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작·역자 | 원철 | 정가 | 18,000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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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일 | 2024-01-26 | 분야 | 에세이 |
책정보 |
판형_135*200mm|264쪽|2도|ISBN_979-11-93454-38-1 (03810) |
흔들림 없이 오늘을 살아가는 지혜,
나보다 먼저 살아본 사람들이 남긴 글, 한시(漢詩)에서 발견하다!
옛사람들이 자신의 감정을 압축된 글자로 표현한 한시는 한자로 쓰였을 뿐, 오늘날로 치면 시와 같다. 때로는 즐겁고 때로는 고단한 우리 삶의 모습이 한시에도 담겨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시는 단순한 시가 아니다. 오랜 시간 사람들의 손을 거쳐 기록되고 가슴에 새겨져서 전해진 이 짧은 문장 속에는 당대의 사상가와 문장가들이 남긴, 시간을 초월하여 곱씹을 만한 무언가가 숨어 있다. 시간을 초월하여 현재까지 한시가 읽히는 까닭이다.
이 책은 불교계 대표 문장가이자 한문학에 정통한 원철 스님이 수많은 한시 가운데에서도 ‘명구’만 가려뽑은 것이다.. 중국의 도연명과 야보 도천 선사, 한국의 김병연(김삿갓)과 사명 대사, 일본의 사이초 대사까지…. 한국・중국・일본이라는 지리적 차이와 승속을 막론하고 옛 문헌 구석구석에 숨겨져 있던 한시를 찾아 핵심 구절만 옮기고 새롭게 이야기와 의미를 더했다. 이 책의 한시와 원철 스님의 글을 통해 언제든 나의 중심을 잡아줄 삶의 지혜를 길어올릴 수 있을 것이다.
지은이 원철
한문 불교 경전과 선사들의 선어록 번역 및 해설 작업을 통해 고전의 현대화에 일조하는 한편, 대중적
인 글쓰기를 통해 세상과의 소통도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 해인사 강주(講主), 대한불교조계종 불학연구소장, 포교연구실장을 지냈으며 현재 불교사회연구소장으로 있다.
저서로 『낡아가며 새로워지는 것들에 대하여』, 『집으로 가는 길은 어디서라도 멀지 않다』, 『아름다운 인생은 얼굴에 남는다』, 『스스로를 달빛 삼다』, 『할로 죽이고 방으로 살리고』 등이 있다.
∙ 들어가며
1부 사슴의 알, 바닷게의 꼬리
측천무후가 백비(白碑)를 남긴 까닭은
인물이 머물러야 명산이다
사슴의 알, 바닷게의 꼬리
혼자 살아도 두렵지 않고 세상과 떨어져도 걱정하지 않는다
이 일 저 일 떠들어대느냐?
도화꽃 핀 곳이라면 어디라도 신선세계로다
금은 불에 들어가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다
첫사랑을 그리워하며
일곱 걸음을 걸으면서 시를 남기다
어떤 고난이든 내 기쁨의 계기로 삼는다네
연탄불도 때로는 등불이 된다
시련의 기록이 있어 그 거리는 더욱 아름답다
끝과 시작을 구별하지 말라
남의 잘못에는 추상 같지만 자기 허물에는 관대했다
지도 보며 방 안 휴가를 즐기다
2부 모서리 한켠이라도 밝힐 수 있다면
푸른 동백숲에 붉은 횃불 꽃
뱁새가 황새 걸음을 하면 가랑이가 찢어진다
눈을 이고 있는 대나무
‘순간’을 포착하여 ‘영원’을 만들다
임명장이 어떻게 바위 굴까지 왔는가
가출하면서 시 한 편을 남기다
모서리 한켠이라도 밝힐 수 있다면
세상을 떠나서 따로 진리를 찾지 말라
아홉 용이 물을 뿜다
부인도 무시한 낙방자를 반겨주는 것은 강아지뿐
두물머리에서 글 읽으며 노년을 보내다
맑지도 탁하지도, 높지도 천하지도 않은 경지
술을 대신하여 차를 권하다
범종을 치면 작은 소리들은 사라지는 법
3부 책이 천 권이요, 술은 백 병이라
고관대작 무덤보다 구석의 허난설헌 묘를 찾는 까닭은
영정을 보며 생전 모습을 찾다
‘가기 싫다[不肯去]’고 버틴 곳
문 밖을 나가지 않아도 천하의 일을 모두 알다
일지매, 절제 속의 처연한 미학
종소리는 양수리를 지나가는 나그네가 듣고
나무마다 모두 상복인 흰 옷을 입었네
봄이 와도 봄이 아니구나
자기 때를 알아야 한다
책이 천 권이요, 술은 백 병이라
여산의 진면목을 알 수 없구나
악처로 낙인 찍히다
망가진 왕조의 흔적을 만나다
죽으면 어디로 가는 것입니까
4부 맑은 물엔 수건을, 흐린 물엔 걸레를
왜 벚꽃은 피어남과 동시에 떨어지는가
더위도 마음 먹기 나름
고향 땅을 찾지 말라
빈 배에 달빛만 가득 싣고 돌아오다
맑은 물엔 수건을, 흐린 물엔 걸레를
필 때도 설레고, 질 때도 설레고
탱자를 귤로 바꾸다
잠 못 드는 밤에 국화를 바라보며
물 흐르니 꽃 피고
석가모니가 설산에서 나오다
따래비, 세 개의 오름이 모여 있는 곳에서
설날 아침 복을 여니 모든 것이 새롭구나
눈인지 매화인지 구별할 수 없으니
화장, 동쪽에서 바르고 서쪽에서 칠하는 것
먼 나라의 고통이 나와 무관치 않은 까닭은
옛사람들이 남긴 고전이라 할 만한 것, 한시
그 속에서 찾은 ‘오늘’을 사는 법
흔히 ‘한시는 어렵다’고 말한다. 요즘 대중에게 익숙하지 않은 한자로 기록된 것이 첫 번째요, 한정된 글자 안에 많은 뜻을 담고 있기에 그 의미를 모두 파악하기 어렵다는 것이 두 번째 이유이다. 한시를 오롯이 감상하기보다는 분석하는 법을 가르치는 입시 위주의 교육도 여기에 한몫할 것이다. 하지만 한시는 그리 어려운 무언가가 아니다. 옛날의 사람과 오늘의 사람은 살아가는 시대가 다를 뿐, 결국 한 생을 꾸려나가는 한 존재라는 점에서 우리는 모두 같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시는 오늘날 우리가 읽는 시와 다름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시에는 ‘특별한 것’이 숨겨져 있다. 그건 한시를 쓴 이들이 문인이나 학자, 승려 등 당대의 지식인이라고 불릴 수 있는 이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수많은 작품 가운데에서도 사람들의 마음을 파고드는 무언가가 있는 것만이 오늘날까지 전해진다. 시간과 공간을 넘어 언제든 사람들에게 울림이 있는, 그래서 ‘고전’이라고 불릴 만한 것이 현재 우리가 접하고 있는 한시다.
이 책은 불교계 대표 문장가이자 한문 고전의 대중화에도 힘쓰고 있는 원철 스님이 옛 문헌에서 가려뽑은 한시의 명구만을 옮기고, 이를 바탕으로 그 속에 담긴 이야기와 의미를 더한 것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 저자가 알려주는 것은 ‘한시’를 분석하고 번역하는 방법이 아니다. 한시는 소재일 뿐, 그 안에 숨겨져 있는 ‘사람’과 우리들의 삶, 더불어 세상을 살아가는 법에 말한다. 이를 통해 옛사람들의 가르침을 어떻게 거울 삼아 오늘을 살아가야 할 것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불교계 대표 문장가이자 한문학에 정통한
원철 스님이 한시에서 길어올린
혼자라도 걱정 않는 삶을 사는 법
이 책에 수록된 59편의 글은 각기 다른 한시 구절을 주요 소재로 삼았다. 그 가운데에는 마음이 철렁하다 싶을 정도로 내 생각을 깨부수어 주는 구절도 있고,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오게 하는 구절, 지난 삶을 돌아보게 만드는 구절도 있다. 여기에 저자 원철 스님은 각종 문헌과 경전을 참고하여 한시만으로는 알 수 없는 ‘뒷이야기’를 달고, 스님 나름의 의미를 더했다.
중국 야보 도천 선사가 금강경 해설로 달아 유명해진 구절인 “빈 배에 가득히 허공의 밝은 달만 싣고 돌아온다(滿船空載月明歸)”의 원작자가 뱃사공 노릇을 하며 수행에 정진했던 화정 덕성 선사임을 알려주면서 원 저자의 공덕에 못지 않은 대중화의 공로를 치하하는가 하면, 조선시대 최한경이 첫사랑에 대해 읊은 “꽃밭에 앉아 꽃잎을 쳐다본다. 아름다운 색깔은 어디에서 왔을까?(坐中花園 瞻彼夭葉 兮兮美色 云何來矣)”라는 구절을 보고 ‘아름다움’에는 시간적인 요소가 포함될 것이라고 덧붙인다. 그런가 하면 다산 정약용이 자신보다 먼저 입적한 10살 어린 스님 친구를 위해 쓴 탑명(塔銘)을 보며 두 사람의 나이를 초월한 우정과 이로부터 시작된 불가(佛家)와 유가(儒家)의 교류를 되짚어보기도 하고, 계곡 물과 구름, 꽃향기와 종소리가 만들어내는 아름다움이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모습을 노래한 백거이의 시를 통해서 시대의 화두로 등장한 관계성에 대해 사유한다.
이렇듯 저자는 한시 속에 숨겨진 가치를 에둘러 짚어준다. 사소하게 여기고 지나친 익숙한 것들에 내가 몰랐던 의미가 있을 수 있다는 것, ‘함께한다’는 것에는 어떤 조건도 필요없으며 예상치 못했던 힘을 발휘할 수도 있다는 것,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살아가면서도 세상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만의 중심을 지켜나가야 한다는 것 등이다. 흔한 힐링이나 위로, 어떤 충고도 쉽게 하지 않는 스님은 우리 스스로 그 답을 알아낼 수 있도록 넌지시 알려준다. 이를 통해 세상과 떨어져 혼자라고 느껴질 때에도 두려움 없이 당당히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 저자의 말
절집에 살면서 한시나 선시를 읽으며 개인적으로 적지않은 위로를 받았다. ‘삘(feel)’ 꽃힌 한두 줄은 꼭 메모를 남겼다. 한자를 사용하던 시대나 한글을 사용하던 시절이나 인간의 정(情)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확인한 것이 소득이라면 소득이라 하겠다. 혼자 보기에 아까운 것들은 한글로 다듬었다. (…) 하지만 전문(全文)이 아니라 공감력 높은 행(行)만 따로 가져오는 방식을 취했다. 시 한 편 가운데 고갱이는 어차피 한두 줄이 아니겠는가? 또 바쁜 세상을 살아야 하는 분주한 사람들에게 장문으로 된 한시 한 편을 전부 읽으라고 하는 것도 오히려 번뇌가 되는 시대인 까닭이다.
익명은 곧 은둔과도 연결된다. 산에 숨는 것도 은둔이 되겠지만 도시에 숨는 것이 어찌 보면 더 철저한, 제대로 된 은둔이 될 수도 있겠다. 쫓기는 자가 시장통으로 달려와 사람들 속에 숨는 것은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장면이다. 모르는 사람끼리 모여 살면서 끝까지 서로 모르는 척 할 수만 있다면 서로가 서로에게 은둔처를 제공하는 셈이다.
_ 본문 29쪽(「혼자 살아도 두렵지 않고 세상과 떨어져도 걱정하지 않는다」)
중국에서는 세상의 갖가지 일을 ‘나귀 일[驢事] 말 일[馬事]’이라고 했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짐승이 당나귀와 말이었기 때문이다. 조선이라면 ‘개 일[犬事] 소 일[牛事]’이라고 했으려나. 광장에 수십만 대중이 모여 한 목소리를 내더라도 각자 셈법을 따르기 마련이다. 한편에서 옳고 그름[是非] 때문에 나섰는데, 다른 한쪽에선 손익 계산법에 따라 끼어들기를 하기 때문이다. 시비를 가리기도 전에 손익 문제가 겹쳐지니 세상은 늘 시끄럽다.
_ 본문 33쪽(「이 일 저 일 떠들어대느냐?」)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정의할 능력은 없다. 다만 여러 가지 요소가 균형 있게 합쳐진 것일 거라고 짐작할 뿐이다. 그래도 한마디 보탤 수는 있다. 거기에는 시간적인 요소도 포함된다고. 찰나에 사라지기 때문에 아름다운 법이라고.
_ 본문 44~45쪽(「첫사랑을 그리워하며」)
남들이 물로 내려간다고 해서 같이 물로 따라 갈 일이 아니다. 모두 나무 위로 올라간다고 해서 무턱대고 따라 할 일이 아니다. 각자 자기 본성에 맞는 최선의 행동이 해답이다. “뱁새가 황새 걸음을 걸으면 가랑이가 찢어진다.”는 속담도 그래서 나왔을 것이다. 그러므로 고우 선사는 “다른 사람과 무한경쟁(無限競爭)하지 말고 스스로 무한향상(無限向上)하라.”고 늘 말씀하셨다. 길면 긴 대로, 짧으면 짧은 대로 스스로 능력의 범위 안에서 무한향상하면 될 일이다.
_ 본문 86쪽(「뱁새가 황새 걸음을 하면 가랑이가 찢어진다」)
시 한 수도 마찬가지다. 먼저 지은이가 있다. 그다음에 전달한 사람이 있다. 공개되면서 작품에 대한 평가가 더해진다. 보존 가치가 있다고 판단한 후 기록했다. 기록된 책이 여러 가지 이유로 없어지지 않도록 잘 건사해야 한다. 그래야 후대까지 전해지기 때문이다. 밥 한 그릇만큼 옛시 한 편에도 만인의 노고가 숨어 있는 것이다. 따라서 한 수 한 수마다 밥 한 술을 오래오래 입안에서 씹듯이 음미해야 하는 이유가 된다.
_ 본문 133쪽(「범종을 치면 작은 소리들은 사라지는 법」)
영의정을 지내고, 도승지를 지내고, 이조참판으로 추증된 권문세족들이 강가의 모래 숫자만큼 많을 것이다. 집안 식구들을 제외하고 그것을 누가 일일이 기억하랴. 따라서 그런 직위나 자리가 아니라 남겨놓은 업적으로 평가하다 보니 며느리가 맨끝 한 줄로써 집안의 체면을 살린 셈이다. 허씨 집안의 ‘출가외인’이지만 김해 김씨 문중의 식구인 까닭이다. 문손들에게는 집안 묘역에 난설헌 묘가 얹혀 있는 형국이겠지만 찾아오는 사람들의 눈에는 난설헌 묘에 집안 어른들이 얹혀 있는 모습으로 보일 수도 있겠다. 왜냐하면 난설헌 묘를 찾은 김에 주변 어른과 재실의 역사를 함께 살펴보기 때문이다. 이것이 시인이 가진 힘이다.
_ 본문 144~145쪽(「고관대작 무덤보다 구석의 허난설헌 묘를 찾는 까닭은」)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라는 말도 청원 유신 등 몇몇 선사들이 즐겨 사용했지만 성철 스님으로 인하여 대중에게 널리 알려졌다. 물론 원 저자의 공덕이 가장 크겠지만 대중화의 공로도 그 못지 않다고 하겠다. 요즈음 갖가지 음악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심사위원이 자기 곡을 리메이크하여 부르는 참가자에게 보내는 최고의 칭찬이 “이거 내 노래 맞아요?”라는 심사평이다. 같은 곡이지만 누가 부르느냐에 따라서 완전히 다른 색깔을 내기 때문이다. 같으면서도 다르다.
_ 본문 216쪽(「빈 배에 달빛만 가득 싣고 돌아오다」)
홀로 그냥 앉아 있을 뿐인데 시간이 흐르면서 한순간에 모두가 새해라고 부르는 무상의 도리를 실감한다. 작년의 나와 올해의 나는 동일한 인물인데 작년 사람과 올해 사람으로 달리 불리는 무아의 경험도 하게 된다. 등불도 마찬가지다. 동일한 등불인데 한순간 작년 등불과 올해 등불로 바뀌면서 작년의 나와 올해의 나를 동시에 비춰준다는 사실도 알았다. 양변을 동시에 살피는 중도(中道)의 이치를 그대로 체현(體現)한 것이다.
_ 본문 245~246쪽(「설날 아침 복을 여니 모든 것이 새롭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