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기도(祈禱) | 김동리(중앙대 예술대학장)
나는 고향이란 의미에서보다도 신라의 고도(古都)라는 연유에서 경주를 더욱 사랑한다.
신라의 고도라 해도 사람마다 생각하는 영상은 각각 다를 것이다.
내가 신라의 고도로서의 경주를 사랑한다고 할 때,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미지는 그 허다한 고적들이다. 가운데서도 첨성대 안압지 불국사 석굴암 등이다.
이렇게 말하면 누구나 비슷한 것이 아니겠냐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것과 내용이 다르기 때문이다. 내가 석굴암, 불국사(특히 다보탑과 석가탑) 안압지 첨성대를 그렇게 연연하게 그리는 것은 천 수백 년 전의 우리 조상이 살고 간 자취라든가, 세계에서 자랑할 만한 문화유산이라든가 하는 따위 때문이 아니다. 물론 그런 것도 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나에게는 따로 있다.
그것은 고적의 살아 있는 듯한 숨결이다. 그러한 고적에서 숨결을 나는 느끼게 된다. 첨성대만 두고 보더라도 그 당시 어느 석공(石工)이 또는 어느 조각가가 무슨 학문적 근거에서 누구에게 배운 기술로써 돌을 쌓았기에 지금까지 허물어지지 않고 그렇게도 단아하게 남아 내려올 수 있단 말인가.
사람들은 애굽의 피라미드도 있지 않느냐 할지 모르지만, 피라미드는 저변(底邊)과 정상의 경사도(傾斜度)를 이용했기 때문에 이론이나 기술의 문제를 운위할 대상은 못 된다. 첨성대는 어디까지나 건축물 내지 조각으로서의 역학적(力學的) 이론과 기술의 논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건물이다.
첨성대뿐 아니라 안압지 석굴암, 다보탑 석가탑 따위들을 볼 때마다 나는 어느 이름 모를 석공 또는 조각가의 신기(神技)란 것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어느 과학적 이론이나, 그냥 수련의 결과만이 아닌 오랜 기도의 결과에서 얻어진 입신지기(入神之技)랄까, 그런 것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
물론 이름난 큰 종교는 오랫동안 수많은 사람의 기도를 통하여 사람의 기구(祈求)에 감응하는 길이랄까 역사(歷事)가 닦아져 있다는 점은 있겠지만, 원칙적으로는 모든 사람의 지극한 마음이 쌓이는 곳에 원력은 이루어진다고 믿어지는 것이다.
나는 일찍부터 여러 종교에 접근하여 왔지만 아직도 일정한 종교에 귀의하지 못한 채 내 나름대로 기도하는 심정은 익어 있다.
나는 이 찬란한 새아침에 기원한다.
‘인류의 역사가 자유를 지키는 원칙 위에서 전개되게 하여 주옵소서. 나의 조국이 피 흐르는 혁명의 수단이나 노예화 과정을 치르지 않고 자유의 기반 위에서 통일되게 하여 주옵소서.
나의 일신상에 건강과 문학에의 의지를 성취시켜 주옵소서.’
1979년 1월호(통권 51호)에 실린 김동리의 글을 현대적 문법으로 일부 교정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