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도 12궁과 별자리
시계도 없고 기상청도 없던 고대에는 어떻게 시간을 알고 계절의 바뀜을 맞이할 수 있었을까?
수렵채취사회에서 농경·유목사회로 변모하자 이제는 계절의 변화를 정확히 감지할 수 있어야만 했다. 농경민은 곡식 심을 때를 가늠해야 했고 유목민은 좋은 풀이 나는 고장을 때맞춰 찾아가야 했기 때문이다.
인류가 농경을 시작한 시기는 약 1만 년 전, 마지막 빙하기가 끝나고 지구의 온도가 점차 올라가면서 시작된 것으로 보고 있다. 동물도 길들이기 시작했다. 먹이를 찾아 집 근처로 다가오는 늑대를 길들여 개로 만들었고 멧돼지를 길들여 집돼지로 바꿨다. 시대적으로는 신석기시대가 시작됐다.
고대인들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이 땅을 중심으로 해나 달이 그 주위를 돌고 있다고 생각했다. 중동 지역의 고대인들은 날마다 뜨고 지는 해와 별을 관찰했다. 이를 통해 낮에 해가 지나가는 길은 일정하게 정해져 있다는 것을 알았다. 또한 해가 지나간 길 위로 뜨는 별들이 일정한 패턴을 그리는 것을 알게 됐다. 해가 지나가는 길을 황도(黃道, Ecliptic)라 한다. 우리는 해가 여름에는 머리 위로 지나가고 겨울에는 남쪽으로 낮게 떠서 지나가는 것을 안다. 곧 해는 황도를 중심으로 상하 8도의 영역 안에서 지나가기 때문에 이 띠처럼 둥근 영역을 황도대(黃道帶, Zodiac)라고 부른다. 자연스럽게 이 황도대에 나타나는 별들을 주목하고, 이를 크게 12개의 별자리 영역으로 나누게 됐다. 이를 황도 12궁(黃道十二宮, The Twelve Houses Of The Zodiac)이라 한다. 곧 해가 12궁을 다 순환하고 제자리로 돌아오면 1년이 된다.
이 개념은 이미 BC 3900년경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살던 수메르의 기록에 나타난다. 천체와 하늘의 별을 연구하던 당시의 관찰자들은 12궁 안의 별자리들의 모습을 여러 가지 동물과 상징물로 비유한다. 그중에는 구안나(Guanna, 하늘의 황소), 우르굴라(Urgula, 사자), 두브(Dub, 집게), 기르타브(Girtab, 할퀴고 자르는 것), 수후르마시(Suhurmash, 염소), 심마흐(Simmah, 물고기), 쿠말(Kumal, 들판에 거처하는 자)이 있고, 구(Gu, 물의 지배자), 지바안나(Zibaanna, 하늘의 운명), 마시타브바(Mashtabba, 쌍둥이) 등도 있다.
학자들은 이 메소포타미아의 천문학이 바빌로니아, 이집트, 그리스, 유럽, 인도 등으로 전승되고 퍼져나간 것으로 보고 있다. 그 과정에서 두브는 게자리, 기르타브는 전갈자리, 쿠말은 양자리로 정착되고 구는 물병자리, 지바안나는 천칭자리로 바뀌게 된다. BC 1800년경 이집트에서는 1년을 365일로 하는 태양력을 만들었다. 바로 양력(揚歷)의 시작이다. 특히 그리스에서는 별자리마다 신화가 덧붙여져 지금까지도 풍부하고 재미있는 별자리 이야기로 전승되고 있다. 그중에 전갈자리 신화 내용은 이렇다.
달의 여신 아르테미스(Artemis)의 연인인 사냥꾼 오리온(Orion)은 오만하여 세상의 모든 동물을 자신이 죽일 수 있다고 떠들고 다녔다. 올림포스의 신들은 화가 났고 결국 오리온은 신들이 보낸 전갈에 물려 죽고 만다. 전갈은 오리온을 죽인 공로로 하늘로 올라가 전갈자리가 됐다. 오리온은 하늘에서도 전갈이 무서웠는지 서쪽 하늘에서 전갈자리가 질 무렵에야 동쪽 하늘로 오리온자리가 보이기 시작한다.
이러한 그리스 천문학은 BC 326년 알렉산더 대왕이 동방 원정으로 인도 북부인 스와트와 간다라 지역을 정복하고 그리스 문명을 심으면서 인도에도 전해지게 된다. 황도 12궁 별자리의 이름이 인도 고대어인 산스크리트어로도 남아 있기 때문이다.
해가 황도 12궁을 다 지나가면 계절이 순환하고 1년이 된다는 의미에서 ‘12’는 완전한 주기, 우주의 질서를 상징하고 성스러운 수, 완전한 수로 인식된다. 하루를 낮과 밤으로 나누고 12시간으로 배정하면서 24시간이 하루가 되고 1시간을 60분, 1분을 60초로 정한 것도 수메르에서 시작된 것으로 보고 있다. 모두 숫자 ‘12’의 배수다.
서양 문화에서 ‘12’라는 숫자는 곳곳에 등장한다. 올림포스의 12신(神), 예수의 12사도, 원탁의 기사 12명, 피아노의 12음계가 있고 1피트는 12인치, 연필 1다스는 12개인 것이 그러한 예다.
12간지(干支)와 달
서양에서 해를 중심으로 우주를 관찰했다면 동양에서는 달을 중심으로 천체를 관찰했다. 달을 살펴보니 초승달에서 보름달이 되고 보름달이 점점 작아져 사라졌다가 다시 초승달로 돌아오는 데 30일이 걸렸다. 이 숫자를 세기 위해 손가락을 사용했다. 인체에 딸린 손가락으로 세는 것이 제일 간편했고, 열 손가락에서 유래한 10진법은 가장 손쉬운 셈법이기도 했다.
10일을 1순(旬)이라 했고 상순(上旬), 중순(中旬), 하순(下旬)을 합하면 바로 한 달 30일이 된다. 상순은 초순(初旬)이라고도 한다. 또 한 달이 12번 지나가면 똑같은 계절이 반복된다는 것도 알았다. 자연히 일 년을 12달로 하게 됐다.
간지(干支)는 10간(干) 12지(支)를 줄여서 부르는 말인데 ‘간(干)’은 나무줄기[幹]를 말하고 ‘지(支)’는 나뭇가지[枝]를 말한다. ‘10’이라는 숫자가 달의 변화를 세는 기본 숫자였기 때문에 10간이라 하고 하늘을 상징하기에 천간(天干)이라고도 한다. ‘12’는 계절의 변화를 나타내기에 12지라 하고 땅을 상징하기에 지지(地支)라고도 한다.
우리가 다 알다시피 10간은 갑(甲)·을(乙)·병(丙)·정(丁)·무(戊)·기(己)·경(庚)·신(辛)·임(壬)·계(癸)이고 12지는 자(子)·축(丑)·인(寅)·묘(卯)·진(辰)·사(巳)·오(午)·미(未)·신(申)·유(酉)·술(戌)·해(亥)다. 10간이나 12지에 쓰는 한자가 애초에는 무엇을 의미했는지 아직 정확히 모른다. 고대에 거북 뼈를 태워 점을 치던 시대에는 주변에서 흔히 보던 물건을 지칭했을 것으로 추정할 뿐이다.
10간과 12지를 서로 겹치지 않게 조합하면 바로 60갑자가 된다. 갑자(甲子)년부터 시작해 계해(癸亥)년까지 60회가 되고 다시 갑자년으로 돌아오기 때문에 회갑(回甲), 환갑(還甲)이라고 한다. 평균수명이 짧았던 시절에는 60년 주기가 돌아온 어른을 위해 회갑 잔치를 크게 벌였다.
이 간지가 나타난 것은 3,000년 전 상(商)나라 시대의 갑골문이다. 상나라를 보통 은(殷)나라라고 부르는데 상나라의 수도가 은(殷)이었고 이후 건국된 주나라가 은나라로 기록했기 때문이다. 갑골문에 나타난 간지는 그때의 날짜를 기록한 것으로 본다. 그 후 한나라 때인 BC 105년 병자년부터 연대가 확실하게 표기되고 시간이 지나면서 달과 날짜, 시간까지 간지로 표시하게 된다. 여기에서 사람이 태어나면 연, 월, 일, 시가 간지로 나타나는 사주팔자(四柱八字)가 등장하게 된다. 특히 12지는 후한(AD 25~220)시대 중기에 이르자 시간과 방위개념에까지 연결돼서 사용되기 시작했고 이 문화는 한국은 물론 일본, 몽골, 베트남 등에도 전해졌다.
12지 동물의 등장
12지는 달과 자연의 변화를 관찰하는 데에서 출발했지만 후대에 이르러 여기에 열두 동물을 배정했다. 이에 대한 기록은 후한 왕충(王充, 27~?)의 『논형(論衡)』에 처음 나타난다. 왜 12지에 열두 동물을 배정했을까?
보통은 일반 백성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배정했다는 설이 있다. 한 해를 간지로 부르는 것보다 동물 이름으로 부르면 글자를 잘 모르는 백성들이 쉽게 이해해 농사에 도움이 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에 인도에서 건너온 12수(獸) 동물을 기본으로 배정했다는 설이 있다. 인도는 이미 서양 천문학이 들어와서 동물을 상징으로 쓰는 문화가 있고 12종류의 동물을 자체적으로 선정해 쓰고 있었다. 『대방등대집경』에 열두 동물이 등장하고 『약사경』에도 12야차대장(夜叉大將)이 등장하는 것이 그러한 예다. 문제는 인도의 상징 동물 중 중국에 없는 것도 있다는 것이다. 당연히 동물 대체 작업에 들어갔다. 사자는 호랑이로, 공작은 닭으로 바뀌었다. 신화 속의 뱀인 나가(Naga)는 용으로 대체됐다. 혹자는 중국에서 발생한 12지 동물(Chinese Zodiac)이 인도로 들어가면서 오히려 인도의 동물로 바뀌었다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이 또한 확실한 사료가 있는 것은 아니다.
동물들의 배열순서는 어떻게 정해진 것일까? 여러 가지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옥황상제가 등장하기도 하고 음양설이 등장하기도 하고 부처님이 등장하기도 한다. 그만큼 정설은 없다는 뜻이다.
불교의 설화는 이렇다. 하루는 석가모니 부처님이 천국으로 들어가는 열두 대문의 수문장을 선정하라고 대세지보살에게 말했다. 대세지보살은 열두 동물을 선정한 후 모든 동물의 무술 스승이었던 고양이를 제일 앞자리에 정하고 그 뒤로 소, 호랑이, 토끼 등을 차례대로 앉혔다. 대세지보살이 석가모니 부처님에게 설법을 청하러 간 사이 고양이가 별안간 변의를 느꼈다. 참을 수가 없어서 할 수 없이 잠시 숲속으로 뒤를 보러 갔다. 그때 마침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났다. 살펴보니 한 자리가 비었다. 어찌 된 일인가 물어보니 고양이를 따라 구경 삼아 쫓아온 생쥐가 쪼르르 달려 나와 “고양이는 ‘수문장 일이 힘들고 번거롭다’ 말하고는 고향으로 돌아갔다”고 능청스럽게 거짓말을 했다. 이 말을 들은 석가모니 부처님이 생쥐에게 “수문장 자리가 한 곳 비었으니 네가 수문장을 맡으라”고 말했다. 이내 고양이가 급한 볼일을 보고 돌아왔지만 석가모니 부처님도 한번 결정한 일을 다시 번복할 수 없어 그대로 실행에 옮겼다. 결국 쥐가 1번 수문장을 맡게 됐다. 이때부터 고양이는 생쥐에게 속은 것을 분하게 여겨 영원토록 쥐를 잡으러 다니게 됐다고 한다.
이렇게 중국에서 발생한 12지 동물 문화는 아시아 각국으로 전파됐다. 나라마다 다른 환경과 풍토에 따라 다른 동물로 바뀌기도 했다. 한국과 일본은 중국과 12지 동물이 똑같다. 다만 일본에서는 돼지가 멧돼지로 바뀌었다. 베트남에서는 소가 물소로 바뀌었다. 소는 귀하고 물소가 흔한 지역이니 물소가 들어간 것이다. 같은 이유로 토끼는 고양이로, 양은 염소로 바뀌었다.
12지 동물은 중앙아시아로도 건너갔다. 그러나 우즈베키스탄에서는 용의 자리에 물고기가, 카자흐스탄에서는 달팽이가 용을 대신한다. 물고기나 달팽이나 용처럼 비나 물과 관련돼 있다는 점이 공통적이다.
도표에서 보이듯이 공통으로 사용하는 동물은 쥐, 뱀, 말, 원숭이, 개다. 한국에는 원숭이가 없지만 중국산 12지 동물을 100퍼센트 수입해서 그대로 쓰고 있다. 특이하게 미얀마는 12지 동물이 없고 요일별 동물을 쓴다. 월요일부터 차례대로 호랑이, 사자, 코끼리, 쥐, 기니피그(햄스터 종류), 나가, 가루다(전설의 새)다. 자신이 태어난 해의 월·일을 찾아보면 요일이 나온다. 그 요일에 해당하는 동물이 자신의 수호신이다. 사찰에 참배할 때는 자신의 수호 동물 앞에서 기도를 올린다.
올해는 토끼의 해인 계묘(癸卯)년이다. 토끼는 순하고 영민한 동물이다. 인생사가 다 고난의 연속이지만 올해는 더욱 어려워진다고 한다. 모든 이들이 토끼처럼 영리하게 한 해를 잘 보내기를 염원해 본다.
노승대
‘우리 문화’에 대한 열정으로 조자용 에밀레박물관장에게 사사하며, 18년간 공부했다. 인사동 문화학교장(2000~2007)을 지냈고, 졸업생 모임 ‘인사동을 사랑하는 사람들 모임(인사모)’, 문화답사모임 ‘바라밀 문화기행(1993년 설립)’과 전국 문화답사를 다닌다. 『바위로 배우는 우리 문화』, 『사찰에는 도깨비도 살고 삼신할미도 산다』(2020년 올해의 불서 대상), 『잊혔거나 알려지지 않은 사찰 속 숨은 조연들』을 집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