많이 본 사람도 있는데 이 선에 대해서는 도통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 사람들에게 선을 알려줄 수 있을까 하고 고민하다가 내가 최면술을 좀 했었기 때문에, 말은 통하지 않아도 마음으로 서로 통할 수 있는 최면술을 가르쳐 달라고 하는 겁니다.(웃음) 그래서 최면이고 뭐고 다 때려치웠습니다.
대학교수가 한 명 있었습니다. 철학 교수였는데 공부를 많이 했는데, 한 십 년 일본 선(禪)을 해서 자기 나름대로 아만(我慢)이 높았어요. 그래 하루는 내가 그 아만을 좀 꺾어 주려고 물었습니다.
“(숭산) 안토니! 저 하늘이 무슨 색인가?” “푸른색 아닙니까.” “(숭산) 그래, 그럼 하늘이 너더러 푸르다고 했느냐? 그게 아니면 그 푸르다는 것은 어디서 나온 말이냐?” “하늘이 푸른 것 아닙니까?” “(숭산) 하늘이 푸르다는 것은 네가 푸르다고 하는 것이지 하늘이 너더러 푸르다고 말한 것이 있느냐?” “없습니다.” “(숭산) 그럼 하늘이 푸르다는 것은 네 말이지 네 말. 그러니까 하늘은 원래 색깔이 그런 것인데 사람이 이름을 붙여 푸르다고 한 것이지. 또 얘기를 더 해보자. 개가 어떻게 짖지?” “워프, 워프하고 짖습니다.” “(숭산) 그건 미국 사람들한테나 ‘워프, 워프’지 한국 사람들한테는 ‘멍멍’이고 저 폴란드 사람들한테는 ‘하우 하우’가 개 짖는 소리가 될 것이다. 대학교 교수 네 머리통 속에 있는 것은 전부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만 들어 있지, 네 것은 하나도 없어. 네가 아는 것이 무엇이냐? 네 것을 찾는 것이 선이다. 네 것을 찾기 전까지는 네 것이란 없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한 것이 바로 그것이다. 내 것을 찾아야 내가 길이 되고 진리가 되고 생명이 될 것이 아니냐” 하고 얘기했어요. 좀 배운 식자층에게는 다 이런 식으로 가르쳤습니다.
무심 스님
현재 미국이나 유럽 등지에서는 한국불교뿐 아니라 먼저 들어간 일본불교나 불교는 아니어도 인도의 명상, 요가 등의 활동도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들 여타의 활동들과 한국불교 활동의 차이가 있다면 무엇입니까?
숭산 스님
명상과 한국불교의 차이가 있다고 한다면 명상은 몸의 건강과 마음의 편안함만을 위한 것이고, 중국불교는 ‘아미타불’을 외우고 일본불교도 ‘남묘호랭계교’ 하는 몇 가지 주문을 외면서 소원성취나 바라는 것이지요. 또 일본의 조동종이나 임제종의 선불교가 들어가 있는데 일본 선불교라는 것은 형식불교, 형식 선이에요 공안도 사다리 모양으로 체계가 있고 교수법이 있어 하나하나 가르쳐 주는 거예요. 우리 모양 마음을 탁 깨우치는 게 아니라 한 단계 한 단계 타고 올라가는 거지요.
서양인들이 이러한 것을 배우다가 이제 한국불교로 왔다 이겁니다. 여러 각 나라의 불교를 배웠지만 이것을 배우는 목적이 뚜렷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원래 불교의 목적은 자기 자신을 아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한국불교는 불교 원래의 목적을 가장 정확하게 계승하고 유지시키고 있습니다. 이 사람들에게 이 가장 궁극적인 목표 의식을 심어 주었다는 것이 다른 종교나 요가, 명상들과는 확연하게 다른 점입니다.
무심 스님
마지막으로 지난 30년 동안 스님의 활동을 한마디로 정리하신다면 어떻게 표현하시겠습니까?
숭산 스님
30년 동안 포교하면서 딱 한 가지를 가지고 돌아다녔는데 ‘네가 무엇이냐? 네가 무엇이냐?’ 바로 이 거지요. 부처님께서 8년 동안 가지셨던 그 의심덩어리를 이 시심마(是甚麽) 화두를 가지고 가르쳐 왔고, 앞으로도 가르칠 겁니다.
또 우리나라가 해방할 때 즈음에 세계 인구는 20억쯤 되었다고 했어요. 이 인구도 부처님 당시와 비교할 때는 20배는 는 것이라는데 지금은 어떻습니까? 이 많은 사람이 고기를 먹고, 가죽으로 된 구두를 신고, 옷을 입고 다녀요. 이미 사람의 정신 속에는 이렇게 죽은 짐승의 영혼이 들어와 있어요. 그중 한 5%, 10%나 인간성일까? 나머지는 다 소나 말이나 개나 돼지 같은 동물성이 다 자리 잡고 있는 겁니다. 우리는 이런 시대에 진정한 인간성을 완성해 보자는 겁니다.
그러기 위해선 우리는 커다란 사랑의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다음엔 커다란 봉사로서 대비(大悲)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과 보살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엇인가 하면 바로 대자대비보살도(大慈大悲菩薩道)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마음속에, 자성 속에 있는 것이니 그것을 닦아 나가자 하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1994년 7월호(통권 237호)에 실린 숭산 스님과 숭산 스님의 외국인 상좌인 무심 스님의 월간 「불광」 창간 20주년 기념 기획 대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