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교회이든 절이든 젊은이들이 점점 줄고 있습니다. 그래서 "탈종교 시대"라고도 부릅니다. 옛날엔 자비롭고 청정한 삶을 추구하는 성직자를 이상적인 본보기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이제 시대가 변했습니다. 우리 교육 시스템이 물질적인 사회를 추구하며, 더 빠르고, 지적 처리능력을 높이는데 중점을 둡니다. 이제 사람들은 덕 많고 지혜로운 성직자가 있어도, 그냥 무작정 따르지 않습니다. 종교인들도 신도들에게 실질적이고 현실적인 이점을 제공하지 않고서, 그들의 존경과 좋은 대우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오늘 이 글을 쓰게 된 이유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명상반에는 젊은 학생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사실 별다른 생각이 없었는데 명상반을 계속 운영하다가 둘러보니 우리 반에 20대와 30대가 많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절에 찾아와서 “여기는 어떻게 이렇게 젊은 얘들이 넘쳐나요?”라고 묻습니다. 그래서 곰곰이 생각을 해봤습니다. 분명히 명상반 광고에 “나이, 인종, 종교 상관없이 누구나 오실 수 있습니다”라고 썼는데, 어째서 유난히 젊은이들이 많은지 저도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학생들 몇 명에게 물어봤습니다.
“우리 반에 왜 젊은 사람들이 많을까?”
그런데 이런 답을 들었습니다.
“그건 스님이 스님 같지 않아서 아닐까요?”
그래서 답하길,
“그래 내가 좀 스님으로써 여법하거나 스님스럽지 못하지. 내가 부족한 게 많기 하네!”
그런데 학생들이 말하길,
“스님 그게 아니고, 스님이 격식을 안 차리고, 편하게 해 주니까 학생들이 좋아한다는 말이에요.”
제 스승이신 영화 스님은 “오직 학생들을 어떻게 더 도울 수 있는지 생각”하고, “자신에 대한 생각은 하지 말고, 그들이 원하는 것을 얻게 해 주는데 초점을 두어라”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저를 친구처럼 대하든, 스님처럼 대하든 또는 나의 기분이 상하게 해도, 내가 옳다고 믿는 것과 반대되는 주장을 하든 그것보다는 그들이 뭘 원하는지, 어떻게 하면 그들의 인생이 향상할 수 있는지에 관심을 두었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젊은 학생이 명상을 배운 후 우울감과 스트레스가 많이 줄었습니다. 그 학생이 너무 좋아서 열심히 명상하고, 절에 찾아옵니다. 그 학생의 종교는 불교가 아닙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학생의 어머니가 절에 찾아옵니다. 자식이 너무 이상할 만큼 절에 자주 가니까 걱정스러워서 찾아옵니다. 매우 바쁜 날에도, 힘든 날에도 그 어머니의 걱정과 불평을 들어줍니다. 어떤 경우에 오해를 받거나, 무례한 말을 들을 때도 있습니다. 기분이 상하고 자존심을 공격하는 말을 듣더라도 그 어머니와 말싸움을 하는 대신, 그녀가 하고 싶은 말을 다할 수 있도록 기다립니다. 사람들은 스트레스를 받으면 어떤 것이 더 논리적이고 옳은지 듣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그냥 그들이 하고 싶은 말을 다 쏟아내도록 해줘야 합니다. 그리고 그 학생에게 어떤 것이 가장 이로울지에만 초점을 맞춥니다.
명상을 가르치거나 바른 종교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생각하는 것처럼 쉽지 않습니다. 특히 젊은이들의 명상을 지도하고, 그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은 더 어렵습니다. 우리가 기도나 명상으로 영적 성취나 경험을 하고, 누군가에게 나의 확신, 믿음, 지식을 말해주는 것은 쉽습니다. 하지만 타인을 돕기 위해서 오해, 모욕, 모함, 불평을 들어주고 인내하는 것이 더 필요할 때가 많습니다.
예전에는 목사님, 신부님이나 스님들은 자동으로 윗사람이고, 사람들은 예의를 갖추고 가르침을 받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시대가 다릅니다. 우리가 먼저 윗사람처럼 행동하고, 권위를 갖고 상대방을 대하면 사람들은 금세 인내심이 바닥납니다. 세상이 너무 바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가르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 멋진 불교 교리가 무엇인지 말해주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상대방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떤 문제를 극복하고 싶은지, 진짜로 배우고 싶은지부터 인지해야 합니다.
상대방이 묻기 전까지 가르치려 하지 마십시오. 우리에게 사람들이 불교를 믿든, 다른 종교를 믿든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제가 배운 아메리칸 스타일 명상입니다. 그리고 젊은이들이 미국식 명상에 열광하는 진짜 이유가 있습니다. 실질적인 변화를 경험하기 때문입니다. 명상을 통해 마음의 불안감, 우울, 분노, 혼란, 스트레스가 줄어듭니다. 집중력이 향상되고, 하고 싶은 일을 더 잘할 수 있게 됩니다. 그것이 진짜 이유입니다.
현안(賢安, XianAn) 스님
2012년부터 영화 선사(永化 禪師)를 스승으로 선과 대승법을 수행했으며, 2015년부터 미국에서 명상을 지도했다. 미국 위산사에서 출가 후 스승의 지침에 따라 한국으로 돌아와 현재 분당 보라선원(寶螺禪院)에서 정진 중이다. 국내 저서로 『보물산에 갔다 빈손으로 오다』(어의운하, 2021)가 있다.